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 파리를 먹었구만? 파리를 먹었지?"
"예?"
"내 아들이 총각하고 똑같았어."
"미쳤어요?" - P564

"그래. 이러더라. 파리를 먹었다, 파리를 먹었다고."
노파의 말에 의하면, 일만 마리 중에 한 마리 비율로인간의 얼굴을 한 파리가 있는데, 입을 벌린 채 자고 있으면 인간의 얼굴을 한 그 파리가 인간의 성대 냄새를맡고 입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경우가 있다. 성대는 인간의 여러 기관 중에서 가장 달콤한 맛이 나는 곳이라고 한다. 그 파리를 먹어버리면 인간은 미친다. 머릿속에서 파리가 윙윙 날아다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파리가 말하는 대로 움직이게 되고 만다. 어떻게 하면 나을수 있어요? 하시는 물었다.
"낫지 않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사이좋게 지내야지."
"파리하고?"
"그럼. 파리하고 사이좋게 지내려면, 자주 이야기를나누면서 사이좋게 지내면 돼."
노파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 P5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시 읽다 보니 하루키가 자본주의에 꽤 예민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빵가게를 재습격한 이유도, 소설에 매매춘이라는 소재가 간간이 등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지 싶다. 거미줄 같은 자본이 모든 것을 촘촘히 포위하고 있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1969년까지만 해도 세계는 단순했다. 전투 경찰 대원에게 돌을 던지는 정도의 일만으로도, 경우에 따라서는 누구나 자기 의사 표명을 할 수 있었다. 나름대로 좋은 시절이었다. 하지만 세속화된 철학의 바탕 아래 도대체 누가 경관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도대체 누가 자진해서 최루가스를 뒤집어쓰려고 하겠는가? 그것이 현실인 것이다. 구석구석에 그물이 쳐져 있다. 그물 바깥에는 또 다른 그물이 있다. 어디로도 갈 수가 없다. 돌을 던지면 그것은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온다. 정말 그런 것이다.”

                                                           -<댄스 댄스 댄스> 중-


언젠가 강신주 강의 중에 한 청중이 자신은 호텔에 들어가면 퇴실할 때 이불이며 모든 것을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걸 정리해야 하는 사람의 수고가 눈에 밟히는 것이다. 그러자 강신주는 호텔에 들어갔을 때 이미 우리는 자본주의의 구조 안에 들어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런 고민을 하지 않으려면 애시당초 호텔에 들어가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호텔에 들어가지 않는 수고를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자본주의가 부조리한 시스템이라면-쉽게 말해 돈이면 다 되는 상황이라면- 그리고 내가 벗어날 수 없는 부조리한 시스템의 일부이고 나의 행동이 시스템의 부조리를 증가시킬 수 밖에 없도록 세팅되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라카미 류가 <코인로커 베이비스>에서 묘사한 것처럼 사람을 미치게 하는, 몸 안에 들어온 파리를 쫓아낼 수는 없고 유일한 해결책은 그냥 같이 사이좋게 사는 것 뿐인 상황.


노파의 말에 의하면, 일만 마리 중에 한 마리 비율로 인간의 얼굴을 한 파리가 있는데, 입을 벌린 채 자고 있으면 인간의 얼굴을 한 그 파리가 인간의 성대 냄새를맡고 입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경우가 있다. 성대는 인간의 여러 기관 중에서 가장 달콤한 맛이 나는 곳이라고 한다. 그 파리를 먹어버리면 인간은 미친다. 머릿속에서 파리가 윙윙 날아다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파리가 말하는 대로 움직이게 되고 만다.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어요? 하시는 물었다.
"낫지 않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사이좋게 지내야지."
"파리하고?"
"그럼. 파리하고 사이좋게 지내려면, 자주 이야기를나누면서 사이좋게 지내면 돼."
노파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무라카미 류,<코인로커 베이비스> 중 -




 그것이 고도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이다. 마음에 들건 안 들건 간에, 우리는 그러한 사회에 살고 있다.”                                                                                                                                                -<댄스 댄스 댄스> 중- 



주인공은 그런 고도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적 제설작업을 한다. 그가 토로하는 감정은 무의미함과 무력함이다.


 

눈이 내리면 나는 그것을 효율적으로 길가로 치웠다.

한 조각의 야심도 없었고, 한 조각의 희망도 없었다. 오는 일거리를 닥치는 대로 거침없이 체계적으로 처리해 나갈 따름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건 인생의 낭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종이와 잉크가 이만큼 낭비되고 있으니, 내 인생이 낭비되었다 해도 군소리할 것은 아니지 않느냐, 하는 것이 내가 도달한 결론이었다. 우리는 고도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선 낭비가 최대의 미덕이다. 정치가는 그것을 내수의 세련화라고 부른다. 나는 그것을 무의미한 낭비라고 부른다. 사고방식의 차이다. 하지만 비록 사고방식의 차이가 있다 해도, 어쨌든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인 것이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방글라데시나 수단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나는 방글라데시에도 수단에도 별다른 흥미를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묵묵히 일을 계속했다.”

