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마음 - 선묵혜자 스님과 함께 떠나는 마음산책
선묵혜자 지음, 오순환 그림 / 쌤앤파커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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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묵혜자 스님은 청담스님을 은사로 열네 살 때 동진 출가한 후 오십여 년 간 오직 수행에 정진하면서도, 대중 불사에도 앞장서서 실천하는 '국민스님'으로 불린다. 특히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순례기도회'를 결성, 2006년부터 9년 동안 한국의 유명 사찰들을 회원들과 함께 순례했는데, 여기에 동행한 신도만도 무려 60여만 명에 이른다.


 

삶의 통찰이 가득한 시와 에세이

 

이 책은 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다. 한 구절 한 구절 자꾸 되내게 만들 정도로 저자인 선묵혜자 스님만의 촌철살인 같은 지혜와 혜안을 느낄 수 있다. 스님은 50년 넘게 수행하는 동안 108산사 순례뿐 아니라 불교신문사 사장과 도선사 주지를 지내며 왕성한 포교 활동을 펼쳐 왔다.

 

책표지에 실린 시詩는 "우리들의 인생은 모르는 마음으로 떠나는 긴 여행이다"라는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한다. 책은 '누군가에게 길을 묻는다면', '지금 그대에게 필요한 사람은', '생각보다 세상은 아름답다', '모르는 마음', '컵은 깨어지고 결국에는 사라진다', '부자가 되는 마음', '존재를 찾아 떠나는 여행' 등 7장으로 구성돼 있다. 덤으로 가족과 자연을 소재로 그린 화가 오순환의 작품이 삽화로 들어있다.

 

왜 사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마음

 

그 모르는 마음을 찾아 떠나는

더디고 안타까운 여행이

우리의 인생이다.

 

 

 

불안한가요? 혹시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잘못되어 투자금을 몽땅 날리고 거지 신세가 되지 않을까 불안하고 두려운가요. 자신의 생각으론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준비했음에도 혹시 시험 성적을 망칠까봐 좌불안석인가요. 아내가 첫 아이를 출산하려고 산부인과의 분만실에 들어간지 제법 시간이 흘렀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어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고 불안에 떨고 있나요.

 

그렇다. 이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면서 미리 갖는 게 바로 '모르는 마음'이다. 만약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하거나 확인했다면 불안이 아니라 슬프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사실 불안하다는 것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사건이다. 즉 불안감은 우리들의 마음이 스스로 만들어 낸 막연한 허상일 뿐이다. 책에서 선묵혜자 스님은 "이제 근거 없는 불안한 마음이나 불편한 마음들은 모두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세요"라고 말한다.

 

어느 날 혜가慧可스님이 불안한 마음 때문에 마음의 안식을 구하고자 스승인 달마대사를 찾아갔다. 이 스님은 눈 속에서 자신의 왼팔을 절단하면서까지 구도求道에 정진햇던 일화로 유명한 선정禪宗 2조祖 스님이다. 당시 그는 불안감 때문에 곧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 때 달마대사는 기가 막힌 선문답으로 깨달음을 주었다.

 

"스승님, 마음이 불안합니다. 마음의 평화를 주십시오"

"지금, 그 불안한 마음을 내놓아라. 내가 너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겠다"

"스승님, 그 불안한 마음은 형상이 없어 지금 내놓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부터 너의 불안한 마음을 내가 가져왔으니 이제 너에겐 없다"

 

 

 

 

울고 싶을 땐

 

살다가 보면 힘겨운 날도 있습니다.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누가 내게 던져준 상처 때문에
혹은 어떤 슬픈 일 때문에
잠시 울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실컷 목놓아우세요.

울다가 지치면 하늘을 보세요.
여전히 하늘은 푸르고
여전히 바람은 나뭇가지를 흔듭니다.
오늘 내가 힘들다고 해서
내 인생의 전부가 힘든 게 아닙니다.

울다가 깨어보면 우울함도 그치고
여전히 내 앞에는
새로운 하루가 열립니다.

울고 싶을 땐 실컷 우세요.

 

요즈음은 '힐링'이란 말이 대세인 시대이다. 뭔가에 짓눌린 듯하고 머리가 멍멍해서 답답한 심정이 갑자기 뻥 뚫린 듯한 기분이 드는 게 바로 '힐링'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충분히 위로해주지 못할 때는 이처럼 이불 뒤짚어쓰고 실컷 욕하고 펑펑 울고 나면 마음에 맺혔던 응어리가 어느 새 사라지고 훨씬 마음이 가벼워진다. 억지로 참지 말자. 오히려 스트레스만 더 가중될 뿐이다. 눈, 코, 입 구멍으로 갇혀 있던 모든 걸 토해내자. 그리고 얼마나 속이 시원한지 느껴보자.

