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마음을 놓다 - 다정하게 안아주는 심리치유에세이
이주은 지음 / 앨리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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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게 안아주는 심리치유 에세이라는 독특한 설명을 달고 나온 책이다. 백 마디 말보다 따뜻한 그림 한 점의 위로라는 문구로 이 책의 지은이가 지향하는 바를 쉽게 유추할 수 있겠다. 요즘은 마음이 아픈 사람이 참 많은 가 보다. 베스트셀러는 물론 쏟아지는 새 책들을 봐도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치유해 주는 글과 사진을 담은 책들이 많은 걸 보면.

'그림에, 마음을 놓다'라는 제목의 이 책은 그 심리치유 수단으로 그림을 내놓고 있다. 책의 구성은 흡사 몇해 전에 읽었던 최현주의 포토 에세이 - '두 장의 사진'과 많이 닮아 있다. Lost와 Found 라는 대비되는 포맷 속 명화들을 통해 사랑(사랑을 두드리다), 관계(타인에게 말걸기), 자아(잃어버린 나를 찾아서)라는 풀기 힘든 삶의 과제로 힘들어 하는 이에게 따뜻한 위로를 안겨 준다.

이 책의 지은이 이주은이라는 사람도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고 대기업에서 무난한 직장생활을 하던 그녀가 미술사를 공부하려고 결심했던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진다. 말 그대로 성공의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던 부러울 것 없는 삶 속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일까.

눈 깜짝할 사이에 흐른 시간 앞에서 진정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평소 이미지의 역사와 소통 방식에 매력을 느껴왔기 때문이었다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삶이 막막할 때면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치유의 길을 묻는다는 그녀 역시 그 무렵에 감기를 앓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녀의 말처럼 우리는 감정을, 고통을 표현하는 일에 서툴다. 눈물은 참아야 하고, 힘들어도 괜찮은 척 해야 하는 것이라 배워 왔다.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마음 속에 고이게 되면 결국은 썩게 된다. 몸에 깃든 병보다 더 고치기 힘든 마음이 병이 생기게 되는 법이다.

그림 한 점이 백 마디 말보다 따뜻한 위로가 되려면 그림 속에 녹아들어 있는 압축된 비유를 파악할 수 있는 좀더 세밀한 관찰력이 필요할 듯 하다. 그림은 예술이다. 예술가는 누구나 보기만 하면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그림 속에 여러가지 소재와 기법을 동원해 표현해 놓은 그의 감성을 잡아내려면 그만한 안목도 길러내야 한다.

아직은 그림만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고, 온전히 위로받기도 어렵다. 지은이가 친절하게 설명해 놓은 글들의 힘을 빌려야만 비로소 그림 속에 감춰져 있는 치유의 마법에 빠져들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또 모른 들 어떠랴. 정답이 무엇이든 그저 보이는대로 느끼는 것도 괜찮은 그림 감상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그림을 통해 그저 위로를 얻고 싶은 것일 뿐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마르크 샤갈의 '산책'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이다. 그림 속의 남자와 여자는 그저 행복해 보인다.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꼭 잡고 어딘가를 거니는 것 보다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그래서인지 붉은 빛이 옷을 입은 여인은 마치 무중력 상태의 자유를 느끼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 하다.

크리스토퍼 에커스베르의 '거울 앞에 선 여자 모델' 과 에두아르 마네의 '라튀유 씨의 레스토랑에서' 라는 작품은 사랑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 같다. 전자의 작품에서 그림 속 여자 모델은 참으로 아름다운 몸을 지니고 있다.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는 여인의 모습이 자기애를 상징한다면 후자의 그림 속 두 사람은 마치 세상이 멈춘 듯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자신의 상을 상대방의 눈에 입력하고 심어두는 것이 바로 사랑의 시작이라 한다.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이 아니라 상대를 바라보는 거울이 되는 것 말이다.