 

하루키는 아마 80년대 자본주의 일본사회의 키워드를 이미지와 환상으로 보는 것 같다. 친구인 고탄다의 직업은 배우이고, 롤렉스와 마세라티, 일본항공의 퍼스트클래스로만 자신을 표현할 수 밖에 없고, 그건 실제 고탄다와 아무 상관이 없다. 유명배우인 그는 대부분의 것들을 살 수 있지만 정말로 원하는 것은 살 수 없다. 얼마든지 여자와 잘 수 있지만 정작 사랑하는 자신의 아내와는 잘 수 없다. 고탄다는 어디에 의미가 있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의미가 대체 어디에 있어?”라고 말한다. (재밌게도 <코인로커 베이비스>의 주인공 하시도 나중에 록스타가 된다.) 주인공과는 캠핑 온 동창회같은 환상을 품을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콜걸 메이는 이미지의 허망함에 대한 은유 아닐까?

 

"춤을 추는 거야"라고 양 사나이는 말했다. "음악이 울리는 동안은 어쨌든 계속 춤을 추는 거야. 내가 하는 말 알아듣겠어? 춤을 추는 거야. 계속 춤을 추는 거야. 왜 춤추느냐 하는 건 생각해선 안 돼. 의미 같은 건 생각해선 안 돼. 의미 같은 건 애당초 없는 거야.

그런 걸 생각하기 시작하면 발이 멈춰버려. 한 번 발이 멈추면 이미 나로선 어떻게도 도와주지 못하게 되고 말아. 그러면 자네의 연결고리는 모두가 없어지고 말아. 영원히 없어지고 마는 거야. 그렇게 되면 당신은 이쪽 세계에서밖엔 살아가지 못하게 되고 말아. 자꾸자꾸 이쪽 세계로 끌려들고 마는 거야. 그러니까 발을 멈추면 안 돼. 아무리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그런 데 신경 쓰면 안 돼, 제대로 스텝을 밟아 계속 춤을 추어대란 말이야. 그리고 굳어버린 것을 조금씩이라도 좋으니 풀어나가는 거야. 아직 늦지 않은 것도 있을 테니까. 쓸 수 있는 것은 전부 쓰는 거지. 최선을 다하는 거야.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어. 당신은 분명히 지쳐 있어. 지쳐서 겁을 먹고 있어. 누구에게나 그런 때가 있어. 무엇이고 모두 잘못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그래서 발이 멈춰버리거든.“

 

의미같은 건 애당초 없는 거야, 라는 양사내의 말은 난분분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나는 의미란 단어 앞에 (기존의) 이라는 단어가 생략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왜냐면 의미 그 자체가 없는 스텝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스텝에 의미가 없다면 그건 춤이 아니라 흐느적거림이다. 이 대목에서 고병권의 <다이너마이트 니체>에 나오는 문장을 떠올린다.

 

더 강하게, 더 악하게, 더 깊게, 하지만 더 아름답게!”.

 

기존의 시스템에 이미 포획되어 있다면, 기존의 시스템에 벗어나 살아나가려는 발버둥이 오히려 올가미를 더 강하게 죄인다면, 기존의 의미에 충실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스텝으로 전혀 다른 감수성, 전혀 다른 의미를 변용해 내야 하지 않을까. 양사내의 말처럼 중요한 건 (기득권의 가치관일 가능성이 많은) 기존의 의미 대신 자신만의 스텝과 리듬을 밟는 것이다. 하루키는 (약간 뻔하긴 하지만) 해결책은 결국 사랑이고 연결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소설 중에는 유키 일가나 메이, 고탄다 같은 연결점이 등장하지만 이들에게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친밀함이 결여되어 있다. 유키 일가는 공중분해되어 있고, 메이는 친밀함의 환상을 쫓는 매춘부다. 고탄다는 자기를 둘러싼 연예산업에 눌려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한다. 이들과의 관계를 전부 겪은 주인공은 출발점으로 돌아와 유미요시와 연결되는 것으로 자신의 현실에 안착하게 된다.(예전에 마루야마 겐지가 하루키를 나르시스트라고 말한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하루키의 소설에서는 주인공에게 항상 호감을 가진 여성이 등장하고 주인공이 절차만 밟으면 여지없이 관계가 이루어진다.)


