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싸움꾼은 찾기 힘들어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하진 이라는 생소한 작가의 책을 아무 고민 없이 집어든 이유는 역시 그 제목 때문이었다. <호랑이 싸움꾼은 찾기 힘들어>. 하진도 알고 있겠지. 좋은 책을 찾는 것도 어마어마하게 힘들다는 사실을.


1956년 중국 리아오닝에서 태어난 하진은 이십 대 후반까지 중국에서 살다가 영문학 박사과정을 밟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다. 논문도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볼까 하는 찰나 "톈안먼 사태'가 발생하고 말지. 학생 한 명이 거대한 탱크 앞을 가로 막고 선 그 유명한 사진을 낳은 '천안문 사태'. 2,000명이 넘는 죽음에 분노한 하진은 미국에 남기로 결심한다.


그런 결정을 한 순간 평생을 이고 갈 작품의 주제가 결정된 걸지도 모른다. 이 책에 담긴 10편의 소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 비인간성과 비효율, 무지와 폭력 속에 빠져 허우적 대는 중국의 현대를 그린다. 쉽게 말해 공산주의의 최후를 그린다는 말이다.


당연히 중국은 하진을 싫어했고 미국은 좋아했다. 하진은 가장 적극적이고 가장 반중국적인 방식으로 미국 문학계에 스며들었다. 바로 영어로 소설을 쓴 것이다. 역시 목구멍이 포도청이야, 참으로 쩨쩨한 전략이로군 쌀과 반찬을 얻기 위해 모국어를 팔다니 하고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한 작가에게 있어 모국어를 포기한다는 것은 한 남자에게 자신의 남성을 잘라내는 것과 같은 강도의 결정이라는 사실을 알아두시길. 물론 미국 문학계에 편입할 방법으로 작품 활동을 영어로 하는 것 이상의 것이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90년대 이후로 중국과 미국이 세계 경제의 패권을 두고 옥신각신 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하진이 중국어로 작품을 썼다 하더라도 너무나 반중국적인 그 내용으로 인해 미국 사회의 관심을 끌 기회는 충분했을 것이다. 단순히 방편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를 선택한 건 일종의 미학적 결정이 아니었을까? 사실 하진의 문장은 <전미도서상>, <플레너리오코너상>, <펜/헤밍웨이상>, <펜/포크너상>, <푸시카트상>, <칸 문학상>, <타운젠트상>, <아시아아메리칸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을 휩쓸고, 두 차례에 걸쳐 <퓰리쳐상> 후보에 오른 작가의 것이라고 보기엔 거의 아무런 특색이 없다. 그의 문장은 매우 간략하고, 평범하고, 밋밋하다. 뉴스 보도도 이런 식으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엔 아주 고차원적인 전략이 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모국어로 글을 쓴다는 건 수 많은 단어가 서로 종이 위를 차지 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는 말이다. 작가 입장에선 어느 것을 버리고 어느 것을 담아야 할지 혼란스럽다. 그래서 단어는 쓸데 없는 수식을 식객으로 들이고 문장은 그저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기 위해 느닷없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것은 너무 많이 알기에 저지를 수 있는 실수들이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는 이같은 실수를 생략하게 만들어준다. 남자가 죽었다. 이 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죽음이다. 이런 문장은 읽는 이를 거추장스러운 통관 없이 곧장 핵심으로 이끄는 위력을 발휘한다. 도정에 도정을 거듭한 쌀 한 톨이 최고의 사케로 변하듯 핵심을 향한 논스톱 질주가 우리를 묵직한 감정의 덩어리들과 충돌하게 만든다.


순도 높은 감정을 선사하기 위한 하진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작품 하나하나는 "적어도 스무 차례"에 걸친 교정을 통해 완성된다고 한다. 작가에게 있어 가장 괴로운 순간은 어렵게 끝낸 글을 다시 꺼내 고쳐 쓰는 일이다. 퇴고를 거듭하는 작가의 고통은 가히 시지프스의 형벌과 비견할 만하다. 그러니 하진의 평범한 문장은 미학적 선택과 치열한 노력으로 만들어진 의도된 산물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호랑이 사냥꾼은 찾기 힘들어>에는 10편의 소설이 있다. 인간의 허위와 허세, 자존심 때문에 벌어지는 촌극은 모파상의 단편을, 평범한 일상을 해학적으로 드러내는 점에선 안톤 체호프를 떠올리게 한다. 하진은 두 위대한 작가가 쌓아 올린 현대 단편 소설의 초석 위에 자신의 작품을 올린다. 그것은 아주 반가운 일이기도, 아주 슬픈 일이기도 하다. 나는 단편을 아주 사랑하는데, 그 단편은 이제 세계에서 밀려나 까마득히 먼 곳으로 날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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