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 - 동물들의 10가지 의례로 배우는 관계와 공존
케이틀린 오코넬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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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람이 생활하면서 행하는 의례가 얼마나 중요한지, 왜 필요한지 보여주고 싶은 간절함 바람 끝에 탄생했다. 이를 위해 코끼리를 비롯해 곤충까지 갖가지 동물의 사례를 제시한다. 사회적 동물이 치르는 의례는 다양하지만, 이 책은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 꼭 필요한 인사 의례, 집단 의례, 구애 의례, 선물 의례, 소리 의례, 무언 의례, 놀이 의례, 애도 의례, 회복 의례, 여행 의례에 초점을 맞춘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살이 있는 생명체 모두를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재능이다.” - 찰스 다윈


세계적인 행동생태학자이자 코끼리 전문가인 저자 케이틀린 오코넬은 지난 30여 년 동안 코끼리, 원숭이, 얼룩말 등 수많은 동물을 관찰하고 연구했다. 나아가 오코넬은 인간의 기원과 본성을 야생동물에게서 찾아내고 사람들의 기본적인 본능과 욕구를 탐색한다.


“코끼리들이 예의를 갖춰 인사하거나 새끼를 구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동물 사회가 인간 사회와 얼마나 비슷한지 새삼 다시 생각한다. 이가 모두 빠진 늙은 코끼리를 위해 젊은 코끼리가 음식을 대신 씹어서 먹여주는 다정함에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인간이 노인을 돌보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23 쪽)


즉, 본능이란 바로 ‘관계 맺기’다. 인사, 집단, 구애, 선물, 소리, 무언, 놀이, 애도, 회복, 여행 등 야생동물의 10가지 의례 행동을 살펴보면서, 인간과 자연의 연결성이 어떠한지 그리고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통찰한다. 이처럼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메세지는 ‘의례’이다.


“의례를 종교적인 의식으로만 여길 때가 많다. 하지만 의례는 넓은 의미로 종교, 숭배, 영적인 관습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정확한 절차에 따라 자주 되풀이하는 구체적인 행동은 모두 의례다. 차례대로 이어지는 행동들도 의례라고 할 수 있다. (중략) 침팬지의 돌 던지기처럼 평범한 행동에 의미가 깃들면 의례가 된다. 각각의 행동이 그 자체로 의미를 갖지는 않지만, 전체가 되면 의미를 얻는다.” (27 쪽)


코끼리를 떠올리면 어떤 모습들이 연상되는가? 큰 덩치의 무리들이 물을 찾아, 풀을 찾아 아프리카 대륙 이리저리 이동하는 모습, 사자 무리의 공격으로부터 새끼들을 보호하려고 우두머리 암컷 코끼리가 큰 소리를 내지르며 긴 코를 휘두르는 다큐멘터리 동영상, 크고 무거운 벌목 덩어리를 코로 이동하는 모습, 상아를 불법 채취하려는 무자비한 밀렵자에 포획당하는 장면, 그리고 서커스단에서 발목에 쇠고랑을 차고 있는 모습이나 동물원 케이지에서 어슬렁거리는 모습 등이 떠오른다.


동물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코끼리는 매우 영험적인 동물이며 집단생활을 하는 대표적인 모계母系 사회라고 평가한다. 책의 제목에 어울리는 내가 아는 지식은 코끼리의 죽음에 관련된 것으로, 죽음을 앞 둔 늙은 코끼리는 먼 길을 걸어 자신의 선조들이 선택했던 ‘죽음의 장소’를 찾아간다고 한다.


인사 의례


사회적 동물들은 인사 의례를 점차 발전시켰다. 가까운 친구들끼리 유대감을 공고하게 하고 새로운 친구를 환영하는 것, 긴장을 풀고 화해하는 것, 대장(우두머리)에게 복종함으로써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 등이 인사의 목적이다.



