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7)

생각해 보면 개인의 사고를 그토록 붙들어 맨 일본의 국가권력은 놀랍다. 그것도 장구하게 유지해 왔다는 것이 더욱 놀랍고 유례없는 일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했기 때문에 기능과 세기(細技)가 우수하면서도 일본은 항상 남의 틀과 본을 훔쳐 오거나 얻어 와서 갈고 닦고 할밖에 없었다. 본과 틀이 없는 나라, 그들의 정치 이념은 창조의 활력이 위축된 민족을 만들었던 것이다. 오늘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날조된 역사 교과서는 여전히 피해받은 국가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어 있고 고래심줄 같은 몰염치는 그것을 시정하지 않은 채 뻗치고 있는 것이다. 가는 시냇물처럼 이어져 온 일본의 맑은 줄기, 선병질적이리만큼 맑은 양심의 인사(人士), 학자들이 소리를 내어 보지만 날이 갈수록 작아지는 목소리, 반대로 높아져 가고 있는 우익의 고함은 우리의 근심이며 공포다.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도 비극이다. 아닌 것을 그렇다 하여 분명한 것이 차츰 부풀어 거대해질 때 우리가, 인류가, 누구보다 일본이 자신이 환란을 겪게 될 것이다.


(39-40)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종교나 도적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것들은 적시적소에 써먹은 도구에 불과하고 어떤 권력이든 도구화하려는 속성은 있게 마련이지만 일본처럼 철저한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일사불란하게 그런 그들에게 내세관이 희박한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유한(有限)을 잘 소화시켜 온 민족이다. 유한은 인간의 숙명이지만 그러나 인간이기 때문에, 생명이 오는 곳 생명이 가는 곳, 그 한() 때문에 사람은 유한 밖으로 나가려 몸부림치는 것이며 그 몸부림은 신의 축복인 창조의 능력으로 나타난다. 신의 축복이 없는 나라 일본, 역사상 한 번 기회가 있었다. 시마바라의 난으로까지 몰고 갔으나 섬멸되고 만 천주교도들, 답회령(踏繪令)으로 수없는 순교자를 냈던 그때, 아마테라스를 뛰어넘고 영혼의 구제로 향한 죽음들이 있었다.


(58)

나는 내 자신을 소개하기를 철두철미 반일(反日) 작가다.” 두 사람은 약간 놀라는 것 같았다. 왜 충격을 받을까? 전에도 그런 얘기는 했었고 일본인들은 가만히 듣는 것 같았다. 그러나 깨달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반일을 당연하다고 본 그들은 이제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그들과 나는 꽤 오랜 시간 얘기를 했다. 남경(南京, 난징) 학살 사건에 관한 말이 나왔을 때 그들의 안색은 변했고 실은 겁이 많은 것이 일본 사람 아니냐 했을 때는 당혹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손님에게 너무 무례했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62)

물질로 환산할 수 없는 피해였지만 그들은 거의 보상하지 않았다.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통분이 무슨 사과인가? 그러고도 욕을 안 먹겠다는 것은 뻔뻔스러운 일이다. 가와무라 씨는 한글세대는 반일이라는 대전제를 전면에 세우고 있으나 구체적 체험과 연구 관찰이라는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다만 반일이라는 민족교육으로 길러진 지식과 근본적 이미지에 의해 일본을 단죄, 규탄하는 태도를 가지기 일쑤다 했는데 동감이다. 그러나 동감의 뉘앙스는 상당히 다르다. 도식적인 교육을 떠나 생생한 역사적 사실 역사적 입김에 접할 수 있다면 한글세대는 무조건 감정적 시비를 떠나 조목조목 따지고 넘어가는 사상적 강화(强化)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일본의 전후세대도 우리 한글세대에 대한 불만을 사실에 입각하여 반박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관찰하고 연구해야만 한다. 대로(大路)는 결코 일방통행일 수 없기 때문이다.