 

 

산다는 것은

 

비갠 산사를 걸으면서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새와 바람과 나무와 한 몸이 되어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일입니다.
홀로 책을 읽거나 창을 바라보며
그리운 이를 생각하는 일입니다.
좋은 인연을 만나서 안부를 묻고
한 잔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미소를 짓는 일입니다.
이렇듯 산다는 것은
자신을 자유롭게 놓아버리는 일입니다.

 

 

 

좋은 생각은 행복을 부르고 불길한 생각은 우리를 파멸로 이끈다. 작은 생각의 차이가 성공과 실패 또는 삶과 죽음을 가른다. 그러므로 지금 아무리 힘든 상황에 처해 있어도 우리들은 항상 좋은 생각,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삶에 대해 지나치게 우울하고 비관적인 태도로 일관하다가 고귀한 생명줄을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스코틀랜드 항구에 영국의 컨테이너 운반선이 정박 중이었다. 한 선원이 냉동창고 안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밖에 있던 다른 선원이 무심코 창고 문을 닫아버렸다. 안에 갇힌 선원이 아무리 두드려도 구출되지 못한 채, 이 배는 포르투갈을 향해 항해에 나섰다. 보름 후 배는 포르투갈 항구에 도착했고, 그 선원은 싸늘하게 죽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 선원은 얼어서 죽은 걸까? 아니다. 제 풀에 죽고 말았다. 사실 냉동 창고엔 냉동용 화물이 적재되지 않았기 때문에 냉동장치가 가동되지 않았다. 온도도 19도로 적당했고, 창고 안엔 먹을 것이 충분했기 때문에 얼마든지 살 수 있었다. 이에 의아한 생각이 든 선장이 주위를 살피다가 컨테이너 벽면에 새겨진 작은 글씨를 보고 선원의 사인死因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 선원은 자신의 손발가락이 얼어가는 과정을 그곳에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즉 그의 마음은 이미 냉동창고에 갇혔기 때문에 곧 얼어 죽는다고 단정짓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는 얼어 죽고 말았다.

 

 

"괜찮아"

"용기를 내"

"사랑해"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말은 유능한 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그리고 꼭 무엇을 주는 사람이 되라는 말도 아니다. 그저 상처받고 아픈 이에게 따뜻한 한 모금의 위안수가 되어 주는 그런 사람이면 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이처럼 쉬운 일도 그 마음 한 번 주기가, 그 말 한 번 건네는 것이, 어찌 그렇게도 어려울까요.

 

한 사람이 석가모니 부처님을 찾아가 "저는 제대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이는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라고 호소했다. 이에 부처님은 "그것은 네가 남에게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니라"라고 답했다. 그러자 이 사람은 물러서지 않고 재차 "남에게 베풀 돈이 없습니다"라고 대응하자, 부처님께서 돈 없이도 베풀 수 있는 '무재칠시無財七施'를 깨닫도록 가르쳤다.

 

심시心施~ 어진 마음

신시身施~ 바른 몸가짐

안시眼施~ 따뜻한 눈빛

언사시言辭施~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

화안시和顔施~ 미소를 머금은 얼굴

좌상시座床施~ 자리를 양보

찰시察施~ 묻지 말고 헤아려 봐주라

 

 

'한 생'이란 사람이 태어나서 죽는 때를 말합니다. 따라서 '천생연분'은 죽고 태어나기를 천 번 했을 때 만나는 인연입니다. 이렇듯 귀중한 인연이 바로 부부입니다. -'천 번 태어나 만나는 인연' 중에서   

 

 

진리를 모르고 사는 사람에겐 인생이라는 기나긴 밤길은 그저 멀고 험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우리가 인생이라는 멀고 험한 길을 스스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진리를 깨닫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진리라는 말은 어려운 것 같지만 사실 간단하다. 물처럼 흐르면서 사는 것이다. 물은 생명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더러운 것을 씻

 

 

 

"진정으로 부유한 사람은 삶 속에 시詩가 있는 사람, 삶 속에 침묵이 있는 사람, 삶속에 뿌리가 있고 삶 속에 축제가 있고 내면의 정원에 꽃이 만발한 사람이다" - 라즈니쉬, 인도의 성자


