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황소
션 케니프 지음, 최재천.이선아 옮김 / 살림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소는 지금으로부터 1만 5백 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처음 가축화되어 오늘에 이른 것으로 알려진 동물이다. 오랫 동안 인간과 함께 살아왔기에 우리는 이 동물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저자 션 케니프는 지적인 황소를 통해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소를 생각하면 대개는 한우 소고기, 불고기, 육회, 쇠고기국, 안심, 등심구이 등 먹거리를 생각하거나 연자방아를 돌리고 쟁기질을 하는 등의 일하는 모습도 연상할 것이다. 한편, 청도 소싸움이나 스페인의 투우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살아선 일꾼이고, 죽어선 몸 보시까지 하는 충직한 짐승이다.

 

'에트르'란 이름을 가진 황소가 이 책의 주인공인 화자話者다. '에트르'란 '존재'를 뜻하는 프랑스 말이다. 에트르는 사람의 말도 알아듣고 이해할 뿐만 아니라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또한, 이를 토대로 스스로 어떻게 행동할지도 고민한다. 심지어 냇물에 비친 황소가 자신이라는 사실도 안다. 자, 황소 에트르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엉프"

"앙프"

 

 

 

 

에트르가 살고 있는 목장의 주인은 크릴리다. 그의 아들은 자크다. 이들은 항상 개와 함께 다닌다. 에트르는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의 배에 닿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키를 가졌지만 항상 으르릉거리며, 무리를 이탈하지 못하도록 자신을 몰아부치기 때문이다.

 

축사에 들어간 암소들은 어떤 먹이를 먹는지 금새 크고 뚱뚱해진다. 시간이 흘러 만족할 만큼 통통해진 암소들은 슈트 컨베이어로 안내되고 이내 그들은 사라지고 만다. 에트르는 암소들과 그리 친하지 않기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 농장엔 닭들도 많다.

 

검은 황소가 이 목장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다. 처진 엉덩이를 가진 늙은 소이지만 힘이 세고 덩치가 가장 커서 다른 소들은 아예 싸움 상대가 되지 못한다. 넓은 목장 안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다른 황소의 도전을 기다리지만 누구도 그를 공격하지 않는다. 

 

어느 날 연한 분홍색 얼굴을 가진 어린 암소를 만났다. 우윳빛 엉덩이와 머리엔 검정 무늬가 있다. 엉덩이가 작은 걸 보니 새끼를 낳아 본 적도 없는게 분명하다. 에트르는 콧김을 내뿜으며 암소에게로 다가갔다. 엄마 이후로 암소에 대한 특별한 감정은 처음이었다.

 

빗소리에 잠이 깬 에트르는 진흙탕을 벗어나 목초지 가운데에 위치한 언덕으로 향했다. 전에 본 암소가 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앙탈을 부리던 암소와 결국 친해졌다. 암소는 에트르의 몸에 기대어 자신의 가죽을 비벼 대었다. 비가 그칠 때까지 나무 아래에서 서로 의지한 채 쉬었다.

 

"이랴, 이랴, 이랴!"

"멍, 멍, 멍, 멍, 멍, 멍!"

 

개가 소 떼 주위에서 반원을 그린다. 개는 으르릉거리며 소 떼 가운데로 파고들어 두 무리로 갈라놓았다. 한 무리가 사라지고 나머지 소들은 케일이 무성한 목초지에 남겨졌다. 목장 주인은 소들이 케일을 많이 먹고 빨리 살찌기를 바란다. 에트르는 그 암소가 그리웠다.

 

매일 저녁 무렵이면 에트르와 암소는 노을을 뒤로하고 걸어서 목초지 가장자리까지 갔다. 매일 밤 그들은 풀밭 위에 누워 가죽을 맞댄 채 새벽까지 잠을 잤다. 에트르는 풀과 케일로 충분히 배를 채워도 여전히 뭔가 부족했다. 살집이 올라 분홍빛의 엉덩이를 실룩대는 암소 때문이었다. 그런데, 검은 황소도 이 암소에게 무척 관심이 많았다.

