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 무례한 세상 속 페미니스트 엄마의 고군분투 육아 일기
박한아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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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아이는 한 명의 개인으로 독립성과 고유성을 지닌 존재이자, 앞으로 무엇이든 그려낼 수 있는 흰 도화지 같은 존재다. 하지만 양육자인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참여하는 방식이 아이에게 때로는 신호등이, 때로는 부표가 되기에 한 걸음씩 더 나아가보고자 한다. 육아 3년 차, 매일 계속되는 육아에 일희일비하며 헤매는 중이지만 비숫한 고민을 하는 여성 양육자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 어떤 이야기든 가감없이 담으려 했다. - '프롤로그' 중에서

 

 

페미니스트의 육아일기

 

책의 저자 박한아는 페미니스트로 어렸을 적부터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다. 대학에서는 정작 영화에 마음을 뺏겨 영상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이십 대는 주로 영화제와 서울의 작은 골목들로, 또 각종 리뷰와 비평들로 채워졌다. 이후 읽고 쓰는 것을 업으로 삼고자 광고회사에 입사했다. 4년간의 디지털 미디어 플래너로 일하면서 광고가 언어보다는 숫자의 영역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곤 퇴사, 이후 새 삶을 도모하기 위해 떠난 제주에서 엄마가 되었다. 한편에는 여성 양육자로서 겪는 부당함이 있고 또 다른 한편에는 양육자이자 페미니스트로서 해내고 싶은 일들에 대해 글을 썼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내용은 여성생활미디어 <핀치>에 연재했던 글을 다듬은 것이다. 당시 그녀는 자신의 처지와 같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갈증이 넘쳐서 이를 위해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쓰고 그 반응을 살피기로 선택했다. 이를 통해 많은 여성들이 그녀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서 아이를 키우고 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자, 그런 고민들을 따라가 보자.

 

 

 

 

아이들은 모든 걸 듣고 있다

 

흔히 어른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아이들이 어려서 어른들이 하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할 뿐더러 이를 귀 담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엄청 큰 착각이다. 감수성이 섬세하다 못해 예민하기까지한 어린 아이들은 마치 스펀지처럼 어른들의 말과 행동 모두를 여과없이 빨아들인다. 그렇다면 잘못 받아들여진 말과 행동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옳지, 안전벨트 매야지. 잘 봐라? 남자들은 더 안전벨트 매고 다닌다!"

 

어느 날, 저자는 아이(바당이)와 함께 택시를 탔다. 승차하자마자 바당이에게 먼저 안전벨트를 채워주었는데, 이 광경을 목격한 택시 기사가 이처럼 한마디 거들었던 것이다. 아이는 아직 분별력 없이 들리는 대로 모든 말을 수집하고 있다. 어디선가 들어본 말들을 따라 하며 배우는 중인데, 아이 입에서 "남자들은 안전벨트 매는 거야"라는 말이 나올까 봐 종일 신경이 곤두섰다.

 

하지만 내 맘에 들지 않는 모든 말로부터 아이를 보호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이가 만나는 사람을 내가 다 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이에게는 아이의 삶이 있는 거니까. 다만 아이가 무언가를 스스로 판단하고 째려볼 수 있을 때까지는 되도록 편견 어린 말들에서 자유롭도록 돕고 싶다. 그래서 목적지에 하차한 후 저자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바당아, 안전벨트는 누구나 다 매는 거야. 여자든 남자든 그런 건 상관없어.

차에 타면 그냥 다 매는 거야. 바당이도, 엄마도, 아저씨도, 다른 친구들도"

정말 아들 맞아요?

 

저자의 남자아이는 아기 때부터 종종 딸이라는 오해를 받곤 했다. 처음 갔던 문화센터에선 2주 동안 선생님과 같은 반 엄마들까지 모두 딸로 알고 있었을 정도였다. 저자는 아동복 매장에서 남아, 여아 옷 구분에 별 구애받지 않고 분홍색이나 꽃무늬가 그려진 옷을 입히기도 했다. 그런 탓에 많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여자애처럼 예쁘게 생겼네" 또는 "얘 정말 아들 맞아요?" 등의 질문공세를 받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먼저 나서서 아이의 성별을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은 건 직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반갑지 않아서였다. 그저 바당이의 특징이었던 것들이 성별이 밝혀지고 나면 곧장 '남자아이'와 '아들'의 보편적 특징인 것처럼 연결되는 게 아무래도 이상했다. "바당이 머리 다듬고 나니까 엄청 남자다워졌네", "애는 여자애처럼 애교가 많네요. 딸 같은 아들인가 봐" 등등. 어떤 말들은 남자아이일 때만 효력이 있고 또 어떤 말들은 여자아이에게만 맞는 것일까?