(76)

전쟁은 문화의 어머니요 어쩌고 하는 말도 생각이 난다. 일본 지식인들의 대부분은 한국인의 분노를 지겹고 불쾌하고 귀찮아한다. 언제까지 이럴 것이냐, 하면서도 철도를 놓아주었느니, 학교를 세워주었느니, 아무도 그것을 부탁한 바 없는 일을 좀스럽고 쩨쩨하게 늘어놓는 데 대해서는 말이 없다. 간간이 들려오는 침략이 아니라는 망언에 대해서도 무반응이다. 그들의 계속되는 망언은 괜찮아도 한국인의 분노는 왜 지겨운가. 사리를 명백하게 하지 않는 이상 잘못은 되풀이된다. 과거지사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데서 오는 근심이다. 장차 세계에서, 인류라는 차원에서 일본은 어떤 모습으로 있을 것인가. 인류에 속하는 일본인 역시 오늘 군비 확장의 의미를 깊이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자결하지 못하는 모친의 목을 조르는 아들의 비극이 없기 위하여.


(93)

언제였는지 일본인의 저축열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기사를 읽었을 때 일본인은 저금통장을 위하여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람은 결코 저금통장을 위해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살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사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저금통장이 필요한 것이지 저금통장을 위해 삶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쿠타가와의 예술지상주의가 만일 저금통장을 위한 삶 같은 것이라면 그것은 전적으로 허위인 것입니다. 착각이거나 아쿠타가와뿐만 아니라 일본인의 의식구조는 반생명적인 경향이 농후하며 그것이 체제에서 굳어져 버린 것이고 보면 분재와도 같이, 축소되고 불구적인 정신세계를 떠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국체를 부정하고 진실에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106-107)

이삼 년 종안 나는 우리 뒷동산에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 올리는 일을 계속하여 육십오 계단이라는 꼬불꼬불 계단이 만들어졌습니다. 비록 만리장성은 아닐지라도 내 손자가 오르내리는 기쁨의 자리가 되었고, 오른다는 것 무한히 오른다는 것 무한히 간다는 것…… 나는 그 계단을 끝내고서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계단 위에 산이 계속되고 또 울타리가 없다면 계단은 계속하여 쌓아 올려졌을 거라고. 그리고 시시포스의 바위를 생각했지요. 부정적, 근원적으로 부정적인 인생과 문학 행위. 아마도 긍정적이었다면 갈 길은 없었을 것이요, 배불리 먹고 눈물이 없고 죽음이 없고 사랑도 없고 존재뿐인 삶은 비인간 로보트가 아니겠습니까.


(114)

인간들의 지칠 줄 모르는 파괴와 약탈로 아시다시피 지구는 지금 만신창이가 돼 있습니다. 설령 지구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자업자득, 어디 봄의 죄이겠습니까. 소생시켜 놓은 생명들이 참살을 당하고 멸종이 된들 봄에게는 임무 밖의 일이지요. 다만 길손일 뿐, 노쇠해 가는 길손일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그도 인간이 저질러서 맞이하게 될 재난에 희생되어 처지일 수도 있고 지구와 생명들과 운명을 같이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노쇠한 봄이라는 말은 물론 합당하지 않습니다. 늙는다는 것은 세월의 조화인데 계절 자체가 세월이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늙고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오도 가도 못하게 합니다.


(119)

내 생각에는 말입니다. 인간의 이성은, 또 창조적 열정은 균형을 잡고 균형을 잡아주어 존재하게 하지만 인간의 욕망과 탐욕은 균형을 잡아주어 존재하게 하지만 인간의 욕망과 탐욕은 균형을 파괴하고 존재를 흔들리게 하는 것으로 바로 오늘, 현재가 그 같은 것을 여실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지구 도처에서 균형을 망가뜨리고 있지 않습니까. 땅이 죽어간다거나 물이 썩어간다거나. 이젠 그것이 대단한 일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보다 가공할 일은 오존층이 찢기어 점점 넓어져 가고 있다는 것, 환경호르몬에 관한 것, 지구온난화 현상, 여차하면 자멸의 무기 핵폭탄 등. 이것들이 하늘이 내린 재앙이라 하겠습니까? 지구의 사막화, 도처에서 범람하는 물, 이런 상황이 천재인가요?


(161)

일본인에게는 예()를 차리지 말라. 아첨하는 약자로 오해받기 쉽고 그러면 밟아버리려 든다. 일본인에게는 곰배상을 차리지 말라. 그들에게는 곰배상이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고 상대의 성의를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힘을 상차림에서 저울질한다.


