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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평점 :
“지금까지 39권 읽었어.”
종종 내게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던 지기지우는
지난주 토요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읽은 책 권수를 말했다.
9월까지 39권이라, 예전 같으면 ‘제법 읽었네’라며 기특해했겠지만,
지금은 좀 달랐다.
‘뭐야? 나보다 훨씬 더 읽었잖아?’
나를 책의 화신으로 알고 있을 그 친구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내가 올해 읽은 책은 그보다 더 적을 터였다.
집에 와서 내가 올해 대체 몇 권이나 읽었을까 세려고 하다가 놀라 버렸다.
책을 읽고 리뷰를 통 쓰지 않은 탓에 읽은 권수조차 파악이 안됐으니 말이다.
새벽 다섯시에 부스스 일어나 리뷰를 쓰는 이유는
그간의 삶에 대한 통렬한 반성 때문이다.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는
천부적인 이야기꾼 천명관의 단편집이니 망설일 필요가 뭐 있냐는 마음으로 사들인 책이다.
독특한 제목이 이 책이 어떤 내용일지를 미리 말해 주는데,
내 기대와 달리 이 단편집은 마냥 재미있게 읽을 수만은 없었다.
주인공들의 삶이 녹녹치 않은 게 이유였는데,
특히 <전원교향곡>은 그 결말마저 찜찜하다.
“아니 아무 죄도 없는 돼지는 왜 죽이는 거야?”는 생각을 하며 잠시 책을 덮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재미가 없다, 이런 건 아니다.
짧은 단편 안에 삶의 애환과 미스테리, 그리고 기막힌 반전까지 집어넣은 <핑크>는
저자가 왜 천부적인 이야기꾼인지를 여실히 보여 주며,
마지막에 넣어 둔 <우이동의 봄>은 읽는 내내 훈훈하다.
표제작인 <칠면조...> 역시 ‘칠면조가 그렇게 쓰이다니, 역시 천명관이구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자신의 묘비명에 어떤 문구가 새겨지길 원하느냐는 질문에
저자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천명관 씨, 무슨 굼벵이가 이렇게 잘 달립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