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신이라는 착각 - 확신에 찬 헛소리들과 그 이유에 대하여
필리프 슈테르처 지음, 유영미 옮김 / 김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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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신경과학자이자 정신의학과인 저자가 쓴 책으로 자극적인 제목이 눈길을 끈다.

독일어 원문을 영어로 직역하면 'The illusion of reason', 즉 '이성의 환상'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저자가 직접 이 책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두었다.

우리 머릿속에서 확신이 어떻게 생겨나는가?

(pg 337)

저자의 문제의식은 우리가 흔히 '정신질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기이한 확신에서 출발한다.

흔히 우리가 '미쳤다', '정신이 이상하다'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경우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들을 하는데(사람들이 다 나를 위협하는 것 같다, 비밀 조직이 나를 감시하는 것 같다 등등) 가만히 보면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점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뇌가 정상적인 범주의 뇌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찾는 것이 문제의식의 출발점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뇌과학적으로 정신이상자와 건강한 사람의 뇌의 기능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정상인과 정신이상자 사이에 명확한 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라고 한다.

즉 우리는 모두가 정상과 미침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으며 이 점이 어느 쪽으로 조금 치우쳤느냐에 따라 환자가 되기도 하고, 그저 약간의 편집증이 있거나 망상이 있을 사람이 될 뿐이라는 것이다.

천재와 광인은 한 끗 차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맞는 말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카테고리 사이의 고랑은 특히 깊다.

정상과 비정상의 중간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데,

우리 머릿속에 그어진 이 두 카테고리 사이의 경계선은 너무나 예리하다.

'정상'인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다.

그러나 '비정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이고,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며,

낯설고 끔찍하고, 심지어 공공에 위험한 사람이다.

(pg 45)

게다가 완벽하게 건강한 사람마저도 교육수준이나 경제적 배경과도 상관없이 기이한 믿음을 지니고 있는 경우는 너무도 흔하다.

흔하게는 이런저런 정치권의 음모론을 믿는 사람부터 저자 역시 책 후반에 예시로 들고 있는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를 보이는 사람들 역시 그러한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확신'이라는 개념이 머릿속에서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과학적인 시각에서 풀어내고 있다.

망상이 생겨나는 것과 '정상적' 확신이 생겨나는 것에는 범주적인 차이가 없다.

우리가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 만든 고랑은 인위적인 것이다. - 중략 -

합리적이건 비합리적이건 우리의 확신은 주변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가설이다.

(pg 299)

우리의 뇌는 그저 캄캄한 뼈 속에 갇혀 있는데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명의 본질적인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감각 기관을 통해 주어지는 데이터들을 통해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마치 예측 기계처럼 작동한다.

감각 기관에서 입력되는 데이터를 통해 예측을 하기도 하고(Bottom Up) 예측을 바탕으로 감각 기관의 데이터를 해석하기도(Top Down) 한다.

저자는 우리가 비합리적인 확신을 갖게 되는 이유로 이러한 예측과 감각 데이터의 균형이 살짝 틀어졌을 경우에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감각 데이터에 더 많은 비중을 둘수록 - 이것은 우리의 소인(특질 요인)뿐 아니라,

현재 상황(상태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 - 그럴듯해 보이는 설명을 더 이상의 검증 없이

받아들이기가 쉽고, 그렇게 형성된 확신을 다시 포기하기가 어렵다.

그럴수록 인식적으로 비합리적이 되기 쉽다.

(pg 294)

하지만 이러한 비합리적인 확신이 우리가 진화를 거듭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존재하는 이유가 뭘까?

저자는 이러한 비합리적인 확신이 우리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저자는 이러할 경우 비합리적 확신이 '적응적'이라고 표현한다.) 말한다.

비합리적 사고는 많은 상황에서 아주 기능적이다.

그것은 우리가 중대한 실수를 피하고, 빠른 결정이 요구될 때

쓸데없이 진실을 찾느라 힘을 낭비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이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진화는 우리 뇌가 그렇게 비합리적 확신을 만들어내도록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pg 299)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비합리적 확신을 무조건 용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대다수가 인간 역시 하나의 원시세포에서 시작된 동물의 한 종이라는 점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동물적 본능을 마냥 긍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 것과 같다.

우리는 분명 합리성을 추구할 수도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돌아볼 줄 알 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각에 긍정하거나 혹은 건강한 토론으로 서로의 생각을 변화시켜나가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불확실함은 거부감과 두려움을 안겨주기 때문에 도무지 견디고 싶지가 않다.

확신을 주는 확실하고 안전한 상태로 도망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안정감 있게 살아가도록 도움을 주지만,

그것은 사회적으로 서로 심각한 갈등을 빚는 충돌의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불확실성을 용인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좋으며,

이 일 역시 자신에게서부터 시작되면 가장 좋을 것이다.

(pg 332)

문제의식 자체가 흥미로워서 꽤 재미있게 출발했으나, 중반 이후로는 꽤 어렵게 느껴졌다.

정리하면 쉬워 보이기는 하나, 결론을 이끌어내기까지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탐색하고 그에 대한 예시를 들며 과정을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읽는 과정이 아주 재미있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꽤 의미 있는 시각과 정보를 알게 된 것 같아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은 확실하게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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