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연습 - 마음의 덫에서 벗어나는 셀프 테라피
박용철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어쩌면 정말 드물게 보이는 서평의 일면을 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든다. 하지만 그것 또한 두고 볼 일이다.

 

이 책의 첫 장(the first chapter)을 읽으며 느낀 것은 저자 스스로도 이 책 속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지나치게 뜬구름잡기식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닐까하는 점을 경계하고 주의를 기울였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쪽 부류의 책은 보통사람들이 읽는 만큼은 읽었노라고 생각하기에 사소한 흐름 하나가 책 전체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결국 완성도를 낮추는 결과를 불러오는 것을 특별히 주의해서 만들어야했을 것이다라는 점에 생각이 닿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평점을 말하자면 특별히 좋은 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특별히 나쁜 책이라고 말하지도 않을 '보통' 정도 수준이었다. 조금은 거슬려 신경이 쓰이는 점도 몇 가지 있었고, 조금은 색다른 개념이 들어있어 새롭게 느낀 점도 있었으니 장단점을 상쇄한 보통이 되는거다.

 

이 책의 표지는 뭐랄까 '프로이트의 의자'를 떠올리게 한다. 탁자 밑에 놓여있으면서 가방 속에 담겨 가려진 것이 아니라 드러나 있는 가면 또한 심층자아, 즉 "이제부터 무의식 이야기를 하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거기에 마주한 두 개의 의자는 '자신과의 대면'을 상징하는 것이리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모든 책을 겉표지부터 읽어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의 표지는 살짝 읽어보고 넘어가고 싶었다.

 

많은 책이 이야기하듯, 이 책 역시 인간의 감정과 행동은 무의식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그 무의식이 형성되는데 제공된 원인이 과거의 어떤 경험 속에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 원인과 마주하고 극복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과거에서 현재로, 유아기의 이야기에서 성인기의 이야기로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감정을 지닐 수 있는 방법을 전하고 있다고 하면 될까.

 

저자의 경계심은 생각보다 빨리 흐트러진 것 같다. 절반쯤 읽었을 때 저자는 '프로이트적인 해석'을 통해 '환자'를 상담하고 지도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계기는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다. 저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누구나 거친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는데, 이 견해는 지지자도 많지만 거부하는 학자들도 많은 이야기로 한 권의 책에서 일반화 시키는 것은 독자에게 '배타적 증폭(의견이 같은 사람들의 말만 들음으로써 판단착오를 강화시키는 것)'을 부추기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자면, 이런 전제를 보며 아들러는 분명 울었을 것이다.)

 

첫번 째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면 두번 째는 결국 자신의 문제이기에 자신이 극복해야만 한다는 견해다.

긍정심리학이 세상에 등장하고 난 후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경향이 "결국 모든 것은 스스로의 책임, 그러므로 극복해야 하는 것도 자신이다"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가 의사이고 많은 환자들을 상담하며 경험하고 느꼈겠지만, 어떤 일들은 혼자서는 도저히 치유하거나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렇기에 의사가 있고, 상담 전문가가 있는 것이 아니던가?

자기 계발의 관점에서 보면 크게 두 가지 견해가 두드러지는데, 하나가 모든 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가 개인의 책임일 뿐 아니라 개인을 둘러싼 환경과 사회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다. 감정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이지만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 책 속에서도 그 환경 이야기를 거듭거듭 언급하기는 하지만 결국 극복해야 하는 과제는 개인에게 주어진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 이야기는 이 책의 장점이면서도 단점이기도 하다고 느껴지는 견해(?)에 대한 것이다.

이 책은 '마음의 덫'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그 표현을 빌어쓰자면 '분류의 덫'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빠뜨렸다는 점이다.

내가 과문하고 비전문적인 입장에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스스로를 '규정짓기 좋아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비슷하게 쓰고 싶은 다른 표현을 적어보자면 '동일화 혹은 동일시의 욕구'랄까?

이 책은 마음이나 감정을 위협하는 덫이나 욕구를 여러 기준을 사용해서 분류해 놓았다. 그것은 분명 치료와 치유, 진단에는 유리할 것이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이 표현은 아들러가 그랬듯 '용기를 잃은 사람'이라고 바꾸고 싶지만)가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게 하는데 편할 것이다.

하지만 내 경우를 떠올려 볼 때, 뭔가 나와 비슷하게 느껴지거나, 그렇기를 바라는 것에 점점 가까워지려하는 경향이 있는 것과 조금 다른 이야기라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많은 심리학 책에서 이야기하는 '낙인' 혹은 '스티그마 효과(부정적인 낙인이 찍히면 행태가 나쁜 쪽으로 변해 가는 현상)'에 대한 우려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책 뿐 아니라 심리를 다루고 있는 한 권의 책을 읽은 독자가 자신에 대한 부정적 표상을 새길 수 있을 것이란 가능성에 대한 염려인 셈이다.(개인적 견해를 적자면, 심리나 무의식 마음을 다루는 책들에는 그 책과 상반되는 의견이 담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하는 문구가 들어갔으면 하는 생각도 해본다)

 

주저리주저리 불만만 툴툴 늘어놓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책이 싫지 않다. 오히려 사랑스럽고, 고맙게 여기고 있다는 말이 솔직한 고백이리라. 왜냐하면 이런 책들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이 책의 제목인 <감정연습>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일까 지금은 참 많은 의미에서 좋은 사람,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고 또 믿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말을 반복해서 적고 있는데, 그 말에는 조금의 거짓도, 가식도 없을 것이다. 외부적인 문제가 아니기에 누구의 도움도 도움이 될 수 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고 그래서 더 안타깝고 답답하게 여겼을 일도 많았으리라. 오죽했으면 책으로 내놓았을까.

 

저자의 말처럼 감정 또한 연습하면 조절할 수 있다. 그 산증인이 바로 나이기도 하다. 사실 저자가 말하는 과거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많은 부분에서 "나도 그랬던 때가 있었지."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이 틀리지 않았다는 점에도 의견을 같이 했다. 감정의 문제는 어느 정도까지는 스스로 개선하고 나아지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필수적이다. 저자를 찾은 사람들 같은 경우엔 그나마 나은 경우고 아마 마음의 문제, 감정의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 끌어안고 절망하기를 반복하고 있으리라.

 

양초학설이라는 재밌는 학설을 접한 것은 이 책에서 얻은 작은 소득이다. 마음의 갈등, 화는 감정이 녹아서 만들어진 얼룩이고 그 얼룩을 지워내기 위해서는 한 번 더 녹일 필요가 있다. 참 멋스러운 방법이지 싶다. 또 이치에도 맞고 말이다.

결국 인간은 합리화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합리화의 방법과 지점만 다를 뿐 다들 부단히 자신의 행동과 생각, 일어난 사건과 결과를 합리화하는데 참 부지런하지 않던가. 그저 한걸음 물러나 합리화에 급급해할 것인가, 더 나은 자신을 찾아 나설 것인가의 선택은 결국 개인의 손에 달려있다.

갈등이 있다면 화해를 해야하고 풀어야하는 것이 이치다. 자신과도 타인과도 사회, 세상과도 화해가 필요하다. 그런 화해를 위해 이 책은 좋은 연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실전 참고서처럼 '실습편'이 있으니 따라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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