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
박균호 지음 / 소명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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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은 책에 대한 책이다. 이 책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지나칠 수 없을 법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잔뜩 실려 있다. 책 뒷표지에 적힌 '책이 겪은 사연, 책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라는 문장이 이 책을 아주 잘 설명한다고 본다. 어떤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있었던 일들, 책을 둘러싼 사건들, 그리고 책과 관련된 저자나 다른 수집가들의 일화들을 읽다 보니 내가 겪은 추억들도 하나 둘 떠올랐다. 같은 책을 두 권 사는 건 양반이다. 박스 세트로 구매해 놓고 생각 없이 박스를 버리고 말았던 기억, 누군가에게 선물받았던 책이나 선물했던 책에 대한 기억들은 이 책을 읽는 경험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개인적으로 세계문학전집에 관해 언급한 부분이 특히 인상 깊고 재미있었다.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든 책 모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든 둘 다든, 책 좋아하는 사람치고 세계문화전집에 한 번도 시선을 준 적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한 출판사에서 전부를 모으기 위해 어디서 나오는 전집이 제일 좋은지 비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다소 들쭉날쭉해도 좋으니 각각의 출판사에서 마음에 드는 책들을 각각 사다 모은다. 저자는 세계문학전집에 속한 수많은 책들 가운데 1번에 주목한다. 세계문학전집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법한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1번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다. 문학동네나 펭귄클래식 등 다른 출판사에서 낸 세계문학전집의 1번은 각각 어떤 작품들일까? 책을 읽다 보면 하나하나 알 수 있게 된다. 또 책 중간쯤에는 문학 작품들의 제목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다. <워더링 하이츠>라는 원제가 한국에서는 <폭풍의 언덕>으로 오역되는 바람에 잘못된 제목으로 더 잘 알려진 이야기라거나, <소리와 분노>로도 번역되곤 하는 <음향과 분노>가 셰익스피어에서 따 온 제목이라는 이야기 등등. 이 책에 실린 내용은 아니지만,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 글씨>는 사실 <주홍 글자>로 번역하는 쪽이 더 원제에 가깝다고 한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소설이기 때문에 굳이 덧붙여서 적어 둔다.

서평단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적지 않은 책의 서평단으로 활동했고 요즘에도 이따금 서평단 모집 페이지를 기웃거리는 사람으로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든 대목이 있다. 조금만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서평단에 주어진 가장 무거운 압박은 '책을 읽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즐거움'을 박탈당하는 것이다." 서평단 활동을 하다 보면 내가 어려워하거나 관심이 없는 분야의 책도 읽어야 한다. 가끔은 내 가치관이나 사고방식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책을 받게 되기도 한다. 물론 그런 책이라 하더라도 가치가 없는 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 책을 쓴 작가와 그 책을 만든 편집자의 노력, 그 책에 들어간 자원들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 의미와 가치를 존중해서 예의를 지키면서도 그 책에 대한 내 감상을 솔직하게 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저자가 언급한 대로 서평단에게 주어지는 도서에는 보통 출판사의 증정용 도장이 찍혀 있기 때문에 중고로 판매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나는 대부분 소장하고 싶은 책 위주로 서평단 활동을 하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구매하는 책과 합쳐지면 양이 꽤 많아지기 때문에 읽지 않을 책을 주기적으로 추려내서 친구나 지인들에게 선물하곤 한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읽는 게 책을 만든 이들에게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하여튼 저자가 서평단 이야기를 다룬 이유는 조지 오웰이 직업적인 서평가였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그것도 생계형 서평가였다고 하는데, 서평을 써서 먹고 살 수 있으려면 역시 조지 오웰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에는 위에서 언급되지 않은, 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나쓰메 소세키나 이상, 최인훈,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그들이 쓴 책 이야기. 책 수집가들이 찾아 헤매는 컬렉션, 출간되기도 전에 중고 서점에 올라왔던 한 책에 관한 미스테리한 경험. 책을 만드는 편집자의 애환에 관한 이야기까지, 저자는 그야말로 책에 관한 이야기라면 거의 뭐든지 늘어놓는다. 듣기만 해도 재미있고 유익할 것 같은 책에 대한 소개를 줄줄이 하고서는 "안타깝게도 절판되어 구할 수 없다"란 말을 덧붙이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덕분에 내가 몇 년 전 호기심 때문에 사 두었던 책 한 권이 진작 절판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희귀본 수집의 세계로 빠지게 되는 걸까? 하여튼 책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재미있을 책이다. 그리고 저자의 다른 저서인 <이토록 재미난 집콕 독서>와 마찬가지로, 읽고 나면 다른 책들을 찾아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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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6 12: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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