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부터 2013년까지 영란은행의 총재를 역임했던 Mervyn King은 학자 출신 중앙은행 총재로서 Bernanke와 함께 2008년 금융위기 와중에서 중앙은행 정책수단 혁신을 이끈 인물이다. 비록 영국은 경제적 위상에서 미국은 물론 유로지역 중국 일본에 비해 낮지만 국제사회에서의 지적인 leadership은 여전하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금융위기 이후 전직 관료들 예를 들어 Geithner나 Bernanke가 다루는 ``how I saved the world''가 아니라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과 처방에 관한 본인의 생각을 제시한다는 집필 동기를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저자는 Keynes가 대공황 이후 자본주의의 위기를 해결하는 대안 아이디어를 제시했던 것처럼 금융위기 이후 침체상황이 지속되고 정치 경제적으로 자본주의의 유용성에 대한 의심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할 아이디어를 제시하겠다는 의도를 명확히 한다. ``how I saved the world'' 대신에 ``I will save the world (capitalism)''인 셈이다.
책은 크게 구분한다면 저자 자신이 던지는 두개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첫 질문은 금융위기라는 명칭이 말하듯 ``금융''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기에 끊임없이 경제위기를 초래하고 있으며 그렇다면 처방은 무엇인가? 그리고 둘째 질문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 경기부진의 원인은 무엇이고 처방은 무엇인가?
첫 질문을 시작하며 King은 금융의 역사를 돌이켜보며 현대 금융을 연금술에 비유한다. 연금술이 납을 금으로 만드려 한 것처럼 현대 금융은 유동성이 낮는 위험자산인 대출과 채권을 유동성이 높고 안전한 부채인 예금으로 바꾼다. 이러한 현대 금융의 연금술은 평화로운 시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경제가 불안정해지면 위기로 치닫는 내생적 불안정성을 가지고 있다. 예금보호제도나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기능(LOLR)이 불안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이번 금융위기에서 드러났듯이 금융은 제도적 장치를 벗어나 확장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Too big to fail 또는 too complicated to fail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개별 기업인 금융회사가 서로 경쟁하는 환경에 놓일 때 Citi의 Chuck Prince가 언급한 것처럼 as long as the music is
playing, you’ve got to get up and dance.
사실 이러한 금융의 특성을 관찰한 대표적인 경제학자들은 오래전부터 Chicago Plan이라고 불리는 100% 준비금제도를 주장하였다. 이번 금융위기 직후 Financial Times의 Martin Wolf도 현재의 복잡한 은행업무를 단순화 하여 부분준비금 대신에 국공채 준비금을 100% 적립하는 예금은행과 위험자산에 자금을 투자하는 투자은행으로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 King은 중앙은행의 총재를 지낸 저자답게 과격한 주장 대신에 지금까지 이론과 경험을 종합한 현실적이고 혁신적이며 단순한 방안을 제안한다. 은행의 업무를 제한하지 않고 은행이 보유한 자산에 따라 미리 정해진 비율의 유동자산을 적립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위기시에 중앙은행은 미리 정해진 비율에 따라 hair-cut을 적용하여 자동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다.
King이 제안하는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은 과거 Bagehot 원리와 다르다. Walter Bagehot은 위기시 은행이 보유한 안전자산을 담보로 penalty rate으로 무제한 대출을 하는 것이었으나 King의 제안은 미리 정해진 hair-cut에 따라 자산에 관계없이 무제한 유동성을 공급한다. 자산을 구분하지 않고 위험도에 따라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의미에서 그는 전당포식(pawnbroker for all seasons; PFAS)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현대 금융이 과거의 안전성 추구에서 수익성 추구 전략으로 전환하며 자산이 크게 확대된 데 대응한 현실을 반영한 방안이다. 2008년 금융위기시 중앙은행들이 담보증권 대상을 확대하여 거의 모든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행했었다.
다음으로 둘째 질문에 대해서 King은 불확실한 경제환경에서 소비와 투자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기존의 경제학 이론을 검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신이 대학생활을 시작했던 1965년 캠브리지에서 Joan Robinson 등 Keynes의 사도들이 경제학에 수학을 도입하며 불확실성 대신에 확률계산 가능한 risk로 미래를 해석하는 지적분위기에 저항했던 것을 들려준다. 자본주의 경제란 확률을 계산할 수조차 없는 radical uncertainty 환경에서 경제주체간 coordination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경제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체제이다. 경제학이 상정하는 의사결정인 auction은 미래에 어떤 상품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상황에 비추어 볼 때 헛소리일 뿐이다.
King은 우리의 의사결정은 dynamic equation의 해를 푸는 optimization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최적의 대응을 모색하는 coping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라는 분산의사결정 시스템에서 경제주체는 경제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자그마한 외부충격에 대응하여 미조정하며 대응한다. 경제학이 상정하는 optimization은 log linearization이 의미하듯이 미세한 충격에 대응한 최적반응이라는 점에서 coping을 닮았다. 중앙은행이 경기부진에 대응하여 이자율을 낮추면 경제주체는 미래의 소득을 포기하고 현재의 소비를 늘리는 Euler equation의 해를 추구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큰 충격이 발생하면 경제주체간 공유하는 경제상황에 대한 전망 또는 이야기가 부재하게 된다. coordination이 없는 상황에서 개별 경제주체는 보수적으로 소비와 투자를 축소하며 경제 전체 수준에서는 경기침체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는 다시 경제주체의 소비와 투자를 축소하는 악순환으로 되풀이 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vicious circle 또는 저축의 역설은 바로 coordination이 부재한 상황에서 공유되는 경제전망 스토리 없이 축소를 향해 나아가는 경제상황을 의미한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는 이전 Great Moderation 스토리가 붕괴하고 새로운 스토리가 모색되고 있는 시대이다.
금융위기 이후 소비와 투자가 부진한 상황이 지속되는 이유는 장기 소득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래소비를 현재소비로 이전하는 중앙은행의 확장적 통화정책은 유효성이 클 수 없다. 오히려 낮은 금리는 미래 이자수입을 줄이고 미래 소비의 현재로의 이전은 미래 수요에 대한 불확실성만을 크게 한다. 그래서 King은 요즘의 중앙은행 이자율은 단기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너무 높은 반면 장기 저축과 소비의 균형을 맞추기에는 너무 낮은 policy paradox에 빠져 있다고 평가한다.
현재의 장기부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경제주체들이 장기 성장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Keynesian이 주장하듯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이 아니라 경제의 생산력이 높아질 수 있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또한 교역을 통해 상대국의 수요를 뺏어오는 인근궁핍화 환율정책을 탈피하고 글로벌 imbalance를 해소하기 위해 환율이 탄력적으로 조정될 필요가 있다.
그의 모든 주장과 제안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특히 최근 경제학의 핵심 주제인 소득불균형이 수요에 미친 영향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세계사 흐름에서 경제상황을 파악하고 최신 경제이론의 한계를 지적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거장의 지혜가 놀랍다. 이런 중앙은행 총재가 있기에 이름만 남아 있는 제국이 아니라 여전한 세계의 리더로서 영국이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