(164)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것이며 민족주의도 필요 없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5)

개화기는 새로운 외부 문화와의 충돌을 경험한 시대였다. 그 충돌은 개화기 이전부터 일어났으니 그건 바로 천주교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 대응은 박해로 나타났다. 조선 정부의 천주교 박해는 당파싸움으로 인해 증폭되었다. 이는 개화기가 결국 망국(亡國)으로 종결된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조선의 자폐적 시스템과 더불어 내부갈등이 나라의 진로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였다는 사실을 폭로해주기 때문이다. 개화기로 들어가기에 앞서 천주교 문제를 살펴보고 넘어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72)

블라디보스토크의 블라디는 러시아어로 정복하다는 뜻이고 보스토크는 동쪽의 의미인바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가 동쪽으로 와서 정복한 도시인 셈이다. 이전 이 땅은 발해의 중요한 거점 지역이었고 이후로는 여진과 거란의 땅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이 땅을 한자로 해삼위(海蔘威)라고 표기했는데 바닷가에 해삼이 많아서 해삼위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바다도 4~5개월간 결빙하기 때문에 부동항을 얻으려는 러시아의 남하정책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90)

역설이지만 서학은 물론 동학에 대한 이러한 탄압은 조선 조정이 자신들의 죄, 즉 민생을 도탄에 빠뜨린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걸 시사하는 건 아닐까? 민생을 도탄에서 건져낼 수 없는 무능이, 언제든 민심을 폭발시킬 수 있는 위험요소 제거에만 총력을 기울이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 게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망국(亡國)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99)

다블뤼의 다음과 같은 진술은 자선(慈善)의 원조 국가가 조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할 정도다.

이 나라에서는 자선 행위를 진정으로 존숭하고 실천한다. 사랑방에서 받는 대접 이외에도 식사 때 먹을 것을 달라면 거절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일부로 그를 위해 밥을 다시 하기도 한다. 들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식사하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즐거이 자기 밥을 나누어준다. 뱃사공들은 밥을 먹지 않고 배 타러 나온 사람과 나누어 먹는 것을 철칙으로 한다. 잔치가 벌어지면 언제나 이웃 사람들을 초대해서 형제처럼 모든 것을 나눈다. 여비가 없이 길을 떠나는 사람은 엽전 몇 닢의 도움을 받는다. 없는 사람과 나누는 것, 이것이 바로 조선인이 가진 덕성 중의 하나이다.”

먼 훗날에라도 조선에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161)

조선은 강화도조약에 따라 개항을 하게 되었고 근대적인 서양 문물을 수입하게 되었다. 1876년 부산이 개항하고 이어 1879년 원산, 1880년 인천이 개항했다. 학계에선 근대화가 되는 시대를 의미하는 근대가 언제부터인가 하는 논쟁이 있는데 학계의 통설적 견해는 아무런 준비 없이 강요된 것이긴 하지만 개항을 통해 새로운 서구 중심의 국제질서에 편입한 1876년을 근대의 시발점으로 보고 있다.


(188-189)

금장태는 최한기는 조선 후기 실학파의 마지막 인물이자 근대 개화사상으로 한걸음 나아갔던, 그 기대의 가장 앞선 진보적 지성인이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저술은 1000권이나 된다는데 세상에 알려진 것은 아직 100여 권뿐이다. 그의 탁월한 학문의 폭넓은 식견이 알려지자 당시의 여러 재상들은 그를 조정에 끌어들이려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뜻을 펼 수 없는 상황에서 벼슬하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다만 신미양요로 강화도가 미국 함대에 침략당하자 친분이 있던 유수의 자문요청에 조언한 바 있다. …… 자신의 시대를 새로운 것으로 낡은 것을 바꾸는변혁의 시대로 규정한 그는 차라리 옛것을 버릴지언정 지금을 버릴 수는 없다하여 진보정신을 표방하고 과학과 문명이 더욱 발전하고 역사가 발전해나간다는 것을 확신했다.”


(284)

한편 최초의 미국 유학생 유길준의 미국 생활은 어떠했는가?

미국 <뉴욕타임스> 1883 11 8일자는 사절 수행원의 한 사람인 유길준은 자기나라의 옷을 벗고 지금은 서양 옷을 입고 있다. 그는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시의 에드워드 모스(1838~1925) 교수 지도하에 학생으로 이 나라에 머물 것이다. 어제 저녁 이 젊은이는 5번가(뉴욕)에 산책을 나갔다가 길을 잃었다. 그러나 몇 마디의 영어를 사용하여 경찰관에게 호텔 가는 길을 물어 찾아왔다.”고 보도했다.


