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방관의 기도
오영환 지음 / 쌤앤파커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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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방관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떨어지는 출동 지령,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통에 울부짖는 사람들, 흩어지는 생명들 가운데 구해낼 수 있었 던 그 작고 어린아이. 소방관이 아니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순간들을 나는 매일같이 경험하고 있다.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참혹한 현실 속에서 또 한 기적과도 같은 희망을 발견해내기에 삶의 아름다움을 누구 보다 절실하게 실감하는 일이다. 오직 타인의 손을 잡아주기 위 한 일을 사명으로 삼는 삶. 그리고 소방관들은, 수많은 현장의 크고 작은 위험에 스스로 뛰어드는 날들 속에서 그 자신마저 불살라지는 희생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먼저 간 선배들의 영웅적인 희생에 존경을 표한다

 

살려내지 못한 이는 누구였던가, 1분 1초만 더 빨랐더라면. 실 낱같은 희망에 기대어 간절히 기도했고, 너무도 자주 반복되는 좌절과 절망 속에 수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 모든 순간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가슴속 깊은 상흔으로 남았지만, 위험에 처한 누군가의 손을 잡고 구해낼 수 있던 어느 날 스스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와 사명에 최선을 다했기에 또 한 번의 감격 적인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저자 오영환은 대한민국 소방관이다. 부산 의무소방대원을 거쳐 서울소방에 임용된 뒤 도심 119구조대원과 산악구조대원, 그리고 구급대원으로서 오직 현장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사람을 구하지 못한 날엔 좌절감에 남몰래 혼자 울었고 꽉 막힌 도로에서 구급차가 꼼짝 못할 땐 조여드는 심장에 괴로워했다. 죽을힘으로 달려가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꺼져가던 생명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신이시여

뜨거운 화염 속에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내가 늘 깨어 살필 수 있게 하시어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 <어느 소방관의 기도> 중에서

 

위의 시詩는 1958년 미국의 한 소방관이 현장에서 아이들을 끝끝내 구출해내지 못한 어느 날 써내려 간 것으로, 국내에서도 인기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한 유명 대사로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이다. 또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주소서'라는 글귀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절망은 아직 나의 몫이 아니다

 

시내 곳곳에서 수시로 발생하는 응급 환자들은 더러는 살고 대개는 죽었다. 죽음은 늘 너무나 가까운 곳에 있었고, 그곳엔 어김없이 슬픔이 따랐지만 일일이 그 슬픔에 젖어버릴 순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의식적으로라도 익숙해져야만 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낮과 밤의 시간 동안 수많은 생사의 갈림길을 향해 다가가야 하는 소방서의 구급대원으로서, 그 모든 개별적인 슬픔에 동화同化되어서는 아마도 그 어두운 중량감을 이겨낼 수 없을 터였다. 물론 주관적인 체험을 객관적인 시야로 바라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익숙해졌다고 믿던 그 어느 날에라도, 문득 고개를 돌려보면 슬픔은 여전히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너질 수 없다' 

 

 

 

 

 

 

 

왜 이런 날에도 사고가(?)

 

오늘은 설날, 우리 팀은 전원 근무중이었다. 새벽 네 시가 넘은 시각, 광나루길로 출동이다. 현장은 녹다만 눈더미와 시커먼 매연이 뒤엉켜 지저분했다. 운전석에 앉은 남성의 상체는 찌그러진 차량 하부에 깔려 있었다. 창문 쪽으로 고인 피 웅덩이가 조금씩 퍼져 나간다. 차석 주임님이 깨진 유리창 틈으로 요구조자요구조자의 몸을 만져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부대장님은 지휘대장님에게 다가가 고개를 저었다. '즉사 추정'

 

깨끗한 정장 차림의 남자의 신원은 지갑 속의 신분증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86년생, 스물여섯, 저자와는 불과 두 살 차이. 어금니에 힘이 들어갔다. 그의 거주지는 지방의 한 오피스텔로 적혀 있었다. 차량 뒷 창문 너머로 떨어져 있는 금빛 상자가 보였다. 다시 보니 보자기에 곱게 싸여 있는 나무 상자였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랍니다'

 

교대를 마치고, 퇴근길에 정종을 나눠 마셨다. 토끼 같은 딸들이 기다리는 부대장님은 먼저 일어서며 나에게 술을 한 사발 더 따라주었다. 차석 주임님은 형수님이 아들을 데리고 고향에 갔다며 쓸쓸히 말했다. 일찍 취한 나는 지난 크리스마스 저녁에도 트럭에 깔린 아저씨를 꺼내지 않았었냐며 왜 이런 날에도 사고가 일어나야 하는 거냐고 물었다. 선배들은 쓴웃음을 지으며 이런 날뿐 아니라 저런 날에도, 또 다른 날에도 사고는 언제나 늘 항상, 시시때때로 나는 거라고 말했다. 

