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로 경험을 디자인하라 - 고객 경험을 극대화하는 DCX 혁신의 비밀
차경진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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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차경진은 현대를 경험의 시대로 정의한다. 사람들이 '물건'을 구매하기보다 '의미'를 구매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의미를 구매한다는 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쉽게는 가심비를 떠올리면 된다. 가격이 얼마든 나에게 만족을 줬으면 타당하다는 것이다. 가성비를 따지는 영역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큰돈은 확실히 가심비의 세계에서 돌고 있는 것 같다.


고객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하려면 필요보다는 욕망을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그들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 고객은 어떤 맥락에서 우리의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가? 과거에는 포커스 그룹 인터뷰나 기타 사용자 조사를 통해 그것들을 밝혀냈다. 아주 무용한 건 아니지만 이런 방법들은 사용자의 욕망을 본인에게서 들어야 한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이상한 일이다. 본인 자신의 욕망을 본인이 아니면 누구에게 듣는단 말인가? 현대 대량 생산 시스템의 기틀을 만든 헨리 포드의 말에 그 답이 있다.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었다면 나는 더 빠른 말을 길러야 했을 것이다.' 그는 말 대신 자동차를 만들었고 지금의 미국이 탄생했다.


사람과 사람을 넘어 사람과 기계, 심지어 기계와 기계까지도 연결된 이른바 초연결시대는 고객에게 묻지 않고도 고객을 이해할 수 있는 분석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정교한 센싱 기술들이 탑재된 기계들은 이제 24시간 365일 고객의 행동을 기록하고 전송한다. 예전에는 데이터가 없어서 문제였다면 이제는 너무 많아 문제가 된 것이다.


데이터와 데이터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면 상품과 서비스는 초개인화의 영역에 도달한다. 고객이 20대냐, 여성이냐가 아니라 '당신이' 20대냐, 여성이냐, 어떤 쇼핑몰을 몇 시에 몇 번 방문하여 무엇을 구매했고, 상품 상세 페이지를 끝까지 읽었는지, 매주 주문하는지, 월급날 장바구니에 담았던 상품을 한꺼번에 구매하는지 알아내고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여성의 임신 사실을 대형 마트 마케팅팀이 먼저 알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임신으로 인한 호르몬 변화가 특정 물건들을 구매하는 것으로 이어져 이를 종합한 추천 알고리즘이 유아 용품 할인 쿠폰을 보낸 것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이런 세상이 소름 끼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공포를 느끼든 말든 세상은 한동안 정해진 방향을 따라 자신의 길을 간다. 그건 세상의 잘못이 아니다. 편의와 이득을 따라 흐르는 인간의 본능이 스스로 그 방향을 정한 것이다.


<데이터로 경험을 디자인하라>는 이런 세상에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프레임워크를 제공한다. 그 방법이 꽤 상세해 단순히 이러이러한 세상이 왔으니 이러이러하게 해야 한다고 선언하는 책과는 결이 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물론 더 깊고, 넓고, 선명하고, 큰 경험을 기획하라는 이 책의 솔루션과 그 사례들이 그저 그렇게 느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저자는 물고기를 잡는 법보다는 낚시를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걸 이해하자. 그가 사업가였다면, 그래서 자신의 방법으로 만든 서비스가 세상을 혁신하는 중이라면, 아마 이 책은 그 자신이 아니라 수많은 분석가와 기자들이 대신 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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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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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에게 경고한다. 당신은 클래식을 즐겨 듣습니까? 그럼요. 제가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쇼팽도 있고, 드비쉬도 괜찮고, 가끔은 바그너를 청하기도 합니다, 라는 수준으로는 곤란하다. 하루키의 LP 편력은 이미 범인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은 상태다. 비록 재즈가 70 클래식이 20 록과 팝이 10이라지만 총량 자체가 어마어마해 20만 얘기해도 책 한 권이 나온다. 총 100곡을 소개하는데 한 곡 당 적어도 4개의 앨범을 덧붙이니까 그 양이 평생을 들어도 남을 정도다. 그렇게 음악을 좋아하는 나도 여태껏 들어본 앨범 수를 세면 글쎄, 100개를 넘기가 힘들지 않을까? 아무래도 요즘엔 단곡을 중심으로 들으니까.


그러니 하루키의 클래식에 공감하려면 웬만한 경험으로는 부족하다. 행여나 멋진 책 커버와 그동안 하루키 에세이가 보여온 특유의 무용함에 반해 이 책을 고른다면 정말로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하루키 책이라면 거의 빼놓지 않고 읽어온 사람이 진심으로 하는 충고다. 몇 가지 예시를 보여주겠다.