사랑에 전부를 거는 당신을 위해서는 사랑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얘기해 준다. 오귀스트 로댕의 '입맞춤'에서 우리는 자신의 전부를 사랑에 걸었고, 결국 그 때문에 무너져갔던 카미유 클로델의 모습을 바라본다. 사랑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누고 자신의 예술을 녹여버린 여인, 카미유 클로델이 리카르드 베리의 '북유럽의 여름 저녁'에 나오는 남녀처럼 사랑하는 사이도 가끔은 거리를 두고 서로를 낮설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또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조지 클라우센의 '들판의 작은 꽃'이라는 그림도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다. 마흔이라는 나이가 되어도 결코 자기 인생의 저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지 가늠할 수는 없다. 인생은 정답 없는 의문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을 겨우 이해하게 된 마흔의 인생들은 그래서 그림 속 소녀처럼 내가 들판에서 찾은 작은 꽃을 한번이라도 더 바라보고 그 모습을 기억해 두는 편이 훨씬 행복한 일임을 그림은 말없이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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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 Travel Notes, 개정판
이병률 지음 / 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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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무언가 끌림이 있는 책이다. 오래 전부터 한번은 꼭 읽어보고 싶었었는데 다행스럽게 나와도 인연이 닿아준 것 같다. 이병률 시인의 첫 산문집 '끌림'은 그가 1994년부터 2005년까지 10여년의 세월동안 50여개국을 여행하며 느꼈던 감성의 기록이다. 시인이라 글만 잘 쓰는 줄 알았더니 사진 솜씨도 기대 이상이다.

해외 여행에 관한 글보다는 우리나라 곳곳을 여행하며 남긴 에세이들을 좋아한다. 그건 아마도 공감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이 책에는 또다른 이유의 '끌림'이 있다. 여행자의 발걸을을 따라 그의 눈동자를 빌려 내가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없는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느낌에 자연스레 끌리게 된다.

확실히 시인의 글은 뭔가 다르다. 시인의 산문은 시를 닮아 있다. 고등학교 시절 부모님 대신 참석했던 결혼식 축의금 봉투를 들고 결혼식장 대신 떠났던 일주일간의 여행이 그를 평생의 여행으로 이끌었고 평범하지 않은 시인의 길로 이끌었을 거라고 추측해 본다. 물론 그 여행이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테지만, 그것 또한 그의 운명이었을 거다.

홀로 여행을 할 때도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누군가 예전에 걸었던 길, 혹은 언젠가 누가 걷게 될 길을 걷고 있노라면 내 곁에 바로 그 사람이 함께 걷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맞닿을 것처럼 지척이거나 몇걸음 떨어져 있거나 상관 없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을 그도 보고 있을 것이며,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을 분명 그도 느끼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그를 시인이라고 불러야 할 지 사진작가라고 불러야 할 지 고민이 된다. 그가 다른 세상을 걸으며 카메라에 담았던 수많은 사진들이 책 속에 녹아들어 글의 느낌을 더욱 생생하게 전해주는 듯 하다. 이 사진들은 분명 아마츄어의 느낌은 아니다. 어떤 사진들은 장황한 글보다 더 강렬한 느낌을 전해준다.

이상한 일이다. 처음 책을 펴들었을 때부터 최갑수라는 이름이 퍼뜩 떠오르더니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지은이를 다시 확인해야 할 정도가 됐다. 이병률의 산문집 '끌림'에서 난 왜 최갑수가 떠올랐을까. 시인이라는 공통점, 골목에서 만나게 될 사랑을 그리워하고, 운명처럼 여행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두 사람은 사진으로 뽑아내는 감성마저 묘하게 닮아 있다.

위시 리스트에 이병률이라는 이름 석자를 추가했지만 그의 두번째 산문집은 기약이 없다. 최갑수가 여행 에세이를 통해 나의 기다림에 가끔 화답해 주고 있지만 이병률이라는 사람은 여전히 본업에 충실한 듯 하다. 부디 그의 재능을 혼자서만 즐기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끌림이 설렘이 되고, 결국엔 사랑이 되듯 그의 길에 우리도 함께 일 수 있도록. 


열정이란 말에는 한철 태양이 머물다 지나간 들판의 냄새가 있고,
이른 새벽 푸석푸석한 이마를 쓸어올리며 무언가를 끄적이는 청년의 눈빛이 스며있고.
언제인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타고 떠날 수 있는 보너스 항공권 한 장에 들어 있는 울렁거림이 있다.
......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  - '열정'이라는 말

사랑을 하면 마음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놔두면 돼요.
마음이 엉키면 그게 바로 사랑이죠.  - 어쩌면 탱고

뉴욕의 지난 가을은 어땠어요?
7억 8천 8백 91만 9백 서른아홉 개의 양말 같은 낙엽들이
모두 자기 짝을 찾고 있는 것처럼 뒹굴고 뒹굴었어요.  - 지난 가을의 낙엽들