 

"검은 황소 넌 절대로 그녀를 가질 수 없어!"

"내 암소라고! 넌 절대 그녀를 가질 수 없어!"

 

결국 숙명적인 대혈투가 벌어졌다. 덩치가 훨씬 큰 검은 황소를 이기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검은 황소가 공격하자 밤하늘이 대낮처럼 붉게 물들었다. 에트르의 몸은 검은 황소에게 이리저리 짓밟히고 겨우 목숨만 부지했다. 이를 계기로 에트르와 암소는 사랑을 나누었다.

 

에트르의 암소는 새끼를 낳았다. 숫놈이었다. 엉덩이의 넓이는 18인치, 엉덩이 높이는 42인치 정도로 꽤나 큰 녀석이었다. 계절이 많이 흘렀다. 검은 황소도 이젠 둘을 괴롭히지 않았다. 에트르"엉프", 암소는 "앙프"라고 소리내면 새끼 송아지는 "음매"라고 맞장구쳤다.

 

마침내 슈트 컨베이어에서 에트르의 암소는 죽음을 맞이한다. 목이 잘리고, 앞다리 두 개가 잘리고, 뒷 발이 잘린 후 배는 길게 잘리고 가죽도 벗긴다. 내장을 도려내고 텅 빈 몸이 트롤리에서 빙글빙글 돌고있다. 고기는 길고 날카로운 칼로 뼈에서 떼낸다.

 

에트르는 어린 새끼를 찾아 여기서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그의 암소가 송아지를 낳던 곳 인근 풀숲에서 잠자고 있는 송아지를 발견했다. 송아지에게 다가가 아버지임을 인식시키려하나 사뭇 경계 태세이다. 송아지가 실컷 공격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송아지야, 넌 지금 여기를 떠나야 해" 

 

에트르는 철망을 들어 올린다. 철사가 그의 살을 찔러 피가 뚝뚝 떨어진다. 송아지를 구멍 밖으로 밀어내어도 철망에 발굽을 걸치고 끝까지 버틴다. 총이 발사되었다. 에트르는 철망을 밟고 넘어가 숲으로 향했다. 새끼도 따라나선다.

 

"함께 가자, 소들아. 사는 것처럼 살자!"

 

송아지는 케일이 먹고 싶을 것이다. 또한, 목초지의 풀도 먹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로 돌아갈 수 없는 곳이다. 송아지는 목장 생활의 익숙함이라는 덫에 빠져 이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익숙함에서 결별해야만 자유와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그들은 며칠 동안 길을 따라 걸었다. 송아지는 앞다리가 발굽까지 부어올라 걷기가 쉽지 않다. 힘들게 몇 발자국 걷더니 넘어지며 옆으로 뒹군다. 송아지는 일어서지 않는다. 호흡이 빠르고 희미하며 입술은 창백하게 말라 있다. 눈빛은 희미해져 간다. 송아지는 숨을 멈춘다.

 

에트르는 송아지의 몸을 머리로 밀어 나무 아래로 옮기고 가시나무 가지를 덮어 주었다. 독수리가 송아지의 살을 쪼아먹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송아지를 숲에 남겨두고 햇볕이 내리쬐는 풀밭으로 나아갔다. 에트르는 절벽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수천 마리의 소들이 울타리 속 목초지에서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유기견을 비롯한 동물 보호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이효리 씨가 제인 구달 선생을 시애틀에서 만나도록 주선한 사람이 이 책을 번역한 최재천 교수다. 그는 서울동물원에서 돌고래쇼를 하는 '제돌이'를 제주 바다로 돌려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제돌이에트르 모두 인간이 만든 비극의 산물이다. 고통받는 동물을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생존을 위한 황소의 투쟁이 우리의 투쟁과 다르지 않다.

 

"울타리 밖을 내다보기보다는 울타리 안을 바라보며 사는 편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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