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노동자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6
클레르 갈루아 지음, 오명숙 옮김 / 열림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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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사랑이라는 질문 앞에서

오랜만에 소설에 깊이 빠져들었다. 요즘은 정보성 글이나 자기계발서에 익숙해져 있어서 소설에는 좀처럼 마음이 열리지 않았는데 이 책은 주인공의 삶에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가면서 이 이야기가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누군가의 찢기고 조각난 감정의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이름이라는 게 꼭 정체성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주인공은 분명 이름이 있지만 그 이름으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나 역시 그런 순간들이 떠올랐다. 사회 속에서도 인간관계 속에서도 어딘가 공기처럼 투명하게 존재했던 시간들을 이름 없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말을 건내는 것 같다.

주인공과 빅토르의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사랑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따뜻함 보다는 공허함이 더 크다. 감정이 마비된 상태에서도 애정을 흉내 내려는 몸짓이 안타깝고 슬프다. 함께 있어도 외로운 그 감정이 이 책에서 무겁고 또렷하게 다가왔다. 가장 깊은 여운을 남긴 것은 말하지 않는 슬픔이었다. 우리는 마치 모든 걸 말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건 말하지 않은 채 남겨둔다. 이 소설은 그 침묵 속에 숨어 있는 감정들을 들춰내며 슬픔은 보여지는 게 아니라 감춰질수록 더 진하게 남는다는 걸 보여준다. 크리스틴이 빅토르의 죽음을 앞두고 떠나는 짧은 여정은 다시는 닿을 수 없는 사랑을 향한 마지막 몸짓처럼 느껴졌다. 이 책은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익숙히 아는 방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 여정은 과거, 현재, 사랑, 상실이 겹쳐지는 것으로 가득했다. 크리스틴과 빅토르의 이야기는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없을 만큼 솔직하고 슬픈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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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이의 축복 코리아둘레길 : 입문편 - 민달팽이 리듬으로 걷다
이화규 지음, 이세원 사진 / 나무발전소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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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걷기로 만나는 한국

자동차나 기차가 아닌 두 발로 천천히 걸으며 공간을 경험하는 감각은 옛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여행법이 아닐까 싶다. 빠르게 이동하면서 SNS에 올릴 멋진 장면만 찾아다니는 것이 익숙한데 이 책은 그 익숙함에 조용한 반기를 든다. 이 책은 길 위에서 몸과 마음으로 한국을 다시 만나는 기록이다. 저자는 바다, 산, 들, 마을을 지나며 묵묵히 길을 걷는다. 저자의 걸음 속에 수많은 이야기가 묻어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걷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하는데서 끝나지 않고 그 길이 지나온 시간과 사람들의 흔적, 저자의 내면 풍경까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걷는다는 것의 의미와 성찰

나도 삶이 지칠 때마다 가끔 집 근처를 걷고는 한다. 그저 답답해서 아무 이유 없이 발길 닿는 곳으로 걸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이유 없이 걷기도 걷기의 본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목적 없이 걷는 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이다. 이 책을 읽고 걷기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깨달았다. 바쁘게 지나가는 삶 속에서 무언가를 의도적으로 천천히 한다는 것이 요즘 시대엔 큰 결단이자 용기라는 생각이 든다. <걷는 이의 축복 코리아둘레길>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걷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길이 지나온 시간과 사람들의 흔적, 저자의 내면 풍경까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길에 대한 저자의 애정어린 시선이다. 유명하지 않다고 특별한 관광지가 없다고 해서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이 책에서 알게 되었다.

둘레길 다 걸어보고 싶다

우리나라 땅의 둘레길이 다채롭고 아름다운 사실을 알게 되서 놀라웠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랐지만 정말 우리나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걸까? 책 속에 등장하는 둘레길은 낯선 이름이 많았지만 저자의 글을 읽으며 내가 마치 그 자리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멀리 있는 풍경을 동경하면서 정작 가까운 곳의 매력을 모른 채 지나치곤 한다. 해외여행만이 진짜 여행이라는 고정관념에 갇힐 이유가 없다. 나도 언젠가는 꼭 이 코리아 둘레길을 다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기를 통해 삶을 돌아보고 내가 서 있는 이 땅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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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성격을 숫자로 평가해보겠습니다
박재용 지음 / Mid(엠아이디)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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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알고 보니 유사과학?

나는 한동은 MBTI에 푹 빠져 있었다. 사람을 만나면 MBTI가 뭐냐고 묻고 대화의 절반은 성격 유형에 대한 분석으로 채워졌다. 심지어 어떤 사람을 신뢰 할지 말지, 일할 떄 어떤 스타일일지를 MBTI로 판단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MBTI가 실제로는 과학적 근거가 매우 약하며 성격을 고정된 틀로 나누는 것은 인간의 복잡성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억울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 말고도 사회 전체가 얼마나 많은 유사과학의 늪에 빠져 있는지를 알게 되면서 마치 내가 가짜 뉴스에 속은 기분이 들었다.

과학은 진실을 말해주는 냉정한 친구

이 책에서는 유사과학을 틀렸다고 지적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왜 그런 믿음이 생겼는지, 사람들은 비과학적인 이야기에 쉽게 빠져드는지 그 심리를 설명해준다. 식단, 다이어트, 해독주스, 맨발 걷기 등 건강에 관한 유사과학을 냉정하게 판별해준다. 책에서 나온 것 중 일부는 내가 돈 주고 해본 것들이었다. 사실 효과를 전혀 본 적이 없지만 돈을 쓰는 중에는 믿고 싶었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보다 내 감정에 더 잘 맞는지 따졌던 것이다.