 

 

 

구조대원은 절대 포기하는 거 아니다

 

부산 해운대 수상구조대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무전기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즉시 13망 열한 시 방향 2차 부표로 이동!" 즉시 제트스키를 몰고 나아갔다. 거리를 좁혀갈 때 저 멀리, 전방 십여 미터 앞 수면에서 위태로운 그림자를 발견했다. 2차 부표를 넘어선 지점에서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희미한 몸부림이 보였다. 레스큐 튜브를 옆구리에 끼고 입수했다.  

 

깊은 수심 속에서 버둥거리는 저자의 손에 너무나 강력하고도 간절한 손길이 와서 닿았다. 그가 먼저 잡은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 어떤 간절한 힘이 수압을 뚫고 그의 손을 강하게 붙들고 있었다. 마주 잡은 손을 꽉 잡고 힘차게 핀을 차며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아…… 이럴 수가.

 

너무도 작은 여자아이였다. 열 살 정도나 되었을까. 동그란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눈이 풀려 있었다. 소리칠 힘이나 의지는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의식조차 혼미해 보였다. 그러나 아이의 조그만 손은 진정 놀랄 정도의 강한 힘으로 나의 손을 간절히 부여잡고 있었다.

 

서둘러 레스큐 튜브를 아이의 겨드랑이 아래에 두르고 양 끝을 연결했다. 작은 몸이 행여 빠져버릴까 튜브에 달린 슬링으로 한 번 더 둘러 묶었다. 그 와중에도 파도는 쉴 새 없이 밀려들었고, 그는 숨을 깊게 한 번 들이마시고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바르르 떨리는 아이의 몸이 차가웠다. 조그만 손을 다시 한 번 단단히 움켜쥐었다.


"괜찮아. 아저씨가 구해줄게"

 

 

 

희망은 숱한 절망 속에서 피어난다

 

삼각산구급대, 의료진은 동맥혈 검사를 위해 환자의 사타구니에 거대한 주삿바늘을 꽂아 넣었다. 멈췄던 심장이 처음으로 다시 뛰고 있음을 목격했다. 최후의 호흡이 꺼져가던 한 노인을, 죽음의 문턱에서 그의 가족과 이웃 그리고 그의 일상이 있는 이 세상으로 다시금 데려다 놓을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눈이 화끈거린다. 흔들리는 시야가 당황스럽다. 마스크 아래 이를 꽉 깨물어본다. 누가 볼까 서둘러 화장실로 가며 손을 펼쳐 관자놀이를 눌러야 했다. 나는 세면대에 고개를 처박고서 눈물을 틀었다. 모든 긴장이 쏟아져 내린 자리에 따뜻한 무언가가 가득히 차올랐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살아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소방공무원의 인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한 소방공무원의 인권 실태는 참혹했다. 절반 가까이 되는 사람이 수면 장애를 앓고 있었다. 다섯 명 중 한 명은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를 앓고 있었다. 공항 장애를 얻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사람도 있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발병률은 일반인보다 무려 10배나 높았다. 자살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도 7%가량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나 묵묵히 일했다.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마땅히 준비되어야 할 것들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국민의 생명을 지킨다는 자부심 하나로 땀 흘려 일했다. 하지만 여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사고가 있을 때마다 언론에서 강조하는 것도 잠시뿐, 개선책은 너무나 더디기만 하다. 사람들도 세상도 당장 보이지 않는 것은 너무나 빨리 잊어버린다.

 

소방관이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마음을 떠올린다. 감당할 수 없는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다가가 손 내밀어 주는 사람. 그 든든하던 뒷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내 삶도 충분히 가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 하나로 지금 이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 달음질 끝에서, 절망해야 하는 순간도 나날이 늘어가고 있었다.

 

구급대원에게 욕설을 내뱉는 사람을 마주할 때, 소방관은 심부름 센터가 아님을 설명해야 할 때, 목숨 걸고 현장으로 나가면서도 충분한 장비와 인력을 지원받지 못할 때, 수시로 발생하는 소방관의 부상과 순직 소식이 들려올 때. 나는 생각한다. 언제쯤 달라질 수 있을까. 달라지는 날이 과연 오는 걸까. 열악한 처우를 동정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소방관의 열악한 환경은 곧 국민 자신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것만 알아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우리는 늘 달린다

 

깊은 물 아래 가라앉은 어린아이의 손을 마주 잡을 수 있었던 날. 멈추었던 한 노인의 심장이 내 손끝에서 다시 뛰던 날. 걷고, 숨을 쉬고, 밥을 먹던 날.

 

타오르는 불길과 연기 아래 꺼져가는 마지막 숨소리에 귀 기울이며, 최후의 순간까지 포기해선 안 되는 이들이 소방관 이기에 우리는 몇 번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야 하는 숙명을 지녔다. -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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