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배신 - 화이트칼라의 꿈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잠깐,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뒷통수 맞았다느니, 배신 당했다느니 하는 말을 쓰고 있지 않나? 흐흠, 그런데 배신이란 무엇인가?

背信이라 쓰고 배신이라 읽는 이 말에는 우리가 당했다고 말하기 위해 필요한 전제 조건이 존재한다. 바로 믿음이나 의리를 전제 할 것이바로 그 조건이 되는 것이다. 이 전제를 염두에 두고 잠시 들여다 보기로 하자.

희망의 배신을 읽기 위해 전에 「긍정의 배신」과 「노동의 배신」을 먼저 읽어봤다. 그리고 조금 더 전에 읽었던 「오! 당신들의 나라」도 그 내용을 되새겨 봤다.

바버라 여사는 입담이 참 좋은데(책 속에서만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만)(나쁜 말로는 거친데), 지금까지 읽었던 바여사의 책 중에서 가장 순화되고 다듬어진 느낌이 드는 책이라 어딘가 어색하기도 했다.

 

이 책은 미국에서 2005년 가을에 출간 되었다고 한다. 수비학적으로 7이라는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7년이 지난 올해 가을 우리나라에 이 책이 출간된 것은 어떤 인연의 발로였을까? (하는 시덥잖은 생각도 해가며 읽었다)

바여사는 회의론자이자 지극히 냉정한 현실론자이고 궁금한 것은 직접 시도함으로 알아내려는 적극성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 학자(생물학자)라기보다 왠지 사회와 현실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는(그래서 저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것일테지만) 문제 제기자로서의 역할에 사명감을 느끼고 있는 운동가의 느낌이 더 강하다.

 

왠지 서설이 길어지고 말았는데, 앞서 말한 '배신'이란 누가 누구에게 당한 것을 말하는 것인가? 이 책에서 말하는 '배신'은 좁게는 '업계'를 말하고 조금 넓게 보면 '미국'을 말하고 더 확장해서 보자면 자본주의를 채택한 거의 모든 국가를 말한다.

 

그럼 그들은 '배신당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 그들을 신뢰했을까? 이 질문은 참 어리석게 들리겠지만, 읽는 내내 뇌리를 맴돌았던 물음이었기에 묻지 않고 넘어갈 수 없었다. 답을 바라고 적어 놓은 것도 아니다. 그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을 뿐.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 그리고 노동 현장(지적, 육체적 노동)에서 열심히 능력을 발휘하고 계시는 분들이 품는 일반적인 목표는 '화이트 칼라' 진입일 것이다. 온몸에 오물이나 기름때를 묻히며, 땡볕 혹은 지하에서 육체를 혹사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되도록이면 편하면서 더 높은 소득을 바라는 것은 솔직한 태도이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경향이다.

하나같이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리는 것도, 타인보다 조금이라도 돋보이려 하는 것도, 가끔 불법을 저지르더라도 나은 성적표(학업 성적 뿐 아니라 사회에서 매기는 거의 모든 형태의 결과에 대한 평가)를 받기위해 악을 쓰다시피 하는 것도 다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그런 온갖 노력(어쨌든 노력은 노력이니까)을 통해 진입한 '화이트 칼라' 안에서도 결코 안심할 수 없게 된 것이 현실이 되었다. 아니, 오히려 능력이 높은 것이 추락을 부추기기도 한다니 이젠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할지 알 수 없게 된 셈이다. 그야말로 세상은 혼돈,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고, 믿을 것도, 믿을 사람도 없이 늘 경계하고 의심하고 죽을 힘을 다해야 할 때와 적당히 해야 할 때를 살펴야만 하는 그런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자, 이제 무엇을 믿겠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이 책 속에서 자신의 이력서로 화이트 칼라의 직업 세계에 진입하기 위한 여러 방면의 노력을 직접 보여준다. 코치를 받고, '네트워킹'이라는 인적 자원의 구축에 힘쓰며, 수 백 군에 이력서를 보내고, 자신의 경력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온갖 노력하며, 마지막에는 부지런히 취업 박람회 장도 찾아 다닌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녀가 취업을 시도했던 10개월 동안 얻은 것이라고는 수 천 달러에 이르는 온갖 비용을 지불했다는 사실과 그 결과 몇 군데에서(서너 군데) 취업 제의를 받았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비정규직에 사회보장제도가 전혀 지원되지 않는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취업 상태였을 뿐이다. 더하자면 수 개월에서 수 년에 걸쳐 취업을 위해 발버둥치는 '실업자'들의 몸부림을 목격했고 말이다.

 

미국의 이야기, 그것도 2005년의 미국의 이야기라고 하면 좀처럼 "팍!"하고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실업문제는 큰 이슈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언제나 대선의 공약에 '일자리 창출'이 빠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최근에는 그 취업 문제 뿐 아니라 '워킹푸어'라 불리는 일하면서도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회적 문제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남의 나라 이야기,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인 셈이다.

 

이 책의 한계는 현상의 보고와 문제의 제기에 그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사실 그보다 더 많은 걸 바라는 것은 못할 짓이기도 하다. 당장에 바버라 여사가 운영하는 사이트에 쫓아가서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라며 따진다해도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론「희망의 배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도 있다.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해준다는 이 효과는 대단히 중요하다. 충격에 대비한 사람들은 대부분 좀 더 유연히 그 충격을 이겨낸다. 어설프게 준비하고 있다가 예상보다 커다란 충격에 당황하지 않도록 굳은 준비를 하기 위해서라도 얼마만큼의 절망을 맛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바버라 여사의 책은 치료제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예방주사는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현재까지 감기에는 완벽한 치료제가 없다. 왜냐하면 감기에 걸리는 원인이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감기약은 바이러스를 제압해서 증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가 일으킨 증상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래서 감기는 예방이 최고라고 말하며 겨울, 느닷없이 찾아들 '독감'에 대한 '내성'을 키우기 위해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다.

 

경제활동, 혹은 사회활동 가운데 발생하는 실업이나 퇴직은 원천적인 봉쇄가 불가능하며 통제하기도 어렵고, 갑작스레 들이닥치곤 하는 참 곤란하고 또 고약한 문제다. 모두가 당할 수 있는 경우라면 어떤 사람이 더 유연하고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바로 꾸준히 준비해 온 사람일 수 밖에 없다. 지금 내가 끄적이는 말들이 허울뿐인 이상론, 혹은 실천이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한 이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회를 바꿀 수 없다면, 그럼에도 그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내가 바뀌는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목은 「희망의 배신」이지만,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아직 희망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혼자서는 해결 할 수 없는 문제임을 알기에 더 많은 조력자, 협력자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스스로도 못미덥겠지만, 배신 당할 줄 알면서도 믿어야 할 때도 있는 법이 아닐까?

속는 셈 치고,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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