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마음을 놓다 - 다정하게 안아주는 심리치유에세이
이주은 지음 / 앨리스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다정하게 안아주는 심리치유 에세이라는 독특한 설명을 달고 나온 책이다. 백 마디 말보다 따뜻한 그림 한 점의 위로라는 문구로 이 책의 지은이가 지향하는 바를 쉽게 유추할 수 있겠다. 요즘은 마음이 아픈 사람이 참 많은 가 보다. 베스트셀러는 물론 쏟아지는 새 책들을 봐도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치유해 주는 글과 사진을 담은 책들이 많은 걸 보면.

'그림에, 마음을 놓다'라는 제목의 이 책은 그 심리치유 수단으로 그림을 내놓고 있다. 책의 구성은 흡사 몇해 전에 읽었던 최현주의 포토 에세이 - '두 장의 사진'과 많이 닮아 있다. Lost와 Found 라는 대비되는 포맷 속 명화들을 통해 사랑(사랑을 두드리다), 관계(타인에게 말걸기), 자아(잃어버린 나를 찾아서)라는 풀기 힘든 삶의 과제로 힘들어 하는 이에게 따뜻한 위로를 안겨 준다.

이 책의 지은이 이주은이라는 사람도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고 대기업에서 무난한 직장생활을 하던 그녀가 미술사를 공부하려고 결심했던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진다. 말 그대로 성공의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던 부러울 것 없는 삶 속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일까.

눈 깜짝할 사이에 흐른 시간 앞에서 진정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평소 이미지의 역사와 소통 방식에 매력을 느껴왔기 때문이었다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삶이 막막할 때면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치유의 길을 묻는다는 그녀 역시 그 무렵에 감기를 앓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녀의 말처럼 우리는 감정을, 고통을 표현하는 일에 서툴다. 눈물은 참아야 하고, 힘들어도 괜찮은 척 해야 하는 것이라 배워 왔다.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마음 속에 고이게 되면 결국은 썩게 된다. 몸에 깃든 병보다 더 고치기 힘든 마음이 병이 생기게 되는 법이다.

그림 한 점이 백 마디 말보다 따뜻한 위로가 되려면 그림 속에 녹아들어 있는 압축된 비유를 파악할 수 있는 좀더 세밀한 관찰력이 필요할 듯 하다. 그림은 예술이다. 예술가는 누구나 보기만 하면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그림 속에 여러가지 소재와 기법을 동원해 표현해 놓은 그의 감성을 잡아내려면 그만한 안목도 길러내야 한다.

아직은 그림만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고, 온전히 위로받기도 어렵다. 지은이가 친절하게 설명해 놓은 글들의 힘을 빌려야만 비로소 그림 속에 감춰져 있는 치유의 마법에 빠져들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또 모른 들 어떠랴. 정답이 무엇이든 그저 보이는대로 느끼는 것도 괜찮은 그림 감상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그림을 통해 그저 위로를 얻고 싶은 것일 뿐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마르크 샤갈의 '산책'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이다. 그림 속의 남자와 여자는 그저 행복해 보인다.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꼭 잡고 어딘가를 거니는 것 보다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그래서인지 붉은 빛이 옷을 입은 여인은 마치 무중력 상태의 자유를 느끼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 하다.

크리스토퍼 에커스베르의 '거울 앞에 선 여자 모델' 과 에두아르 마네의 '라튀유 씨의 레스토랑에서' 라는 작품은 사랑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 같다. 전자의 작품에서 그림 속 여자 모델은 참으로 아름다운 몸을 지니고 있다.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는 여인의 모습이 자기애를 상징한다면 후자의 그림 속 두 사람은 마치 세상이 멈춘 듯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자신의 상을 상대방의 눈에 입력하고 심어두는 것이 바로 사랑의 시작이라 한다.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이 아니라 상대를 바라보는 거울이 되는 것 말이다.

사랑에 전부를 거는 당신을 위해서는 사랑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얘기해 준다. 오귀스트 로댕의 '입맞춤'에서 우리는 자신의 전부를 사랑에 걸었고, 결국 그 때문에 무너져갔던 카미유 클로델의 모습을 바라본다. 사랑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누고 자신의 예술을 녹여버린 여인, 카미유 클로델이 리카르드 베리의 '북유럽의 여름 저녁'에 나오는 남녀처럼 사랑하는 사이도 가끔은 거리를 두고 서로를 낮설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또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조지 클라우센의 '들판의 작은 꽃'이라는 그림도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다. 마흔이라는 나이가 되어도 결코 자기 인생의 저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지 가늠할 수는 없다. 인생은 정답 없는 의문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을 겨우 이해하게 된 마흔의 인생들은 그래서 그림 속 소녀처럼 내가 들판에서 찾은 작은 꽃을 한번이라도 더 바라보고 그 모습을 기억해 두는 편이 훨씬 행복한 일임을 그림은 말없이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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