사랑해라,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잃어온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사랑해라, 사랑하고 있을 때만 당신은 비로소 당신이며,
아름다운 유일한 한 사람이다.  - 사랑해라

내가 지금 걷는 이유는 내일과 다음 생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 지 모르기 때문이다.
올 것이 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내일과 다음 생 가운데

좋은 풍경 앞에서 한참 동안 머물다 가는 새가 있어.
그 새는 좋은 풍경을 가슴에 넣어두고 살다가 살다가
짝을 만나면 그 좋은 풍경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일생을 살다 살다 죽어가지.
아름답지만 조금은 슬픈 얘기.  - 좋은 풍경

내 삶도 저만큼만 높고
아름다웠으면 하고 생각했다.
나는 누구 인생의 무지가가 되면 안 될까?
그 누가 내 인생의 무지개가 되면 안 될까?
환상은 건드려서 이미 부서졌다지만,
희망은 건드리면 무지개가 되잖아. 저렇게.  - 2004년 11월 20일, 생일

세상으로부터 뭔가를 받을 것만 생각하지 않는
세상에게 뭔가를 줄 수도 있는 사람입니까.

누군가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어도 되는 겁니까.

그 한 사람을 생각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나는 세상에 뭔가
어떤 식으로든 보탬을 주고 있다고 믿어도 되는 겁니까.  - 나는 뭔가를, 세상에 가져오는 사람입니까

문득 행복하냐고 묻고 싶을 때가 있다.
많이 사랑했냐고 묻고 싶을 때도 있다.

내가 더 잘할게,
라고 말할 수 있는 사이.
그런 사이였음 좋겠다.

누군가,
한 사람의 심장에 남는,
사람이 되는 것.

우리는 서로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서로 맡아지지 않는 향기로 묶여 있다.

오늘이 지나가고 희망이 지나가고 사랑도 지나가면,
다른 날이 올까?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힘이 되는 한 사람을 가졌습니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은
누군가를 마중하는 길이다.

조금은 멀리 있어도 돼.
내가 조금 걸으면 되니까.

내가 걸어온 길이 아름다워 보일 때까지
난 돌아오지 않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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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 Sentimental Travel
최갑수 지음 / 예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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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읽는 책이다. 한번 읽었다고 해서 그 책의 속속을 다 기억할 수는 없는 법.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이라는 다소 이기적인 제목을 지닌 이 책은 내게 최갑수라는 사람을 알게 해 준 기분좋은 우연을 가져다 주었다. 아직도 그해 여름 희미한 불빛이 조용한 방안을 비추던 그 희뿌연 느낌 속에서 책장을 넘기던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

왜 한번 읽었던 책을 굳이 다시 읽어보겠다 고집을 피웠는지 나도 모를 일이다. 물론 마음에 드는 작가의 글과 사진을 만나게 해 준 고마운 인연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언젠가는 당연히 잊혀질 뿐일텐데 말이다. 이런 스타일의 에세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갑수의 글과 사진이 최고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저 미스테리한 일이라 여길 수 밖에.


최갑수의 첫 여행 에세이면서도 최근에 나온 그의 신간과 비교해 봐도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다. 그냥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시간만 흐른 느낌이라고 할까. 똑같은 글과 사진을 두번째 읽으면서도 어떤 것은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게 느껴졌고, 또 어떤 것은 2009년 여름날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해 오히려 놀랍고 슬펐다.

굳이 Sentimental Travel 이란 부연 설명을 해주지 않더라도 그의 글과 사진은 이미 충분히 sentimental하다. 말라 비틀어진 수건마냥 건조해진 사람들에게 센티멘탈해질 것을 권유하기도 하는 그의 충고대로 1호선 전철을 타고 인천으로 가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을 먹고 어슬렁거리다 월미도에서 바다를 바라보다 소래철교에서 소주 한잔을 마시고 나면 조금은 물기가 오르게 될까.

시간이 흘러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그의 고집이 느껴진다. 어찌보면 다소 진부하고 식상하게 느껴질 지도 모를 일이지만 내게는 오히려 또 그것이 반갑다. 단 한번의 일면식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테지만 변함이 없는 그 모습이 좋다. 마치 십수년만에 만났어도 예전 그대로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어서 전혀 어색하지 않은 오랜 친구처럼 반갑다.