비판적으로 생각하기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지만 동시에 정보의 쓰레기장이다. 근거도 없이 그럴듯하게 포장된 말들이 넘쳐난다. 아침 공복에 레몬물을 마시면 해독이 된다든지, 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다르다는 식의 이야기들은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그러나 그런 안정감은 허상일 뿐이다. 이 책은 과학이란 결국 사실과 오류를 가르는 잣대이며 삶의 방향을 바르게 잡는 나침반 같은 존재라는 것 상기시켜준다. 과학적 태도를 갖는것은 내 감정과 편견을 잠시 내려놓고 사실을 바라보는 용기다. 이 책은 잘못된 믿음을 걷어내도록 도와주고 무엇을 기준 삼아 생각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예전에는 자극적인 유튜브 영상이나 인스타그램을 그대로 믿고 공유했지만 지금은 출처와 맥락을 먼저 확인하려 한다. 평소 인터넷 글을 무조건 믿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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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수호지
시내암 지음, 이상인 엮음, 최정주 그림 / 평단(평단문화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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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이라 더 강렬한 영웅들

어릴 때부터 이름은 익숙하지만 방대한 분량 때문에 정작 완독해본 적은 없던 책이 수호지였다. 청소년을 위한 책이다 보니 요약본이라서 좀 더 쉽게 다가왔지만 이야기의 뼈대는 탄탄하게 느껴졌다. 양산박 영웅호걸 108명의 형성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수호지는 무용담 뿐만 아니라 억울함과 분노, 정의감과 연대의 서사임을 알게 된다. 각 인문들의 배경이나 선택의 이유가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수호지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는 이규다. 호탕하고 거침없는 성격의 이규는 술에 취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억울한 자를 도와주기도 한다. 그의 행동은 분명 법의 관점에서는 용납할 수 없지만 독자의 마음 한켠에는 묘한 동정심과 응원이 일어난다. 이런 감정은 이규뿐 아니라 송강, 노지심, 무송, 등 다른 인물들을 통해서도 느껴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되새기게 되었다. 때로는 법보다 사람의 도리가 먼저여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수호지는 고전이지만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윤리적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108명의 인생, 108개의 슬픔

수호지는 108명의 호걸들이 모여 양산박이라는 공동체를 이루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들이 양산박에 보이게 된 배경을 하나씩 따라가보면 대부분이 부당한 권력에 의해 삶을 빼앗긴 이들이다. 송강은 원래 지방 공무원 이었으나 살인 후 도망길에 오른다. 심지어 요리사나 도둑들도 저마다의 생존 이유가 있고 나름의 신념을 품고 살아간다. 수호지를 읽으며 놀랐던 것은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이 어떻게 한데 어우러질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양산박은 도망자들의 집합소가 아니라 공정한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유토피아다. 각기 다른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싸워나가는 모습은 지금 사회에서도 꼭 필요한 것 같다.

고전은 낡은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의리'다. 수호지의 인물들은 한 번 맺은 관계에 대해 무겁게 책임진다. 배신은 거의 없고 설령 개인적인 손해를 보더라도 친구나 의형제의 일이라면 목숨을 건다. 각자도생의 시대, SNS로 사람을 쉽게 언팔하고 이해보다는 단절이 익숙한 시대에 이런 끈끈한 인간관계라니 오히려 더 낮설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 그립고 더 배우고 싶어진다. 수호지의 인물들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을 드러내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친다. 자신의 욕망, 두려움, 오해와 싸우면서 조금씩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모습은 모두에게 필요한 지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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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말할 수 없는 이야기 - 코렛타 스콧 킹 대상 수상작 I LOVE 그림책
콰미 알렉산더 지음, 데어 코울터 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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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말할 수 없지만 꼭 말해야만 하는 이야기

제목부터 독자를 붙잡는 이 책은 무언가 말하려다가 끝내 삼키는 그러나 결국은 반드시 꺼내야만 하는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을 펼치기 전부터 마음이 무거워졌고 다 읽고 난 뒤에 가슴 깊은 곳에서 묵직한 울림이 올라왔다. 이 책은 흑인 노예들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어린이의 눈높이로 담아낸 그림책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자연스레 일제강점기 조선의 사람들을 떠올렸다. 이름도 빼앗기고 억눌린채 살았던 그 시절.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위안부로 전락한 수많은 여성들. 흑인 노예들이 겪은 고통은 멀고 낯선 이야기 같지만 우리의 역사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피부색은 다르지만 인간의 존엄이 무참이 짓밟힌 고통의 본질은 같았다. 그들의 모습에는 우리의 모습이 함께 담겨 있었다.

책의 삽화는 점토로 형상화한 인물 조각을 오븐에 굽고 목탄화로 감정을 더했다. 조각과 종이 그림이 합쳐져 내 감정을 휘어잡았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액자식 구성을 현실과 과거를 연결하면서 이 역사를 과거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아픈 기억은 무겁게 남아있어야 다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된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희망이다. 어둠 속에서도 진실을 말하는 용기,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 그 모든 것이 모였을 때 미래는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 책을 읽으며 한강 작가의 말도 떠올랐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잊어버리기엔 너무 아프고 외면하기엔 너무나 중요한 이야기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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