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들과의 인터뷰
로버트 K. 레슬러 지음, 손명희 외 옮김 / 바다출판사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셜롬 홈즈의 추리 기법은 프로파일링과 비슷하다. 주변을 관찰한다. 단서를 수집한다. 단서에 숨긴 의미와 단서 간의 관계를 해석한다. 해석을 통해 단서는 정보 거듭난다. 정보는 사건의 전말(이야기)를 드러낸다. 


<셜록>을 보며 누구나 셜록이 되는 꿈을 꿔 봤을 것이다. 그럼 프로파일링을 배우면 셜록이 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다.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는 프로파일링에 대한 책이다. 하지만 셜록 홈즈가 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참고서, 심지어 프로파일링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참고서도 아니다. 다음 사례를 통해 그 이유를 알아보자.


사건 일지

새크라멘트 북부의 한 작은 마을. 22세의 임산부가 복부를 깊이 베인 채 살인 당한다. 현관문에서 침실에 이르기까지 난투의 흔적이 있었고 탄피도 두개나 발겨됐다. 죽은 여성은 블라우스와 브래지어, 바지 등이 벗겨져 있었으며 복부는 난자당한 채였다. 성행위는 없었다. 훔쳐간 물건도 없었다.


프로파일링

1. 쾌락 살인이다.

: 성행위는 없더라도 이번 사건 역시 성충동에 의한 쾌락살인으로 분류된다. 강도에 의한 '일반적' 살인은 '보통' 이렇지 않다.


2. 백인 남성이다.

: 쾌락살인은 가해자가 '대개' 남성이며 백인이 백인을, 흑인이 흑인을 죽이는 '경우'가 많다.


3. 20~30대다.

: 연쇄살인범의 연령 '비율'은 이 나이대가 가장 높다.


4. 마른 체형에 극히 지저분한 거주지. 정신 병력 있음

: 이는 범인이 편집형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으리라는 '추측'과 저자가 배운 심리학적 지식에 따른 논리적 결론이다.


5. 독신 남. 군 복무 경험 없음

: 이런 사람과 기꺼이 같이 살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마찬가지로 군 복무를 '했을리도' 없다.


자 그럼 이제 내가 작은 따옴표로 묶은 단어들을 모아보자. '일반적', '보통', '대개', '경우', '비율', '추측', '없을 것', '했을지도'. 눈치챘는가? 프로파일링은 기본적으로 통계에 의한 추론이다. 막대한 범죄 사례(케이스)를 축적해 일반적인 패턴을 찾아내는 일이라는 말이다. 이건 셜록을 꿈꾸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좀 다른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사건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쓱 훑어 본 뒤 뜩, 뿅, 짠하고 추리해내길 원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특수한 범행 현장에서도 말이다.


저자가 고백하듯 프로파일링은 아직 '기술'이지 '과학'은 아니다. 진행자의 경험과 숙련도에 크게 좌우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는 정말 '인터뷰'에서 그친다. 셜록이 되가는 흥미진진한 과정은 없다. 다소 지루한 사례가 400페이지 넘게 반복된다. 어쩔 수 없다. 프로파일링이라는 것 자체가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패턴을 수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프로파일러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재밌게도,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에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유명한 소설가가 아닌 이상 범죄자들과 인터뷰하고 경찰을 통해 범죄 자료를 얻어 보는 일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이 책에 실린 사례들은 일반인들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싸이코패스', '반사회적 인격장애', '연쇄살인마' 등의 소재로 다루는 사람들에게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는 아주 훌륭한 사례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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