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와 좌파의 재정립 - 보편주의적 복지국가를 향한 새로운 좌파 선언의 전략
사민+복지 기획위원회 엮음 / 산책자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자본주의적 경쟁 원칙만이 지배하게 된다면 사회와 개인은 피폐해지고

‘자유’와 ‘평등’은 껍데기만 남게 된다.

반대로 연대의 공간이 확장될수록

이웃에 대한 연민과 우정, 인간적 여유와 정서적 고양과 같은

소중한 인격적 가치들이 만개할 수 있다.

 

 

1. 요약 。。。。。。。

 

     ‘좌파의 재정립’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한국의 좌파 세력에 대한 잘못되거나 편향된 이미지를 재고하고, 좀 더 ‘실현가능한’ 좌파적 정책대안들을 제시하기 위해 쓴 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서언 격인 제 1장은 새로운 좌파의 길로 ‘사회민주주의’라는 이념을 제시하고, 그것은 기존의 시장이나 자유라는 소중한 가치들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으면서 평등과 복지 같은 소위 ‘좌파적’ 가치들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임을 밝힌다.

     두 개의 묶음으로 구성된 이 책의 첫 번째 부분은 ‘한국적 사회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장으로, 여운형, 조봉암까지 올라갔다가 80년대의 민주화 투쟁과 2008년의 민노당 분당사태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을 살피며 각각의 사건들이 갖는 진보정치세력에의 함의들에 대해 논한다.

     두 번째 부분은 사회민주주의나 그와 유사한 정책들을 택하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들의 예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우리나라에서의 사회민주주의적 정책들의 실현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내용을 제시한다.


 


2. 감상평 。。。。。。。

 

     한국만큼 좌파와 우파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가 판을 치는 나라도 많지 않을 것이다.(굳이 꼽자면 미국 정도?) 책에도 언급된 것처럼 자신들이 퍽이나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우월하다는 착각에 빠져있는 진보적 지식인들은 ‘파쇼’니 ‘국가주의자’니 하는 식의 선동적 어구들을 남발하고, 우파 인사들도 별로 다르지 않아 ‘평등’이니 ‘공공’이니 하는 말만 써도 금새 ‘빨갱이’ 운운하는 형국이니 말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진심이 담긴 토론 따위는 애초부터 찾아보기 어렵고, 어느새 그저 말을 위한 토론, 말 위에 말을 쌓는 식의 난잡하고 번잡스러움만이 가득 차게 되었다. 결국 정치세력의 근본적인 목표가 단지 정권을 잡고 한 목씩 챙기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 주는 데 있다는 걸 인식한다면, 좌나 우나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고, 때로는 양보도 하며 공동선을 향해 나아가는 게 전체를 위해 이롭다는 데 당연히 결론이 모아질 텐데,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의 목표는 꼭 그렇지는 않나보다.

     이 책은 ‘실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사회민주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시장경제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복지나 평등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추진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저자들이 생각하는 사민주의의 가장 큰 장점인데, 참 실용적인 발상이 아닌가.(요새 ‘실용’ 운운하며 실은 개인적 이득에 목을 매달고 있는 듯한 어떤 인사들보다 훨씬 더)

 

     ‘이 땅의 진보 세력의 실천에는 이념 정치는 존재할지 몰라도 정책 정치는 존재한 적이 없다(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책 속의 한 지적이 기억에 남는다. 적어도 사민주의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확실히 실제적인 대안을 가지고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민주의의 기본 가치와 목표에 어느 정도 공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주장에 대해 약간의 우려가 되는 부분도 있다. 바로 이 운동의 에너지나 역동성의 근원이 ‘인류의 능력’이라는 데 있다.

     쉽게 말해 인류의 능력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이나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능력’은 모든 사람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만약 그랬다면 진작에 온 세상이 사민주의국가로 나아갔으리라), ‘교육받은’, 혹은 ‘훈련된’ 사람들에게 기대될 수 있는 것이다. 체 게바라는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며 함께 투쟁에 참여하기 원했지만, 결국 그의 이 ‘소박한(?)’ 기대는 실패로 돌아가지 않았던가.

     난 저자들처럼 북유럽 복지선진국들의 자세한 상황이나 현실에 대한 조예가 거의 없지만, 그 나라들은 정말로 책에서 그려지고 있는 것처럼 유토피아 혹은 천국의 모습일까. 인간성의 호의에 기댄 사회민주주의는 과연 만능일까? 사상교육(혹은 개조)으로 가능한 무엇이나 인간들이 만드는 낙원(역사적으로 ‘자기 자신만을 위한’ 소수의 ‘이기적 낙원’은 있었다)이라는 개념이라면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여기에 ‘모든 이념은 상대적으로만 진리’라는 포스트모던적 명제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부분도 자칫 ‘인류의 공통적 가치관’, ‘도덕’, ‘윤리’, ‘선함’과 같은 소중한 부분들을 배제시키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도 우려가 든다. 모든 이념이 상대적으로만 진리라면 우리는 왜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어야(혹은 다른 이들의 어려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전부(全部)가 아니면 전무(全無)라는 말이 아니다. 세상은 항상 그 가운데 어딘가에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그 중간의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 실현성이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것만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좌파적 대안’이라는 말 자체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어리석음만 아니라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제안이다. 사민주의자들이 생각의 유연성을 잃고 교조주의로 변하지 않는다면 언젠간 우리나라에서도 이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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