압권의 주식 투자 특급 비밀 - 시장을 압도하는
박석호 지음 / 한국경제신문i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 스포일러가 있는 서평입니다. 주의 바랍니다. 원치 않으시면 돌아가기를 눌러주세요.


말문이 막히다

아내는 종종 내게 말한다.
"자긴 물에 빠지면 입만 둥둥 뜰거야."

그렇다. 나는 수다쟁이. 몸의 모든 부위 중에서 특히 입이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러니 아내도 '동동'이 아니라 '둥둥'이라고 표현했으리라. 헌데 이럴 수가 있는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말문이 막혔다. 한동안 아무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아니 왜?


연작안지홍곡지지(燕雀安知鴻鵠之志) : 소인은 대인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다.

내가 말문이 막힌 건 이 책을 쓴 저자의 마음이 헤아려지지 않아서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린 다음 거기서 수다 거리를 찾아내는 솜씨가 자칭 부인칭 예사롭지 않은 수준인데, 나는 이 책을 쓴 저자의 마음에는 도무지 접근하지 못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하다가 오래 전에 잊힌 고사성어를 떠올리게 됐다.

연작안지홍곡지지(燕雀安知鴻鵠之志). '제비나 참새 따위가 어찌 기러기나 고니의 큰 뜻을 알리오'라는 한자로, 통상 소인은 대인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렇다. 이 책을 쓴 작가가 대인이었고, 그래서 나에게는 그 마음이 헤아려지지 않았던 거다.


대인(大人)이란 무엇인가? : 군자 - 본분에 투철한 자

대인과 소인의 구분에 대해서는 동양의 여러 학자들이 후대에 길이 전해질 말을 많이 남겼다. 그중 공자는 다음과 같이 군자와 소인을 구분했다.
"군자는 정의(본분)에 투철하고 소인은 혼자만의 이익에 투철하다."

저자의 군자됨을 설명하려면, 이 책의 후반부의 내용을 인용해야만 한다. 인용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권장 사항은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한 분은 아래의 서평을 읽지 말고, 아직 이 책을 읽을지 말지 결정하지 않은 분들만 이하의 서평을 읽을 것이다.

어릴 적 저희 집은 가난했습니다. 어떻게든 먹고살고자 아버님은 백방으로 노력하셨지만, 안타깝게도 사업 실패로 이어지며 가세가 더욱 기울었습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저는 공부를 잘했지만, 장남이라는 책임감에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학업을 그만두고 생업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할 자신이 있었지만, 현실은 중학교 중퇴에, 마땅한 기술도 없는 저를 써주는 곳은 많지 않았습니다. 국어 · 영어 · 수학 점수 높다고 취직이 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직업을 찾는 와중에 아버지께서 부산에 있는 세탁소에 일자리를 알아봐주셨습니다. 당시 숙식이 해결되는 직장이 많지 않았는데, 세탁소에서 숙식을 제공해주는 조건으로 월 5만 원의 월급으로 취직을 한 것입니다.

세탁소는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밤 12시를 넘기도록 일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처음엔 어린 나이에 낯선 부산까지 와서 하루 17시간이 넘도록 일을 하니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장남이라 약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어린 마음에 제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이 가슴 아팠습니다. 세탁물을 들고 거리를 지나갈 때 가방을 멘 또래 친구들을 보면 부러웠습니다.
'먹고살 걱정 없이 공부만 하면 소원이 없겠다···.'
공부를 잘했던 저였기에 더욱 공부에 대한 그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가난한 집의 장남이니 학업을 포기하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마음 한편의 의무감이 더욱 컸습니다. 당시엔 나름 제법 큰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중학교 3학년에 불과한 어린 나이였는데 마음 씀씀이가 대견하단 생각이 듭니다.

