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에도 역시 또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보다.

한동안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발매된 작품이 너무 많아서 어딜 가나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이 눈에 띄는 것 같다.

이 작품 역시 저자의 초기작 중 하나이고 국내에 소개된지도 꽤 된 작품인데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다.

제목은 타자가 치기 어려울 정도로 어렵게 들어오는 공을 뜻하는 야구 용어다.

제목답게 전도유망한 한 고등학생 야구선수가 살해된 사건으로 시작된다.

특이하게도 옆에서 키우던 개가 함께 살해된 채 발견되는데 살해된 순서가 개가 먼저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본격적으로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 작품만의 특징이라면 작품 안에 폭탄 테러 미수라는 또 다른 사건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사건의 조사도 서로 다른 경찰서에서 담당할 정도로 각기 다른 사건처럼 보이는 이 두 사건이 과연 어떻게 연결될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또한 주요 인물들이 고등학생들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형편이 좋지 못한 집안에서 홀로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에게 보답하기 위해 형은 프로 입단을 목표로 야구에 매진하고 동생은 공부에 매진하는 장면은 뻔한 클리셰이지만 늘 울림을 주는 소재인 것 같다.

스포츠의 특성상 재능의 영역이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로 인한 동급생들의 시기와 질투도 사건 사이사이에 양념처럼 잘 버무려져 있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야. 저 녀석들은 그저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점수가 나겠지, 그런 생각이야. - 중략 -

그런 놈들이 바꾸긴 뭘 바꾸겠어. 바뀔 일은 한 가지뿐이야.

더는 이길 수 없게 된다는 거지."

(pg 119)

그의 주요 작품들과 달리 이 작품에서는 사건의 해결이 한 명의 천재에게만 맡겨져 있지도 않다.

많은 인물들의 증언과 관찰이 모여 하나의 결론으로 모아져가기 때문에 읽으면서 누가 가장 의심스러운지 스스로 계속 생각하며 읽게 만드는 묘미가 있어 좋았다.

물론 그래서 매력적인 탐정 캐릭터가 나오지는 않지만, 후미의 해설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사건의 중심에 있는 다케시라는 인물 자체가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에 인물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전형적인 그의 작품답게 쉽게 읽히면서도 재미까지 잘 챙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아직 영상화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일본이나 국내나 야구의 인기가 높기 때문에 영상화되어도 재미있을 작품이 아닐까 싶다.

재미난 스토리를 이렇게 자주,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비결이 무얼까 항상 궁금해지는 작가라 올해에는 작가의 책을 몇 권이나 읽게 될지 기대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꺼이 나의 죽음에 동의합니다 - 있는 힘껏 산다는 것, 최선을 다해 죽는다는 것
진 마모레오.조해나 슈넬러 지음, 김희정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질병이나 장애로 겪는 고통이 너무나 심각하고 더 이상 삶을 이어갈 의미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 자신의 의지와 의사의 도움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의료 조력 사망이라 한다. (존엄사, 안락사, 의사 조력 자살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본 책에서는 의료 조력 사망으로 통일해 사용하고 있다.)

국내에서 허용하는 '연명 치료 중단'과는 다른 제도로 환자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표명해야 하며 사망 과정에 의사의 개입이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국내에는 아직 이 제도가 불법이지만 캐나다에서는 2016년부터 법제화되어 합법이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오랜 기간 가정의로 활동하면서 생애 말년에 엄청난 고통과 시름하다 차디찬 병원에서 홀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너무도 많이 봐왔다.

그래서 저자는 의료 조력 사망 관련 법이 국회를 통과한 순간부터 이 분야에 뛰어들기로 마음먹는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현대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 자체는 매우 길어졌지만 그 최후는 자신이 원치 않는 장소(병원)에서 원치 않는 사람들(의료진)에게 둘러싸인 채, 심지어는 인지 능력 저하로 자아를 인지하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맞게 되는 사람이 대다수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개인적으로도 할머니가 거동이 불가능해 꽤 오랜 시간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돌아가신 경험이 있어 저자의 문제의식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저자는 자신의 일이 그 제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절실하고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절감한다.

의료 조력 사망은 누군가의 삶을 앗아가는 일이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그들에게 삶을 돌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pg 114)

질병으로 인한 고통만이 환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아니다.

차도가 없는 질환에 계속해서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을 수 있고, 가족관계나 친구 등 사회적인 관계가 부족해 고립된 채 서서히 죽어가야 한다는 외로움도 있을 수 있다.

