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성 문화, 사색 - 인간의 본능은 어떻게 세상을 움직였나
강영운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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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성이 발달하면서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하기는 하지만 지금도 전쟁이 났다 하면 표면적인 이유를 한 꺼풀만 벗겨보면 그 안에 경제적인 이유가 있다.

그만큼 먹고사는 문제는 생물인 이상 초유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고,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이제 생물의 다음 목표인 번식의 영역으로 관심사가 옮겨가게 마련이다.

인간 역시 생물의 한 종으로서 이러한 욕구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다만 그러한 이유가 아닌 것처럼 포장하는 능력을 키워왔을 뿐이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욕구가 역사 속에서 알게 모르게 엄청난 힘을 발휘했을지 모른다는 가설을 세우고 여러 사례들을 제시한다.

총 27개의 짧은 글들이 실려있는데 모두 제목만 읽어도 어떤 내용일지 궁금함을 불러일으킨다.

각각이 모두 다른 이야기들이어서 기억에 남는 사례들 위주로 소개하고자 한다.

최근 들어 많이 완화되었다고는 하나,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 문화권 국가들에서는 아직도 성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남아있는 것 같다.

막연히 인류가 문명을 형성한 다음에는 이런 경향이 생겼으리라 짐작했었는데 성에 대해 보수적인 문화가 생긴 것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었다.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절만 하더라도 성적으로 꽤나 개방적인 문화였고 우리나라 역시 고려 시대까지는 성에 개방적인 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학의 영향을 받은 조선시대 이후로 성에 관해 매우 보수적인 문화가 형성되었고 서구 사회 역시 기독교가 사회의 중심이 된 이후로는 성 담론이 매우 엄격하게 변화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러는 와중에도 종교인들이 매춘을 한다거나 정부를 두는 등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은 할 짓은 다 하고 살았다는 점이다.

국가와 교회는 결국 성매매를 배척하기보다 관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프랑스 파리와 툴루즈, 영국 런던 등 주요 도시에는

성매매 집결지인 '유곽'이 자리 잡게 됩니다.

모두 국가와 교회가 관리하는 지역이었습니다.

(pg 37-38)

사회 지도층 역시 인간임에는 틀림없으므로 욕망이 없을 수는 없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점이 왕정을 끝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적이 있었다는 점이다.

프랑스 혁명 이전에 왕족이나 귀족들의 자극적인 성생활을 묘사한 야설에 가까운 문학 작품들이 크게 인기를 끌게 되는데, 비록 픽션이지만 당시 대중들은 그러한 작품들을 통해 왕족이나 자신들이나 그리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더욱 놀라운 점은 혁명 세력이 이러한 작품들을 이용해 권력을 잡게 되는데 자신들도 권력을 잡은 뒤에는 이러한 문학 작품들을 막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건 혁명 세력이 포르노에 대한 입장을 번복했다는 것입니다.

정권을 잡기 시작한 무렵인 1791년 7월 국민의회는 포르노를

규제하는 조치를 시행하려고 합니다.

또 한 번 정치적 포르노가 자신들의 집권을 위협할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pg 98)

유럽의 이순신이라 불리는 허레이쇼 넬슨이나 한 국가의 왕이었던 앙리 2세, 헨리 8세 등 걸출한 역사 속 인물들의 불륜 이야기 역시 기억에 남는다.

그러한 사례들을 통해 성에 대한 인식 역시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화무쌍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엄연히 역사 속 사실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330여 페이지로 그리 두껍지도 않고 서술이 친절해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게다가 사진 자료가 굉장히 풍부해서 따로 검색을 해보지 않아도 되는 점이 좋았다.

어디 가서 쉽게 아는 척할 수 있는 내용들은 아니지만 재미가 확실한 주제들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목차만 보면 꽤나 외설적인 내용일 것 같지만 생각보다 꽤 제대로 된 역사 교양서이니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일독해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 이름을 걸고 출판까지 하기에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 꽤나 충실하고 재미있게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저자가 쓴 다른 책들을 계속해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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