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대니얼 길버트 지음, 서은국 외 옮김 / 김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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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고 그런 책이 아니다. 신간도 아니다. 2006년에 나왔다. 2009년 처음 봤고 그때의 충격을 잊지 못해 6년 만에 다시 읽었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는 행복에 관한 책이라기 보다는 미래에 대한 인간의 인지 특성과 심리에 대한 책이다. 수 많은 심리 실험이 나오는데,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남는 장사다. 세상에 남는 장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다는 건 아주 손쉬운 방법으로 특별한 소수가 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인간은 미래를 대비하는 몇 안되는 동물 중 하나다. 인간은 언제나 미래를 상상하고 거기에 대비한다. 이유가 뭘까? 허무하지만 그게 바로 뇌의 취향이다. 인간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고 싶어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사실 통제는 그 자체로 엄청난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권력의 맛'이 바로 '통제의 맛'이다. 권력을 잃은 사람이 시름시름 앓다 죽어가는 것처럼 통제 하지 못하는 뇌는 불안에 빠진다. 그래서 뇌는 끊임없이 미래를 떠올린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오류를 범한다는게 이 통제중독자의 문제지만.



보이지 않는 것 상상하기


우리의 뇌는 보이는 것을 상상하는 데는 유능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떠올리는 데는 정말로 무능하다. 잠시 부자의 삶을 상상해 보자. 아마도 거대한 요트, 멋진 부동산, 잘 빠진 자동차, 화려한 파티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에도 돈을 꿔달라고 찾아오는 수 백 명의 사람들, 옆 집 수영장보다 우리 집 수영장이 작아서 오는 자괴감, 내 돈만 바라보는 자식과 친척들은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부자가 더 낫지! 나 같은 거지의 입장에선 이런 생각을 할 법도 하다. 그러나 행복은 주관적이다. 돈 걱정 때문에 꼬박 한 달을 지새우는 나의 슬픔이 옆 집 수영장 보다 우리 집 수영장이 작아서 오는 자괴감 보다 절대적으로 크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들의 자괴감은 돈 걱정으로 인한 내 불행보다 훨씬 클 수 있다. 말도 안된다고? 그러면 더러운 물 속에 먹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고 생각해보자. 이 먹물은 그저 수 많은 오물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반대로 깨끗한 물 속에 빠뜨렸을 땐? 얘기가 달라도 한참 다를 것이다. 


우리는 부자가 되면 어떨지 갖가지 상상을 하며 즐거워한다. 그러나 부자들은 우리가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불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현재를 기반으로 미래를 상상하기


나는 뷔페를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뷔페를 갔다 올 때마다 항상 이렇게 말한다. '너무 돼지 같이 먹었어. 내가 다시는 뷔페를 오나 봐라'. 이렇게 다짐한 뒤 나는 또 다시 뷔페를 간다!


바로 이 순간 벌어진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을 '느낌', 상상하며 느낀 정서를 '미리 느껴봄'이라고 하자. 우리의 뇌는 미래를 상상할 때 언제나 '느낌'을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이 사실을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막 음식을 먹고 난후 다음 주에 먹을 음식을 구매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 식욕을 과소평가하고 조금밖에 사지 않는다(p171)! 한편 이런 심리 실험도 있다. 한 연구진이 참가자들에게 지리에 관한 문제를 제시했다. 그리고 그들이 각각의 문제에 답하고 나면 정답과 초콜릿바 가운데 하나를 보상으로 주겠다고 알려주었다. 몇몇은 문제를 풀기 전에 어떤 보상을 받을지 선택했고 나머지는 문제를 풀고 난 뒤에 보상을 택했다. 그러자 먼저 보상을 선택한 집단에서는 초콜릿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졌지만 반대의 경우 정답을 더 알고 싶어했다. 문제를 풀기 전에는 자신이 지리 같은 따분한 분야의 정보를 알기 위해 초콜릿을 포기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현재와 미래를 비교하기


다시 부자가 되보자. 잘 빠진 스포츠카가 떠오른다. 그런데 이 스포츠카가 좋아보이는 이유가 뭘까? 간단하다. 그 스포츠카를 현재의 내 똥차와 비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스포츠카를 사고 나면 우리의 똥차는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더 이상 비교할 게 사라진 스포츠카에 대한 열정 또한 시들시들해 진다. 차근차근 돈을 모아 꿈에 그리던 물건을 샀지만 예상보다 쉽게 시들해졌던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이 시들해짐을 견디지 못해 또 다시 더 비싸고 화려한 물건들을 갈망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가장 성능이 좋고 가장 멋진 스포츠카를 산다 하더라도 똑같은 경험이 되풀이 될 뿐이다. 궁극의 경험은 존재할 수도 없지만,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비교할 게 사라진 순간 평범함으로 퇴색되고 만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인간은 천국에서도 영원한 만족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조언을 얻으세요, 결국엔 마음대로 하겠지만


이처럼 미래를 상상하는 일에는 엄청난 오류가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 오류를 피해 그나마 객관적인 미래를 도출해 내는 방법이 없을까? 그건 바로 기경험자들의 말을 들어보는 것이다. 우리가 상상했던 미래를 현실로 살고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래서 고시를 패스한, 삼성전자에 입사한, 떼 돈을 번 선배들의 강연이 비온 뒤 독버섯처럼 무수히 열리는 게 아닌가.


그런데 강의에 나온 선배의 말이 요상하다. 그토록 원하던 회사에, 시험에, 사업에 성공했는데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는 곧 이 일을 그만두고 낙향해 농사를 짓겠다고 말한다. 여러분들도 결국엔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될 테니 지금 이런 일에 목숨을 걸지 말고 좀 더 가치있고 행복한 일을 스스로 찾아보라고 덧붙이면서.


도통 이해가 되질 않는다. 선배는 미친게 틀림없다. 저 사람은 성공을 너무 쉽게 얻었다. 그래서 이렇게 쉽게 버리려는 것이다. 선배는 요령있게 설득해 보지만 한 가지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나'는 선배가 아니다. 나는 당신과 다른 사람인 것이다. 내 인생에선 이게 전부다. 나는 이것만 이루고 나면 더이상 아무것도 바랄 게 없다. 저 사람은 지금 내 갈망이 얼마나 대단한지, 얼마나 '특별'한지 모른다. 내 갈망은 누구보다도 강하다. 나는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하라! 우리는 정말 평범한 사람들이다. 당신의 갈망은 결코 '특별'하지도 '누구보다 강하지'도 않다. 우리는 모두 정규분포 곡선의 불룩 튀어나온 정상에 서서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는 보통의 존재일 뿐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읽고도 이런 비관적 결론을 내릴 수 있다니, 역시 나에겐 좀 특별한 면이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나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네가 정말로 특별한 사람이었다면, 너는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대신 이 책 자체를 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을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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