게다가 사랑하는 가족이 아픈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보는 것도 마음 편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럴 때 환자가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가 의료 조력 사망이다.

만성 질환을 앓는 환자를 돌보는 일은 대부분 가족, 특히 어머니, 배우자, 딸이 감당한다.

그들은 닫힌 문 뒤에서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힘든 일을 해내면서 밤을 지새우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낮 시간을 견디며, 자신이 돌보는 사랑하는 이에게 닥칠 재난을

막는 유일한 방어벽 역할을 한다.

그들이 지는 부담은 절대적이며, 자기 희생은 계산할 수조차 없다.

(pg 37)

물론 저자 역시 치료가 어려운 병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죽음을 권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고통 완화 프로그램을 충분히 경험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의 체감이 줄어들지 않거나 삶의 질이 현저히 낮게 유지될 경우 조력 사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의료 조력 사망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고통 완화 돌봄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마치 이것이 양자 선택의 문제라도 되는 듯 반대 진영으로 나뉘어 대립각을 세울 때가 많다.

그러나 1년간 독학을 하는 동안 이 두 진영은 같은 흐름 속에 있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 보였다. 환자들에게 가능한 한 가장 다양한 선택지를 주고 양질의 돌봄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고통 완화 돌봄과 조력 사망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pg 39)

물론 그 취지에 동의하고 환자가 직접 선택한, 환자를 위한 방법이라는 것은 잘 알아도 막상 이를 시행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한 의료 조력 사망 관련 컨퍼런스에 참석했을 때의 경험을 공유한다.

한 발표자가 의료 조력 사망이라는 의료행위가 이를 시행하는 의사들에게 굉장한 정신적 부담을 주기 때문에 반드시 자기 돌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솓아나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구제역 등 가축 전염병이 돌 때 가축을 살처분 하는 사람들도 한동안 트라우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고 하는데, 한동안 자신과 함께 상담하며 해당 과정을 준비해온 환자의 목숨을 내 손으로 거두는 것이 쉬울 리 없다.

의료 조력 사망이 다른 점은 물론 내가 죽음의 사신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책임을 진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기꺼이 지겠다고 동의를 한 짐이다.

그것이 잘못되었거나, 부도덕하거나,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옳은 일이며 친절한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게 그것이 짐이라는 사실, 언제나 짐일 것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pg 65)

책에는 저자가 직접 시행한 여러 환자들의 사례가 등장한다.

그중에는 잘 준비되어 환자 본인이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나도 저런 상황이라면 저렇게 죽는 것도 좋겠다' 싶은 사례도 있고, 환자 본인은 시행을 원했지만 성년 자식이 반대해서 끝내 시행하지 못한 사례나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끝내 혼자인 채로 시행하는 의사와 함께 임종을 맞는 좋지 않은 사례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모든 사례들에서 이 제도에 대한 저자의 투철한 사명감과 이를 시행하고자 하는 환자들의 굳은 결심을 엿볼 수 있어 가슴이 먹먹해지는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마다 고통의 역치도 다르고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정의도 다 다르다.

스스로 화장실조차 갈 수 없을 때에도 삶을 부여잡고 싶은 사람이 있는 반면, 영화 '미 비포 유'의 남자 주인공처럼 하반신 마비라는 비교적 흔한 장애에도 삶을 이어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

저자가 책 내에서 여러 번 강조하고 있듯이 이 제도의 가장 큰 의의는 환자에게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하나 더 열어준다는 것이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들에게 그저 주어진 고통을 인내하라고,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듯 원해서 죽을 수는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더 비인간적이지 않나 싶다.

인간의 평균 수명만큼 산다고 했을 때 아직 그 절반도 채 살지 못했지만 할머니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경험에 의하면 나는 적어도 할머니처럼 죽고 싶지는 않다.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죽는다는 사치를 누리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내가 나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고 내 스스로 삶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은 가져갔으면 좋겠다. (쉽게 말하면 벽에 X칠 하면서까지 살고 싶지는 않다는 말이다.)

이 제도가 아직 국내에는 불법이어서 더 관심 있게 읽은 것 같다.

종교적인 이유, 악용될 가능성 등 여러 이유가 있어서겠지만, 장점만 있거나 단점만 있는 제도는 없을 것이다.

본 제도가 갖는 순기능이 분명 있고 국내에도 이 제도의 도입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건강한 논의를 거쳐 제도화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책이었다.

