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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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미래 1999년 '나'는 대학에서 지민을 만나 사귀게 됐다. 지민은 돌아가신 엄마가 쓴 출간 금지된 소설을 찾으려 했는데, 마침 나의 외삼촌이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었기에 도움을 요청한다.
난주의 바다 앞에서 섬에 강연을 하러 간 소설가 정현은 마중 나온 김선생과 함께 섬에 도착했을 때 이곳에서 추리소설을 쓰고 있다는 손유미를 마주한다. 정현은 그녀가 30년 전 대학 시절에 알던 '은정'이라는 걸 기억한다.

진주의 결말
범죄심리학과 교수인 '나'는 최근 일어난 사건을 소개하는 시사 프로그램 촬영을 끝냈다. 유진주는 치매 아버지를 돌보다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른 혐의를 받고 있었는데, 현재는 행방이 묘연했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메일을 보내왔다.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나'는 여행 프로그램 진행자로 참여해 몽골 울란바토르로 향했다. 아내 정미가 세상을 떠난 이후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고 과거를 붙잡고만 있던 나는 그곳에서 비로소 그녀의 상실을 마주하게 된다.

엄마 없는 아이들
백신을 맞으러 병원을 찾은 명준은 얼마 후 백혜진에게서 메일을 한 통 받게 된다. 혜진은 명준이 병원에 있을 때 자신도 그곳에 있었다고 하며 운을 뗐다. 명준은 대학 시절 그녀를 만나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연극부가 아닌데도 주연급을 맡아야 했던 그녀와 엄마라는 주제로 서로 이해와 공감했던 때였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나'는 6년 전 우연히 만나 메일 주소를 주고받았던 희진에게서 오랜만에 메일을 하나 받았다. 희진은 일본의 한국문화원의 초청으로 공연을 하게 됐는데, 협회의 회장이 유명하지 않은 인디 가수인 자신을 콕 집어 초대해달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희진은 회장 후쿠다 준과의 만남으로 나와 그녀가 함께 일본 여행을 갔던 2004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사랑의 단상 2014
지훈은 은행 관련 문서를 넣어두는 서랍에서 오래전 한정판으로 출시된 커피 캡슐을 발견한다. 그 캡슐은 이미 헤어진 리나가 선물한 것이었는데, 지훈은 그녀의 기억이 떠올라 지금도 이 커피를 마실 수 있을지 궁금하다.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
출판사에 다니는 '나'는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할아버지가 누군가와 대화하는 듯한 혼잣말이 심해졌다는 걸 엄마에게서 듣게 된다. 할아버지는 '바르바라'라는 세례명에 관해 여러 번 이야기했다는데, 그로 인해 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녹취한 게 떠올랐다.




여덟 편의 단편소설 중 단연 인상적이었던 건 표제작인 <이토록 평범한 미래>였다. 엄마가 남긴 출간 금지 소설 '재와 먼지'를 읽고 싶어 하던 지민을 위해 준이 외삼촌에게 부탁하는 시점과 20여 년 후 준이 우연히 '재와 먼지'를 발견하게 되는 현재의 시점을 오가고 있었다.
이 소설이 특이했던 건 '재와 먼지'라는 소설에 관한 것인데, 이 소설은 동반자살을 한 연인이 인생을 세 번 살게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처럼 시간의 흐름대로 살아가다가 함께 자살을 한 남녀는 그때부터 시간을 거꾸로 살게 된다. 자살을 하기 전에서 한창 사랑을 할 때,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할 때, 처음 알게 됐을 때를 살아가는데, 이들은 모든 과정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돌아간 두 남녀는 다시 인생을 살아간다. 첫 번째의 삶과 거꾸로 되돌아갔던 두 번째의 삶을 기억하며 말이다.
이 소설이 인상적이었던 건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에 있었다. 이 시선이 보통의 것과는 달라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설득력이 있어서 소설의 의미를 되새겼다.