5만 원의 첫 월급을 받던 날은 지금도 기억합니다. 은행으로 뛰어가 일부를 부모님께 보내드리고, 나머지는 오롯이 적금을 넣었습니다. 세탁소에서 숙식을 하니 큰돈 들어갈 일이 없었고, 설사 사 먹고 싶은 간식이 있어도 참았습니다. 이제 첫 월급이지만 열심히 돈을 모으면 나중에 세탁소를 차릴 수도 있겠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264P)

공부를 잘했기에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은 본인의 이익을 생각한 마음이다.
그리고 가난한 집의 장남이니 학업을 포기하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가족을 책임지려는 장남의 본분을 생각하는 군자의 마음이다.
나는 중학생이 일자리를 찾아 전라북도 정읍에서 낯선 부산으로 넘어 와, 세탁소에서 하루 17시간이 넘도록 일하면서도, 본인의 이익이 아니라 장남의 본분을 더 크게 생각하며, 무려 십육 년 동안이나 묵묵히 그 일을 수행하는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헤아리지 못한다.

군자는 동양 고전에서만 보았을 뿐 현대 우리나라에서 군자의 삶을 살아 온 사람을 만날 것이라곤, 그것도 주식 투자, 가치 투자의 세계에서 만날 것이라곤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말문이 막혔다.


군자가 주식 투자를 만나게 된 사연

1999년, 32살의 나이가 된 저자는 부산에서 서울로 거주지가 바뀌었다. 한 젊은 아주머니 고객과 인연이 이어져, 당시 증권회사 애널리스트였던 그녀의 남편과 연락이 닿는다. 99년 저자는 고향인 전라북도 정읍에 32평 아파트를 장만해서 전세를 놓고 있었는데, 수중에 임차인의 전세자금 2,500만원이 있었다. 애널리스트는 '메디다스' 종목을 매수하라고 추천해주었는데, 한 주에 13만원의 가격이었다. 99년이면 주식으로 세상이 들끓던 시절이다. 저자는 생각한다.

'내 나이 서른두 살에 아직 장가도 못 가고 학력도 변변치 않으니 모험을 해볼까?'
'아니야, 그러다 전 재산 날리면 장가가기 더 힘들어질 텐데···.'
모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잘못되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갈팡질팡합니다. 그러다 '용기도 능력이다'는 생각과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오겠냐'라는 마음에 저질러보기로 했습니다. (269P)

그 당시 술을 마시지도 담배를 피우지도 않고(지금도 술, 담배를 하지 않습니다) ... (268P)

16살때부터 32살까지 연애 한 번 못하고 일만 했습니다. (280P)

주식과 저자의 첫 인연은 다행스럽게도 좋은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꼭 주식이 아니었더라도 저자는 좋은 결과를 맞았을 것이다. 다만 주식이 그 시기를 앞당겨 주었을 뿐이다.
그후 저자는 중, 고등 검정고시를 거쳐 고향 대학교에서 나이 어린 동기들과 함께 대학생활을 하게 된다. 그때 소개받은 인연으로 가정을 꾸리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저자는 장남이었다. 옛날 장남의 의무란 부모형제를 건사하고 대를 잇는 것이다.


종목 , 제자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효심

저는 가치 투자를 지향하는 투자자입니다. 주가가 내일 오를지 내릴지는 알 수 없지만, 장기적으로 오를지 내릴지는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해당 종목의 가치를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과정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 책은 주식 초보자들을 위해 쉽게 서술했습니다. 복잡한 거 다 빼고, 딱 오르는 주식을 어떻게 고를지에 핵심을 맞췄습니다. 제가 웬만해선 종목을 추천하지 않는데, 이 책에서는 주식 이름을 콕 짚어 추천도 했습니다. 아마 제 실력 여부는 독자들께서 판단해주실 것 같습니다. 추천해드린 주식이 오르면 실력을 알아주실 테고, 떨어지면 별 볼 일 없다고 판단하실 테죠. 그러니 제가 얼마나 심사숙고해서 추천을 했겠습니까? (6-7P)

사람 인생이란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제가 주식 블로그를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냥 주식 카페에 독서 열심히 하라는 글을 우연히 올리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의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늘면서 소중한 인연도 만들어졌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주식 제자들과의 인연입니다. 블로그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인연이 닿아 스승과 제자가 되었는데, 주식에 관한 여러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289P)