(301)

<한성순보>는 신문발간의 동기와 기술적 지원은 일본에 의존했지만 신문의 뉴스원, 내용과 관련해선 중국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이 신문이 기사로 가장 많이 다루었던 국가는 중국(453)이었으며 그 다음으로 베트남(165ㅎ회), 프랑스(71), 영국(56), 일본(53), 미국(47) 등이었다. 중국 관련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이유는 조선과 중국의 관계가 밀접했다는 것 이외에 영국, 미국을 비롯한 열강의 선교사나 상인 등이 발간하던 중국계 신문들을 주요 뉴스원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한성순보>의 실무자들은 거의가 한학자와 중국어 역관(譯官) 출신들로서 한문에는 능통한 반면 일본어는 몰랐다는 점과 이들이 일본보다는 중국을 더 숭상했다는 점도 작용했다.

베트남, 프랑스 관련 기사가 많았던 건 1884 6월 프랑스의 베트남 침략(1883) 문제로 일어난 청불전쟁과 베트남이 프랑스에 먹히는 비극에 대한 동병상련(同病相憐) 감정 때문이었다.


(334)

갑신정변의 내각은 청춘정권이었다. 내각 서른두 명의 연령을 보면 20대와 30대가 3분의 2 이상을 차지했다. 김옥균 서른세 살, 홍영식 스물아홉 살, 서광범 스물다섯 살, 박영효 스물세 살, 서재필 스무 살 등 주동자들은 더 젊었다. 혈기가 지혜를 앞섰음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336)

너희들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군주는 그렇게 개화를 버렸다. 김옥균은 군주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쏟는다. 이제 곧 천하대역죄인이 될, 그의 부모와 아내와 아이들은 몰살을 당하게 될, 그리고 자신은 10여 년의 망명객이 될 것이며 망명지 일본에서도 버림받은 후 결국 중국 상하이에서 조선 정부가 보낸 암살자에게 목숨을 잃을, 그러나 군주를 사랑하였고 조선의 강대한 힘을 꿈꾸었던 김옥균은 이렇게 군주와 마지막 작별을 했다. 박영효, 서재필, 서광범 등이 김옥균과 함께 후퇴하는 일본군을 쫓아갔다. 군주의 곁에는 이제, 청군과 군중들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될 홍영식, 박영교만 남았다. 실패한 혁명 뒤에 남은 것은 군중의 분노뿐이다. 거리는 살육으로 뒤덮인다. 일본인과 개화파들, 그들의 가족은 보이는 대로 습격을 당한다. 김옥균의 집과 일본공사관은 성난 군중의 손으로 불타올랐다.


(345)

이어 신용하는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실패 요인은 일본군 무력을 차용한 요인이라며 갑신정변은 아무리 필요하고 애국적인 목적을 갖고 있어도 그 수단에 있어서 침략의도를 가진 일본의 힘을 일부 빌려서 수행하려 해서는 실패하고 만다는 뼈아픈 역사의 교훈을 우리들에게 남겨주었다.”고 평가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

전쟁이라는 비상상황 앞에서 기후대응은 언제까지나 뒷전으로 미루어도 좋은 것일까. 현재 기후과학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일은 온난화로 인해서 영구동토층과 심해에 묻혀 있는 메탄이 대기 중으로 풀려나서 지구온난화가 손쓸 수 없이 가속화하는 것이다. 이 위험을 전 세계 440여 기 원전에서 멜트다운이 일어나는 일에 비견하는 전문가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미 십수 년 전부터 지구온난화의 결과로 많은 지역, 특히 남반구에서 전쟁의 참화와 하등 다를 것 없는 재난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이렇게 인류, 특히 북반구 선진국 주민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무기를 들지 않고도 일상적으로 전쟁에 가담해왔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약탈적 관계 한가운데에 기후변화와 군국주의가 맞물린 위기가 놓여 있는 것이다.


(25)

환경정책은 실종되고 오로지 산업정책만 난무한 이번 정부의 폭주는 고작 1년 만에 국토 곳곳을 난도질하며 짓밟고 있다. 기후위기 극복이라는 지구적 합의에도 빠른 걸음으로 역행하는 정부다. ‘대한민국 1호 세일즈맨을 자처하는 대통령은 환경부에서 산업부처가 되라면서 대한민국의 환경과 우리의 미래를 시나브로 팔아먹고 있다. 다만 무엇을 대가로 받는지는 모르겠다. 여하간 환경부가 아주 기본적인 존재의무도 저버리고 반()환경 정권에 충실히 복무하고 있는 몇 가지 사례들을 나열해보겠다.