다음은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르슈카>를 에르네스트 앙세르메 지휘 하에 스위스 로망드 관현악단이 녹음한 앨범에 대한 하루키의 감상평이다.


연주의 흐름은 둘 다 자연스럽고 조급한 구석이 없으며 적당한 유머가 감돌아 몇 번이고 편하게 귀를 기울일 수 있다. 앙세르메의 인덕 같은 것이 느껴지는 연주다.(p.17)


세상에, 스트라빈스키도 겨우 들어본 듯한데 1949년도에 활약한 지휘자 앙세르메의 인덕을 무슨 수로 알겠는가? 게다가 연주에 유머? 음악이 어떻게 들려야 도대체 유머라는 표현을 붙일 수 있을까?


다음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 C장조 작품번호 15를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1958년에 녹음한 앨범에 대한 평이다.


지극히 성실하고 설득력 있는 베토벤이다. 그리고 그 피아니즘은 매우 긍정적이고 첨예하다.(p.153)


이 말을 이해하려면 우선 베토벤 음악이 어떠해야 한다는 자기만의 정의가 확실히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설득력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테니까. 피아니즘이 긍정적이면서 동시에 첨예하다는 건 어떤 느낌인지 도저히 상상이 안 된다. 온갖 어려움을 헤치며 끝없이 혁신하는 사업가가 떠오르는데, 그 어려운 베토벤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완성했다는 의미일까?


지금 보여준 예시는 정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단순히 하루키만 보고 들어왔다면 대화가 안 될 수 있다. 그러나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는 오히려 그 난해함으로 인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신기한 책이다. 나는 한참을 읽던 중 그냥 책을 덮고 그가 소개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유머와 긍정과 첨예의 소리가 도대체 뭔지 궁금했으니까.


물론 나는 실패했다. 유머가 무엇인지 알려면 진지함 또한 알아야 한다. 긍정을 이해하려면 부정을 이해해야 하고 첨예를 느끼려면 부드러움과 여유를 느껴봐야 한다. 이는 한 연주자의 여러 곡과 여러 명의 뮤지션이 연주한 한 곡을 수 없이 교차 청음 해야만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희망적인 건, 지휘자나 연주자에 따라 같은 곡도 완전히 다르다는 건 알게 됐다는 점이다. 정말 신기하게 달랐다. 이게 진짜 같은 곡인가, 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검색했지만 워낙 구반이 많아 스트리밍 서비스에는 없는 것들이 많았다.(스포티파이로 가면 좀 나으려나?) 그래도 개중 몇 개를 찾아 여기에 올리니 직접 들어보길 바란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멜론을 이용했다. 해당 키워드를 그대로 검색한 뒤 앨범 커버로 찾으면 된다.


1. Stravinsky: The Firebird Ozawa Seiji

책에 소개된 건 파리 관현악단과 녹음한 아래 앨범이다. 하루키의 평은 이렇다.




소리가 보다 컬러풀하고 섬세해졌으며, 흐름에도 한결 강한 '스토리성'이 생겨났다.(p.132)


이는 오자와 세이지가 보스턴 교향악단과 녹음한 앨범과 비교하며 한 말인데, 내가 소개하는 보스턴 교향악단 버전이 당시에 녹음한 것을 2019년에 커버만 바꿔 다시 내놓은 것인지, 아니면 녹음 자체를 새로 한 건지는 알 수 없다.




2. Bartok piano concertos

하루키는 오자와 세이지 지휘에 피터 제르킨이 연주한 1965년 앨범을(아래) 최고로 쳤다.




두 사람의 연주로 이 곡을 듣다 보면 '맞아, 이렇게 이해하기 쉬운 곡이었어' 하고 눈이 뜨이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p.164)


두 번째는 앨범 커버가 맘에 들어 내가 골랐다.