저는 주말마다 아버지를 모시고 온천에 갑니다. 아버지께서 연로하셔서 눈이 침침하신데, 온천이 눈에 좋다고 해서 수년 전부터 주말마다 온천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실제 아버지 눈이 많이 좋아지셨는데, 온천욕으로 인해 혈액 순환이 잘 되어 눈 건강에 도움을 주는 듯합니다. (295P)

추천 종목을 보면, 저자가 후학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지 알 수 있다. 건전한 호흡의 긴 투자를, 확실하게 장기 우상향 할 종목으로 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16살부터 32살이 될 때까지 오로지 절약과 저축으로 자신의 상황을 개선시켰다. 그때는 IMF 이전으로 은행의 저축 수익률이 상당히 높았을 때다. 반면 현재는 저자와 같은 군자의 마음을 가진 이라 하더라도 절약과 저축만으로 자신의 상황을 개선시킬 수가 없다. 그러므로 저자의 권유는 자신과 같은 길을 가려는 후배들에게 그 당시의 저축 수익률에 상응하는 수익을 줄 수 있는 확실한 가치 투자처를 일러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가 나오고, 제자의 투자 수익률을 인증하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위화감을 느끼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저자가 왜 이러는지, 무슨 사업적 목적으로 이러는지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사람도 분명 있으리라. 바로 그 지점에 대한 나의 해석은 아래와 같은데, 이 해석이 맞는 것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 책 한 권 읽었을 뿐인데 어찌 그 사람을 알 수 있겠는가. 다만 아래의 해석이 이 서평이 위에 적어온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군자삼락 : 첫째, 부모가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 둘째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 것, 셋째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

얼마 전 대학 후배가 투자자문의 투자일임 서비스를 소개해 주었다. 투자자가 일정 금액을 맡기고, 자문사가 투자자의 계좌로 주식을 사고 파는 것이다. 어떤 주식을 언제 어느 가격으로 사는지 본인의 계좌에 거래내역이 찍히므로, 주식 고수의 매매 과정을 그대로 보면서 배울 수 있다.

이 책의 저자가 제자에게 제공하는 가르침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저자는 직접 매매를 하는 대신 제자에게 지금 A주식을 사라고 일러줄 뿐이지만 본질은 같다. 투자자문사의 투자일임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1억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고, 투자자문사에 스스럼 없이 찾아갈 수 있는 학력이 필요하다. 가치 투자는 그만한 자본과 학력이 있는 자만, 스승으로부터 주식의 실제 운용을 배울 수 있어야 하는가.

이 책의 저자는 그 질문에 다른 대답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본인이 애널리스트였던 스승으로부터 지도받았던 내용도 자신이 가르치려는 내용과 거의 동일하다.

저자는 슈퍼개미를 자청하며 유료 회원을 긁어 모으는 유튜버와 동일한 사업 목적으로 이 책을 쓴 것일까?
나는 사람의 말과 의도를 살필 때 그 사람이 살아 온 이력을 본다. 군자삼락이 아니라 사업의 목적일까? 내 대답은 '아니다'이다. (허나 잊지 마시라. 투자자라면 모든 판단은 전적으로 본인의 책임 하에 이루어짐을. 이것은 단지 하나의 견해에 불과하다)


일독을 권유하는 대상 : 겸손한 투자를 하려는 가치투자자

세상의 넓음을 배울 때 사람은 겸손해진다. 겸손한 마음으로 가치 투자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지식이 아니라 마음가짐의 측면에서 다른 어떤 책도 제공하기 어려운 독보적 사례를 제공한다. 그런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수다쟁이인 나는 이 저자와 가까이 지내기는 어렵겠지만 (생각해보라. 수다쟁이와 군자가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그냥 스쳐가는 것 이외에 둘의 인연이 무엇이 있겠는가) 누군가에게 이 저자와의 만남은 인생의 인연이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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