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적 충동 - 인간의 비이성적 심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조지 애커로프, 로버트 J. 쉴러 지음, 김태훈 옮김, 장보형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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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사상과 탈근대 사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행위 주체인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파악하는냐 비이성적 존재로 파악하는냐에 있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기에 동물과 다르다는, 근대 교육의 진부한 도그마를 주입받아온 사람들에겐 생소할지 모르지만, 정치, 경제, 문화, 세상의 어느 부분이든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라. 인간이 정말로 이성적 존재인지 심각한 회의에 빠져들테니.


<야성적 충동>은 근대 경제학의 대항마로 떠오른 '행동경제학'을 다룬다. 행동경제학이 던지는 질문은 간단하다. 인간이 모든 일을 딱딱딱 판단하고 척척척 행동한다면 주식 시장은 왜 폭락과 폭등을 거듭하며 버블은 왜 발생하고 왜 우리 경제는 불황에 빠지냐는 말이다. 여기에 대한 답은 두 가지가 될 수 있다. 첫째는 우리가 필요할 만큼 충분히 합리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좀 더 과학적으로 좀 더 철저하게 딱딱딱 판단하고 척척척 행동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말. 외견상 완벽한 혼돈으로 보이는 현상에서 패턴을 찾으려는 카오스 이론이나 빅 데이터에 대한 최근의 관심은 아마도 이런 사상적 조류에서 나온 것일테다. 그리고 두 번째 답이 있다. 그 답은 거시경제학을 창조해 대공황과 싸운 존 메이너드 케인즈로부터 들어보자.


"인간의 적극적인 활동의 대부분은, 도덕적이거나, 쾌락적이거나 또는 경제적이건 간에, 수학적 기대치에 의존하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 만들어낸 낙관주의에 의존하려는 인간의 불안정성이 판단과 결정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인간의 의지는 추측컨대, 오직 '야성적 충동'의 결과로 이루어질 수 있을 뿐이며, 수량적인 이익에 수량적인 확률을 곱하는 식의 계산적 이해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존 메이너드 케인즈


보통 사람들의 투자 행태를 보면 케인즈의 '야성적 충동'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보통 사람들의 주식 투자 행태를 살펴보자. 보통 사람들은 결코 투자 기업의 회계 장부를 들춰보거나 주당순이익을 계산하지 않는다. 주식 계좌를 개설하고 매매 버튼을 누르는 건 그들의 머리가 아니라 가슴, 솔직히 말해 불타오르는 질투심이다. 어제밤 술자리에서 2천만원을 몰빵했는데 대박이 나 1억이 됐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투자 목적으로 부동산을 구매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복잡할 게 없다. 그들은 부동산 투자 수익률이 주식이나 기타 금융 자산에 대한 투자보다 더 낫기 때문에 부동산을 구매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그저 가격이 많이 오를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부동산을 구매한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사둔 아파트 가격이 몇 십 배로 뛰었다는 경험이 투자의 근거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그들은 같은 기간 짜장면 한 그릇의 가격도 몇 십 배로 뛰었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못한다. 이처럼 경제 행위는 다양한 심리적 요인, 즉 질투심, 착각, 자신감, 이야기(소문) 등 '야성적 충동'에 의해 이뤄진다.


이 책에 따르면, '야성적 충동'을 배제한 경제학은 결코 현대의 경제 위기를 설명할 수도, 해결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기존의 경제학은 왜 그토록 '야성적 충동'을 외면해왔던 걸까? 나는 여기에도 일종의 야성적 충동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러니까 경제학자, 이른바 사회 과학자인 그들은 정량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비과학적 현상이 자기가 다루는 학문의 핵심 요소라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아닐까? 양자역학의 세계를 열어준 장본인이면서도 정작 그 자신은 종교적 신념 때문에 양자역학을 믿지 않았던 아인슈타인처럼 말이다. 


<야성적 충동>은 경제학의 초점을 어려운 통계와 수학에서 우리의 심리로 옮겼다는 점에서 막연한 친근감을 풍기지만 실제 그 내용은 친근감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이 책을 원활히 읽고자 하는 사람은 화폐 착각, 재정 정책, 통화 정책, 자연실업율, 비자발적 실업 등 기존 경제학의 주요 개념을 미리 알아두는 게 좋을 것이다. 특히 통화 정책중 하나인 공개시장조작, 지급준비율 조정, 재할인율 조정 등을 알아둔다면 독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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