(28-29)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환경성, 경제성 등 모든 면에서 낙제점으로 이미 지난 정부 때 불허했음에도 막가파식 억지 논리를 받아들여 환경부는 손바닥 뒤집듯 환경영향평가를 협의해주었다. 한국환경연구원, 국립공원공단, 국립생태원, 국립환경과학원, 국립기상과학원 등 5개 전문기관이 부정적인 검토의견을 냈지만 대통령의 공약사항은 무조건 통과다. 해당 지역은 국립공원의 자연보전지구, 백두대간 보호지역 중 핵심구역,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보호지역 카테고리II(보전 중심 관리),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등 국내외 법제도로 겹겹이 보호되고 있는 곳이다. 이제 우리 국토 중 관광용 케이블카가 놓이지 못할 곳은 없다.


(37)

우리가 2050년 탄소중립을 하려면 2021 6 8000t이 넘는 총배출량을 2050년에는 8000t(시나리오 A) 수준으로 줄이고, 8000t을 흡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2030년까지는 총배출량 5 1200t으로 줄여야 한다. 앞으로 7년여 동안 1 6800t을 줄이는데, 그다음 20년은 4 3200t을 줄여야 하니 감축부담을 뒤로 미룬 것이다. 이번에 정부가 수립한 계획의 가장 큰 특징도 2030년 감축목표량을 윤석열 정부 임기 이후로 떠넘겼다는 것이다. 현 정부 임기 동안 2030년까지의 총감축량 25%를 줄이고, 다음 정부는 3년 만에 75%를 줄여야 한다.


(95)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 환경부 등이 전쟁 9개월쯤 군사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추계하여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전쟁 7개월 동안 배출된 온실가스는 약 1tCO2eq에 달하고, 이는 네덜란드와 같은 국가가 같은 기간 동안 배출한 온실가스량과 유사한 수준이다. 그러나 전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전투는 우크라이나에서 재생에너지 단지가 밀집한 지역 위에서 벌어지고, 기후위기 대응 프로그램이 운영되던 시설 인근을 배경으로 하기도 한다. 전쟁은 어떤 경제활동보다도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또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한 국가와 시민들의 노력, 성과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기후위기에 악영향을 미친다.


(147)

재생에너지를 늘려야 하지만 주민들의 목소리가 완전히 묵살당하는 지금과 같은 방식은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2013년 밀양송전탑 반대운동은 원전에서 출발하는 송전선이었고, 반핵운동의 일환이기도 했지만 지금 재생에너지 때문에 다시 똑 같은 일이 벌어질 상황이니 기가 막히지요. 발전원이 원자력에서 재생에너지로 바뀌었다고 해서 결코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어요. 농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발전단지나 송전선 인근 주민들에게는 똑 같은 폭력일 뿐입니다. 얼마 전에 전남 영광에 계신 분과 통화를 했는데, 영광에는 원전이 6기나 있고 방폐장 때문에도 주민들이 고초를 겪는 곳이잖아요, 그런데 신안 앞바다에 8GW 해상풍력단지가 조성되면서 또 송전선을 건설한다는 것인데 이게 영광을 지나가요. 게다가 고형폐기물(SRF) 열병합발전소라고 한빛원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산업폐기물을 소각하는 발전소도 추진되고 있어요. 도대체 세상이 이래도 되는 거냐고 탄식하시는데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게 우리 현실입니다.


(158)

한번 훼손되고 오염된 땅을 농지로 복원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농지에 불법폐기물 투기하는 일도 종종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것도 빨리 해결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서둘러 계획을 세워야 된다고 하는 거예요. 지목이 농지인 것 외에도 간수할 방법도 찾아야 됩니다. 학교에서 농사를 가르치고, 지역사회마다 텃밭을 마련해서 사람들이 농사지을 수 있도록 하고, 아직 남아있는 농지를 최대한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됩니다.