상호간의 코와 입을 맞대는 코끼리의 인사는 단순한 의사소통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코끼리의 인사는 인간의 악수와 비슷해서 상대를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화해의 몸짓일 수도 있다.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 따라 인사가 표현하는 관심의 정도는 달라진다. 유럽인들이 양 볼에 입맞춤을 하면 그들은 특별한 관계이거나 특별한 일이 생긴 것이다. 이누이트족은 가족과 연인의 뺨이나 이마에 코와 입술을 갖다 대고 그 사람의 냄새를 들이마신다.


그런데, 다른 환경에선 얘기가 달라진다. 뉴욕의 거리에서 마주친 누군가가 우리의 코와 이마를 자기 얼굴로 잡아당겨서 깊은 숨을 들이마신다면 어떨까? 당연히 매우 불쾌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다. 우리들은 다른 문화가 공존한다는 사실을 수용해야 한다.


낯선 사람과의 대화는 인류가 탄생한 이후부터 진화한 적응 행동이다. 마음을 여는 것이 생각보다 쉽다.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무리를 벗어나 낯선 곳에서 짝을 찾는 편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알고 보면 생존을 위한 기술이다.


구애 의례


구애求愛는 지구촌의 모든 생물에게 가장 중요한 핵심일지도 모른다. 사랑을 찾지 못하면, 즉 짝짓기를 영원히 못한다면 그 해당 종種은 멸절滅絶하고 말기 때문이다. 이만큼 사랑을 찾는 행위는 죽음이라는 위협도 감수한다.



책은 아름다운 분홍색을 자랑하는 홍학의 색다른 구애 행위를 소개한다. 홍학은 구애를 행할 때 길다란 다리를 뒤로 쭉 뻗고, 날개를 양 옆으로 넓게 펼치거나 휘감으며 몸치장하는 듯한 동작을 연출한다. 이처럼 수많은 새들의 구애 의례는 몸을 쭉 펴거나 둥지는 만드는 행동에서 진화했다.


그런데, 집단생활을 하는 홍학의 구애 행위가 특별함은 방금 만난 미래의 짝쿵에게 자신의 힘이나 건강을 최대한 자랑하려는 의도된 행동이라는 점이다. 마치 인간들의 스윙이나 살사 같은 사교춤을 추는 것과 유사하다. 어쨌던 수컷은 암컷에게 가장 매력적인 면을 어필해야만 짝을 얻어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온전히 전할 수 있으므로. 또한, 암컷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번의 선택이 평생을 결정한다는 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수컷의 구애 행위는 위험한 대가를 예고할 수도 있다. 밝은 깃털과 화려한 동작은 포식자들의 눈에 쉽게 노출되어 잡아먹힐 수 있기 때문이다. 수컷 공작의 화려한 꼬리를 포식자들이 못볼 수 있겠는가. 이처럼 자연의 섭리는 ‘공짜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진화론 주창자 찰스 다윈도 ‘성선택’ 개념을 생각해냈다. 이처럼 죽음도 불사하는 구애 의례를 목격하고 그는 자신의 자연 선택 이론과 달리 암컷이 특별한 매력을 지닌 수컷을 선택하는 행동이 진화를 주도했다는 것이다.


새의 구애 의례는 시각, 청각, 후각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개체의 건강 정도를 노출한다는 점이다. 때에 따라선 촉각까지 자극한다. 몸 빛깔이 화려하지 않은 수컷들은 노래하거나 춤추거나 깃털을 뽐내며 철두철미하게 어필한다. 호주와 뉴기니에 서식하는 바우어새의 경우 독창성과 예술적 솜씨를 선보이며 짝짓기 시험을 통과한다. 이 새는 바우어bower(오두막)를 지어놓고 암컷을 유인하며 심지어 정원까지 꾸민다. 구애를 받아들인 암컷은 함께 춤추며 짝짓기를 한다. 정사가 끝난 후, 암컷이 사라지면 수컷은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종족의 대물림이라는 미션 수행에 온 힘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https://blog.naver.com/5for10/222982911916 (바우어새의 구애)


