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키언니의 돈 계획 - 2030 파이어족을 위한
밍키언니 지음 / 원앤원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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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테크 열풍이 불긴 부나 보다. 나는 평소에 재테크 관련 책을 찾아 읽지는 않는 편이다. 재테크 관련 책을 싫어한다기보다는 일단 금융 관련된 지식이 전무하다 보니 책을 읽어도 잘 이해할 수가 없고, 다음으로는 재테크를 할 돈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 나와 같은 이유로 재테크 서적을 굳이 읽지 않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여튼 모처럼 재테크 책을 읽게 된 김에 성의 있게 정독을 했는데, <밍키언니의 돈 계획>은 우선 저자 소개에서부터 눈을 끈다. "사회 초년생 시절, 조기 은퇴를 목표로 월급의 80% 이상을 저축했고 1억 원을 모으기까지 약 4년 반이 걸렸다. 여기서 다시 1억 원을 모으는 데 2년 반이 걸렸고, 이 종잣돈 2억 원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투자를 시작해 3년 만에 10억 원을 만들었다. 이후 10억 원이 20억 원이 되기까지는 채 2년이 걸리지 않았다." 저자는 현재 재테크 관련 크리에이터 및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돈 모으는 법을 바탕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된 것이다. 돈 모으는 법에 대한 책을 냈으니 책을 팔아 얻는 수익도 있을 것이다. 완벽히 돈으로 돈을 벌며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세상에 그런 삶을 동경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솔직한 감상을 먼저 말하자면, 책에는 우리가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 내용도 적지 않다. 부자가 되려면 푼돈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고, 습관적으로 절약을 할 줄 알아야 하고……. 뭐 이런 걸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 책이 그런 하나마나한 이야기만 하는 책은 아니다. 다만 이 책에서 가장 도움이 될 법한 핵심적인 정보들은 내가 여기다가 쓰면 안 되지 않을까? 그래서 구체적인 조언 내용을 하나하나 적지는 않는다. 이 책은 제목처럼 재테크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2~30대를 타겟으로 하고 있다. 기본적인 재테크 용어부터 시작해서 맛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입문서로 딱 좋은 책이다. 거치식 투자와 적립식 투자의 차이가 뭔지, CMA란 정확히 뭘 말하는 건지, 펀드의 종류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뭐 그런 개념들부터 친절하게 설명하고 지나간다. 이 책은 총 6장의 파트로 나뉘어 있는데 앞의 3파트는 대략 마음가짐, 절약하는 습관 기르는 법, 가계부 쓰는 법, 통장 쪼개기 등 돈 관리하는 법을 다루고 있다. 나는 가계부를 꽤 오래 쓴 편인데 사실 쓰기만 하고 특별히 그 내용을 정리하거나 분석한 적은 없었다. 저자는 가계부를 기록장으로만 사용해 봐야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가계부 활용법 중에 가장 간단한 부분만 설명하자면, 절약하기 위해서는 고정지출과 변동지출을 정리해 예산을 짜서 관리하고, 변동지출에서 가장 큰 금액이 나가는 카테고리의 지출을 줄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게임에 돈을 많이 쓰는 사람이라면 게임에 쓰는 돈을 줄이고, 군것질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이라면 군것질을 줄이는 식이다. 변동지출을 먼저 관리해야 하는 이유는 고정지출은 사실상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월세가 너무 비싸더라도 집주인이 월세를 깎아 줄 리는 없으니까.