(207)

지금 우리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죽음을 목격하고 있다. 지구 위에서의 삶() 자체의 종언에 맞닥뜨리고 있다. 생물종, 바다, , 호수, 강이 퇴락하고 있다는 기사가 하루도 빠짐없이 나온다. 그리고 이 모든 현상이 지구의 생물지구화학 체계들을 교란하고 있다. 우리는 마비가 된 것 같다. 아니면 매혹되어 있는 것일까. 지금 인류는 더할 나위 없는 규모로 죽음을 유발하면서, 동시에 죽음을 있는 힘껏 거부하고 있다. 어차피 맞게 될 죽음을 이토록 애써 부정하거나, 언젠가 닥칠 죽음을 예고할 뿐인 얼굴의 주름 같은 것을 물리치기 위해서 이토록 돈을 퍼붓는 문화는 없다. 기술에 의해서 우리의 두려움은 더욱 확대되었고, 죽음과 대면하는 일은 역사의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일이 되었다. 한편 아이러니컬하게도 폭력과 죽음을 묘사하는 영상물은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아이들은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에 몰두하고, 약물, 알코올 중독은 만연해 있으며, 사람들은 운전을 거칠게 하는 등 위험한 행동을 하면서 죽음에 추파를 보낸다. 우리는 죽음을 무서워하면서 또 거기에 끌린다. 이런 현상은 사회적으로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69)

윈첼은 리벤트로프를 신사인 척하는 사기꾼이라 불러. 그가 전쟁 전에 뭘 했는지 아니? 샴페인을 팔았어. 술을 파는 장사꾼이었단다. 샌디. 그는 사기꾼이야. 재별 정치인에 도둑에 사기꾼이지. 심지어 그의 이름에 붙은 도 가짜야. 하지만 넌 이런 것들 것들을 전혀 모르고 있어. 넌 폰 리벤트로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괴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괴벨스와 힘러와 헤스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하지만 난 알고 있다. 폰 리벤트로프 씨가 다른 나치 전범들과 호화 만찬을 즐기는 오스트리아의 성이 어떤 곳인지 들어봤니? 어떻게 그의 것이 됐는지 알아? 빼앗았어. 성주(城主)인 귀족을 힘러가 강제수용소에 집어넣었고, 그래서 술 장사꾼의 소유가 된 거야! 샌디, 단치히가 어디인지, 거기가 어떻게 됐는지 아니? 베르사유 협약이 뭔지 알아? <나의 투쟁>에 대해 들어봤니? 폰 리벤트로프에게 물어봐라. 그가 대답해줄 거다. 그리고 나치의 관점은 아니지만, 나도 대답해줄 수 있어. 나는 오랫동안 지켜봤고, 글을 읽었기 때문에 그 범죄자들이 누구인지 알아. 그래서 너를 그놈들 근처에 못 가게 하려는 거야.


(331)

아버지의 삶이 고되다는 건 아침에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술을 한 잔씩 하는 걸 보고 알 수 있었다. 보통 우리집에서 포어로제스 한 병이 비려면 몇 년이 걸렸다. 절대금주를 유난히 강조하는 어머니는 스트레이트 위스키의 냄새는 물론이고 거품이 이는 맥주잔을 보기만 해도 치를 떨었다. 그리고 아버지 역시 두 분의 기념일이나 저녁식사에 초대한 보스에게 얼음을 넣은 포어로제스를 대접할 때가 아니면 언제 술을 마셨던가? 하지만 이제 아버지는 시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더러워진 옷을 갈아입고 샤워하기도 전에 작은 유리잔에 위스키를 따른 후 머리를 뒤로 젖히며 벌컥벌컥 마셨고 그런 뒤에는 즉시 백열전구를 집어삼킨 듯한 얼굴로 변했다. “좋아!” 아버지는 큰 소리로 말했다. “아주 좋아!” 그런 뒤에야 아버지는 긴장을 풀고 양껏 음식을 먹었고 단 한 번도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았다.


(465-466)

마치 이렇게 해괴한 경우에 다른 사람의 눈에는 옳은 판단과 틀린 판단이 분명히 보이는 것처럼, 그런 곤경에 처했을 때 다른 누구도 어리석음의 손에 이끌리지 않는 것처럼 어머니의 비통함은 후회로, 자신을 향한 무자비한 채찍질로 표출되었다. 어머니는 단지 직감에 따라 행동했으며 그 직감은 의심할 이유가 전혀 없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올바르지 않은 판단을 내렸다며 자책했다. 하지만 정말 가혹하게도 어머니는 설령 본능을 거부하고 행동했다고 해도 어떤 이유를 찾아내 자신의 행동을 개탄했을 정도로 무조건 자신이 파국적인 실수를 저질렀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어머니가 고통스러운 혼란에 빠져 자책하는 것을 지켜보는(그리고 그 자신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온 것은, 사람이란 옳은 일을 하면서 동시에 잘못된 일을 할 수 있고, 가끔은 그것이 너무 잘못된 일이라 혼란이 지배하고 모든 것이 위태로울 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기다리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으며(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곧 뭔가를 하는 경우일 때를 제외하고…… 그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아주 큰일을 하는 것이므로) 심지어 감당할 수 없는 삶의 흐름에 매일 체계적으로 저항하는 어머니에게도 그렇게까지 불길한 혼란을 감당할 체계적인 방법은 없구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74-75)

