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수가 되고 난 뒤 여기저기 한턱을 내느라 허리가 휘었다.

알라딘에서 기념 이벤트를 한 거야 충분히 할 만한 일이지만(그 덕에 플래티눔이 됐다!)

평소에 안친하던 사람들마저 한턱 내라고 하는 건 좀 이해가 안갔다.

"정교수 됐으니 한턱 낼게"라는 사람은 없을까,라고 생각했는데

내 오랜 친구 ㅅㅂㅂ님이 축하한다면서 책 두권을 고르란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고른 책이, 부끄럽게도 의자놀이였다.

 

 

 

 

 

 

 

 

 

 

 

 

 

 

부끄럽다고 한 건 인세와 판매 수익금을 전액 기부하는 이 책을 아직까지 안샀다는 것과

그나마 직접 사지 않고 다른 분한테 부탁했다는 것.

아무튼 선물은 좋은 거니 기쁜 마음으로 책을 받아들고 순식간에 서문을 읽었다.

"처음으로 문학이 아닌 책을 썼다."로 시작되는 비장한 서문을.

그러다 공지영 생각을 했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공지영에 대한 말들을 말이다.

 

개인적으로 공지영을 높이 평가한다.

다른 작가들처럼 얼마든지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욕을 먹어가면서 정의의 구현을 위해 싸우지 않은가.

이번 의자놀이 역시 22명의 목숨을 앗아간 쌍용차 투쟁에 대해 다루고 있다.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일을 자청한 건 분명 칭찬받을 일이건만,

내가 우연히 만났던 쌍용차 관계자는 다른 말을 했다.

"다들 공작가가 그 일을 하는 걸 불편해한다"

"공작가의 참여로 인해 우리 투쟁에 힘을 보태줬을 다른 사람들이 떠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공지영에 대한 상투적인 비판이 이어졌다.

"공작가는 문학성이 너무 떨어져."

개인적으로 쌍용차 투쟁을 정리할, 공지영을 대신할 수 있는 작가가 누가 있을지 잘 모르겠다만,

설사 대신할 사람이 많다고 해도 그런 식의 비판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참 불편했다.

 

이 책을 둘러싼 표절 논쟁도 그 단면이리라.

이미 오래 전 얘기가 되버렸고, 다들 아시리라 믿지만,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유명한 노동문제전문가가 공지영이 <의자놀이>에 쓴 글의 일부가 표절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그 글은 원래 원저자가 있는데,

공지영이 그걸 출처도 밝히지 않고 썼다는 것이다.

출처를 본문에 쓰지 않고 미주로 처리한 출판사 측의 실수인데다

노동문제전문가가 노동자의 투쟁을 다룬 르포르타주의 사소한 실수를 문제삼아

배포금지를 요구하기까지 한 걸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

공지영 대신 다른 작가가 똑같은 잘못을 했다면 그때도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 전문가는 "거대한 문학권력에 맞서 르포작가의 권리를 지키는 외로운 싸움" 운운하며 공지영과 설전을 벌이기까지 했는데,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마음이 개미 xxx만한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삐져서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산으로 갔을 거다.

보수 쪽으로부터 욕먹는 거야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지만,

같은 편이라고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으면 힘이 쫙 빠지지 않을까?

하지만 공지영은 꿋꿋이 잘 버티면서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니,

외유내강이란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 같다.

공지영 씨, 세상이 당신을 어떻게 말하든지 저는 당신을 응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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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2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12 1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2-11-12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저는 마태우스님께서 말씀하시는 '진보'라는 것이 무엇인지?
혹은 어떤 사람들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논란에서 가장 큰 잘못은 출판사나 이선옥씨가 아닌
공지영씨에게 있었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마태우스님께서 왜 하필 공지영에게만 그러냐? 하는 질문에는
대답하기가 어렵네요.
이 일을 몰랐다면 상관없지만,
알게된 이상 공지영씨를 두둔해주거나 옹호해주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거든요.

그리고 다른 사람(황석영, 하종강 등을 말씀하셨는데)이었다면
달랐을거라고 말슴하셨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같은 잘못을 했다면
아마 분명히 같은 반응을 얻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다른 사람들이라면,
같은 실수를 했더라도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은 다르지 않았을까요?

즉 공지영씨처럼 끝까지 자기 주장만 우기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구요.
경솔하게 SNS로 먼저 시비를 걸지도 않았을 것 같아요.

그냥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저 역시 평소 마태우스님 글을 좋아해서
(제가 페이스북으로 말 걸었던 것 기억하시나요? ^^)
이 글을 읽고 의아한 마음에 댓글을 남겼습니다.
현상을 보는 서로의 의견은 다를 수 있겠지요.
제 댓글이 마태우스님에 대한 공격은 아니라는 점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마태우스 2012-11-12 18:29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저 역시 님의 댓글을 공격으로 생각진 않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이었어도 같은 반응을 얻었을 것이다"란 대목에서 님과 저의 견해 차이가 나네요. 이거야 사실 증명할 수 없는 부분이라, 여기에 대해 논쟁을 하는 건 별반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공지영을 옹호했던 건 제가 공지영의 상황이었다고 해도 공지영과 똑같은 반응, 어쩌면 더 큰 반응을 보였을 것 같아서였어요. 그리고 이 논쟁에서도 사실을 보는 관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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