 아마 책을 읽는 사람들이 더 궁금해할 법한 내용은 뒤 3파트의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단기 소액 적금에서 시작해서 적금 활용하는 법, 세금 절약하는 법, 보험 잘 고르는 법, 금테크나 P2P, 대망의 주식 투자하는 법에 거쳐 부동산 투자 이야기까지. 부동산 투자 같은 건 나와 너무 거리가 먼 이야기라서 그다지 와 닿지 않았지만 이율이 높은 적금 찾는 법 등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팁이 실려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이율이 높은 적금 찾는 법이 뭔지는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올지도 모르지만 저자에 대한 의리(?)로 당연히 쓰지 않는다. 저자는 2021년 기준 이율 7%짜리 적금을 찾았다고 하니 궁금하신 분은 <밍키언니의 돈 계획>을 찾아주세요. 책 마지막에는 저자가 실제로 재테크 조언을 해 준 사람들의 사례가 실려 있는데, 신혼부부의 경우 무조건 통장을 합치는 쪽이 재테크에는 도움이 된다고 한다. 어느 정도 목돈이 있어야 전세자금대출 등을 받을 수 있으니까 매우 타당한 조언이다. 저자는 신혼부부의 사례를 소개하며 중소기업에 다니는 신혼부부가 현재 활용할 수 있는 전세자금대출의 목록을 나열하는 등 꽤 구체적인 팁을 적는 편이다. 재테크에 막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유용하게 얻어갈 정보가 많으리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꽤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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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
박균호 지음 / 소명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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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은 책에 대한 책이다. 이 책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지나칠 수 없을 법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잔뜩 실려 있다. 책 뒷표지에 적힌 '책이 겪은 사연, 책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라는 문장이 이 책을 아주 잘 설명한다고 본다. 어떤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있었던 일들, 책을 둘러싼 사건들, 그리고 책과 관련된 저자나 다른 수집가들의 일화들을 읽다 보니 내가 겪은 추억들도 하나 둘 떠올랐다. 같은 책을 두 권 사는 건 양반이다. 박스 세트로 구매해 놓고 생각 없이 박스를 버리고 말았던 기억, 누군가에게 선물받았던 책이나 선물했던 책에 대한 기억들은 이 책을 읽는 경험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개인적으로 세계문학전집에 관해 언급한 부분이 특히 인상 깊고 재미있었다.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든 책 모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든 둘 다든, 책 좋아하는 사람치고 세계문화전집에 한 번도 시선을 준 적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한 출판사에서 전부를 모으기 위해 어디서 나오는 전집이 제일 좋은지 비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다소 들쭉날쭉해도 좋으니 각각의 출판사에서 마음에 드는 책들을 각각 사다 모은다. 저자는 세계문학전집에 속한 수많은 책들 가운데 1번에 주목한다. 세계문학전집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법한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1번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다. 문학동네나 펭귄클래식 등 다른 출판사에서 낸 세계문학전집의 1번은 각각 어떤 작품들일까? 책을 읽다 보면 하나하나 알 수 있게 된다. 또 책 중간쯤에는 문학 작품들의 제목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다. <워더링 하이츠>라는 원제가 한국에서는 <폭풍의 언덕>으로 오역되는 바람에 잘못된 제목으로 더 잘 알려진 이야기라거나, <소리와 분노>로도 번역되곤 하는 <음향과 분노>가 셰익스피어에서 따 온 제목이라는 이야기 등등. 이 책에 실린 내용은 아니지만,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 글씨>는 사실 <주홍 글자>로 번역하는 쪽이 더 원제에 가깝다고 한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소설이기 때문에 굳이 덧붙여서 적어 둔다.

서평단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적지 않은 책의 서평단으로 활동했고 요즘에도 이따금 서평단 모집 페이지를 기웃거리는 사람으로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든 대목이 있다. 조금만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서평단에 주어진 가장 무거운 압박은 '책을 읽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즐거움'을 박탈당하는 것이다." 서평단 활동을 하다 보면 내가 어려워하거나 관심이 없는 분야의 책도 읽어야 한다. 가끔은 내 가치관이나 사고방식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책을 받게 되기도 한다. 물론 그런 책이라 하더라도 가치가 없는 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 책을 쓴 작가와 그 책을 만든 편집자의 노력, 그 책에 들어간 자원들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 의미와 가치를 존중해서 예의를 지키면서도 그 책에 대한 내 감상을 솔직하게 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저자가 언급한 대로 서평단에게 주어지는 도서에는 보통 출판사의 증정용 도장이 찍혀 있기 때문에 중고로 판매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나는 대부분 소장하고 싶은 책 위주로 서평단 활동을 하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구매하는 책과 합쳐지면 양이 꽤 많아지기 때문에 읽지 않을 책을 주기적으로 추려내서 친구나 지인들에게 선물하곤 한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읽는 게 책을 만든 이들에게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하여튼 저자가 서평단 이야기를 다룬 이유는 조지 오웰이 직업적인 서평가였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그것도 생계형 서평가였다고 하는데, 서평을 써서 먹고 살 수 있으려면 역시 조지 오웰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에는 위에서 언급되지 않은, 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나쓰메 소세키나 이상, 최인훈,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그들이 쓴 책 이야기. 