회의는 새해 시무식 직후 사무동 1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회장은 임원과 팀장들의 갈채 속에 입회해 회의실 안쪽 가장 큰 책상 뒤에 앉았다. 임원들이 차례로 일어나 발표를 시작했다. 무엇을 어떻게 혁신하겠다는 것인지 내용은 하나도 없었고 핵심 관리 지표라는 것도 모두 타 회사 자료에서 베꼈는지 회사 실정과 전혀 동떨어져 있었다. 중언부언에 말끝마다 혁신, 혁신, 혁신 모두 그뿐이었다. 말밖에 안 되는 말이 중력 없이 떠돌았고 드러낸 것보다 감춘 것이 더 많은 실적 수치들은 속이 텅 빈 전망을 쌓아 올렸다. 하지만 회장은 아무 불만도,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수량 넉넉한 호수처럼 관대하게 웃었고, 횡설수설하는 임원들을 지켜보며 이따금 알아듣겠다는 듯 고래를 끄덕였다. 회의는 원만히 이어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84)

아무리 그렇더라도 귀가 있고 생각이 있으면 임원들의 횡설수설을 모를 리 없지 않은가? 상관없었다. 회장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틀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회장의 힘이고 지위고 회장을 둘러싼 찬란한 광배였다. 회장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강력하게 군림했다. 임원들이 가짜를 말해도 회장이 진짜라면 진짜가 되고 진짜를 말해도 회장이 가짜라면 가짜였다. 사고 원인을 결정한 사람도 회장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했다.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었다.


(99)

문서라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 것인가? 문서란 엉성하고 허술한 현실에서 부스스 떨어져 내린 각질에 불과했다. 하지만 누가 문서를 우습게 보는가? 아무도 없다. 모든 사람이 문서를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는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현실을, 회사를, 정부나 국가를, 종교를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는다. 누운 배 한 척이 그렇게 됐듯 사실이라는 것은, 참이나 거짓이라는 것은 힘으로 흔들 수 있었다. 세상은 성기고 흐릿한 실체였다. 그것을 움켜쥔 힘만이 억세고 선명했다. 힘은 우스운 것이 아니었다. 아마리 우스운 것도 우습지 않게 만드는 것이 힘이었다.


(116)

성질 괄괄하고, 억센 부산 사투리를 쓰고, 돌려 말해야 할 것 같으면 차라리 입을 다물고, 현장 안 나간 지 보름이 지나도록 턱 끈 자국이 지워지지 않을 만큼 밖으로 쏘다니며 일하던 남자에게 있는 것은 결국 정이었다. 그 남자가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은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수많은 사건 사고를 겪고 당하면서 그것을 이해하려고 애쓰거나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덮어둔 채 버티고 견딜 수 있게 해주던 그 정이, 정나미가 떨어졌다는 뜻이었다.


(161)

황 사장이 입을 열었다. “오늘 회의를 기준으로 삼기 바랍니다. 이전에도, 또 다른 회사에서도 똑같이 해왔다는 말 같잖은 소리는 집어치우십시오. 모른다, 확인하겠다, 말만 하지 말고 미리 준비해서 들어들 오세요. 이 회의는 주간 공정 회의입니다. 회의 이름에 걸맞게 지난주 생산 실적을 확인, 정리하고 다가올 한 주의 생산을 제고할 방안을 미리 세운다는 관점에서 준비들 해오세요. 이 회의에 참석한 여러분은 모두 관리자고 책임잡니다. 11초가 귀한 사람들입니다. 설명 같은 변명, 변명 같은 핑계, 핑계 같은 거짓말, 불순하고 무책임한 잡설로 자신의 시간을 허비하고 남의 시간을 뺏는 일이 없도록 하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황 사장은 수첩을 덮었다.


