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운명 (반양장)
문재인 지음 / 가교(가교출판)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요즘 뉴스를 보면 기분 좋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체증이 쑥 내려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상이 어쩜 이리 하루 아침에 싹 바뀔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이제야 비로소 사람 사는 세상이 된 것 같다. 뉴스를 보는 게 기다려지는 게 요즘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철저히 준비된 대통령인지가 느껴진다. 사실 대통령은 정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몇몇 지지자들 조차 등을 돌리게 만든 어눌한 말투만 봐도 그렇다. 화려한 언변으로 정적을 제압하고 감동을 이끌어내고 비전을 확신시켜 주던 노통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의 친구였기에 국민이 거는 기대도 컸을 것이다.


그가 대선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한 계기는 노통의 장례식 때였다. 정치적 타살이라 일컫는 그 사건의 당사자인 MB가 장례식을 찾았을 때였다. 헌화를 위해 단상에 오르는 MB를 향해 백원우 의원이(현 민정 비서관) 격앙된 목소리로 "사죄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심상찮은 분위기였다. 경호원들이 강제로 입을 막아 끌고 나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때 문 대통령이 나타나 MB에게 정중히 사과하는 모습이 국민의 마음에 각인된다. 정치적 과오를 떠나 장례식장을 찾은 분께 예의가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그 상큼할 정도로 깔끔한 대응에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새미래를 꿈꾸게 된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개인적으론 그것이 불행의 씨앗이었다. 애초에 쇼맨십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이다. 자기를 돋보이려 그런 일을 한 게 아니었다. 진심이었고 도리대로 행했을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문통을 갑자기 영웅처럼 떠받들었다. 온갖 환상과 바람, 욕망이 인간 문재인의 목 위에 걸리기 시작했다. 잔인한 인간들은 기어이 그 목줄을 잡고 문재인을 정치의 세계로 끌고나갔다.


이후 그가 겪어야 했던 일들을 떠올리면 내가 다 참담할 지경이다. 그는 어눌한 말투 때문에 멍청하다는 비판을 받았고 노통의 친구라는 이유로 호남의 외면을 받았으며 친노, 친문 패권주의자라는 비난을 들어야했다. 그는 18대 대통령 선거에 야당 후보로 출마하여 48%를 득표해 51.6%를 얻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3.6%의 차이는 진보 계열 후보들이 간신히 승리를 거둘 때의 표차였다. 진보의 패배는 언제나 압도적이었다. 그런 전례를 볼 때 이는 국민의 지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였으며, 조심스럽게 다음 대선의 승리를 점칠만한 근거이기도 했다. 아니 적어도 패배했다고 비난을 받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정적들도 19대 대통령 선거의 결과가 눈에 그려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온갖 억지를 갖다 붙여서라도 그를 끌어내리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이런 게 바로 정치의 세계다. 그와는 한 움큼도 어울리지 않는 권모술수의 세계.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년을 어떤 마음으로 지냈는지 알 수 없다. 이 책은 18대 대통령 선거가 치뤄지기 6개월 전에 출간됐고, 그래서 아직은 참담한 마음이 곪고 터져 짓이겨진 쓸쓸함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아련한 마음으로 노통과의 과거를 회상하며 전의를 다지고 천천히 워밍업을 시작한다. 특히 비서실에서 다양한 업무를 맡아 했던 경험을 읽고 있으면 이 남자가 왜 준비된 대통령인지를, 그 치열했던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를 알게 된다.


18대 대통령 선거 때만하더라도 지지자들은 문재인을 향해 권력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을 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책임감은 충분했지만 아무래도 떠밀려 나온 사람의 마음가짐을 간과할 순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의지는 어느 때보다도 단단해졌다. 얼굴만 봐도 그렇다. 연일 그가 보여주는 행보는 이제 노무현의 친구, 노무현의 비서 실장이 아니라 대통령 문재인으로서의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는 이미 오래전 대통령으로서의 자각을 끝낸 것 같다.


이제는 그의 어눌한 말투마저 무게와 신뢰를 더하는 무기가 됐다. 노통은 탁월한 언변이 오히려 적을 만드는 구실이 되곤 했다. 많은 말도 화려한 말도 필요 없다. 진심을 담아 한 단어 한 단어 천천히. 그렇게 보면 세상 일은 참으로 신기하다. 변하지 않는 세상을 보며 극도의 회의주의에 빠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진심이 통한다는 단순한 진리가 두꺼운 커튼을 비집고 조용히 스며든다. 마침내, 아침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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