책 수집가들이 찾아 헤매는 컬렉션, 출간되기도 전에 중고 서점에 올라왔던 한 책에 관한 미스테리한 경험. 책을 만드는 편집자의 애환에 관한 이야기까지, 저자는 그야말로 책에 관한 이야기라면 거의 뭐든지 늘어놓는다. 듣기만 해도 재미있고 유익할 것 같은 책에 대한 소개를 줄줄이 하고서는 "안타깝게도 절판되어 구할 수 없다"란 말을 덧붙이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덕분에 내가 몇 년 전 호기심 때문에 사 두었던 책 한 권이 진작 절판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희귀본 수집의 세계로 빠지게 되는 걸까? 하여튼 책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재미있을 책이다. 그리고 저자의 다른 저서인 <이토록 재미난 집콕 독서>와 마찬가지로, 읽고 나면 다른 책들을 찾아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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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6 12: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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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 - 여덟 해 동안 만난 일곱 의사와의 좌충우돌 현재진행형 우울증 치료기
전지현 지음, 순두부 그림 / 팩토리나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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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는 한 우울증 환자의 정신과 후기를 엮은 책이다. 저자는 정신과에 방문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맘 카페에서 정신과 후기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확실히 온갖 병원 후기가 범람하는 온라인에서도 정신과 후기는 그리 흔하지 않다. 예전보다는 좀 나아졌나 싶지만, 광고의 힘까지 더해진 피부과나 성형외과 후기의 발끝에도 못 따라간다. 정신과 후기를 쓰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정신과에 대한 세상의 좋지 못한 시선, 우울증이나 기타 정신질환을 터부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크게 한 몫 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들은 정신과 후기를 쓸 정도로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후기를 쓸 수 없으리라. 하여튼, 저자는 이 책에서 저자 스스로의 정신과 진료 역사를 이야기한다. 처음으로 방문했던 병원, 가장 좋았던 의사와 그 이유, 약물을 지나치게 많이 복용했던 시기, 정신과 약물에 의존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시기, 그리고 '베테랑 환자'가 된 현재까지. 여기에서의 베테랑 환자란 대략 스스로의 상태와 외부 사건에 따라 복용하는 약을 조절하며, 병증에 따른 적절한 대처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환자를 뜻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저자는 첫아이를 난산하며 산후우울증에 걸렸다고 설명하는데, 무려 저자가 처음으로 갔던 병원의 의사는 저자를 두고 "언제까지 남 탓하고 계실 거냐"란 말을 한다. 심지어 저자가 안고 간 아이를 가리키며 "지금 얘는 그나마 약 먹으면서 치료를 받고 있는 엄마에게 자라는 게 더 행복할 것"이라고도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저자가 병원을 옮긴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의사 중에서는 환자를 비난하고 몰아세우거나, 시종 환자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나 정신과라면 환자들이 저런 의사에게 받는 악영향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정신과를 방문하려는 사람들에게 겁을 주려고 이런 말을 적는 건 아니다. 의사가 자신에게 화를 내거나 증상이나 약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해 주지 않고 귀찮아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면 병원을 옮기는 게 좋다. 정신과 환자는 의사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하여튼 저자는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다행히 좋은 의사를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위에 언급한 베테랑 환자의 길로 조금씩 나아간다. 저자의 문장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내 일상에도 패턴이 생겼고 남들처럼 내일을 계획할 수 있는 여유도 가지게 됐다. 날이 추워지면 약을 늘렸고 봄이 오면 약을 줄였다. 제사나 경조사 같은 중요한 행사가 잡히면 그 전후로 약을 조절하기도 했다."

항우울제, 수면제, 각성제, 항불안제, 뭐 기타 등등 우울증 환자가 먹(을 수도 있)는 약은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저자 역시 온갖 약을 먹으며 내과 의사를 당황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약을 줄이고, 또 아예 끊어 보기도 했다. 반 년 정도 단약을 하는 동안 좋았던 점도, 나빴던 점도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다시 병원을 찾게 되고, 약을 다시 먹게 된 스스로의 상황을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다'라 느낀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개인적으로 매우, 매우 공감했던 내용이 있다. 흔히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말하곤 하는데, 저자가 생각하기에는 '뇌의 고혈압'이나 '뇌의 당뇨병'을 넘어 '뇌의 심근경색'정도는 되어야 어울릴 것 같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평범한 감기는 약을 며칠 먹으면 낫고 약을 안 먹어도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 우울증은 약을 안 먹고 버틴다고, 의지를 가지고 노력한다고 낫는 병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마음을 굳게 먹는다고 호르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우울증은 스스로의 상태와 증상을 인지하고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약을 먹으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야만 하는 병이다. 아마 누구나 앓는 감기처럼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고, 우울증이라는 병을 특별히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가 없다는 뜻에서 마음의 감기라는 표현이 나왔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표현이 우울증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건 사실이다.

