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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공부는 서른에 시작된다 - ‘생존’을 넘어 ‘성장’을 부르는 내 인생 공부 혁명
이창준 지음 / 리더스북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진짜 공부는 서른에 시작된다'는 제목이 퍽 마음에 든다. 청춘과 성숙의 중간 쯤으로 여기는 '서른'이라는 나이를 '또 다른 출발점'으로 설정해주기 때문이다. 사실 공부는 스물이든 서른이든 마흔이든 하다못해 아흔아홉이 되어도 끊이지 않고 하는 것인데 말이다.

 

이 책은 '공부'의 근원부터 말한다. 일반에게 공부란,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이르는 일련의 학업 과정 중 벌어지는 지식 습득의 의미로 대부분 사용된다. 그리하여 고등학생은 대학 진학을 위한 성적 향상에, 대학생은 취업을 위한 스펙 향상에 초점을 맞추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는 말하는 공부는 조금 다르다. 공부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행복과 기쁨, 성장을 구현하는 삶의 방식' 즉, 오센틱 러닝을 뜻한다. authentic은 진짜의, 진품의 라는 영단어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오센틱 러닝이란 말보다 진짜공부라는 말로 표현하겠다.

 

책의 흐름은 간단하다. 진짜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현실에서 진짜 공부를 할 수 없는 이유, 진짜 공부 시작하기, 진짜 공부 실천하기, 진짜 공부 달인되기다. 이 중 가장 중점적으로 봐야할 부분은 다름아닌 첫번째, '참된 행복은 공부에 있다' 이다. 여기서 저자는 플로우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플로우란 마치 물이 흐르듯 어딘가에 정신없이 빠져드는 최적의 경험을 말한다.(24p) 일종의 무아지경이 아닐까 싶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듯이. 플로우가 바로 행복이고 삶의 절정이기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그 무엇이라고 이 책은 시작한다.

 

진짜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우린 네 가지가 필요하다. 자기인식, 자기조절, 내적동기 그리고 낙관이다. 자기인식은 특별한 존재로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수용하는 일을 가능케한다. 자기조절은 목적을 이탈했을 때 이를 발견하고 즉시 원래의 궤도로 돌아오도록 스스로를 자극한다. 그리고 이는 실패라는 벽에 부딪혔을 때 절망에 이르는 대신 궤도를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도 한다. 내적동기가 포인트다. 서른즈음의 사람들이 또 다른 선택, 예를들어 결혼이나 이직을 꿈꿀때 하는 말은, '지금 상태로는 그렇게 할 수 없어'라는 말을 할 때가 많다. 저자는 이에 대해 좋은 직장, 많은 연봉, 높은 신분과 명예와 같은 외적 동기에 천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외적 동기는 그 발로가 본질적으로 타인들을 기쁘게 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과는 멀다는 것(79p) 마지막 낙관은 무모한 긍정보다는 시련이 닥쳤을 때 포기하지 않고 굳게 버틸 수 있는 힘이다. 교육학 박사이며 상담가인 론다 비먼은 이런 낙관의 개념을 "낙관성은 나쁜 상황에서는 좋은 측면을, 곤경 속에서는 교훈을, 심지어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희망을 찾아내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진짜 공부의 의미와 시작을 토대를 마련했다면 이제 실천할 단계다. 먼저 기존의 개념과 사고를 부수고 새로 쌓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도전하고 실패하라. 또 멘토, 스승을 만나 길을 물어라. 네번쨰는 책을 읽고 글을 써라. 마지막 함께 배워라. 그리하면 이창준 저자가 말하는 '오센틱 러너'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반대 개념이 많이 등장한다. 가짜공부/진짜공부, 내적동기/외적동기, 성취목표/학습목표, 거짓학습/오센틱 러닝. <나는 가수다>의 한 여성 가수가 청중단의 표를 얻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래를 자극적이고, 꽂히도록 불러야 함에 '귀가 지친다'는 말을 했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반대 개념은 주장을 명확히 전달하지만 자칫 흑백논리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왜 일까? 또, 이런 느낌도 받았다. 이 책은 '공부'에 대한 태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많은 이론을 끌어왔다. 회복탄력성이 그러했고, 상상 팽창이 그러했다. 다른 책들에서 인용된 듯한 부분이 보였고, 그래서 조금은 아쉬웠다.

 

하지만 <진짜 공부는 서른에 시작한다>의 논조는 내 고개를 끄덕이게 할만큼 설득력있었다. 난 '해야만 하는' 공부에 조금 지쳐 있었다. 스펙쌓기가 그저 보여주기에 지나지 않지만 남들의 눈을 피할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나의 모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부는 언제나 필요하다. 그러나 저자 말데로 진짜 공부는 서른에 시작할 수 밖에 없다. 성적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서른'이라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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