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글을 읽는 내내 그런 상상을 해본다. 만약 이 책이 연극으로 만들어진다면...누가 배역을 맡으면 좋을까? 다른 사람들은 도무지 이미지가 잡히지 않으나 딱 한사람의 이미지만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선명하다. 바로 윤여정씨이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한번 상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윤여정이라는 배우가 맡을 배역은 무엇일까? 엄마다. 주인공 유안의 엄마! 난 이 소설을 보는 내내 윤여정이 이 역에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없는 아버지와의 이혼, 그리고 연기로 다시 돌아온 그 열정, 먹고 살기 위해 아둥바둥 대는 치열함, 집에서도 고상하게 보이고 싶고 철없는 행동, 그리고 세월의 무게를 다 짊어진 듯 뿌옇게 내뱉는 담배연기...연기를 하다보면 꼭 그 사람에게 맞는 배역이 있다고 윤여정이라는 배우에게 꼭 들어맞는 배역이 아니겠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끊임없이 배우 윤여정의 목소리를 들었다. 한 마디 한 마디 던지는 대사에, 그리고 행동 하나 하나에서 그녀의 자취를 느끼는 것은 이 책을 읽어가는 또 하나의 재미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자기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딴에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만 조금만 그 속을 들춰보면 모두 자신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자기의 사랑을 위해 할아버지를 독수공방으로 만든 할머니, 그런 할머니를 조롱하기 위하여 여자를 데리고 온 할아버지, 친구 한주에 대한 마음과 이혼의 아픔을 애써 숨기고자 딸을 탓하는 엄마, 위장 이혼을 하지만 다른 여자를 만나 다른 가정을 꾸린 아버지, 반발하여 나가는 재영, 만나면 커피마시고 모텔로 직행하는, 사랑하지만 감당할 수 없어 헤어진다는 승원, 그리고 승원에게 결혼을 이야기하는 유안! 모두들 자기 입장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에 충실하지만, 지극히 이기적이지만 그들은 상대방에게 배려를 베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배려를 몰라주는 상대방이 나를 숨막히게 하는 것이지 내 잘못이 아니라 강변한다. 그들은 자기식의 배려를 강요하고 있을 따름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나만 생각하고 있어락 말한다면 덜 답답할 것을. 

  작가의 기가 막힌 의도일까, 아니면 우연일까? 난 전자에 이 책을 걸 수 있다. 로맨틱한 세계는 소설의 미니어쳐이다. 승원과 유안의 이야기를 담은 스마트한 시대의 커플 이야기,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재영의 이야기를 담은 성적 소수자의 사랑이야기, 유안을 바라보는 오연출을 떠올리는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 소설과 연극을 비교하면서 읽는다면 작가의 말이 더 생생하게 들린다.  

  이 책에는 두 부류의 남자가 등장한다. 유안의 삶에서 튕겨져 나가는 남자와 받아들여지는 남자. 전자의 대표는 승원과 아버지이다. 유안이 끊임없이 사랑하고 인정받고 싶어하지만 그들은 유안을 떠난다. 유안은 끊임없이 그들을 그리워하지만 그 그리움이라는 것은 전원을 꺼버리면 사라져버리는, 24시간이 지나명 생명이 다하는 블로그의 글과 같은 것이다. 기억은 있지만 추억은 없다고 할까? 추억은 있지만 감동은 퇴색해 버렸다고 하는 것이 맞을까? 후자의 태표는 오연출과 장실장이다. 어느날 무책임하게 유안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사라져버린 장실장. 그의 일을 맡아서 하는 것은 유안에게 무거운 짐이다.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유안은 장실장을 미워하지 않는다. 외려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장실장의 부재를 안타까워한다. 

  유안에게 아버지보다 더 듬직한 존재는 장실장이다. 무책임한 아버지와 유안을 믿고 신뢰하는 장실장. 장실장이 아버지의 대척점에 있다면 승원의 대척점은 단연 오연출이다. 좋아하는 여자가 가다가 넘어지면 일으켜 세우든지 같이 넘어져야 한다면서 종로 한 복판에 누워줄 수 있는 오연출의 찌질함은 사랑하지만 감당할 수 없어서 헤어진다는 승원의 쿨함보다 더 매력적이고 로맨틱하다. 소설에 나오지는 않지만 만약 유안이 결혼을 하고 진지하게 연애를 한다면 상대는 오연출이지 않겠는가?  

  장실장과 오연출을 보며 입에서 맴도는 한마디가 있다. "너만 생각해!" 나는 나를 생각해라는 제목이 이상하게 "너만 생각해"라는 말로 들린다. 괜시리 오지랖 넓게 상대방을 배려하지만 결국 그것은 자기식의 배려를 강요하는 것이 될 뿐 진정한 배려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자기의 인생에 충실하게 살아가려는 장실장이나 오연출 같은 사람이 진심을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람이라 느끼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과거 아픔을 혼자서 삭히기 어려운 시절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나를 떠나 버린 상대방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내가 상처를 준 것이 미안하고,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온갖 것이 미안했다. 미안한 마음에 전화를 하고, 더 상처를 주고, 이것이 반복되고. 그 시절 친구가 나에게 해준 한마디..."너만 생각해!" 그렇다. 괜시리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은 미련한 행동이다. 상대방을 더 아프게 하고, 무례하게 행하는 행동이다. 그냥 그럴 때는 "나만 생각"하면 된다. 

  오늘도 힘들어 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고 행여라고 사랑의 아픔, 인생의 아픔을 달래고 있을 사람들에게 한마디만 한다. 

  "너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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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05-25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님을 응원하는 차원에서 저도 참가요. 덕분에 재미있는 소설 하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