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3부작 열린책들 세계문학 38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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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돈 키호테의 모험>을 알지 못한다. 나는 이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내가 <돈 키호테의 모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누군가로 부터 그 내용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 이야기를 해준 건 <뉴욕 3부작>이라는 책의 1부, '유령의 도시'에 나오는 등장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폴 오스터'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돈 키호테의 모험>은 이상을 쫓는 숭고한 기사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그런 해석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돈 키호테의 모험>에서 이러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사건, 이를테면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 키호테의 이야기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세르반테스가,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 곁들인 에피타이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사람들이 <돈 키호테의 모험>을 오해하는 이유는 그들도 나처럼 <돈 키호테의 모험>을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건 더 큰 오해가 <돈 키호테의 모험>을 읽어 본 사람들로 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그들은 <돈 키호테의 모험>이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숭고한 기사 로맨스라고 믿는다. 


그들이 읽는 건 <돈 키호테의 모험>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믿음이다.


세르반테스는 독자들에게 자신이 <돈 키호테의 모험>의 저자가 아니라는 점을 납득시키기 위해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돈 키호테의 모험>은 '시드 아메테 베넨겔리'라는 사람이 아랍어로 쓴 것이며, 세르반테스가 할 일이라곤 그 원고를 우연히 시장에서 발견한 뒤 어떤 기사를 고용해 스페인어로 번역한 것 뿐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세르반테스는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사건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주장한다.


<돈 키호테의 모험>이 실제 사건의 목격담이라면 목격자는 그 책의 원저자인 '시르 아메테 베넨겔리'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책 속에서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건 현장에 있었다고 주장한 적도 없다. 원저자를 제외한다면 가장 유력한 목격자는 역시 산초 판사다. 그는 돈 키호테와 모든 모험을 함께한 유일한 동반자니까. 문제는 산초 판사가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저자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해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를테면 돈 키호테의 친구들인 이발사나 사제에게. 그들은 산초의 이야기를 적절한 문학 형식으로 다듬을 수 있을만한 사람들이었으니까. 이발사와 사제는 산초 판사의 구술을 소설로 옮긴 원고를 수습 기사 삼손 카라스코에게 넘겨 아랍어로 번역 한다. 그리고 세르반테스는 어느날 우연히 톨레도 시장에서 그 원고를 발견한 뒤 스페인어로 재번역해 <돈키호테의 모험>을 출간하는 것이다. 이 경우 <돈키호테의 모험>의 원저자 '세르 아메테 베넨겔리'는 산초 판사, 이발사, 사제, 세 사람이 혼합된 가상의 인물일 것이다.


그런데 산초와 돈 키호테의 친구들은 왜 이런 수고를 한 걸까? 그것은 돈 키호테의 광기를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돈 키호테가 미쳐버린 이유는 그가 기사 로맨스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현실과 소설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처음에 기사와 관련된 모든 책을 불태운다. 물론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들이 생각한 최후의 전략은 돈 키호테의 광기에 거울을 들이미는 것이었다. 그의 터무니 없고 익살스러운 망상을 낱낱이 기록함으로써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을 때 잘못을 알아채도록 말이다.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반전이 있다. 


돈 키호테는 정말로 미친 게 아니었다. 그저 미친척 했을 뿐이다. 실제로 그가 모든 일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었다는 걸 암시하는 장면이 있다. 돈 키호테는 작품 전체에 걸쳐 후세의 문제에 집착했다. 몇 번 씩 거듭해서 이야기를 기록하는 사람이 자신의 모험을 얼마나 정확하게 기록할지 궁금해 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것은 돈 키호테가 바로 자기 옆에,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사람이 있음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은 돈 키호테가 직접 기획한 일이며 돈 키호테의 광기를 치료하기 위해 뭉쳤다고 믿은 네 사람, 즉 산초 판사와 이발사와 사제와 심지어 삼손 카라코스는 그저 돈 키호테가 정해준 역을 충실히 수행했던 것 뿐이다. 뿐만아니라 아랍어 원고를 다시 스페인어로 옮긴 것도 아마 돈 키호테 자신이었을 것이다. 돈 키호테처럼 변장에 능한 사람이라면 얼굴을 검게 칠한 무어인(아랍인) 기사로 변해 아랍어 원고의 번역을 부탁하러 온 세르반테스를 맞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이 가정이 맞다면, 


세르반테스는 <돈 키호테>를 번역할 사람으로 바로 본인인 돈 키호테를 고용한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문제는 돈 키호테가 도대체 왜 이같은 일을 벌였냐는 것이다. 돈 키호테는 일종의 실험을 했었던 것 같다. 자기 친구들이 얼마나 잘 속는지. 아마도 그는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세상을 향해 아주 확신에 찬 거짓말과 허튼 소리를 늘어 놓는 일이 가능할까? 


풍차들은 기사들이고, 이발사의 대야는 투구고, 인형은 진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들이 자기의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그 말에 동의를 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사람들이 자기의 말을 재미 있어 한다면 그 말도 안되는 소리를 어디까지 참아낼까? 그 대답은 '얼마든지 참아 낸다'는 것이다. 전 세계 수 많은 독자들이 아직까지도 <돈 키호테의 모험>을 읽는다는 게 그 증거다. 


여기까지가 <뉴욕 3부작>의 1부, '유령의 도시들'에 등장하는 '폴 오스터'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옮겼다. 내가 한 일이라곤 문장의 순서나 약간의 단어 혹은 조사 정도를 바꾼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옮겨 적은 이야기를 쭉 읽고나자 나는 이 리뷰를 여기서 끝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에서 '돈 키호테'를 '폴 오스터'로 바꾸면 <뉴욕 3부작>에 대한 내 감상이 될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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