저자의 이런저런 경험에 이어 책 마지막 부분에는 정신과 방문을 권유하는 내용이 있다. 저자가 지불한 검사비와 진료비(병원마다, 검사마다 대략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약값, 대학병원에서의 진료를 원할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이런 책을 훨씬 오래 전에 읽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가면 살아낼 수 있다. 언젠가는 살아남아 후기를 남길 수 있다."라는 문장을 보니 나 역시 정신과 진료 경험을 블로그에 남겨 두어야겠다는 결심이 든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그 후기로부터 작은 도움이나마 얻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는 내용이 그리 많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게 읽어볼 수 있는 책이다. 다른 사람들은 언제 정신과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지, 정신과 진료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약을 먹으면 어떤지 등등 궁금한 점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이 책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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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대혼돈
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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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내가 읽은 책들 중에 가장 어려웠던 것 같다. 확실히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문단은 몇 번이고 다시 읽어 보곤 했다. 하지만 그만큼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의 만족감은 상당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미처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문제들에 대한 저자의 날카로운 견해를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슬라보예 지젝의 철학 세계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말이 많은 걸로 안다. 어떤 사람들은 지젝을 두고 있어 보이는 말만 할 뿐 내실이 없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젝이 스타, 이슈메이커로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새롭고 강렬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는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일단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나면 공론장이 커진다. 공론장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열리게 되면 더 새롭고 의미 있는 담론들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하여튼 지젝은 이 책에서도 온갖 주제를 망라하며 스스로의 견해를 펼쳐 낸다. 읽다 보면 비교적 상식적인 이야기도 있고, 이건 너무 급진적이지 않나 싶은 이야기도 있지만 확실한 건 일단 이 책은 재미있다는 사실이다. 어려우면서도 재미있는 책이다.

이 책에 실린 글을 전부 소개할 수는 없으니, 읽는 사람의 시선을 끌어당기기 쉬운 글 한 가지만 짧게 소개해 볼까 한다. 섹스 봇(섹스 로봇)에 대한 이야기다. 인공지능 관련 기술이 점점 발전하면서 섹스 로봇에 대한 논쟁 역시 뜨거워지고 있다. 다양한 논점들 중 대표적인 예시를 들어 보자면, 다른 로봇과 마찬가지로 '섹스 로봇에게도 인권이 있는가?' 그리고 거기에서 연결되는 '섹스 로봇을 학대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가?'와 같은 이야기가 있겠다. 지젝 역시 섹스 로봇 이슈를 언급한다. 이 이야기는 한 행사에서 섹스로봇이 학대당하고 심하게 망가진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지젝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지닌 섹스봇의 위상을 둘러싼 논쟁에 걸려드는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섹스 로봇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의 합당한 근거는, 섹스 로봇이 인간과 같은 자율성과 존엄성을 가지고 거기에서 오는 특별한 권리를 부여받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섹스 로봇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로봇이 실제로 고통을 겪고 슬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들이 경계하는 건 '우리 인간의 문제적인 공격적 욕망, 환상, 쾌락'이다. 최근 온라인 상에서는 다른 사람이 만든 눈사람을 부수는 행위에 대한 갑론을박이 여러 차례 벌어졌다. 눈사람을 부수는 게 뭐가 문제가 되냐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눈사람을 부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후자의 사람들이 눈사람이 아플까 봐 걱정되어 눈사람을 부수는 행위를 경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저항할 수 없는 대상에게 폭력을 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섹스 로봇 이슈도 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책의 후반부를 보면, 지난 2020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19의 창궐이라는 거대한 사건 때문에 전 지구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지던 여러 담론들이 거기에 자리를 내 주었다는 언급이 있다. 지젝은 그 이야기를 하며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와 정치가 버니 샌더스가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크나큰 바이러스 위기 시국에 맞춰 그들의 활동을 전개할 정도로 충분히 급진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한 번에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이었지만, 지젝은 이렇게 말한다. "감염증은 우리가 자연환경과 맺고 있는 불균형한 관계의 일부로 폭발한 것으로서 단순히 건강 문제에 불과한 게 아니다." , "따라서 현재 우리가 대처하고 있는 위기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 동력학의 계기들로 분출한 것이다." 확실한 건 바이러스 시국에 와서 더 불거질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당장 한국에서도 자가 격리가 강하게 권고되는 와중에 지낼 곳이 없는 사람들이나 공공시설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취약계층에 대한 조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감염증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에 더 크게 타격을 받는 것 역시 사회적 약자들이다.