언제고 생각나면 꺼내 읽을 수 있어서 좋다. 따뜻한 위안이 필요할 때면 이 책을 통해 그해 여름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일하는 데 여덟 시간, 사랑하는 데 여덟 시간, 자신을 위하는 데 여덟 시간, 이렇게 하루를 삼등분해서 살 수 있다면 충분히 행복할텐데......" 하조대를 거닐던 친구의 말처럼 인생은 간결할 필요가 있고, 가끔은 '나를 위해서만' 살 필요도 있는 것 같다.

"여기에 실린 것은 시도 아니고 산문도 아니고 사진도 아니다. 낯이 뜨겁고 부끄럽다. 이렇게밖에 쓰지 못했나, 이렇게밖에 살지 못했나, 후회가 된다."고 에필로그에서 그는 상투적이고 의례적인 말을 하고 있지만, 그의 마지막 바람처럼 다행히도 이 책이 나에게는 아주 사소한 우연이었으며, 음악이었고, 두서가 없는 행복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또한 고마웠음을.


인생은 지나가며 사물은 사라지고 풍경은 퇴색한다는 사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
부디, 슬퍼하지는 말자.
우리가 길을 추억하듯, 길은 때로 우리를 추억할 것이니.  - 길은 때로 우리를 추억한다

아직도 그날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날 우리 모두는 정말 행복했다.
너무나 행복해서 오히려 다가올 불행한 날들이 두려워졌을 정도니까.
그런 날들이 우리 기억 속에 분명 하루쯤은 존재하고 있다.
그 하루의 향기가 불행한 날을 잊게 만든다.  - 행복

사람이건 계절이건 바람이건 약속이건
기다린다는 일은 무조건 외롭고 외로운 일.
그 맑고 명징한 외로움을 좋아한다.
그러나 가장 좋아하는 것은 기차에 올라타는 그 순간이다.
너를 만나러 가는 그 순간이다.  - 기차를 기다리며

잔소리 같지만, 인생은 끝까지 가려는 의지이다.
좋든 나쁘든, 살아남든 죽어가든.  - Bravo My Life

이런 해변을 알고 있다는 게 행운이야.
당신과 함께 올 수 있어서 더욱 행운이야.
여행을 다니면서 나만의 해변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여기가 바로 그곳인 것 같아.  - 나의 오래된 해변

서출지에 연꽃이 피었다고 했다.
갔으나 연꽃은 없었다.
연꽃은 그대 마음에 피었겠지...... - 연꽃은 그대 마음에

모든 떠나간 사랑이여,
저 꽃 핀 나무 아래에서처럼,
행복하시길.
부디...... - 사랑이 지나간 자리는 적막할 것이므로

사랑은 버티는 거다.
너를 가지겠다는,
기어이 너를 내 손에 넣고 말겠다는 의지 하나로
버티는 거다.
소금창고는 제 속이 썩는 줄도 모른 채 소금을 안고 서 있다.
......
소금창고는 속으로 울고 있다.
소금이 짠 이유다.  - 기다림의 자세

우리의 하루를 만드는 것은
달 정복도 아니고 어마어마한 금액의 복권 당첨도 아니다.
엽서와 고맙다는 한 마디, 누군가 내 책상 위에 올려다 준, 커피 한 잔.  - 우리를 지탱하는 것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꽃이 피었다.
햇빛이 머물던 자리에는 열매가 맺혔다.
그러니 바람 한줌이
햇빛 한 자락이
지나간 세월이
부질없는 것만은 아니다.
그렇게 불평하며 살 일만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가
이런 꽃 한 송이
열매 한 알을 깊은 곳에 숨겨두고 있다.
때가 되면 피고 열린다.  - 꽃과 열매

땅 끝에서
등만 돌리니 다시 시작이었다.  - 땅 끝에서

알고 있나요?
인생의 한순간이 때로는 인생의 전부일 수도 있다는 사실.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는 사실.
언제나 시작은 사랑이고 끝도 사랑이라는 사실.
우리가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길이 우리를 잃어버린다는 사실.  - 알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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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알 때까지 걸어가라 - 최갑수 여행에세이 1998~2012
최갑수 지음 / 상상출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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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에 초판이 나온 따끈따끈한 최갑수의 신작을 드디어 만났다. 2009년의 어느날 마치 운명처럼 최갑수의 글과 사진을 만났던 것은 사실 우연이었다. 아직도 작은 스탠드에서 비치는 희미한 불빛 아래 책장을 넘기던 그날의 즐거운 떨림을 잊지 못하겠다. 그렇게 해서 나에게도 신간 출판 소식을 기다리는 작가가 한명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사랑을 알 때까지 걸어가라'는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여행의 기록이다. 첫 만남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스타일은 여전하다. 지금껏 그의 여행 에세이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읽어 왔지만 시간이 흘러도 '최갑수 스타일' 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그 익숙함이 편하기도 할 것이고, 한편 그런 이유로 지겨울 수도 있겠다. 