다른 이야기들 중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도 여운을 남겼다. 희진이 오래전에 헤어진 연인에게 보낸 메일에는 일본에 공연을 하러 갔는데, 자신을 꼭 초대해달라고 부탁한 진흥회의 회장 후쿠다 준을 만나 그 이유를 듣게 됐다고 했다. 연인이었던 나와 일본에 여행을 갔을 때 들른 카페에서 들은 곡과 방명록에 남긴 글이 당시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던 후쿠다 준에게 살아갈 용기를 줬다는 것이었다.
얼굴도 모르고, HJ라는 이니셜 외에는 이름도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위로받았다는 이야기가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때로는 낯선 이에게서 받는 위로가 절망에 빠진 우리를 구원하기도 하는 것 같다.

편차가 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좋은 이야기들 덕분에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과 타인을 향한 시선이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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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 - P29

과거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익숙한 아름다움, 무엇인지 그 정체를 잘 알고 있는 아름다움이라면 미래의 아름다움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아름다움, 지금까지의 상식으로는 모순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 그러니까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아름다움이다.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 P108

어느 시점부터인가 줄곧 나를,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나를 기억하게 된 일에 대해서 생각했어. 나는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동안에도 나를 기억한 사람에 대해서 말이야. 그렇다면 그 기억은 나에게, 내 인생에,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 P181

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쓸 때 우리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값어치를 가진다고 말씀하셨는데, 누군가를 이해하는 게 정말 가능하기는 할까요? <진주의 결말>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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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병동
하하키기 호세이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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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 시마자키 유키는 임신이 됐다는 걸 알았다. 엄마에게는 물론이고 집에도 말할 수 없어서 어떻게든 돈을 모아 수술을 받으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2년 뒤, 히데마루의 아버지가 돌아왔다. 왼손을 못 쓰게 된 아버지는 일을 찾지 않고 어떻게든 상이군인 연금을 받으려고 하지만 쉽지 않은 게 당연했다. 결국 아버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술만 마시는 나날이 늘어간다.
정신박약에 농인인 쇼하치는 누나가 결혼해 게이고를 낳자 조카를 끔찍하게 예뻐한다. 게이고 역시 외삼촌인 쇼하치를 잘 따른다. 게이고가 학교에 들어간 나이가 됐을 때, 두 사람은 집안 어른들에게 비밀로 하고 물놀이를 하러 가지만 안타깝게도 게이고에게 사고가 생긴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지 30년이 다 된 주 씨는 병원 사람들과 마치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병원에 보내놓고 찾아오지 않는 진짜 가족보다 매일 만나며 함께 식사를 하고 여가시간을 보내는 이들이야말로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주 씨는 친하게 지내는 히데마루, 쇼하치, 게이고, 그리고 외래진료를 다니는 시마자키 양과 함께 나들이를 나가기도 한다.
이후 병원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주 씨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폐쇄병동'이라고 하면 당연히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들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선입견이라는 게 있어서 지금은 많이 완화됐다고는 해도 정신병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고, 더군다나 폐쇄병동은 정신적인 문제가 커서 강제적으로 격리된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 소설은 처음부터 정신병원을 무대로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았다. 주 씨를 제외한 주요 인물들이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어떻게 살았었는지를 먼저 보여주며 그들의 선입견을 배제시키도록 했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지만, 앞서 등장한 그들의 이야기는 이해와 공감을 하게 만들었다.

이후 소설은 정신병원을 무대로 주 씨를 화자로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그들이 보여주는 일상은 그리 특별할 게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정해진 루틴을 따르고, 식사를 하고, 병원 내에서 각자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어떤 환자는 병원을 청소하는 일을 했고, 글씨를 잘 쓰는 히데마루는 먹을 갈아 정성껏 글을 썼다. 쇼하치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병원의 사진사 역할을 자처했으며, 외래 환자인 시마자키는 도예실을 드나들었고, 주 씨는 병원 부장에게서 매년 봄에 있는 발표회 때에 쓸 연극 대본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다.
너무나 평범하게만 보이는 이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과연 정신적인 문제가 있긴 한 걸까 의심하기도 했는데, 이후 그들이 과거에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어느 정도 밝혀졌다. 끔찍한 살인사건이 있었고 개인의 문제도 있었는데, 그들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 한편으로 가족도 보여주며 누가 정신적인 문제를 갖고 있는 건지 의아하게 만들었다. 특히 주 씨의 여동생 부부는 자기들 잇속만 챙기려고 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 주 씨의 정신병을 들먹이며 병원에 호소를 하고 있어서 황당하게 했다. 그나마 새로 바뀐 주치의가 좋은 사람이라 주 씨의 일은 잘 해결될 수 있었다.