위에서 소개한 글 외에도 이 책에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담론들이 소개된다. 기후 변화, 우파 포퓰리즘, 종교 비판, 반유대주의와 시오니즘, 마르크스주의 등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보았거나 생각해 볼 만한 주제들이다. <천하대혼돈>은 책 제목처럼 '천하대혼돈'이라 할 만한 요즘 시대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을 읽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고두고 여러 번 읽어도 의미가 깊은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독서 토론이나 독서 모임에 활용하기에도 적절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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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와 어? 인문과 과학이 손을 잡다
권희민.주수자 지음 / 문학나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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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그리고 과학. 많은 사람들은 이 두 가지를 상극이라고 여긴다. 인터넷 상에는 사람을 문과와 이과로 나누는 '문이과 드립'이 성행한다. 물론 그런 농담이 언제나 재미 없기만 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농담이 사람들을 너무 쉽게 문과형, 그리고 이과형으로 구분해 버리는 건 아닐까 싶다. 그런 기준에 따르자면 나는 무조건 문과형으로 분류될 인간이다. 어릴 때부터 수학이나 과학과는 담을 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물학자가 쓴 책을 읽으며 감탄하기도 하고, 우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도 좋아한다. <아! 와 어?>는 각각 소설가와 물리학자인 두 명의 저자가 함께 쓴 책이다. 이 책의 추천사를 보면 이런 문장이 있다. '별, 지구, 우주의 생성과 우주를 지배하는 기본 법칙, 지구 내에서 일어나는 과학적 현상, 원자와 분자, 생명의 근원, 숫자의 논리와 아름다움을 과학에 흥미가 없는 독자들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기술하고 있다.' 나는 이 문장이 이 책을 아주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아주 전문적인 지식을 다루는 과학 서적은 아니지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과학 이야기를 늘어놓는 책이다. 그래서 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가장 인상 깊게 읽은 파트는 DNA에 대해 이야기하는 '몸 안의 도서관'이었다. 보르헤스는 자신의 저서 <바벨의 도서관>에서 우주를 도서관으로, 그리고 인간을 한 권의 책으로 비유했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 책에서 "도서관이 아무리 거대하다 하더라도 똑같은 책은 없다"라는 문장을 인용한다. 이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DNA를 가진 인간은 없다는 뜻이겠지? 가장 이해하기 쉬운 예는 역시 지문이다. 세상에 똑같은 지문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한다. 심지어 일란성 쌍둥이조차 지문은 서로 다르다고 하니, 완전히 똑같은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해가 간다. 즉 나도, 이 책의 저자들도, 이 글을 읽고 있을 누군가도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라는 것이다. 당연한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해 보면 왠지 낭만적이다. 이 파트 외에 빛과 색에 대해 이야기한 '꽃과 색과 눈과 뇌'도 아주 재미있었다. 그 파트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인간은 빨간색에서 보라색까지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색들이 균등하게 반사되는 빛을 하얗다고 인식한다. 곤충은 빨간색을 보지 못하고, 노란색에서 자외선까지 빛으로서 보기 때문에 곤충의 흰색은 노란색에서 자외선까지 포함된 빛이 균등하게 반사되는 색이다.' 되새겨 보면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배운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개나리가 노란색이라고 인식하지만, 사실 개나리는 노란색 빛을 반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동물들마다 모두 다른 빛을 본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같은 꽃을 보더라도 내가 보는 꽃과 고양이가 보는 꽃은 전혀 다른 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런 식으로 과학 지식을 다소 낭만적으로 다룬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내용들만 간단히 소개했지만, 다른 내용들 역시 죄다 흥미로워서 재미있게 읽었다. 과학 이야기를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소재들과 결부시켜 풀어 놓기 때문에 더 쉽게 느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유익하게 시간 보내기 좋은 책을 찾는 사람이라면 <아! 와 어?>를 읽어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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