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림 - Travel Notes, 개정판
이병률 지음 / 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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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무언가 끌림이 있는 책이다. 오래 전부터 한번은 꼭 읽어보고 싶었었는데 다행스럽게 나와도 인연이 닿아준 것 같다. 이병률 시인의 첫 산문집 '끌림'은 그가 1994년부터 2005년까지 10여년의 세월동안 50여개국을 여행하며 느꼈던 감성의 기록이다. 시인이라 글만 잘 쓰는 줄 알았더니 사진 솜씨도 기대 이상이다.

해외 여행에 관한 글보다는 우리나라 곳곳을 여행하며 남긴 에세이들을 좋아한다. 그건 아마도 공감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이 책에는 또다른 이유의 '끌림'이 있다. 여행자의 발걸을을 따라 그의 눈동자를 빌려 내가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없는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느낌에 자연스레 끌리게 된다.

확실히 시인의 글은 뭔가 다르다. 시인의 산문은 시를 닮아 있다. 고등학교 시절 부모님 대신 참석했던 결혼식 축의금 봉투를 들고 결혼식장 대신 떠났던 일주일간의 여행이 그를 평생의 여행으로 이끌었고 평범하지 않은 시인의 길로 이끌었을 거라고 추측해 본다. 물론 그 여행이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테지만, 그것 또한 그의 운명이었을 거다.

홀로 여행을 할 때도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누군가 예전에 걸었던 길, 혹은 언젠가 누가 걷게 될 길을 걷고 있노라면 내 곁에 바로 그 사람이 함께 걷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맞닿을 것처럼 지척이거나 몇걸음 떨어져 있거나 상관 없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을 그도 보고 있을 것이며,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을 분명 그도 느끼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그를 시인이라고 불러야 할 지 사진작가라고 불러야 할 지 고민이 된다. 그가 다른 세상을 걸으며 카메라에 담았던 수많은 사진들이 책 속에 녹아들어 글의 느낌을 더욱 생생하게 전해주는 듯 하다. 이 사진들은 분명 아마츄어의 느낌은 아니다. 어떤 사진들은 장황한 글보다 더 강렬한 느낌을 전해준다.

이상한 일이다. 처음 책을 펴들었을 때부터 최갑수라는 이름이 퍼뜩 떠오르더니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지은이를 다시 확인해야 할 정도가 됐다. 이병률의 산문집 '끌림'에서 난 왜 최갑수가 떠올랐을까. 시인이라는 공통점, 골목에서 만나게 될 사랑을 그리워하고, 운명처럼 여행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두 사람은 사진으로 뽑아내는 감성마저 묘하게 닮아 있다.

위시 리스트에 이병률이라는 이름 석자를 추가했지만 그의 두번째 산문집은 기약이 없다. 최갑수가 여행 에세이를 통해 나의 기다림에 가끔 화답해 주고 있지만 이병률이라는 사람은 여전히 본업에 충실한 듯 하다. 부디 그의 재능을 혼자서만 즐기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끌림이 설렘이 되고, 결국엔 사랑이 되듯 그의 길에 우리도 함께 일 수 있도록. 


열정이란 말에는 한철 태양이 머물다 지나간 들판의 냄새가 있고,
이른 새벽 푸석푸석한 이마를 쓸어올리며 무언가를 끄적이는 청년의 눈빛이 스며있고.
언제인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타고 떠날 수 있는 보너스 항공권 한 장에 들어 있는 울렁거림이 있다.
......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  - '열정'이라는 말

사랑을 하면 마음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놔두면 돼요.
마음이 엉키면 그게 바로 사랑이죠.  - 어쩌면 탱고

뉴욕의 지난 가을은 어땠어요?
7억 8천 8백 91만 9백 서른아홉 개의 양말 같은 낙엽들이
모두 자기 짝을 찾고 있는 것처럼 뒹굴고 뒹굴었어요.  - 지난 가을의 낙엽들

사랑해라,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잃어온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사랑해라, 사랑하고 있을 때만 당신은 비로소 당신이며,
아름다운 유일한 한 사람이다.  - 사랑해라

내가 지금 걷는 이유는 내일과 다음 생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 지 모르기 때문이다.
올 것이 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내일과 다음 생 가운데

좋은 풍경 앞에서 한참 동안 머물다 가는 새가 있어.
그 새는 좋은 풍경을 가슴에 넣어두고 살다가 살다가
짝을 만나면 그 좋은 풍경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일생을 살다 살다 죽어가지.
아름답지만 조금은 슬픈 얘기.  - 좋은 풍경

내 삶도 저만큼만 높고
아름다웠으면 하고 생각했다.
나는 누구 인생의 무지가가 되면 안 될까?
그 누가 내 인생의 무지개가 되면 안 될까?
환상은 건드려서 이미 부서졌다지만,
희망은 건드리면 무지개가 되잖아. 저렇게.  - 2004년 11월 20일, 생일

세상으로부터 뭔가를 받을 것만 생각하지 않는
세상에게 뭔가를 줄 수도 있는 사람입니까.

누군가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어도 되는 겁니까.

그 한 사람을 생각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나는 세상에 뭔가
어떤 식으로든 보탬을 주고 있다고 믿어도 되는 겁니까.  - 나는 뭔가를, 세상에 가져오는 사람입니까

문득 행복하냐고 묻고 싶을 때가 있다.
많이 사랑했냐고 묻고 싶을 때도 있다.

내가 더 잘할게,
라고 말할 수 있는 사이.
그런 사이였음 좋겠다.

누군가,
한 사람의 심장에 남는,
사람이 되는 것.

우리는 서로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서로 맡아지지 않는 향기로 묶여 있다.

오늘이 지나가고 희망이 지나가고 사랑도 지나가면,
다른 날이 올까?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힘이 되는 한 사람을 가졌습니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은
누군가를 마중하는 길이다.

조금은 멀리 있어도 돼.
내가 조금 걸으면 되니까.

내가 걸어온 길이 아름다워 보일 때까지
난 돌아오지 않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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