소설이 진행되는 와중에 큰 사건 하나가 일어났고, 그 사건에서 비롯된 결말이 뭉클해지게 만들었다. 세상에 각양각색의 사람이 있듯,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라고 해도 다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정신병을 빙자한 시게무네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라 누군가의 손에 죽어 마땅한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으로 인해 정신병원이라는 장소의 이미지가 안 좋아지기도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 사건이 어떻게 끝을 맺는지는 보여주지 않았지만, 주 씨와 시마자키, 쇼하치, 게이고가 그랬듯 좋은 결말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이 소설은 40년 경력의 실제 정신과 의사가 쓴 것이었다. 누군가로부터 외면받거나 사회로부터 격리된 이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의사의 시선으로 써낸 글이라 그런지 따뜻함이 묻어났다. 마지막엔 눈물이 핑 돌았을 만큼 그들을 환자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고 있어서 뭉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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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는 이미 어떤 인간도 될 수 없었다.
(……중략)
병원에 들어온 순간, 환자라는 차원이 다른 세상의 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곳에서는 이전의 직업도, 인품도, 취향도 일체 따지지 않았다. 해골이나 마찬가지였다.
주 씨는 자기들이 해골이 아니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환자이면서 환자 외의 것도 될 수 있다고 호소하고 싶었다. - P166.167

병원은 최후의 안식처가 아니야. 오랜 여행에 지친 새들이 쉬어가는 숲일 뿐이라네. 병원에서 죽는 새가 되면 안 돼. 아무리 힘들어도 언젠가는 날아올라 자기 둥지로 돌아가길 바라네.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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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세계사 - 인종차별과 빈부격차, 전쟁과 테러 등 넷플릭스로 만나는 세계사의 가장 뜨거웠던 순간
오애리.이재덕 지음 / 푸른숲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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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좋아해서 관련 도서를 많이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몇 백 년 전의 역사는 흥미롭지만, 근현대사는 오래전의 역사보다 복잡하게 느껴져서 그런지 관련 도서를 많이 읽지 못했다.
그러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해서 빌려왔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영화, 드라마 시리즈 중에 관련 역사를 알고 보면 더 흥미로울 작품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다. 넷플릭스 작품 중에 본 것보다 못 본 게 더 많지만 일단 흥미를 갖고 읽기 시작했다.



각본가로 유명한 아론 소킨의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1968년 일어난 믿을 수 없는 재판에 관해 다루고 있다. 베트남 파병에 관한 비폭력 반전 시위가 국가의 주도하에 폭력 시위라는 오명을 쓰게 되면서 시위를 주도한 여러 시민 단체의 대표가 고소를 당해 재판에 세워진 것이었다. 당시 미국 내의 정치, 사회 등의 혼란스러운 시기와, 진보와 보수의 갈등, 사법제도에 관한 문제까지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전당대회에서 시위자들과 경찰의 대치가 TV로 중계됐다고 하는데, 그로 인해 시청자들은 경찰의 시위대 진압이 온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단다. 하지만 추후에 사건 조사보고서를 통해 경찰의 진압이 통제되지 않았으며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졌고, 평화롭게 참여한 사람들과 지나가던 구경꾼들까지 경찰의 곤봉에 맞아 크게 다치는 등의 사고가 있었다고 알려졌다.
역사적 사실에 관해 설명하면서 현재와의 연결점에 관해 말하고 있는 부분이 씁쓸해지게 만들었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가 그때도,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재판 초기에는 8명이 기소됐었는데, 흑인인 보비 실이 별도 재판을 결정하면서 7명이 된 것이었다. 보비 실은 사흘 동안이나 재갈과 수갑을 찬 채로 법정에 끌려 나왔다고 한다. 흑인 인권에 대해 달라진 점이 없는 걸 보면 진정한 평등이란 아직 한참 멀었구나 싶다.

