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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게더 -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 현암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인간에게 협력이란 어떤 의미일까? 리처드 세넷은 우리가 실제로 일을 하는 데 필요한 하나의 기술로서 협력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한다. 인간이 다른 사람과 함께하려는 자세는 기본적으로 유전자에 깊이 각인된 것이지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익히지 않으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 역시 기술적인 측면과 맞닿는 점이라 하겠다. 주지하다시피 사회의 변화에 따른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은 협력이라는 자질을 쇠락하게 만들었고 개인주의를 더욱 부추겼다. 갈수록 너와 나의 간극이 커져만 가는 상황에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개인들을 한데 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이 책은 역사적으로 인간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빛을 발했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보기로 한다.

 

 

 

 

1532년, 영국의 헨리 8세는 아들을 두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왕비를 내쫓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고자 교황에게 결혼 무효 소송을 신청했다. 로마의 교황은 소송을 기각하였으나 이듬해 헨리 8세는 앤 불린이라는 여자와 비밀리에 결혼하고 부활절을 맞아 그 사실을 당당히 공개했다. 얼핏 국왕의 사생활에 그치는 문제인 것 같아도, 실은 정치적·종교적 정세가 매우 복잡하게 얽힌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사건을 기점으로 영국이 로마의 감독권을 폐지하는 법령을 공포하고 카톨릭 교회로부터 독립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군주제 국가들을 오가며 외교를 벌이던 프랑스의 댕트빌이 시끄러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으로 파견되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임무는 실패로 돌아갔다.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얼마나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세계를 휘몰아치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데, 그 유명한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the Younger, 1497~1543)의 「대사들」이 우리의 상상에 날개를 달아준다. 왼편에 있는 자가 장 드 댕트빌인데, 화려한 의상과 장신구가 명예와 영광을 드러내는 한편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부담감도 엿보인다. 왜상 화법으로 그려진 해골 또한 왠지 모르게 긴장을 자아낸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두 사람 사이에 있는 첨단 기구들이다. 탁자 위에 놓인 육분의, 태양관측기, 9면체, 수학책, 성가집, 류트 등은 당시의 과학 수준을 짐작케 한다. 자료를 뒤져보니 이 그림 하나만으로 그 시기에 일어난 일들에 관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외교관의 행동 원칙이 기사도 정신에서 예절로 바뀌었다는 데 집중한다. 홀바인의 탁자 위에 놓인 도구들은 과거의 길드식 작업장에서는 만들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발명품이었다. 기술의 혁신은 위계질서로 대변되는 권력을 뒤흔들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변화의 물결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태도가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대화적 소통'이다. 이 책에서는 '공감적 소통'과 비교해서 상대방을 향해 귀를 열어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거니와, 세넷은 그것이 가능하려면 예절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처음엔 어리둥절했으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낯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대화의 문을 열고 의미 있는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의례가 필요하다는 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저자가 말하는 '세속적 의례'는 '종교적 의례'와 달리 일상에서도 흔히 발견되며 협력을 수행하는 영역에서 근간이다.

 

세넷은 앞서 언급한 '대화적 소통'과 '세속적 의례' 등 몇 가지 소재를 다시 현재의 배경과 접목하여 기술학교나 사회복지관과 같은 곳에서 협력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살펴본다. 그는 우리가 서로 다르게 행동하면서도 관계의 가치를 느끼고 협력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가 꿈꾸는 것을 간단히 말하자면 공동체(共同體)가 아니라 공동체(共動體)다. 그러니까 하나가 '되기'보다 하나로 '움직이기'다. 마치 저마다 다르게 굴러가는 부품들이 서로 속도를 맞춰 한 가지 일을 해내는 기계처럼 인간의 협력 또한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 책이 말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협력이 좋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하나, 알고도 움츠러드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리트윗'과 '좋아요' 같은 일방적 공감만 넘쳐나는 시대에 왜 다시 대화가 필요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사회학적으로 의미의 우물을 기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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