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어떻게 글이 되는가 - 정확하고 설득력 있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서울대 글쓰기 특강'
박주용 지음 / 쌤앤파커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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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지식이 많은 사람을, 토론은 준비된 사람을, 글쓰기는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의 수필집에 수록된 〈학문론〉에 나오는 말이다. 베이컨의 말을 염두에 두고 우리 교육을 되돌아보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바로 파악할 수 있다. 많이 읽게 하고 강의로 많은 정보를 전달하지만, 토론과 글쓰기는 빠져 있다. 토론과 글쓰기가 빠진 독서나 정보 전달만으로는 생각하는 힘을 키우기 어렵다. 토론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비판하는 가운데 새로운 생각을 떠올릴 수 있고, 글을 써야 생각을 정리하고 정리된 생각을 담아낼 수 있다. - '프롤로그' 중에서 

 

 

비판적으로 읽고, 내 주장이 담긴 글을 쓰라

 

책의 저자 박주용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UCLA에서 인지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림대 심리학과, 세종대 교육학과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있다. 그는 2010년대 초반부터 서울대에서 글쓰기와 토론을 중심으로 한 수업을 주도해왔는데, 그의 글쓰기 강의에서는 학생들이 각자 써온 글을 놓고 삼삼오오 모여서 토론하는 목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비판적으로 읽고, 생산적으로 토론하고, 생각을 글로 쓴다"

 

그의 글쓰기 수업은 어렵고 힘든 과정임에도 학생들 사이에서 성취감과 만족도가 높은 강의로 정평이 나 있다. 글쓰기와 토론이 우리나라의 입시 중심 교육과 대학의 강의 중심 교육에 변화를 가져다줄 돌파구라고 생각하며,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 강연 "배운 만큼 생각하게 하는 교육"으로 대중에게 큰 공감을 얻은 바 있다. 

 

우리들은 글쓰기를 잘못 배웠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나도 이 점에 대해선 적극 공감한다. 대부분 배운 것이라곤 저학년 때 배운 받아쓰기가 전부 아닌가 말이다. 이는 분명히 수동적인 글쓰기 연습, 아니 맞춤법 연습일뿐 자발적인 글쓰기완 거리가 한참 멀다. 굳이 자발적인 글쓰기라면 일기장에 글을 쓰는 행위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검사라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다분히 인위적인 조작이 가미되었으므로 순수한 의미의 글쓰기는 결코 아닌 것이다.

 

하버드 대학은 1872년 이래로 모든 학생들이 <탐구적 글쓰기>를 필수적으로 수강해야 한다. 명문 MIT도 1990년대부터 4개 이상의 글쓰기 수업을 졸업 이수 요건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대학 입시는 물론 취업을 위한 평가도 논술보다는 선다형 내지는 단답식 문항으로 치뤄진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학교에서 글쓰기 교육을 강화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일까? 대학생 대상의 한국교육개발원 보고서에 따르면, 한 학기 동안 10페이지 정도의 보고서를 5회 이상 쓰는 비율이 50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아무튼 평균적으로 1년에 대략 100페이지 정도를 쓴다. 반면에 미국 대학생은 1학년의 경우 1년에 평균 92페이지를 4학년엔 146페이지를 쓴다. 결과적으로 미국 대학생이 한국 대학생에 비해 평균 20퍼센트 정도를 더 쓴다. 

 

 

 

서울대학교 학생 2251명과 교수 304명이 참여한 한 설문에서 글쓰기를 중요한 능력으로 간주했고, 그 중요성을 5점 만점에 각각 4.45점과 4.5점으로 높게 매겼음에도 글쓰기 교육의 실제 여부에 대해선 학생은 3.3점, 교수는 2.75점으로, 가장 높은 만족도를 보인 전공 지식(4.14점과 4.0점)에 비해 상당히 낮았다. 배운 지식을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키는 훈련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학생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평가할 때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담긴 글을 좀처럼 볼 수 없고, 심지어 틀린 곳이 너무 많아 어떻게 피드백을 주어야 할지 안스럽다고 자신의 심정을 밝힌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학생들과의 면담에서 보고서 상의 주장에 대한 적절한 답변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내용을 알지만 이를 글로 잘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데, 바로 이것이 우리 교육의 문제이다.