3. Strauss four last songs

소개된 음악 중 유일한 가곡이다. 책에 실린 건 조지 셀 지휘의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버전이다. 하루키는 슈바르츠코프의 가창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음악을 구석부터 구석까지 빈틈없이 향유하는 가창으로, '마음으로 노래한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p.179)


이 외에도 키리 테 카나와, 리자 델라 카자, 아넬리제 로텐베르거, 군돌라 야노비츠를 소개하지만 키리 테 카나와의 것만 간신히 찾았다. 그것도 하루키가 픽한 앨범은 아니다. 하루키는 그녀의 가창이 슈바르츠코프에 비해 훨씬 드라마틱하며 '고요한 체관'이라기보다는 '그럼에도 강하게 맥박 치는 감정' 같은 것이 느껴진다(p.179) 고 했는데, 과연 어느 정도 수긍이 된다. 하루키는 슈바르츠코프 쪽이라고 했지만,


나는 카나와의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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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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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이야기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분류학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매우 정치적인 동시에 개인적이고, 에세이면서 과학책이고, 전기이면서 미스터리 스릴러 기도하다. 틀에 매이지 않는 이 책은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처럼 유유자적 고정관념의 바위를 피해 다니며 자신만의 독자적 장르를 만들어간다. 정말로 독특한 책이다.


우리나라에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데이비드를 빼고 보면 마이클 조던의 별칭인가 싶을 정도로 인지도가 떨어지는 이 남자는, 미국 최고의 명문 대학 스탠퍼드의 초대 학장이다. 물론 당시의 스탠퍼드가 지금 같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설립자는 캘리포니아에서 매우 수상한 방법으로 떼돈을 번 부부였고 대학을 설립한 취지에도 약간 구린내가 풍겼다. 심지어 남편 릴런드 스탠퍼드가 사망하자 아내 제인은 스탠퍼드 대학이 강신술에 대한 과학적 연구 같은 분야로 확장해나가길 원했다. 제인은 과학자들이 대기 중의 X선을 활용하여 망자들과 접촉하는 기회를 열어주기를 요구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그래도 과학자였다. 제인의 생각을 쓰레기라고 치부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생각을 잡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든 조던은 물고기 분류에 관한 한 미국 일인자였고 그가 세계에서 최초로 발견해 명명한 종들만 모아도 대학 연구실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이 관심의 충돌은 이 책을 돌연 미스터리 스릴러로 이끄는 복선이 된다.


이 책의 줄기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과학자의 생애다. 일종의 전기라고 보는 것이 맞다. 저자 룰루 밀러는 불행했던 개인사를 중간중간 끼워 넣어 자신이 왜 조던이라는 인물에 집중하게 됐는지를 밝힌다. 밀러가 이해하고 싶었던 것은 조던이 평생을 놓지 않았던 삶에 대한 불굴의 의지였다.


조던은 강신술을 과학이라 믿는 무지한 고용주와 함께 일하면서도 자기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사나이였다. 가정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두 번째 부인과는 궁합이 잘 맞았지만 사랑했던 자식들을 불운한 사고로 잃었다. 치명타는 1906년 캘리포니아를 강타한 대지진이었다. 그 끔찍한 지진은 조던이 30년 동안 일군 업적을 단 몇 초만에 박살 내버렸다. 보통 사람 같으면 절망에 사로잡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대사건 앞에서 조던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아는가? 그는 부서진 연구실로 달려가 에탄올과 시체 냄새를 헤치며 터지고 찢어진 물고기 표본들을 손에 쥐고 다시 그 위에 이름표를 꿰매 넣었다.


조던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좌절과 분노를 어떻게 제압했을까? 그에겐 감정이란 게 없었던 걸까? 그릿(Grit)이라고도 부르는 이 근면 성실은 조그만 바람에도 휘청이던 삶을 살았던 룰루 밀러에게 성배와도 같았다. 어떻게 하면 조던처럼 살 수 있을까?


감동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흔하고 뻔뻔한 아메리칸 성공 스토리 기도 한 이 책은, 그러나 종반에 이르러 눈에 띄게 궤도를 이탈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혜성이 되어 독자를 충격에 빠뜨린다. 그 순간 사소하고 같잖았던 이 이야기는 인류애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힌트는 제목에 있다. 마지막 문장을 다 읽고 나면 이 모든 게 페이크 다큐는 아니었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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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 (리커버)
정보라 지음 / 아작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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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를 선택한 건 '아작'과 '부커상'이라는 미스 매치 때문이었다. 아작에서 나온 소설이 부커상에 노미네이션 되다니, 내가 아는 아작은 그런 데가 아닌데... 물론 아작의 책들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읽어온, 이 임프린트에서 출간한 책들은 대개 SF였기 때문이다. SF가 뭐 어때서? 흠, 그것도 맞는 말이군.


