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4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사랑과 낭만, 오딧세이의 오디세우스 못지않은 모험이 담겨있던 소설이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 가장 멀다"는 제목의 책이 있다. 뭐,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제목이 마음에 들어 기억에 남은 책이다.

 

세상에는 머리형 인간과 가슴형 인간이 무수히 많은 인간 속에 무작위로 섞여 살아가고 있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섞이다 못해 화학적으로 섞여서, 가끔은 머리형, 때로는 가슴형으로 수시로 변화하는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런 삶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당연하고, 당연하다 못해 그렇게 살아가지 않는 사람은 이중의 의미의 병자(정신병자, 환자:아, 둘다 같은 말인가?_)로 분류되어 세상 속에서 유리 되고 말 것이다.

 

이 책이 오랜 여운으로 내 마음에 남긴 것은 동경과 그리움이었다.

동경이라 함은 나도 그런 사랑이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고, 그리움은 한 때는 그런 사랑을 꿈꿨음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을 향한 마음이었다.

무엇이 사랑 앞에 난관을 자처하고 나서는가? 무엇이 그들의 뜻을 꺾고, 온 마음을 허물어 미래를 부숴버리는가?

 

느릿하게 온갖 신경을 곤두서게 하던 이야기의 결말을 살짝 비추는 부분에서 이야기는 급격히 속도를 더해 빠르게 미래를 향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지켜보면서 결국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제목은 설득이지만, 이야기 속의 누구도 타인에 의해 설득되지 않았다. 인간은 결국 타의에 의해 설득 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사실 이 결론은 내겐 너무나 단순하고 뻔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등장 인물들의 증언을 듣는 것처럼 확신으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설득'이란 제목이 갖는 의미가 단지 "사랑 앞에서는 타인의 어떤 설득도 무의미해진다"라든지 "오직 자신의 욕망에 의해서만 사람은 설득 된다. 그것은 설득이라기보다 납득에 가깝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

 

그래서 아주 조금, 조금 더 생각해 봤다. '설득'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무엇일까에 대해.

그렇게 얼마간 머리를 짜낸 결과 뭔가 그럴 듯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 생각은 다음과 같다.

 

제인 오스틴이 <설득>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고 의도했던 바는, 등장 인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설득'행위가 아니라 작품을 통해 감화될 독자들을 '설득'하려던 것이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만일 그런 의도였다면, 그녀의 설득은 내겐 무척 유효하게 작용했다. 앤과 웬트워스에 격하게 공감했고, 동경했고, 그리움까지 불러일으켰으니 이보다 잘 먹혀들어간 설득이 또 있을까?

 

'진정', '영원', '진심', '결혼', '의존', '욕망', '허영', '수치', '희생', '배신', '희망', '매력', '포기', '복수','화해', '행복.

소설 속에서는 이렇고 저런 감정, 바람, 욕망들이 쉴새 없이 서로의 목소리를 높여가며 소리없는 전쟁을 벌인다.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 숭상하는 기준에 의해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하지만 인간사에 영원한 승자나, 영원한 패자란 없지 않던가?

 

화해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다툼이 오랠수록 화해의 길은 점점 멀어져만 가는 법이다. 그럼에도 그 먼 길을 한 달음에 좁히는 것은 결국 '사랑'이다. 나 역시 인정한다. 사랑은 힘이 세다.

다시 가슴과 머리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옛날을 돌아볼 때 가장 안타깝게 느껴지는 일은 가슴으로 판단해야 했던 일을 머리로 판단해 그 판단을 그르치고, 머리로 결정해야 했을 일을 가슴으로 결정했던 순간들이다. 그런 순간은 오래 가슴과 머리에 남아 원망을 늘려간다. 머리는 가슴을, 가슴은 머리를 탓하며 세월을 허송한다. 당연히 화해의 길은 묘연해진 상태로 있지도 않은 벽을 마주한 것처럼 멍하니 마주 보고 서 있을 뿐인 상태가 된다.

 

협박이나 강압이 아니라 '설득'이라면 '선택'은 언제나 내 몫일 뿐 다른 어떤 것이 대신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을까.

그 선택의 순간에 나의 가슴과 머리가 화해할 수 있다면,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그 결과가 후회를 낳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를 통해 설득 당한 건 나뿐이다. 나의 진심에 나를 맡겨야 한다는 것, 그 책임을 미뤄서는 안되며, 다른 조건들에 현혹되어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좋은 때에, 좋은 책을 만난 기쁨에 한 동안 마음의 떨림을 진정시켰더란다. 내 행운은 언제나 그치지 않는다.

책과 함께하고, 느끼고, 깨닫고, 생각한 바를 행동으로 옮겨가는 한, 언제나 책은 내 편이다. 나를 기다려주고, 나를 만나러 와주고, 나를 불러주고, 나를 위로하고, 나를 사랑해준다.

흔들리지 말라고, 목표를 향해 꾸준함을 보이라고, 그렇게 나를 설득해준 이 책에 감사를 담아 보낸다.

진정 나는 행복하다. 난 이미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행복을 늘 발견할 수 있을 거라 믿을 수 밖에 없다.

 

-달의 궁전(http://cafe.naver.com/darlgung) '함께 읽는 책' 참여 도서입니다.- 여러분도 함께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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