 

"생각하게 하고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게 하기 위해 글쓰기 교육을 서둘러야 한다"

 

결국 좋은 글은 인정받기 마련이다. 물론 좋은 글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좋은 글을 금방 알아본다. 처음에는 환영받지 못하다가 나중에 각광받을 때도 있지만, 좋은 글은 음악 혹은 맛있는 음식처럼  대중들에게 이내 포착된다. 다만 왜 좋은지를 말하기 어려운 이유는 많은 요소나 재료가 독특한 배합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글의 특징

 

제목이 중요하다, 제목에서부터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눈길을 끌 수 있다.
도입부에 흥미로운 이야기나 도전적인 질문, 예리한 분석 등을 제시해 관심을 끈다.
개인적 일화를 포함,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추상적인 개념은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며 설명한다. 도표나 그래프도 적절히 활용

 

글쓰기에 있어서 자신만의 논리적인 주장을 만들어내는 일이 박식함과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서로 대립되는 주장을 비교하거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으려면, 관련 자료에 대해 사전에 어느 정도의 지식 축적이 필요하다. 사실은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비판적으로 꼼꼼하게 읽으면서 깊게 생각해야만 이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꾸준하게 이런 노력을 실천하다 보면, 욕조에 앉아 있든, 샤워를 하든, 산책을 하든, 꿈을 꾸든 간에 갑자기 의미있는 생각이 떠오르는 경험을 맞을 수도 있다. 만약 이런 통찰을 맞이하지 못할 경우는 떠오를 때까지 계속 기다리지 말고 오히려 끊임없이 의도적으로 아이디어를 찾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이디어는 열심히 찾는 사람들에게만 접근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문제 해결이기도 하지만 '문제 발견'을 필요로 할 때가 많다. 작문 과제나 지정된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경우라면 문제 해결이 적합하지만, 지적 탐구 과정에서 새로운 주장을 펼치려면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 발견이 훨씬 더 의미가 있다. 특정 분야의 연구 현황을 숲을 보듯 조망하면서 그 전반적인 특성은 물론 빠진 부분을 찾아내는 것이 문제 발견의 좋은 예이다. 노벨상이 어떤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 새로운 문제를 찾아낸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처럼, 지적 탐구에서는 문제 발견이 중요하다. 따라서 글쓰기를 문제 해결로 특징짓는 대신 '문제 발견과 문제 해결'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글쓰기의 비유

 

문제 해결

요리하기

디자인 설계

 

디자인의 비유는 주장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달할지를 고민하는 단계, 특히 전체 구성이나 논의 전개 방식을 잘 부각시킨다. 단순한 논의에서는 두드러지지 않지만 논의할 내용이 많아지고 그들 간의 관계가 복잡해질수록 디자인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이는 마치 같은 내용을 잘 아는 전문가와 대가가 설명할 때의 차이에 비교할 수 있다. 대가는 더 많은 내용을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게 설명한다.

 

요리의 비유는 술술 잘 읽히면서도 이해도 쉽게 되는 문장이나 문장 간 연결 수준에 적용할 때 적합해 보인다. 요리사는 음식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음식의 색상과 그릇에 담긴 모양에도 신경을 쓴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세 가지 비유들은 실제 글쓰기 과정에서 각각의 고유한 역할을 수행한다.

 

 

 

 

 

연습, 그리고 연습이 필요하다

 

이 책은 글쓰기 입문서이다. 책을 통해 글쓰기를 간접적으로 배우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직접 쓰고 고쳐봐야 비로소 글쓰기의 맛을 경험할 수 있어서다. 첫 문장부터 완벽하게 쓰려는 욕심은 부리지 말자. 처음엔 대략적인 자기 주장만 담아도 충분하다. 항아리를 빈틈없이 채우려면 처음엔 큰돌을 넣고, 다음엔 조약돌을, 마지막엔 모래를 채워야 한다. 마찬가지다. 글의 전체 구조를 잡은 뒤 점차 세부적인 사항을 다듬어야 할 것이다. 올림픽에서 자신의 기량을 맘껏 발휘하려면 연습량이 충분해야 하는 것처럼, 글쓰기 또한 연습 그리고 또 연습이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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