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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평점 :
포스팅을 남긴 지 한달이 훌쩍 흘렀다. 돌아보니 한달 남짓한 시간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보니 몸도 마음도 바빴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정신없음에 제대로 된 내 삶의 싸이클을 놓아버린 무책임함이 더욱 크다. 여유가 없을 정도로 바빴던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이 그저 핑계일 뿐이니 그저 심기일전해서 다시 일상의 궤도로 복귀하는 것이 급선무다.
원주라는 도시에 와서 처음으로 읽은 책이 <걷는 듯 천천히> 라는 에세이다. 1962년 도쿄 출생의 영화감독이자 TV 프로듀서인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사람이 썼다. 보통의 에세이란 것이 다 그렇겠지만 이 책 역시 작가 개인의 소소한 일상과 추억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져 있다.
책 속에 담겨진 글을 통해 지은이의 삶을 유추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단지 그 사람이 쓴 글만으로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마흔을 넘긴 사람의 얼굴에 그가 걸어온 삶의 흔적이 담겨있듯 중년을 넘긴 사람의 글에는 온전히 그이기에, 그만의 방식으로 표현해 내는 인생이 녹아 있기도 한 것이다.
그는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구질구질한 세계가 문득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그의 작품들을 단 한편도 보지 못했기에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글을 통해서 어렴풋하게나마 그의 영화와 TV 다큐멘터리가 지향하고 있는 어떤 포인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솔직히 책은 그저 그랬다. 처음은 괜찮았지만 뒤로 갈수록 흥미를 잃었다. 아마도 보는 눈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소소한 일상 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내가 알기 어려운 배우 이야기들, 영화 이야기들은 딴 세상 일처럼 멀게 느껴졌다.
멈춰 서서 발밑을 파내려가기 전의 조금 더 사소하고, 조금 더 부드러운 것. 물 밑바닥에 조용히 침전된 것을 작품이라 부른다면, 아직 그 이전의, 물속을 천천히 유영하는 흙 알갱이와 같은 것을 그는 에세이라 부른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에세이가 내 뇌리에서 자꾸만 흘러 내린 것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