도대체 무슨 뜻일까? '삶 속에 시가 있다'라는 말은 곧 '시와 같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고, '삶속에 침묵이 있다'라는 말은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가려서 하는 사람'이란 뜻이며, '삶 속에 뿌리가 있다'라는 말은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알고 열심히 살며 스스로 기쁨의 축제를 느끼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런 사람의 정원에 꽃이 만발한 것은 당연하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살아가면서 남과 자신을 위해 베푸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삶 속에 시가 있는 사람, 삶 속에 뿌리가 있는 사람이 되세요. 삶 속에 축제가 있고 내면의 정원에 꽃이 만발한 사람이 되세요. 세상 도처가 내 집이며, 누구보다 큰 마음속의 집을 짓게 될 겁니다. - '삶 속에 시詩가 있는 사람' 중에서

 

 

저자는 초등학교 5~6학년 정도인 열세 살에 스님이 되었다. 배고픈 시절이라 입 하나 덜기 위해 친척의 손을 잡고 산문山門에 들어섰다. 승려의 길은 참으로 험난했다.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예불을 드리고, 눈 내린 절 마당을 청소하고, 시린 손으로 빨래를 했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도 출가자의 몸은 세속의 인연들을 모두 끊어야 한다는 큰스님의 말씀에 그리움을 속절없이 마음으로만 삭이고 삭여야만 했다. 그와 같은 그리움을 어찌 말로 다 풀 수가 있겠는가? 어떤 때는 산사에서 뜨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그리움들을 모두 삭여야만 했다.

 
열아홉 살 때, 문득 어머니가 수백 리 길을 지나 저자가 머물고 있는 도선사로 찾아왔다. 하지만 그는 흐르는 눈물을 안으로만 삼키면서도 어머니라 부르지 못했기에 그 때가 후회스럽다고 말한다. 이제 오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출가의 길은 세속의 모든 인연들을 끊어 내고 마음의 번뇌를 끊어 내는 참으로 지난한 길임을 새삼 느낀다.

출가한 지 한참을 지난 어느 날 큰스님께서 "혜자야. 그래 지낼 만하냐? 나는 고등학교 때 길에서 갈증이 나서 물을 마시다가 어떤 스님이 '마음이 타는 것을 물로 식힐 수는 없다'하셔서 그에 발심하여 출가를 했구나. 그래, 너는 무슨 마음으로 출가를 했느냐?"고 물었다.


이에 그는 "스님, 저는 어리고 수행이 부족해서 아직도 그 마음을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큰스님께서는 허허허 웃으시며 "그래그래. 그 모르는 마음으로 열심히 기도하여 진정한 출가의 길을 깨달아라"라고 말했다. 그 순간 그는 말할 수 없는 그 어떤 환희심이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구나. 모르는 그 마음을 깨닫기 위해 스님들은 오직 수행을 하시는 거구나'


'모르는 마음'을 찾고자 매일 기도하고 정진해 왔다. '108산사순례기도회'를 결성하여 9년간의 긴 대장정을 회향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산사순례는 그의 염원을 넘어 은사 큰스님의 원願이었다. 그래서 비가 오나 눈이오나 추우나 더우나 어려움이 있어도 참고 또 참으며 오늘도 묵묵히 그 길을 가고 있다.

 

 

 

욕망은 채울수록 다 채우지 못하는 밑 빠진 항아리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 욕망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쓰러지고 만다. 여기 욕망에 관한 왕과 신하 간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작품에도 이와 비슷한 얘기가 실려있다.

 

"그대의 소원은 무엇인가?"

"많은 재물을 가지는 것이 소원입니다"

"해가 지기 전에 이 땅 위에 그대가 금을 긋고 왕실로 돌아오면 그 땅을 모두 주겠다"

 

이 신하는 욕심이 지나쳐 해지기 전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어쩌면 왕은 욕망 때문에 복귀하지 못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을 것 같다. 인간의 욕망과 행복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언제나 반비례한다.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나는 가장 적은 욕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행복과 친숙해졌다"고 말한다. 중국의 고전<회남자淮南子>에서도 "대지의 곡식을 다 주고 강물을 다 준다 해도, 배를 채우는 것은 한 줌의 곡식이며 갈증을 달래주는 것은 한 사발의 물"이라고 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목숨을 부지할 만큼의 재물과 몸을 누일 집 한 채뿐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시면 마실수록 더 목이 타는 바닷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인간의 욕망은 밑 빠진 항아리와 같다.

 

 

 

'수처작주隨處作主'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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