의료 조력 사망이라는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위안을 받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신이 있다면 자애로운 신일 것이라 믿어요. 신도 제가 한 선택을 이해할 것이라 믿어요."

(pg 28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정신이라는 착각 - 확신에 찬 헛소리들과 그 이유에 대하여
필리프 슈테르처 지음, 유영미 옮김 / 김영사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일의 신경과학자이자 정신의학과인 저자가 쓴 책으로 자극적인 제목이 눈길을 끈다.

독일어 원문을 영어로 직역하면 'The illusion of reason', 즉 '이성의 환상'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저자가 직접 이 책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두었다.

우리 머릿속에서 확신이 어떻게 생겨나는가?

(pg 337)

저자의 문제의식은 우리가 흔히 '정신질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기이한 확신에서 출발한다.

흔히 우리가 '미쳤다', '정신이 이상하다'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경우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들을 하는데(사람들이 다 나를 위협하는 것 같다, 비밀 조직이 나를 감시하는 것 같다 등등) 가만히 보면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점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뇌가 정상적인 범주의 뇌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찾는 것이 문제의식의 출발점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뇌과학적으로 정신이상자와 건강한 사람의 뇌의 기능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정상인과 정신이상자 사이에 명확한 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라고 한다.

즉 우리는 모두가 정상과 미침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으며 이 점이 어느 쪽으로 조금 치우쳤느냐에 따라 환자가 되기도 하고, 그저 약간의 편집증이 있거나 망상이 있을 사람이 될 뿐이라는 것이다.

천재와 광인은 한 끗 차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맞는 말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카테고리 사이의 고랑은 특히 깊다.

정상과 비정상의 중간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데,

우리 머릿속에 그어진 이 두 카테고리 사이의 경계선은 너무나 예리하다.

'정상'인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다.

그러나 '비정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이고,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며,

낯설고 끔찍하고, 심지어 공공에 위험한 사람이다.

(pg 45)

게다가 완벽하게 건강한 사람마저도 교육수준이나 경제적 배경과도 상관없이 기이한 믿음을 지니고 있는 경우는 너무도 흔하다.

흔하게는 이런저런 정치권의 음모론을 믿는 사람부터 저자 역시 책 후반에 예시로 들고 있는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를 보이는 사람들 역시 그러한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확신'이라는 개념이 머릿속에서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과학적인 시각에서 풀어내고 있다.

망상이 생겨나는 것과 '정상적' 확신이 생겨나는 것에는 범주적인 차이가 없다.

우리가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 만든 고랑은 인위적인 것이다. - 중략 -

합리적이건 비합리적이건 우리의 확신은 주변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가설이다.

(pg 299)

우리의 뇌는 그저 캄캄한 뼈 속에 갇혀 있는데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명의 본질적인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감각 기관을 통해 주어지는 데이터들을 통해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마치 예측 기계처럼 작동한다.

감각 기관에서 입력되는 데이터를 통해 예측을 하기도 하고(Bottom Up) 예측을 바탕으로 감각 기관의 데이터를 해석하기도(Top Down) 한다.

저자는 우리가 비합리적인 확신을 갖게 되는 이유로 이러한 예측과 감각 데이터의 균형이 살짝 틀어졌을 경우에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감각 데이터에 더 많은 비중을 둘수록 - 이것은 우리의 소인(특질 요인)뿐 아니라,

현재 상황(상태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 - 그럴듯해 보이는 설명을 더 이상의 검증 없이

받아들이기가 쉽고, 그렇게 형성된 확신을 다시 포기하기가 어렵다.

그럴수록 인식적으로 비합리적이 되기 쉽다.

(pg 294)

하지만 이러한 비합리적인 확신이 우리가 진화를 거듭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존재하는 이유가 뭘까?

저자는 이러한 비합리적인 확신이 우리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저자는 이러할 경우 비합리적 확신이 '적응적'이라고 표현한다.) 말한다.

비합리적 사고는 많은 상황에서 아주 기능적이다.

그것은 우리가 중대한 실수를 피하고, 빠른 결정이 요구될 때

쓸데없이 진실을 찾느라 힘을 낭비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이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진화는 우리 뇌가 그렇게 비합리적 확신을 만들어내도록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pg 299)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비합리적 확신을 무조건 용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대다수가 인간 역시 하나의 원시세포에서 시작된 동물의 한 종이라는 점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동물적 본능을 마냥 긍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 것과 같다.