(166-167)

황 사장은 자신의 책상 양옆으로 앉아 있는 임원들을 봤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회사의 모든 사람이 그 고통을 나눠 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고통을 나누는 게 책임을 나눠 진다는 건 아닙니다. 회사가 어려워진다면 잘못은 내게 있고 또 각자 가지 분야에서 최고참이자 전문가인 임원들, 우리 경영진에 잘못이 있습니다. 책임 역시 내 책임이고 우리 경영진의 책임입니다. 수십 년 일해온 우리가 각자 자신이 맡은 일조차 장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뒤집어 말해 돌발 상황과 변수를 통제하지 못하고 다른 부서가 일하는 것에 자기 일을 맞춰나가겠다고 하는 이 상황이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내 일의 주도권을 남에게, 외부 요인에 내줬다는 게 명백한데도 그걸 되찾을 거라고, 되찾아야 한다고 어떻게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실패와 지연에 적응하고 익숙해질 수 있습니까?” 회의실 안은 적막했다.


(177)

결국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과거입니다. 이미 일어나고 지나간 것을 어떻게 바꾸는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테지만 나는 다르게 봅니다. 과거야말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겁니다. 링 위에서 똑바로 못 했다면 이유가 뭐겠습니까? 링에 오르기 전까지, 링 밑에서 똑바로 안 했기 때문입니다. 현재를 견디고 헤쳐나가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과거, 되레 우리 발목을 잡고 억압하는 과거, 인습, 껍데기뿐인 규정과 규제, 타성, 그런 것들이야말로 바꿀 수 있고 바꿔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현재를 돌파하는 데 도움 주는 것들, 전통, 통찰, 지혜라고 부르는 것, 아니 더 쉽게 말해서 지금도 쓸모 있는 것,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것, 많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옳고 올바르다고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것만 과거에 남겨둬야 합니다.


(241)

그게 말입니까? 잘못은 한 사람이 저지르고 수습은 왜 열 사람이 나눠 합니까? 임원이라서요? 생각들 똑바로 하세요! 임원이기 때문에 한 사람도 수습할 일 없게 일해야 하는 겁니다! 당신들이 똑바로 안 하면 당신들 밑에 있는 수십 명이 바로 당신 하나 때문에 개고생, 헛고생을 해야 한단 말입니다! 이사 행세, 상무 행세, 뭐든 다 아는 척 거들먹거리면서 대접이나 받고 특권이나 누리라고 회사가 그 많은 연봉을 당신들에게 지급한다고 생각합니까? 당신들부터 똑바로 하세요!


(301)

월급이란 젊음을 동대문 시장의 포목처럼 끊어다 팔아 얻는 것이다. 월급을 받을수록 나는 젊음을 잃는다. 늙어간다. 가능성과 원기를 잃는 것이다. 존재가 가난해진다. 젊음이 인생의 금화라던 황 사장의 말 역시 수사가 아니다. 이대로 10, 20년 또 어느 회사에서 삶을 보내든 그 회사가 모두 이렇다면 내 인생의 금화는 결국 몇 푼 월급으로, 지폐로 바뀌어 녹아버릴 테고 나는 그저 노인이 돼 있을 터였다. 그다음은 끔찍하다. 명예퇴직, 권고퇴직, 그런 말 아닌 말로 수십 년 회사 일에만 길들고 늙은 사람인 채 양계장에서 풀어준 노계처럼 세상에 나올 것이다.


(302)

나는 계속 일했다.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고 산정으로 밀어 올리면 굴러떨어지고 다시 밀어 올리면 다시 굴러떨어지는, 아무 희망도 보람도 주지 않는 시시포스의 바위처럼 매일 굴러떨어졌다. 젊은 카뮈는 매일 굴러떨어지는 바위의 부조리와 그것을 각성하면서도 그치지 않는 투쟁에 관해 썼다. 투쟁을 통해 부조리를 비웃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유일한 미덕이고 행복이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그 바위는 결국 모든 것을 깔아뭉갠다. 신이 아닌, 노쇠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결국 바위를 이기지 못한다. 어리석음도, 각성도, 비웃음도, 경멸도, 희망도, 젊음도 굴러떨어지는 바위의 요란한 소리에 묻힌다. 쾅쾅쾅! 늙은 인간을 깔아뭉갠 바위만이 저 끝, 힘이 다해 더 굴러갈 수 없는 곳에 멈춘다. 모든 것이 침묵한다.


(326)

분명한 것은 일을 일로 하지 않는 회사는, 야합과 담합으로, 협잡과 인습으로, 사람에게 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에 사람을 끼워 맞춰가며 시키는 회사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치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