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벌써 이 책이 출간된 게 언젠데 이제와서 스포에 대처하니 마니 하는 뜬금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느냐고 해도 별달리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저 일반적인 읽기 자세를 이야기하는데 특정한 시기나 주제에 대한 제한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난 그다지 스포일러에 구애받지 않기로 하고 있다. 다만 조금의 스포일러조차 용납하고 싶지 않을 때는 다른 사람보다 먼저 읽으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 정도 성의와 노력은 보여야 비로소 스포일러에 대해 할 말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다.

 뭐 다른 방법도 있는데, 스포일러가 될 모든 글에서 눈을 돌리고, 소리에 귀를 막는 방법이다. 단순한만큼 효과는 확실하리라.

 

 별달리 할 말도 떠오르지 않고, 이런 소설류의 줄거리를 주절거리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에 시덥잖은 줄 알면서도 주절거려 봤다. 그 덕에 최소한 나 자신이 느끼는 어색함은 대부분 희석되었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최초의 타협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언제일까? 

이런 물음 역시 부질없기는 마찬가지이리라. 그 시기는 사람에따라 제각각일 것이고, 그 순간을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친 사람도 무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그리고 등장인물들은 그 정도는 다르지만 저마다 실존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그 갈등은 우연을 통해 극적인 화해에 이르기도 하지만, 결국은 크고 작은 비극으로 치닫게 된다. 

 

 그 과정이 유난히 비극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모든 것을 잃고 난 다음에도 삶은 여전히 계속되고, 그 삶을 지속하고자 하는 의지 역시 조금도 옅어질 줄 모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러한 과정을 겪는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를 존속하고자 하는 의지는 더 강렬해진다. 

 또하나의 아이러니는 그러한 비극 속에서만 빛을 발하는 재능, 혹은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극한의 상황에 처한 인간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극단적 절망은 오래 꿈꿔왔던 일을 이루어 낼 수 있을 만큼의 잠재능력을 일깨운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성공과 성취는 더 길고 깊은 고뇌와 좌절을 불러일으키는 최악의 장애물로 그의 앞을 막아선다. 신은 여전히 존재하며 그 신은 그의 죄악이 어떤 응보도 없이 용서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잔혹한 존재인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살아간다. 그것은 그가 혼자가 아니며 그를 사랑하고, 그가 사랑하는 존재가 함께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성경에 욥기라는 욥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장이다. 이 욥이라는 인물은 선한 자로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아 인생 전반에 걸쳐 많은 축복을 누린다. 그러던 어느날 그를 놓고 사탄과 하나님은 내기를 하게 된다.그 내기의 결과, 욥은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을 잃는다. 가족, 재산 그가 누리고 쌓아왔던 모든 것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강탈되는 것이다. 처음엔 그도 원망과 실의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결국 그는 믿음으로 그 시련을 이겨내고 새로운 복을 누린다.

 

 어찌보면 해피엔딩 같지만 이것만한 비극이 없다. 왜냐하면 다른 어떤 것으로 보상받는다 해도 그가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새로 자식을 얻을 때마다 잃어버린 자식 생각이 났을 것이며, 부와 풍요가 늘어갈수록 함께 누렸던 옛 기억들이 선명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 번 잃어버린 실존은 되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자신의 존재 자체를 잃어버리고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그 모습이 과거와 아무리 비슷해진다해도, 설사 과거보다 더 풍요로워진다해도 늘 공허하지 않을까.

 

 이 소설은 내게 현재 지닌 것들을 소중히 여기라는 메시지로 다가왔다. 

지금 꿈을 가지고 있다면 힘들어도 그 꿈을 지켜라. 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자꾸 타협을 반복하다보면 점점 지쳐갈 것이고, 그 피로감은 너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옮겨 갈 것이며, 결국 네가 지키기 위해 너 자신을 희생시켰던 것을 희생시켜가며 네 삶을 지속해 나가게 될 것이다. 타협이 안겨주는 풍요가 축복처럼 느껴지겠지만 그것은 네가 메피스토텔레스와 맺은 계약을 실행해야 할 날이 오기 전 까지 지속될 행복이다. 그날은 느닷없이, 득달같이 찾아 올 것이며 피할 수도 덜 수도 없는 대가를 요구해 올 것이다. 

 기억하라. 이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다. 언젠가 반드시 치러야하는 빚을 내는 것이다. 그 빚을 갚아야 하는 날은 충동과 함께 올 것이며, 느닷없이 일어나는 분노가 그 날을 여는 열쇠가 되리라. 

 

 극단적으로 적었지만 그만큼 꿈을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나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하다. 

아직은 좀 더 꿈을 꾸고 그 꿈을 좇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생의 마지막 날까지 그 일을 계속하고 싶다. 

 

 나를 지키며 나로 살아가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은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무엇이, 누가 희생될 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은 언제나 내게 두려움을 안겨준다. 그것이 세상을 겁내게 하고 사람을 겁내게 만든다. 그럼에도 꿈을 계속 좇을 수 밖에 없다. 

 

 책은 언제나 내 편이다. 허락되는 한도 내에서 그 내용을 내게 맞게 내게 편하게 받아들여도 책은 나를 비난하지 않는다. 

 

 나는 살아있다. 나로 살아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로 살아갈 것이다.

내 삶은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타인이 퍼뜨리는 스포일러를 따라 살아갈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지 않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