 

하루키 소설에는 일상으로부터의 단절과 고독한 비일상의 장소(무의식의 은유같다)로의 회귀라는 코드가 숨어있는 것 같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방학 중 해변으로 온 대학생 이야기이고 <양을 쫓는 모험>에서 주인공은 홋카이도 오지로 떠나서 혼자 자신을 마주해야 한다. <태엽감는 새>에서는 아예 주인공이 우물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도 아내와 이혼한 후 친구의 별장으로 기어든다. <댄스 댄스 댄스>에서 배경은 도쿄지만 주인공은 일하지 않고 빈둥빈둥 지내며 비일상을 즐긴다. 때문에 휴지기와 인생리셋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탈출욕망에 사로잡힌 독자는 이 소설에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가끔씩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이렇게 지내고 싶지 않은가?

 

나는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지만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알고 있었다.

아무튼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어떤 일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다. 막다른 길에 다다를 때에는, 당황하여 움직일 필요 없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난다. 무슨 일이 다가온다. 가만히 응시하면서, 어스름 속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경험을 통해 이를 배웠다. 그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움직인다. 만일 필요하다면 그것은 반드시 움직인다.

좋아, 천천히 기다리자

 

일전에 장정일이 독서일기에서 <코인로커 베이비스>를 무라카미 류가 일본 자본주의에 대한 필사적인 항전을 한 작품이라고 쓴 걸 본 적이 있는데,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지만 얼핏 납득은 되지 않았다.( 단지 도시를 폐허로 만들어라라는 기쿠의 다짐에 열광했을 뿐이다. 어찌나 그 대목에 꽂혔던지 중급회계 책등에 그 문장을 써 놓기까지 했다.) 하지만, <댄스 댄스 댄스>를 읽다 보니 류 역시 당시 일본 자본주의를 묘사하려고 했던 게 아니었는지, 앞뒤가 꽉 맞아들어간 일본사회를 다추라로 균열 내고 싶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뭐 능력이 된다면 두 작품을 고도성장기의 일본 자본주의를 묘사한 작품이라는 관점에서 비교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ps 1.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출간되었을 때 일본의 고도성장기가 끝났기 때문에 그걸 배경으로 한 하루키문학은 한계다,라는 식의 평을 본 적이 있는데, 그런 비평은 수십년 전 <언더그라운드>가 나왔을 때부터 있었다. 뭐 일본고도성장기가 끝나도 부자들이 끝난 건 아니지.

 

2. 20여년 만에 다시 읽어보니 콜걸 메이가 살해당하는 사건을 수사하는 문학의 캐릭터가 의외로 강렬하다. 마치 필립 말로가 결혼하고 가족을 부양하느라 배나온 아저씨가 된 느낌이다. 스트레이트한 후줄근함이 캐릭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거기다 하드보일드하면서도 인간적인 사명감과 감수성, 휴일에 우연히 만난 사건 관계자에게 정보수집을 하는 열의까지. 하루키와 친분이 있다면 '문학'을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를 써보라고 권해보고 싶다.


3. 잠깐 검색을 해보니 개정판 번역 때문에 왈가왈부하는데  읽어 보니 인터넷에 나오는 얘기가 대체로 맞는 것 같다. 어째 요즘 태엽감는새 부터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양을 쫓는 모험 등등이 새로 나오는데 다른 작품도 이런 식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지만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알고 있었다.
아무튼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어떤 일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다. 막다른 길에 다다를 때에는, 당황하여 움직일 필요 없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난다. 무슨 일이 다가온다. 가만히 응시하면서, 어스름 속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기를 기다리고있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경험을 통해 이를 배웠다. 그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움직인다. 만일 필요하다면 그것은 반드시 움직인다.
좋아, 천천히 기다리자. - P185

"춤을 추는 거야"라고 양 사나이는 말했다. "음악이 울리는 동안은 어쨌든 계속 춤을 추는 거야. 내가 하는 말 알아듣겠어? 춤을 추는거야. 계속 춤을 추는 거야. 왜 춤추느냐 하는 건 생각해선 안돼 의미 같은 건 생각해선 안 돼. 의미 같은 건 애당초 없는 거야.
그런 걸 생각하기 시작하면 발이 멈춰버려. 한 번 발이 멈추면 이미나로선 어떻게도 도와주지 못하게 되고 말아. 그러면 자네의 연결고리는 모두가 없어지고 말아. 영원히 없어지고 마는 거야. 그렇게되면 당신은 이쪽 세계에서밖엔 살아가지 못하게 되고 말아. 자꾸자꾸 이쪽 세계로 끌려들고 마는 거야. 그러니까 발을 멈추면 안돼. 아무리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그런 데 신경 쓰면 안돼, 제대로 스텝을 밟아 계속 춤을 추어대란 말이야. 그리고 굳어버린 것을 조금씩이라도 좋으니 풀어나가는 거야. 아직 늦지 않은 것도 있을 테니까. 쓸 수 있는 것은 전부 쓰는 거지. 최선을 다하는 거야.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어. 당신은 분명히 지쳐 있어. 지쳐서겁을 먹고 있어. 누구에게나 그런 때가 있어. 무엇이고 모두 잘못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그래서 발이 멈춰버리거든." - P167