우리는 분명 합리성을 추구할 수도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돌아볼 줄 알 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각에 긍정하거나 혹은 건강한 토론으로 서로의 생각을 변화시켜나가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불확실함은 거부감과 두려움을 안겨주기 때문에 도무지 견디고 싶지가 않다.

확신을 주는 확실하고 안전한 상태로 도망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안정감 있게 살아가도록 도움을 주지만,

그것은 사회적으로 서로 심각한 갈등을 빚는 충돌의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불확실성을 용인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좋으며,

이 일 역시 자신에게서부터 시작되면 가장 좋을 것이다.

(pg 332)

문제의식 자체가 흥미로워서 꽤 재미있게 출발했으나, 중반 이후로는 꽤 어렵게 느껴졌다.

정리하면 쉬워 보이기는 하나, 결론을 이끌어내기까지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탐색하고 그에 대한 예시를 들며 과정을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읽는 과정이 아주 재미있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꽤 의미 있는 시각과 정보를 알게 된 것 같아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은 확실하게 드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우주에 가야 하는 이유 -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서 우주 경제의 내일까지
폴윤 지음 / EBS BOOKS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사(NASA)가 여러 우주 관련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태양계 홍보대사라는 직책이 있을 줄은 몰랐다.

저자가 바로 나사의 태양계 홍보대사라고 한다.

태양계 밖에 있는 외계인에게 태양계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직책은 아닐 테고 나와 같은 과학 문외한들에게 우주 관련 지식들을 대중적으로 알려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제목 그대로 인류가 우주에 가야 하는 이유를 쉽게 설명해 주는 책이다.

가장 근원적이면서도 부정할 수 없는 이유는 인류가 가진 호기심 때문이다.

우리는 우주에 무엇이 있는지, 우주에 지적 능력을 가진 생물이 우리 밖에 없는지, 우주는 얼마나 넓은지, 멀고 먼 어느 날 결국 사라질 태양과 지구를 대체할 별과 행성을 찾을 수 있을지 등등 우주에 대해 궁금한 것이 너무도 많다.

이러한 호기심이 인류의 발전과 번영을 이끌어온 원동력이었음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우주는 상수의 세계가 아니다. 변수의 세계다. 우리 인생과 닮지 않았는가?

24시간의 하루, 12개월의 1년 같은 절대적인 시간 개념은 더 이상 절대진리가 될 수 없다. 우리의 후손은 어느 미래에 화성을 포함 우주 밖 여러 행성에서 살아갈 것이다.

그들의 하루는 과연 몇 시간일까?

(pg 31)

또한 우주에 가기 위해 개발되는 여러 기술들이 지구에서도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우주복, 우주선 등에 활용되는 신소재는 말할 것도 없고, 우주선에 사용되는 연료, 우주에서 지구로 연락을 취하기 위해 개발되는 통신 기술에 이르기까지 우주에 가기 위해 개발된 기술들은 우리 삶을 바꿔놓고 있다.

게다가 우주에서의 과학 실험은 중력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지구에서의 실험과는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특히 제약회사에서 신약을 개발할 때 단백질 구조의 결정화에 중력이 작용하면 결정이 균일하게 발생하지 않는데 이를 우주에서 실험하면 결과가 훨씬 더 정밀하고 효과적으로 나온다고 한다.

우리가 우주에 가기 때문에 인류의 생명과 건강도 증진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우주에 가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과 기업들이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는 이유는 우주가 경제적으로도 매우 유망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다른 천체에 존재하는 희귀 광물들의 가치도 매우 높다고 추정되지만 우주를 개발함으로써 새로운 관광지, 경제권도 형성할 수 있다.

과거 식민지와 노예를 통해 얻었던 경제적 이점을 다른 천체와 로봇으로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한 것이다.

저자 역시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도 빨리 이 분야에 뛰어들어 다른 나라가 선점하고 있는 우주적 이점을 가져왔으면 하는 바람을 책의 많은 부분에서 표현하고 있다.

제목에 충실하게 책을 다 읽고 나면 왜 우주에 가기 위해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 비용을 투자하고 있는지 대부분은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우주에 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지금까지 발견된 관측 결과나 개발된 기술에 대한 설명도 매우 풍부해서 우주과학에 대한 교양서로서는 손색이 없다는 느낌이었다.

다만 뒤로 갈수록 앞에서 했던 이야기들의 반복이어서 다소 아쉽게 느껴졌는데 이는 짧은 글들의 모음이어서 그런 것이므로 책을 읽는 호흡이 긴 사람이라면 오히려 앞의 내용을 반복해서 읽게 되어 좋을지도 모르겠다.