당장 읽어야 할 책들이 쌓여 있었지만 마냥 기다릴 수가 없었다. 책을 주문하고 도착하기 까지의 시간이 무척이나 더디게 지나갔지만 정작 이 책을 다 읽는데에는 두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일단 최갑수의 책은 손에 쥐면 잘 읽혀서 좋다. 물론 그보다 훨씬 사진을 잘 찍고, 글을 잘 쓰는 작가는 많겠지만 그는 분명 독특한 그만의 느낌과 맛깔스러움이 있다.

내게 있어서 그는 앞으로도 당분간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스물 여덟살 이후 여행자가 되어 인생의 대부분을 여행을 하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데 사용하고 있는 사람. 그렇게 인생의 대부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한없이 부럽고, 그것이 가능하게 만들어 준 그의 재능이 더욱 부럽다. 그 무엇보다 부러운 건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그의 책들을 한자리에 놓아 놓으면 마치 쌍둥이처럼 쏙 빼닮았다. 여행에 대한 시들지 않는 동경, 센티멘탈함, 그리고 나를 더 사랑하고 싶은 간절함처럼 일관된 흐름이 느껴진다. 어차피 그의 책은 한번 읽고 버려지거나, 책꽃이에 박제될 것이 아니니까 그저 글과 사진으로 느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여행이 그리워지면 나는 이 책 속으로 들어가 잠시나마 위안을 얻을 것이다.

2월은 훌쩍 떠나기 좋은 달이라며 친절하게도 당신을 위한 2월의 여행지 세곳을 소개해 주고 있다. 2월이 어디론가 훌쩍 떠나기 좋은 달인 줄은 모르겠지만 지하철을 타고 스니커즈에 MP3면 준비는 충분할 것 같다는 오산 물향기수목원, 인천 차이나타운과 월미도, 남양주 능내역은 불행히도 여기서 너무나 멀다.

굳이 작가가 소개해 준 세 곳의 여행지가 아니더라도, 2월이 어디론가 떠나기에 썩 좋지 않은 달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또 어느 순간 나를 짐을 챙겨 무작정 떠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바람처럼 부디 내가 나를 더 사랑할 수 있도록, 사랑을 알 때까지 걷고 또 걸어가봐야 할 것 같다. 요조의 노래처럼 뭔가 잔뜩 들어있는 배낭을 메고, 시들지 않는 장미꽃 한송이를 들고서.


좋아하는 감정,
사랑한다는 고백,
이런 건 절대로 아끼면 안 되지.   #002 정말로 아끼지 말아야 할 것

여행은.....
내가 나를......
꼬옥......
껴안는 일이라도 해두자.   #010 여행은......

우리가 사랑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랑하는 것이다.   #013 어쩔 수 없이 Imagine

당신은 아주 조용한 책
설원이 숨겨놓은 타이가 숲, 그 속에서 피우는 따스한 모닥불
당신은 나의 봄, 그 봄에 핀 꽃
내 삶에 대한 온화한 비평
당신은 내가 겪었던 행운의 궤적
내 인생의 모든 토요일 아침
당신은 새로 지은 시처럼 너무 좋아서
아무리 입에 넣고 중얼거려도 질리지가 않아
당신은 지금 여기, 동백이 앉았던 무늬들
혹은 내가 오늘 가져온 악기
나는 하루종일 당신을 안고 줄을 고른다네
당신은 나의 도피
때로는 절해고도, 알아들을 수 없는 시니피앙
당신은 나의 둘시네아, 스푸트니크, 비틀즈
당신은 나의 습관
나의 산책
내게 주어진 시간

그러니까 당신은......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장소.   #022 오래전부터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

이제야 사랑이 뭔지 알겠어.
......
떼를 쓰고 싶지는 않아
그냥 조금만 더 기다려 줄 수 있겠니?
내가 조금 더 세련될 수 있도록.
......
지금은 이 말 밖에는 할 수 없어. 그래도 널......사랑할 거야.
사랑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볼 거야.   #024 사랑에 관해 두서없는

