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강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로알드 달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 <그렘린> 등을 쓴 동화 작가로 더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이 단편집은 이솝 우화 같은, 교훈으로 가득한 지루한 이야기의 느낌이 있다.


우리에게 우화가 지루한 주된 이유는, 그것이 드러내는 인간의 이면이 실은 이면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이며, 이제는 더 이상 안으로 숨겨져 있는 세상을 살지도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겨진 악함을 모르기 때문에 나쁜 행동을 반복하는게 아니다. 그것을 전략, 혹은 삶의 방편으로 삼았기 때문에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인간의 이면을 드러내는 이야기만큼 진부한 건 없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작가란 단 한 번도 진부하지 않은 주제를 다뤄본 적이 없는 존재다. 플롯과 캐릭터는 수 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지만 그 주제는 많지 않은 인생의 진리 몇 개를 돌려가며 사용하지 않았는가. 그러니까 작가란, 혹은 소설이란 어떤 주제를 다루냐가 아니라 그 주제를 어떻게 드러내느냐로 그 수준이 결정된다고 보는게 맞다.


이런 의미에서 로알드 달의 이야기들은 이솝 우화를 훨씬 넘어선다. 이 남자의 소설은 훨씬 찌릿하고 싸하다. 이솝이 이런 모습을 보니 어떠니? 창피하지? 우리는 이렇게 살지 말자고 다독인다면 로알드 달은 인간의 껍질을 부수고, 옷을 벗긴 뒤 안에서부터 밖으로 뒤집어 속 마음을 훤히 드러낸 채 광장에서 조리돌림을 시킨다.


그런데 진짜는 이 조리돌림을 연출하는 구성 능력이다. 뒷 장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 물론 그것도 있다. 그런데 뒷 장이 전혀 궁금하지 않게 만드는 것도 능력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주인은 사실은 음흉하고 냉혹한 사냥꾼이다.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꾸며놓고 먹이감이 중심부에 다다르는 순간 한 입에 먹어치우는 교묘한 포식자.


질척질척 지루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최후의 한 페이지에 다다를 때, 누가 조리돌림으로 나왔는지 열심히 까치발을 들고 구경하던 우리는 앞 쪽에서부터 사람들이 시끌시끌 웅성이는 걸 궁금해하다, 그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져 형장의 집행인에게 길을 터주는 걸, 마침내 그 집행인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반전을 목격한다.


이 유명한 '동화' 작가가 '에드가 앨런 포' 상을 두 차례, 전미 미스터리 작가상을 세 차례 수상한 전력은 거짓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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