미국 마피아와 노동계의 검은 커넥션에 대해 다루고 있는 <아이리시맨>은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 하비 케이틀 등의 명배우가 대거 출연한 영화다. 노동계의 대통령이라는 별명이 있던 지미 호파의 실종 뉴스가 1975년 7월 31일 보도된다. 지미 호파는 전미화물운송노조를 이끌며 열악한 노동환경에 맞서 싸운 노동운동가지만, 기금을 불법적으로 사용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과 방해꾼들을 제거해 나가며 권력을 독점한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1961년 들어선 케네디 정부는 전미화물운송노조와 조직범죄의 연관성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호파와 케네디 형제의 싸움은 1957년부터 1960년까지 이어진 조사 특위를 통해 여러 차례 청문회까지 개최했다. 그로 인해 케네디 형제와 지미 호파의 관계는 나빠진 게 당연했는데,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됐을 때 지미 호파가 만세를 부를 정도였다고 한다. 케네디의 죽음과 관련된 가족 관계에 관한 내용과 마피아와의 연관성까지 설명하고 있었다.
호파가 어떻게 죽었는지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았고, 유해 또한 발견되지 않았기에 그의 죽음을 둘러싼 내막은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싶다.

너무나 흥미롭게 읽은 책 <퀸스 갬빗>을 최근에 드라마로 감상했다. 아직 리뷰 업로드는 하지 않았지만 올해 본 드라마 중에서 베스트로 뽑을 만한 작품인데, 이 책에도 소개하고 있었다.
소련이 왜 체스 최강국이 되었는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고, 미국과 소련의 체스 전쟁은 냉전시대와 연관 짓고 있었다. 또한 체스계에서 여성이 도외시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었다. 재미있게 본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라 흥미로운 사실이 많아서 좋았다.



스무 편의 영화, 드라마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본 작품보다 못 본 작품이 많다. 그래서 완전히 이해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조금은 아쉬움이 든다. 더 많은 작품을 보고 이 책을 읽었더라면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소개된 작품 중에 취향에 맞을 것 같은 작품을 나중에라도 꼭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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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민 토킹
미리엄 테이브스 지음, 박산호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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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메노파 공동체 '몰로치나'에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다. 공동체의 남자들이 매일 밤 공동체의 여자들에게 동물용 마취제를 뿌리고선 강간한 것이었다. 여자들은 잠에서 깨어나서 두통을 느끼거나 피를 흘렸고, 일부 여자들은 아기를 가졌다. 여자들은 꿈을 꾼 것이라며, 혹은 신이 자신들에게 벌을 내리는 거라 여겼다. 어떤 여자들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숨겼고, 진실을 밝히고 싶어 하는 일부 여자들은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러나 마침내 진실이 밝혀져 범죄를 저지른 남자 여덟 명이 공동체 바깥세상으로 끌려갔다. 주교 피터스는 마을 남자들과 함께 여덟 명의 남자들을 다시 공동체로 데리고 오기 위해 도시로 향했다.

오래전, 몰로치나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지만 파문당해 영국에서 지내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아우구스트 에프는 오나에게서 회의록을 작성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마을 여자들에게 일어난 끔찍한 일에 관해 자신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에 관한 회의였다.



이 책은 소설이지만 실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볼리비아의 메노파 신자들의 공동체에서 일어난 사건은 앞서 기재한 줄거리였다. 자는 여자들에게 동물용 마취제를 사용하고선 강간했고, 사건이 밝혀진 이후 법정에서 유죄 판결이 나서 중형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남자들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데도 공동체에선 여전히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책 초반에 적혀 있었다. 사실 명시에 관한 부분만 읽었을 뿐인데도 혐오스럽고 역겨웠다. 실재하는 그 공동체에서는 여자를 동물처럼 취급하고 있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이후 실제 사건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책의 작가는 그 사건을 토대로 여성들이 나누는 대화와 선택은 자신의 상상임을, 소설이라는 것을 알렸다.

