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잡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당연히 <빅 픽처>를 읽지 않았다. 뻔할테니까. 그런데 우연히 <더 잡>을 읽고 나니 뻔한 것들 중에서도 돋보이는 건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반전 스릴러라고 소개는 하지만 모든 사건과 행동에 딱 떨어지는 개연성이 있는 건 아니다. 반전 소설에선 이 개연성이 핵심이지만, 이 정도면 훌륭하다.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그래서, 꽤 재밌다.


미국에서 출간되는 이런 장르 소설들을 읽다보면 어마어마한 클리셰들이 차곡차곡 포개져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인종과 문화 지리적 특성, 산업 등이 다양하다보니 그 배경과 인물을 적절히 변주하는 것으로도 클리셰들은 각인된 문화적 편견 속으로 은근슬쩍 스며든다. 미국은 저런가 보구나. 역시 미국이군! 헐리웃과 미국 출판계의 영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거대할 수 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이 소설은 딱 헐리웃에서 관심을 가질만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사실 클리셰라는 건 독창적 작품을 생산해 내려는 모든 작가들에게 일반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는 수식이 아니다. 대개 그것은 모욕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산업과, 고객의 입장은 좀 다르다. 산업은 생산과 유통에 불리한 마스터 피스 보다는 그럴듯한 웰메이드를 원하고 대중들도 여러번 눈여겨봐야 알아챌 수 있는 섬세한 디테일이 가득한 복잡한 제품보다는 바로 사서 바로 쓰고 바로 버리는 제품들을 원한다. 클리셰는 그들에게 '친숙한' 것이다.


어쩌면, 팔리는 작가의 조건은 이 클리셰들을 조합하고, 너무 노골적이진 않게, 얇은 벨벳 천을 덮어 놓은 듯 은밀하게 드러내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이런데 능숙해지면 1년에 400페이지가 넘는 장편 소설을 한 권씩 써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메인 작가는 트리트먼트만 쓰고 보조 작가들이 실제 문장을 적는, 집단 창작도 가능할 것 같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뼈에 새길만한 교훈을 배운 적이 몇 번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사기의 기술에 대한 깨달음이다. 사기는 어떤 새로운 인물이 나로 하여금 그를 믿게 만든 뒤 행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미 믿는 사람이 나에게 행하는 범죄다. 범죄자들은 어떤 방법이 가장 효율적인지 영업 이익 200조의 초일류 기업보다 더 잘 알고 있다. 특히 범죄 대상을 선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위기에 빠진 사람들은 눈 앞의 지푸라기도 황금 밧줄로 보이기 때문에 절박한 대상을 찾아낼 수록 사기의 성공 확률은 높다. 그러니 당신이 어떤 곤란에 처해있고 누군가 그 곤란을 해결할 좋은 기회를 제안해 왔다면 그게 사기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법은 아주 쉽다. 그 기회가 당신이 가진 것에 비해 훨씬 큰 보상을 제안하는가. 그렇다면 그건 100% 사기다. 별 볼일 없이 수년간 같은 회사에서 B, C, B를 오락가락하며 평범하게 일해온 사람에게 전에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협력사 사장이 유망한 스타트업의 팀장 자리를 제안한다면? 이 경우 많은 사람들은 드디어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나왔다며 주먹을 꼭 쥔 채 속으로 눈물을 흘린다. 고심은 하겠지만, 마음은 이미 기울어 있다. 하지만 냉정해지자. 당신은 그런 제안을 받을만큼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네드 앨런은 그런 기회를 받아들인다.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거기서 빠져나오기까지는? 내가 제시한 예시와 달랐던 건 네드 앨런이 매우 유능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사기에 더 쉽게 빠져들게 만든다. 첫째는 그런 기회와 보상이 자신의 능력에 합당하다고 믿기 때문이고, 둘째는 자기가 그 일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은퇴한 은행장과 주식맨들이 대규모 금융 사기에 휘말렸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가? 사기는 논리적으로 완전무결하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 그는 사람이다. 고로 그는 죽는다. 의심할 여지 없는 이 삼단논법에는 사기가 가진 중요한 전략이 숨어 있다. 당연하게 내린 전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조건. 사기에 당하고 나서야 우리는 그가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처럼 판 자체를 뒤집는 기술이 바로 사기다.


최동훈 감독의 <범죄의 재구성>의 마지막 장면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사기란 테이블에 앉은 사람을 설득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 사람을 테이블에 앉히기까지의 과정이라고. 테이블에 앉는 순간 이미 게임 끝이다. 당신이 무능하든 유능하든, 사기는 모든 인간을 포용할 수 있는 완벽한 플랫폼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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