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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위한 철학 - 세상에 단 하나뿐인
브랑코 미트로비치 지음, 이충호 옮김 / 컬처그라퍼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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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콘라트 피들러는 <시각 예술 작품의 판단에 관하여>(1876)라는 책에서 우리가 시각 예술 작품을 판단하는 미학적 감수성을 '취향'이라고 정의했다. 문학이든 그림이든 건축이든 이 취향이라는 것은 시각 예술뿐 아니라 그 어떤 예술을 대할 때도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기 마련인데, 이것은 대개 비예술적 속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역사적 관점, 철학적 관점, 윤리적 관점 등에 입각해서 작품의 호불호를 나누는 것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사실 내 입장에서 별로 탐탁지 않은 것이 나오면 미학적인 평가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는 "예술적 가치에 대한 관심은 그 작품의 지적 내용에 대한 관심이 멈추는 지점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예술가가 어떤 사상을 표현하고자더라도 예술적인 힘은 그 사상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만 그럴싸하고 그것을 표현한 작품 자체는 영 시덥잖은 경우를 숱하게 보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비예술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출 수 있을까? 미학에 관한 논의에서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된다.

 

여기에 언급되는 여러 철학자의 견해나 주장은 모두 이 문제에 가닿는다. 예술적 측면이 강조되던 시기와 비예술적 측면이 강조되던 시기에 따라, 비슷한 입장을 견지했더라도 무엇을 판단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예술에 접근하는 방법은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각적 상상, 칸트의 공간, 헤갈의 시대정신, 하이데거의 존재론, 데리다의 해체주의까지 세밀하게 파고드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이렇게 건축의 근원을 알기 위해서는 철학적인 문제와 부딪히게 된다. '건축은 곧 철학'이라는 말이 단지 비유적인 표현만은 아님을 깨닫는다. 솔직히 나로선 건축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어 이 책이 얼마나 건축과 철학을 밀접하게 연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의 육체)이 거주하는 건물을 짓는 행위가 인간(의 정신)이 거주하는 행위와 함께 생각되어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건축을 위한 철학'을 '인간을 위한 철학'으로 바꿔 불러도 좋을 성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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