속하지 않을 권리

 

'맘충'이니 '개념맘'이니 하는 말들에 대해 데자뷔를 느낀다. 아이를 낳기 전, 결혼하기 전에 저자는 '된장녀'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된장녀들의 집합소이자 여성우월주의의 본거지로 자주 소환되는 학교를 졸업한 탓에 나는 그 학교 출신 같지 않다는 말을 칭찬으로 들으며 살았다. 명품에는 관심 없고 김밥천국의 소박한 맛을 즐길 줄 알고 스타벅스 커피 한 잔보다 같은 값의 포장마차 우동이 주는 운치를 아는 털털한 여자. 그런 말도 안 되는 기준들에 신경을 안 쓰는 듯하면서도 혹시 자기 자신이 그런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스스로 검열했다. 정말이지 누구에게 뭘 그렇게 증명하려고 했는지 모를 일이다.

이렇게 애쓰던 흑역사를 반복하고 싶은 마음은 없기에 저자는 남들이 그어놓은 선 안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하며 살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공중도덕을 지키며 아이와 함게 저자는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마땅히 최선을 다하겠지만, 이제부터 아이와 자신을 향한 무례함에도 당당하게 맞설 것이다. 맘충도 개념맘도 아니기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권리가 당연히 있는 것이다.  

 

 

노 민즈 노!

 

여전히 아이 의견을 묵살하는 어른들 투성이다. 아이가 직접적으로 '싫어', '하지 마'라는 말을 해도 왜 그러냐며 계속 장난치는 사람들이 집집마다 꼭 한 명씩 있다. 뽀뽀를 안 해주겠다며 휙 돌아서는 아이에게 "왜 그렇게 비싸게 구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봤고 자신의 의사가 계속 무시당하자 분한 마음에 우는 아이를 보곤 귀엽다며 깔깔 웃고 사진을 찍는 사람도 봤다. 이 사람들에게 대체 아이들이란 뭘까 궁금해진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분명히 아이는 상대방이 싫어하면 그 행동을 멈춰야 한다고 배웠는데, 정작 자신이 그런 대접을 받지 못한다면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 나아가 '누가 싫다고 해도 무시하고 계속해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다. 양육자에게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사항은 바로 '일관성'이다. 이랬다저랬다 '이현령비현령'식이라면 그 말은 힘을 잃고 만다. 현재 국민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는 조국의 '내로남불'처럼 말이다.

아이는 맞으면서 자란다(?)

 

어린 시절에 학대를 경험한 사람이 나중에 폭력성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학대 수준까지에 미치지 않을지라도 체벌을 받으면서 자란 아이들은 훗날 데이트 폭력을 저지를 위험성이 크다고 말한다. 이 연구는 미국 텍사스주립대 의대 정신과 제프 템플 교수팀이 실시한 연구였는데, 아래와 같은 내용을 밝혔다.

 

"부모가 사랑과 훈육을 이유로 들며 가하는 체벌은

사랑과 폭력 간의 경계에 대한 혼란을 일으킨다"

 

그야말로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사람을 구타하는 것은 안 된다. 특히, 남자아이들은 맞으면서 자라야 한다는 뿌리 깊은 편견이 있어왔다. 이는 특정한 폭력은 괜찮다는 논리를 만들어 주는 셈이다. 따라서, 모든 아이들은 모든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들의 아이들은 가해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아이의 인생에 애초부터 폭력의 역사를 만들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우리들이 아이를 제대로 키우는 일 중 하나일 것이다.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

 

'착하다'라는 형용사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라고 정의를 내린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착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입시켰으며, 아이들은 이를 반드시 지켜야 할 율법처럼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아이들은 분명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다.

 

물론 아이들은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칭찬받고 예쁨을 받기 위해서라면, 오로지 그 이유만으로 어떤 일들을 기꺼이 감내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억지 논리가 아닐까? 사람은 착한 행동을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는 행동을 하는 본인의 의지 선택에 따를 것이다. 따라서 '착한 어린이'가 되지 않더라도 충분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들은 모두 '나답게' 자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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