그건.....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건......
네가 그 사물에 대한 애정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건......
사랑하게 됐다는 거지.
그러니 넌 이제 너만의 꽃사진, 너만의 나무 사진,
너만의 자동차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긴 거야.  #033 사랑하게 됐다는 거지

사랑은 때로 무분별해야
사랑은 때로 무작정이어야
그리고 사랑은
때로 무자비해야   #037 사랑은 때로

누군가 그랬었지. 우리가 슬펐던 만큼,
아팠던 만큼, 딱 그 만큼
용기를 가질 수 있다고.   #041 우리가 슬펐던, 딱 그 만큼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건
아는 사람의 미안함 때문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의 고마움 덕분인데.....
어쨋든, 미안해라는 말 자꾸 해서 미안해.   #047 미안해

'여행은 결국 혼자 남는 거고, 어쩌다보니 인생은 결국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것이고. 그렇지 않아?'
낙타 씨는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051 그러다 보니 여행은, 어쩌다 보니 인생은

뜨거운 사막에 하루만 있어봐.
선인장의 그림자가 생겼다가, 희미해졌다가, 마침내 사라지는 시간까지.
그럼 이렇게 말하게 된다구.
어이, 이봐. 꼭 그렇게 호들갑 떨어야겠어?
모두들 조용히 견디며 자신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구.  #110 견디며, 견디며, 견디며

너무 선명하지 않게, 조금은 모호하게.
너무 밝지 않게, 조금은 어둡게.
너무 시끄럽지 않게, 조금은 조용하게.
너무 다정하지 않게, 조금은 고독하게.

당신의 뺨에 물든 서쪽의 햇살처럼, 그렇게

우리, 9월의 지는 햇빛 속으로 천천히 걸어가듯.   #119 우린 때로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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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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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장하준 교수의 전작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미처 다 끝내지도 못하고 다시 쥐어 들었던 책을 오늘에서야 완독했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라는 책은 지금껏 우리가 '진리' 혹은 '사실'이라고 알았던 것들의 허구를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세계 초강대국, 혹은 국경을 초월한 기업들의 세계 경제지배의 논리적 기반이 되었던 자본주의의 위선은 말 그대로 '불편한 진실'일 수 있다.

몇차례의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신자유주의 컴플렉스에 빠져있는 듯 하다. 이건 우리가 수세기동안 시달려왔던 <레드 컴플렉스>의 위력 그 이상인 것 같다. 신자유주의는 되돌릴 수 있는 시대의 흐름이며 이데올로기적 대세인 것처럼 호도되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국가와 기업, 개인들까지도 모두 동일한 출발선상에 일렬로 서서 출발신호만을 초초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궁금해졌다. 어느 드라마에 나오는 말처럼 "그게 최선입니까?"라고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다. 신자유주의가 내세우고 있는 무한 경쟁과 규제 철폐는 과연 바람직한 것이며, 피할 수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들에 대해 장하준 교수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삐딱한 시선을 가지고 조목조목 설명해 준다.

분명 장하준 교수의 존재는 기존 자본주의 체계 속에서 부와 명예를 맘껏 누리고 있던 조직과 사람들에겐 불편한 것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들은 잘 무장된 이론과 왜곡된 데이타 들을 동원해 경제 분야에 문외한인 대중을 속여 왔다. 장하준 교수는 경제 문제에 대해 말하는 데 고도의 전문 지식은 없어도 된다라고 잘라 말하고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이해하고, 내가 말하는 '경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해서, 의사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요구하는 데에는 고도의 전문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주요 원칙과 기본적인 사실을 알고 나면 상세한 전문 지식이 없어도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 서론 중에서

23가지의 자본주의에 대한 불편한 진실은 세계 경제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 하는 다소 거창한 제목의 결론를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여기에는 인간의 합리성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으며, 인간은 이기심 없는 천사가 아니라고 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진지한 탐구에서부터 자본주의는 나쁜 경제 시스템이며, 보다 크고 적극적인 정부의 역할에 대한 주문도 포함되어 있다.

고도의 전문 지식이 없어도 경제문제를 얘기할 수 있다고는 해도 분명 복잡한 세계경제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렵다고 해서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장하준 교수가 강조한 것처럼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의 결정에 희생당하지 않으려면 자본주의가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하면 더 잘 돌아가게 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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