<저주토끼>는 SF가 아니었고 얼마 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수상한다면 한강 이후 한국 문학계가 내디딘 또 하나의 중요한 발자취가 될 것이다. 한국 문학이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는 건 어쨌든 좋은 일이다. 그들의 심사평에 동의하든 말든. 그 의도가 어쨌든. 하지만 그 사람들이 왜 이 소설에 주목했는지에 대해선 좀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왜 이런 책을?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정서와 문화와 전통이 다른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게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배움을 위한 의문이다.


<저주토끼>는 10편의 소설로 엮은 단편집이다. 공포 또는 환상 문학으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들로 전부 지독하게 쓸쓸하고 우울하다.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가 갑자기 임신해 여기저기 핍박을 받다 사람이 아닌 핏덩이를 낳고 안도한다거나, 자신의 똥오줌으로 만들어진 괴물이 변기 뚜껑을 열고 나타나 '어머니'라고 부른다거나, 자기를 초기화하려는 주인을 살해하는 안드로이드들의 이야기들.


죽어서도 이승을 떠나지 못해 죽은 자리를 뱅뱅도는 지박령의 사연이나 살아생전 누군가에게 저주를 건 벌을 받아 죽은 뒤 매일 밤 가족을 찾아오는 유령의 이야기 정도는 이 책에서 꽤 밝은 축에 속한다. 사는 게 힘들어 희망을 얻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절대 피하시라 말하고 싶다. 아니, 아픔의 공유를 통해 오히려 치료의 기회가 생기려나?


만약 <저주토끼>가 부커상을 최종 수상하면 기뻐할 일이지만, 그 탓에 수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펼쳐 들고 느낄 곤혹을 떠올리면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직접 읽고 판단하시라.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인데, 좀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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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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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버리다>는 하루키가 들려주는 최초의 사적인 이야기다. 그 수많은 수필을 발표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꼭꼭 감춰두었던 하루키다. 물론 위스키나 달리기 클래식 음악처럼 본인의 취향을 드러낸 적은 많다. 그러나 그 자신의 인간관계, 그러니까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친하고 누구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는 거의 한 적이 없다.


이 책에서 하루키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아버지는 1917년 12월 1일 교토시 사쿄 구 아와타쿠치에 있는 '안요지'라는 정토종 절집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불운한 세대였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전쟁을 치러야 했으니까. 아버지는 두 번이나 징집되었으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큰 부상 없이 종전을 맞았다. 어린 시절 하루키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매일같이 불상을 마주 보고 앉아 불경을 외는 모습이었다. 죽은 적군과 동료의 명복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학문에 큰 뜻을 두었던 것 같다. 문학, 특히 하이쿠에 깊이 빠져들었다. 동인들과 유명한 하이쿠 시인의 여행지를 답사하고 하이쿠를 짓고 출간도 여러 권 했다. 그 당시 하루키의 집 한켠에는 아버지가 출간한 책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 그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아버지는 시인이 될 수 없었다. 결혼을 했고, 하루키를 낳았고, 교사가 됐다. 그런 시대였으니까. 꽃다운 나이에 다른 꽃을 죽이다 처절한 패배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 얇은 뿌리 몇 가닥을 내릴 땅을 찾아 고군분투했던 세대. 그러니 그의 아버지가 이른바 단카이 세대로 불리는 하루키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리라.


아버지와는 다르게 단카이 시대의 아들은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그들은 대학 입학 직전에 전쟁에 나가라며 등을 떠밀리지 않았다. 일본은 세계를 지배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고 하루키가 청년이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계획은 현실이 된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한 시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방황과 고민의 새싹은 늘 풍요의 대지를 비집고 움튼다. 하루키는 공부에 큰 열정이 없었다. 정해진 답을 기계처럼 외우는 일에 이 아웃사이더가 어찌 흥미를 가질 수 있었겠는가? 그의 아버지는 이런 하루키에게 적잖이 실망했던 것 같다. 뻔한 레퍼토리. '이렇게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나 방해하는 것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데, 왜 좀 더 면학에 열심히 정진하지 않는가'(p.60). 하루키가 서른 살에 소설가로 데뷔했을 때 아버지는 무척 기뻐했지만 그 시점에 두 사람은 이미 상당히 멀어져 있었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자식은 결국 나이를 먹어 어느 정도 부모를 이해하고 화해를 시도한다. <고양이를 버리다>는 하루키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건네는, 지극히 하루키다운 화해로 읽힌다. 책은 얇고, 그 어디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하루키가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가슴 끝으로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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