책의 대표 동물인 코끼리는 어떤 구애 행위를 할까? 이들은 시각적으로 화려하지 않지만 후각과 청각을 자극하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평소와는 다른 울음소리와 냄새로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짝을 서로 찾는다. 특히, 4~6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임컷의 발정기를 수컷은 놓치면 안 된다. 이때 암컷은 저음低音의 울음을 자주 길게 반복한다. 이 소리를 듣고 발정한 수컷은 양 귀를 전후로 흔들며 자신의 냄새를 사방으로 멀리 내보면서 오줌을 질질 흘려 강한 냄새를 퍼뜨린다. 더구나 수컷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수컷들에게 겁까지 준다. 한 번의 정사를 위해 마치 전쟁 준비를 하는 것과 같다.


현재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또는 새로 만난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 우리들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앞서 살펴본 바우어새와 홍학은 의례를 시작할 때 잠재적 짝쿵이 지켜보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이들은 뭐든 먼저 행동을 보여 상대의 관심을 끈 후, 상대가 자신에 대한 관심을 계속 유지하도록 노력한다. 따라서, 우리들도 뭐든지 시작해보고 사람들을 자신의 의례에 초대해보자.


애도 의례



얼룩말이 쓰러지자마자 가족 모두 머리를 숙인 채 누워있는 얼룩말을 바라보았다. 이는 잠을 자려는 게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나이 많은 암컷 한 마리가 쓰러진 얼룩말의 가죽에 코를 비벼댄 후 발을 굴렀고, 다른 암컷은 앞발로 땅을 긁었다. 다른 몇몇 얼룩말은 머리를 상하로 흔들었다. 요지부동의 쓰러진 말은 이미 죽은 상태였다. 수의사들에 따르면, 안락사시킨 말에 대해 다른 말들이 애도와 비슷한 행동을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위의 상황은 애도의 모습이다. 얼룩말 가족은 사랑했던 동료의 사체死體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저자는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얼룩말들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었다. 소위 ‘죽음학’은 전통적으로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춰왔다. 죽음학은 죽음과 관련된 심리적·사회적 문제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지금 이 학문의 범위는 몇몇 벌레, 새, 특히 원숭이와 유인원 등 사회적인 포유동물을 포함해 점점 넓혀가고 있다. 사회적 동물에 관한 연구들은 가까운 사이였던 동물이 죽었을 때 슬퍼하면서 사체를 옮기고, 옆에서 돌보고, 땅에 묻고, 애도하는 모든 행동의 이유에 초점을 맞춘다.


죽은 가족의 곁을 떠나지 않으려는 코끼리들에 관한 기록은 많다. 어껀 어미 코끼리는 이미 죽어서 뻣뻣해진 새끼를 코로 말아서 한동안 들고 다니다가 결국 자리에 두고 갔다. 이는 본능이며,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어미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코끼리의 몸집은 거대해서 죽은 후 몇 달에서 몇 년까지 그 자리에서 사체가 계속 남아 있다. 저자의 관찰에 따르면, 친척이 죽어서 누워 있는 곳이나 친지가 죽음을 맞이한 장소로 자주 찾아오는 코끼리들이 있었다. 코끼리들이 죽은 코끼리를 찾아가는 의식은 우리 인간들의 장례식과 비슷하다. 또 많은 보고서에서 야생 코끼리는 죽은 코끼리의 몸에 흙을 뿌리거나 나뭇가지를 덮어 매장한다고 설명한다. 물론 매장 행위인지 사체 보호 행위인지 알 순 없다.


인간의 삶도 동물의 그것과 유사하다


인간은 코끼리, 고래, 늑대 등 의식이 있는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다른 힘이 있다. 즉 지구상의 서식지와 모든 생명을 보호할 힘과 파괴할 힘이다. 갈수록 기후 변화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 해 미국은 허리케인 등 자연재해로 200조 원 넘게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인간의 책임감은 더욱 더 중요해졌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10가지 의례를 살펴봄으로써 자신과의 관계, 사람들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를 더욱 튼튼하게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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