1969년까지만 해도 세계는 단순했다. 전투 경찰 대원에게 돌을 던지는 정도의 일만으로도, 경우에 따라서는 누구나 자기 의사 표명을 할 수 있었다. 나름대로 좋은시절이었다. 하지만 세속화된 철학의 바탕 아래 도대체 누가 경관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도대체 누가 자진해서 최루가스를 뒤집어쓰려고 하겠는가? 그것이 현실인 것이다. 구석구석에 그물이쳐져 있다. 그물 바깥에는 또 다른 그물이 있다. 어디로도 갈 수가없다. 돌을 던지면 그것은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온다. 정말 그런 것이다.
- P117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나 자신에 관해 이야기했다. 긴 시간을 들여, 얼음을 녹이듯 천천히, 하나하나. 내가 어찌어찌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어디에도 갈 수 없다는 것.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채나이를 먹고 있다는 것. 누구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것. 그러한 마음의 떨림을 상실해 버렸다는 것. 무엇을 찾아야 좋을지 알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는 것. 나 자신이 관련되어 있는 사물에 대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 등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거야, 라고 나는 말했다. 그러고서 내 몸이 자꾸자꾸 굳어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몸의 중심으로부터 조금씩 조금씩 육체 조직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두렵다. 내가 그럭저럭 연결되있다고 느끼는 건 이 장소뿐이다. 하고 나는 말했다.  - P160

 달리 아무 할 일도 생각나지 않기에 다시 잠시 동안 밖을 걸어보기로 했다. 잘만 하면 무슨 일엔가부닥칠지도 모른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안 하기보다는 움직이는 편이 낫다. 무엇이라도 시도해 보는 편이 낫다. 포스가 나와 함께하기를. - P190

춤을 추는 거야. 음악이 계속되는 한. - P168

눈이 내리면 나는 그것을 효율적으로 길가로 치웠다.
한 조각의 야심도 없었고, 한 조각의 희망도 없었다. 오는 일거리를 닥치는 대로 거침없이 체계적으로 처리해 나갈 따름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건 인생의 낭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종이와 잉크가 이만큼 낭비되고 있으니, 내 인생이 낭비되었다 해도 군소리할 것은 아니지 않느냐, 하는 것이 내가 도달한 결론이었다. 우리는 고도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선 낭비가 최대의 미덕이다. 정치가는 그것을 내수의 세련화라고 부른다. 나는 그것을 무의미한 낭비라고 부른다. 사고방식의 차이다. 하지만 비록 사고방식의 차이가 있다 해도, 어쨌든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인 것이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방글라데시나 수단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나는 방글라데시에도 수단에도 별다른 흥미를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묵묵히 일을 계속했다.
- P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욕 - 바른 욕망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루키의 ‘드라이브 마이 카‘에 나오는 문장˝칙칙하네요˝ . 결론을 궁금하게 하는 건 인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널목의 유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의 설정 중에 LAB음이라고 해서 유령이 나타날 때 일정한 소리가 난다는 설정이 있다. 소설에서는 생목 부러지는 소리로 나온다. 저녁에 소설을 끝까지 읽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불을 끄고 여느 때처럼 명상을 하고 자려고 방석 위에 앉았다. 얼마쯤 지났을 무렵, 방 한 쪽 구석에서 무엇인가 뒤틀리는 소리가 났다. 보통 생활하다 보면 오래된 가구나 벽에서 소리가 날 때가 있다. 재질이 수축하거나 팽창하는 과정에서 소리가 난다고 과학 상식에서 읽은 적이 있다. 무심히 넘길 수 있는 소리인데, 그날은 달랐다. 더구나 몸의 감각을 있는대로 세운 명상 중이다. 곧바로 내면에서 뭔가 검고 미끄덩한 것이 올라오는가 싶더니 피부에서 열기와 한기가 나기 시작했다. 열기가 식으면서 나는 한기다. 혹시나 감은 눈 앞에서 무언가 나타나지 않을까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눈을 뜨는 것도 두려웠다. 한 시간을 채워서 명상해야 하는데 이미 내 몸 안 쪽의 깊은 곳은 흔들리고 있었다. 결국 이불을 방탄막처럼 뒤집어 쓰고, 코코몽 인형을 안았다. 20대에 <2> 보고 잠 설친 이후로 다시 이런 경험을 다시 하게 될 줄이야. ‘사회파 심령소설이다. 예전에 아무 사전정보 없이 집어들었다 빠져들었던 <>을 읽고 났을 때의 느낌이다. <>보다는 약간 약하다. 75%에서 80% 정도 되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