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알 때까지 걸어가라 - 최갑수 여행에세이 1998~2012
최갑수 지음 / 상상출판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2012년 1월에 초판이 나온 따끈따끈한 최갑수의 신작을 드디어 만났다. 2009년의 어느날 마치 운명처럼 최갑수의 글과 사진을 만났던 것은 사실 우연이었다. 아직도 작은 스탠드에서 비치는 희미한 불빛 아래 책장을 넘기던 그날의 즐거운 떨림을 잊지 못하겠다. 그렇게 해서 나에게도 신간 출판 소식을 기다리는 작가가 한명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사랑을 알 때까지 걸어가라'는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여행의 기록이다. 첫 만남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스타일은 여전하다. 지금껏 그의 여행 에세이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읽어 왔지만 시간이 흘러도 '최갑수 스타일' 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그 익숙함이 편하기도 할 것이고, 한편 그런 이유로 지겨울 수도 있겠다. 


당장 읽어야 할 책들이 쌓여 있었지만 마냥 기다릴 수가 없었다. 책을 주문하고 도착하기 까지의 시간이 무척이나 더디게 지나갔지만 정작 이 책을 다 읽는데에는 두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일단 최갑수의 책은 손에 쥐면 잘 읽혀서 좋다. 물론 그보다 훨씬 사진을 잘 찍고, 글을 잘 쓰는 작가는 많겠지만 그는 분명 독특한 그만의 느낌과 맛깔스러움이 있다.

내게 있어서 그는 앞으로도 당분간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스물 여덟살 이후 여행자가 되어 인생의 대부분을 여행을 하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데 사용하고 있는 사람. 그렇게 인생의 대부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한없이 부럽고, 그것이 가능하게 만들어 준 그의 재능이 더욱 부럽다. 그 무엇보다 부러운 건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그의 책들을 한자리에 놓아 놓으면 마치 쌍둥이처럼 쏙 빼닮았다. 여행에 대한 시들지 않는 동경, 센티멘탈함, 그리고 나를 더 사랑하고 싶은 간절함처럼 일관된 흐름이 느껴진다. 어차피 그의 책은 한번 읽고 버려지거나, 책꽃이에 박제될 것이 아니니까 그저 글과 사진으로 느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여행이 그리워지면 나는 이 책 속으로 들어가 잠시나마 위안을 얻을 것이다.

2월은 훌쩍 떠나기 좋은 달이라며 친절하게도 당신을 위한 2월의 여행지 세곳을 소개해 주고 있다. 2월이 어디론가 훌쩍 떠나기 좋은 달인 줄은 모르겠지만 지하철을 타고 스니커즈에 MP3면 준비는 충분할 것 같다는 오산 물향기수목원, 인천 차이나타운과 월미도, 남양주 능내역은 불행히도 여기서 너무나 멀다.

굳이 작가가 소개해 준 세 곳의 여행지가 아니더라도, 2월이 어디론가 떠나기에 썩 좋지 않은 달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또 어느 순간 나를 짐을 챙겨 무작정 떠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바람처럼 부디 내가 나를 더 사랑할 수 있도록, 사랑을 알 때까지 걷고 또 걸어가봐야 할 것 같다. 요조의 노래처럼 뭔가 잔뜩 들어있는 배낭을 메고, 시들지 않는 장미꽃 한송이를 들고서.


좋아하는 감정,
사랑한다는 고백,
이런 건 절대로 아끼면 안 되지.   #002 정말로 아끼지 말아야 할 것

여행은.....
내가 나를......
꼬옥......
껴안는 일이라도 해두자.   #010 여행은......

우리가 사랑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랑하는 것이다.   #013 어쩔 수 없이 Imagine

당신은 아주 조용한 책
설원이 숨겨놓은 타이가 숲, 그 속에서 피우는 따스한 모닥불
당신은 나의 봄, 그 봄에 핀 꽃
내 삶에 대한 온화한 비평
당신은 내가 겪었던 행운의 궤적
내 인생의 모든 토요일 아침
당신은 새로 지은 시처럼 너무 좋아서
아무리 입에 넣고 중얼거려도 질리지가 않아
당신은 지금 여기, 동백이 앉았던 무늬들
혹은 내가 오늘 가져온 악기
나는 하루종일 당신을 안고 줄을 고른다네
당신은 나의 도피
때로는 절해고도, 알아들을 수 없는 시니피앙
당신은 나의 둘시네아, 스푸트니크, 비틀즈
당신은 나의 습관
나의 산책
내게 주어진 시간

그러니까 당신은......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장소.   #022 오래전부터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

이제야 사랑이 뭔지 알겠어.
......
떼를 쓰고 싶지는 않아
그냥 조금만 더 기다려 줄 수 있겠니?
내가 조금 더 세련될 수 있도록.
......
지금은 이 말 밖에는 할 수 없어. 그래도 널......사랑할 거야.
사랑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볼 거야.   #024 사랑에 관해 두서없는

그건.....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건......
네가 그 사물에 대한 애정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건......
사랑하게 됐다는 거지.
그러니 넌 이제 너만의 꽃사진, 너만의 나무 사진,
너만의 자동차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긴 거야.  #033 사랑하게 됐다는 거지

사랑은 때로 무분별해야
사랑은 때로 무작정이어야
그리고 사랑은
때로 무자비해야   #037 사랑은 때로

누군가 그랬었지. 우리가 슬펐던 만큼,
아팠던 만큼, 딱 그 만큼
용기를 가질 수 있다고.   #041 우리가 슬펐던, 딱 그 만큼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건
아는 사람의 미안함 때문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의 고마움 덕분인데.....
어쨋든, 미안해라는 말 자꾸 해서 미안해.   #047 미안해

'여행은 결국 혼자 남는 거고, 어쩌다보니 인생은 결국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것이고. 그렇지 않아?'
낙타 씨는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051 그러다 보니 여행은, 어쩌다 보니 인생은

뜨거운 사막에 하루만 있어봐.
선인장의 그림자가 생겼다가, 희미해졌다가, 마침내 사라지는 시간까지.
그럼 이렇게 말하게 된다구.
어이, 이봐. 꼭 그렇게 호들갑 떨어야겠어?
모두들 조용히 견디며 자신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구.  #110 견디며, 견디며, 견디며

너무 선명하지 않게, 조금은 모호하게.
너무 밝지 않게, 조금은 어둡게.
너무 시끄럽지 않게, 조금은 조용하게.
너무 다정하지 않게, 조금은 고독하게.

당신의 뺨에 물든 서쪽의 햇살처럼, 그렇게

우리, 9월의 지는 햇빛 속으로 천천히 걸어가듯.   #119 우린 때로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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