회의에 참석한 여자들은 그레타 뢰벤과 그녀의 딸들인 마리케, 메얄, 그리고 마리케의 딸이었고, 아가타 프리센가와 그녀의 딸 오나, 살로메, 살로메의 조카딸 나이체였다. 그리고 회의록을 작성하기 위해 참석한 유일한 남자가 아우구스트였다. 굳이 남자인 그가 회의록을 작성해야 했던 이유는 몰로치나 여자들이 모두 문맹이었기 때문이다. 공동체에서 여자들은 남자들을 내조하고, 동물을 키우거나 밭일을 하고, 아이들을 먹이고 보살피는 일만 하고 있었다. 남자들의 보살핌이라는 명목하에 지배를 받던 가부장 시대의 여자들처럼 말이다.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인데 가부장적인 작은 사회라니, 그것도 그들이 21세기를 살고 있다니 너무 믿기지 않아서 황당할 정도였다.
웃긴 건 몰로치나 남자들은 딱 두 종류로 보였다는 점이다. 주교 피터스를 포함한 남자들은 여자들을 가축보다 더 하찮게 여기며 강간이나 일삼는 금수만도 못한 놈들이고, 파문당했다가 돌아온 아우구스트나 치매 노인, 어린아이의 정신을 가지고 있던 남자는 공동체의 다른 남자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었다. 이들이야말로 공동체의 여자들에게 그 어떤 해도 미치지 않았는데 말이다.

소설은 사건이 일어난 후 여덟 명의 여자들과 아우구스트가 치매 노인의 다락에 자리를 잡고 회의를 하는 내용을 보여주었다. 아우구스트의 표현대로라면 회의였지만, 사실은 여자들이 스스로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 대화를 나누는 것에 가까웠다. 때로는 대화였고, 분통 터지는 감정을 표현하는 해소 창구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즐거운 농담이 오가는 화기애애한 노닥거림 같기도 했다. 그녀들이 당한 일을 생각하면 너무나 큰 충격이라 내가 다 절망스러웠는데, 그녀들은 그 일이 자신의 인생을 좀먹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자리에 모였기에 좌절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 것인지에 대해 여자들은 몰로치나에 남거나 맞서 싸우거나 아니면 떠나는 세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두 집안의 여러 연령대의 여자들이 모인 만큼 성격도 제각각이라 무엇이 자신들에게 최선인지 대화를 나누었다. 떠나는 것에 다소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던 마리케가 있었고, 불같은 성격으로 어떻게든 저항하려고 하는 살로메도 있었다. 남자들의 짓거리로 인해 아기를 갖게 된 오나는 양쪽 입장을 중재하며 다정하고 따스한 모습을 보였다. 참고로 오나는 아우구스트가 좋아하는 여자이기도 했다.
이렇게 회의에 참석한 여자들과는 다르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던 공동체의 여자들도 언급되었다. 그녀들은 가부장적인 공동체의 관습으로 인해 남자들이 없으면 스스로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여겨 선택도 하지 않으려 했다. 안타깝긴 하지만 그녀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그저 이들의 회의를 마을 남자들에게 말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회의가 지속되면서 여자들은 남는다는 선택지는 진작에 버렸고, 맞서 싸우는 것과 떠나는 것 중에서 어떤 게 자신들에게 최선일지 생각했다. 맞서 싸우는 건 신을 믿는 입장에서는 할 수 없는 것이기에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이들은 문맹이었고, 공동체 밖을 나가본 적이 없는 여자들이었다는 게 발목을 잡았다. 자신들이 아이를 키우고 남자들을 내조하고 동물을 기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누군가가 떠나는 것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여도 다른 누군가가 설득해 마음을 돌리도록 만들었다. 또한 나이가 지긋한 두 여성은 앞날은 내다본 것처럼 결정되지 않았음에도 미리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여 역시 연륜이란 무시할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소소한 복수를 하며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는 걸 보여줬다.

