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으려는 충동은 타인이 아닌 오직 배고픈 사람과 관련된 개인적인 문제다.이에 반해 성 충동은 그것이 진정으로 표현되려면 또 다른 개인을 필요로 한다.모든 문제는 바로 이러한 `다른 개인`때문에 야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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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의 얼굴
자크 오몽 지음, 김호영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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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미, 용기, 혹은 쾌락에의 욕망 등이 보여져야 하며 이것들은 다른 보조물로 대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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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노트를 훔치다 - 영화감독 21인의 비밀 수업
로랑 티라르 지음, 조동섭 옮김 / 나비장책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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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퀀스는 책의 장에 비유할 수 있는데 뚜렷한 시작, 중간, 결말을 갖고 완전히 독립적인 기능을 하며 보통 극적 절정의 유형으로 마무리된다.
설정 숏establishing shot 시퀀스 도입부에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에 대한 기본적 인식을 제공하는 숏.
4.컬러로 찍어야 하며, 극적인 조명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사물이 제대로 보일 정도의 조명만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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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시간
김소영 외 지음 / 이음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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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한국 영화사 책도 읽고.
최동훈 연출부도 몇 번 떨어졌구요.
봉준호 저도 두 세번 떨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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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하사관 전역 후 3년 동안 시나리오를 공부하기 시작해 95년 영진공 시나리오 공모에서 대상을 받으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내 정신력은 트럭이 밟고 지나간 공간에 나 있던 풀 한 포기일 뿐이다. 그만큼 나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뿌리는 손상을 입지 않았다.나는 다시 싹을 틔울 것이다.나는 사실 열등감 하나로 여기까지 온 사람이다.
그 무서운 추진력의 전체가 뭐냐고? 그건 내 자신을 믿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걸 차분하게 준비하고 제작자나 투자자에게 보여줄 뿐이다.
다시 말하건데 김기덕의 에너지는 별거 없다. 시나리오를 쓰고 미리 헌팅하고 제작자 만나서 내 얘기에 도취되어 흥분해서 얘기하면 끝난다.내 얘기를 따분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게 중에는 흥미로워 하는 사람이 한 명쯤 있기 마련이다.
석달의 시간이 있었기에 프랑스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토대로 시나리오를 한 편 쓰기 시작했다.
결국 완성해 영진공에 제출했지만 떨어지고 작은 우편물이 왔다. 계속 정진하라는......
하여튼 기초반 6개월동안 세 편의 장편 시나리오를 교육원 창작상에 출품했다.우리 반에서 시나리오를 출품한 사람은 나의 세편을 포함해 다섯 편이었다. 수료식 때 발표를 두근거리며 기다렸지만 모두 탈락했다.나는 좌절감에 화장실로 가서 기초반 수료증을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그리고 다시 전문반 6개월에 등록했다.그리고 또 세편의 다른 시나리오를 써 창작상에 출품했다.수료식날 나는 당당히 대상을 수상했다
결국 다시 연구반에 등록해 수상 덕분에 장학생으로 계속 공부를 했다. 그러면서 계속 시나리오를 주당에 한 편씩 썼다.정말이지 동료들은 나를 독종 또는 섬뜩한 놈이라고 불렀다.
시나리오는 배우면 배울수록 더 어려웠다.
나의 어리석음을 자꾸 발견하며 자만을 하나씩 버려 가는 것도 중요했다.
그러나 2년 내내 단 한푼도 수입이 없었다.
고정된 일을 하며 시나리오를 쓴다는 건 정말 힘들었다.어느날 나는 과감하게 붓을 꺾었다.그리고 시나리오로 승부를 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두번의 시나리오가 예선 탈락을 겪고 93년말 세번째 공모에 나의 `검은 해병`이란 시나리오가 34강에 진입했다.
그리고 다시 94년 초 "배"라는 시나리오가 24강에 진입했다.
94년 말 나의 "이중노출"이란 시나리오가 8강에 진입, 본선에 올라갔다.
그리고 드디어 95년 전반기 "무단횡단"이라는 내 시나리오가 영진공 시나리오 공모에 천오백만 원 상금의 대상을 차지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심사를 했던 박철수 감독님이 옆방에 놀러갔다가 예선 탈락한 시나리오 중 한편을 주워 장난으로 읽어보다 관심이 있어 자기 심사 시나리오에 첨부해 본선에 올렸고 다시 심사결과 대상을 수상했다는 것이었다.
프랑스에 유학중이던 <인터뷰>의 변혁 감독과 미국에 유학중이던 <질주>의 이상인 감독이 연출자로 작업에 임하다가 영화사의 부실로 결국 영화화가 무산되었다.
<악어>의 시나리오를 완성한 나는 제작자를 찾았으나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그때만 해도 시나리오 줄거리를 함부로 흘리면 금방 비슷하게 각색이 되어 누군가 찍어 분쟁이 생겼기때문에 또 나 역시 그렇게 당한 적이 있어 조심해 접촉했지만 수중 촬영 등의 문제와 낯선 소재에 대한 거부감에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 프로듀서는 다시 만나서 약 1억원의 제작비로 영화를 만드는데 시나리오를 보자고 했고 나는 순간 감독을 시켜주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조사받듯 촬영감독의 테스트를 받았는데 그림을 그렸다는 이력에 촬영감독은 같이 하자고 결정을 했다. 그렇게 시나리오 미술감독료를 한해 오백만 원의 작업비를 받는 날 나는 가슴이 설레였다.
한번도 연출부 경력이나 영화현장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모든 게 낯설고 신기했다.
돈이 없어 3개월을 하루에 천원씩 쓰던 시절을 벗어나는 순간이었지만 그 어렵던 지중해 바닷가 3개월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그래서 정말 일부만 보기에 아까운 영화의 경우 입소문이 퍼질 것이고 그럼 바로 6밀리 디지털 테이프를 키네코 화면으로 전환해 대형 극장에서 즐길 수 있는 방법도 있다.
그때 쓴 것이 sbs 6부적 드라마 극본이었다. 마치 내가 살아온 삶을 파노라마처럼 썼던 600매짜리 극본.
결국 오기로 극본은 완성되어 방송사에 보냈지만 당연히 낙선이 되었다.
그렇게 습작 시나리오를 10여편 정도 썼을 때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에 "무단횡단"이 대상을 타게 되었다.그때가 95년 7월이었고 시나리오를 쓴 지 2년정도 때의 일이었다.
첫 시나리오는 굉장히 쉽게 썼어요. 한 일주일에 썼을 거에요.
그 다음에 시나리오를 썼는데 처음에 저는 대사를 굉장히 유치하게 써요. 말도 안되게 유치하게. 누가 저한테 그러더라구요. 시나리오 쓸 때는 문어체가 아니라 구어체로 써야 한다구.처음에 제가 쓰는 건 문어체에요.그래서 사람들이 제 시나리오 초고를 보면 "야 이건 꼭 교과서 같다`그래요. 그걸 청소하고 나오는 게 보통 20고에요.대부분 스무 번을 넘게 다시 고치지요.처음 재료는 아주 투박한 걸 만들지만 그걸 고쳐나가면서 핵심은 버리지 않는거죠.
보통 내 시나리오는 평균 130신 정도인데 진짜 찍는 건 105신 정도에요.
이승재
LJ필름 대표.
<인터뷰>의 프로듀서를 했고 <파란 대문>위 프로듀서로 김기덕 감독과 첫 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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