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시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불안의 시대 - 생존을 위한 통찰과 해법
기디언 래치먼 지음, 안세민 옮김 / 아카이브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책의 표지에 실린 두 개의 문장은 오늘날 전세계가 직면한 문제를 서로 다르게 인식한 결과물처럼 느껴져 조금 이상하게 보인다. 세 개의 챕터로 나누어 지난 30년 간의 국제 정세를 살펴보는 저자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더니 그 두 문장은 더욱 상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누군가는 이기겠지만 세계는 지고 있다'는 데서 소수가 승리하고 다수가 패배하는 식의 일종의 민주주의 후유증을 읽어낼 수 있는데, 이는 그가 해결책으로 연결짓고 있는 제로섬 논리와 관련된다. 어느 한쪽의 이익이 다른 쪽의 손실을 의미하는 제로섬 세계를 극복하고 서로가 서로에 이익이 되는 윈윈 세계를 모색하자는 결론을 얻는 데 세계가 지고 있다는 원인을 서술한 것은 일리가 있지 않은가. 그러나 표지 전면에 있는 '우리가 낙관했던 모든 것들이 흔들리고 있다'는 어떤 의미일까? 그 낙관이라는 것은 저자가 지칭하고 있는 시기에 따르면 1991년부터 2008년까지 지구촌 국가들이 꿈꾼 장밋빛 미래에 해당한다. 그런데 그 장밋빛 미래는 어디까지나 미국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강대국의 전망이자 목표가 아니었는지 묻고 싶다. 그러니까 당시에도 특정 국가는 다가올 세계 경제를 낙관하지 않았고 이윽고 경제위기가 찾아올 것임을 예상하거나 추측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그들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런 식으로 모른 체한다.
그러나 세계 패권을 쥐고 있었던 미국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 시기가 낙관의 시대였고, 2008년 이후의 시간이 불안의 시대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 불안을 야기한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 저자가 이 책에서 하고 있는 것과 같이 지나간 시간에 놓인 역사적 사실을 정립하는 일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일인 것이다. 그러한 탓에 이 책은 철저하게 미국의 입장에서 서술되고 있는 이야기임을 인식하고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시대의 편의적 구분이 전세계 상황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생존을 위한 통찰과 해법이 우리의 입장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이 책을 비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들이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전환의 시대'와 '낙관의 시대'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이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서술되고 있다는 점과 세계 정치와 경제의 흐름을 흥미진진하게 들려주고 있는 점은 다소 어이없는 결말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다. 아마도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라면 그 누구라도 기디언 래치먼이 제시하는 불안의 시대를 극복하는 방안에 휘둘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하고 성공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미국의 모습이 안정과 번영을 약속하는 세계를 위한 최선의 희망'이라고 말한 것은 그저 정치가가 아닌 언론인의 어쩔 수 없는 한계쯤으로 치부해도 될 것이다. 어차피 이제 세계는 더 이상 그들의 분석과 판단에 놀아나지 않으니까.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1/0826/pimg_741169125692425.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