책 자체는 그리 두껍지도 않고 짧은 글들의 모음이어서 읽는 부담이 그리 크지 않다.

저자의 설명도 현학적인 느낌 없이 담백하고 컬러로 된 사진 자료들이 많아서 읽는 동안 지루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우주에 관심이 많은 중고등학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읽을 수 있는 괜찮은 과학 교양서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 속 성 문화, 사색 - 인간의 본능은 어떻게 세상을 움직였나
강영운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의 이성이 발달하면서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하기는 하지만 지금도 전쟁이 났다 하면 표면적인 이유를 한 꺼풀만 벗겨보면 그 안에 경제적인 이유가 있다.

그만큼 먹고사는 문제는 생물인 이상 초유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고,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이제 생물의 다음 목표인 번식의 영역으로 관심사가 옮겨가게 마련이다.

인간 역시 생물의 한 종으로서 이러한 욕구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다만 그러한 이유가 아닌 것처럼 포장하는 능력을 키워왔을 뿐이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욕구가 역사 속에서 알게 모르게 엄청난 힘을 발휘했을지 모른다는 가설을 세우고 여러 사례들을 제시한다.

총 27개의 짧은 글들이 실려있는데 모두 제목만 읽어도 어떤 내용일지 궁금함을 불러일으킨다.

각각이 모두 다른 이야기들이어서 기억에 남는 사례들 위주로 소개하고자 한다.

최근 들어 많이 완화되었다고는 하나,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 문화권 국가들에서는 아직도 성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남아있는 것 같다.

막연히 인류가 문명을 형성한 다음에는 이런 경향이 생겼으리라 짐작했었는데 성에 대해 보수적인 문화가 생긴 것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었다.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절만 하더라도 성적으로 꽤나 개방적인 문화였고 우리나라 역시 고려 시대까지는 성에 개방적인 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학의 영향을 받은 조선시대 이후로 성에 관해 매우 보수적인 문화가 형성되었고 서구 사회 역시 기독교가 사회의 중심이 된 이후로는 성 담론이 매우 엄격하게 변화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러는 와중에도 종교인들이 매춘을 한다거나 정부를 두는 등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은 할 짓은 다 하고 살았다는 점이다.

국가와 교회는 결국 성매매를 배척하기보다 관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프랑스 파리와 툴루즈, 영국 런던 등 주요 도시에는

성매매 집결지인 '유곽'이 자리 잡게 됩니다.

모두 국가와 교회가 관리하는 지역이었습니다.

(pg 37-38)

사회 지도층 역시 인간임에는 틀림없으므로 욕망이 없을 수는 없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점이 왕정을 끝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적이 있었다는 점이다.

프랑스 혁명 이전에 왕족이나 귀족들의 자극적인 성생활을 묘사한 야설에 가까운 문학 작품들이 크게 인기를 끌게 되는데, 비록 픽션이지만 당시 대중들은 그러한 작품들을 통해 왕족이나 자신들이나 그리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더욱 놀라운 점은 혁명 세력이 이러한 작품들을 이용해 권력을 잡게 되는데 자신들도 권력을 잡은 뒤에는 이러한 문학 작품들을 막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건 혁명 세력이 포르노에 대한 입장을 번복했다는 것입니다.

정권을 잡기 시작한 무렵인 1791년 7월 국민의회는 포르노를

규제하는 조치를 시행하려고 합니다.

또 한 번 정치적 포르노가 자신들의 집권을 위협할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pg 98)

유럽의 이순신이라 불리는 허레이쇼 넬슨이나 한 국가의 왕이었던 앙리 2세, 헨리 8세 등 걸출한 역사 속 인물들의 불륜 이야기 역시 기억에 남는다.

그러한 사례들을 통해 성에 대한 인식 역시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화무쌍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엄연히 역사 속 사실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330여 페이지로 그리 두껍지도 않고 서술이 친절해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게다가 사진 자료가 굉장히 풍부해서 따로 검색을 해보지 않아도 되는 점이 좋았다.

어디 가서 쉽게 아는 척할 수 있는 내용들은 아니지만 재미가 확실한 주제들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목차만 보면 꽤나 외설적인 내용일 것 같지만 생각보다 꽤 제대로 된 역사 교양서이니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일독해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 이름을 걸고 출판까지 하기에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 꽤나 충실하고 재미있게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저자가 쓴 다른 책들을 계속해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