21세기에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작가가 쓴 소설은 아마 현실과는 많이 다를 것이라 여겨진다.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기독교 공동체에서 태어나서 살았던 여자들이 인생 전반을 뒤집는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기 때문이다. 현실은 알 수 없고 혹은 안타까울 수도 있겠지만, 소설 속 그녀들은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투쟁을 하는 결말이 뜻깊고 뭉클하게 다가왔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미래를 응원하게 됐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2023년 제95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수상했다. 배우 겸 감독인 세라 폴리가 연출했고, 프랜시스 맥도맨드, 루니 마라, 클레어 포이, 제시 버클리, 벤 위쇼가 출연했다. 너무 좋은 내용에 배우들까지 좋아서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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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목소리 없는 여자들이야. 우리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우리가 지내는 곳에서도 붕 뜬 존재이고, 심지어 우리가 사는 나라 말도 하지 못해. 우리는 고국이 없는 메노파 신자들이야. 우리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고, 몰로치나의 동물들조차 제 보금자리에서 우리 여자들보다는 안전하게 살고 있어. 우리 여자들이 가진 건 우리가 꾸는 꿈뿐이야." - P91

마리케는 메얄이 발작을 일으킨 건 여자들만의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거라고 말했다. 스스로 지도를 만들어야 하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라 거기에 깃든 의미가 두려웠던 거라고. 이제 우리가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던 거라고. 우리가 미지의 땅으로 출발하게 되는 게 두려워서라고. - P133

그녀는 자신의 세 살 난 아이의 몸으로 또 다른 남자가 폭력적인 충동을 만족시키려 하기 전에 거짓말할 것이고, 악마를 사냥할 것이고, 죽일 것이고, 그들의 무덤 위에서 춤을 출 것이고, 지옥에서 영원히 불탈 것이라고 말했다. - P145

"여기 남아 있는 상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용서란 진심으로 하는 용서가 아니라 강요된 것이겠지. 떠남으로써 우리는 신앙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의무들을, 즉 평화주의, 사랑, 용서를 조금 더 빨리 이룰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이것이 우리의 가치라고 가르치게 될 것이고. 떠남으로써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들의 아버지가 기대하는 그 무엇보다 이런 가치들을 최우선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치게 될 거야." - P169

"우리는 아이들이 안전하길 원해요." 그녀는 울음이 터지는 바람에 말을 이어가기 힘들었지만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변함없길 바라고. 우리는 생각하고 싶어요."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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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물이 너를 베리라
S. A. 코스비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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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사람을 죽이고 교도소에 들어갔다 온 범죄자였지만, 지금은 조경 업체를 운영하며 성실히 살아가고 있는 아이크에게 어느 날 갑자기 경찰이 찾아온다. 자신은 그때의 괴물과는 다르다고 자부하고 있는데도 경찰의 방문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경찰은 아이크 때문에 온 게 아닌, 아들 아이지아와 아들의 남편 데릭의 소식을 가지고 왔다. 바 앞에 서 있던 두 사람이 총에 난사당해 죽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확인 사살까지 당했다는 걸 보면 분명 원한에 의한 살인이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남부 지역엔 아직 수많은 차별이 남아 있어서 아들과 아들의 남편이 게이라는 것도 문제가 됐을 테고, 아이지아는 흑인이고 데릭은 백인이라는 것 또한 극우주의자들의 심기에 거슬렸을지도 모른다.

아이크는 분노로 어쩔 줄을 몰라 했지만 내면에 도사린 괴물을 끄집어낼 수는 없었기에 마음을 다스렸다. 아내 마야, 그리고 아들이 남긴 딸인 아리아나와 함께 아이지아와 데릭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데릭의 아버지인 버디 리가 다가왔다. 버디 리 역시 아이크처럼 전과가 있었던 사람이고, 아들의 죽음에 엄청나게 분노하고 있었다. 버디 리는 아들들을 죽인 사람을 찾아 함께 복수를 하자고 제안했지만, 아이크는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있었기에 거절했다.
그런데 얼마 후, 아이크는 묘지 관리인에게서 아이지아와 데릭의 묘소와 비석이 훼손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비석은 둘로 갈라져 있었고, 동성애에 대한 혐오스러운 욕설이 형광 스프레이로 새겨져 있었다. 죽은 아들까지 욕보인 행위에 더 이상 화를 억누를 수 없게 된 아이크는 버디 리에게 전화해 복수를 하자고 말했다.



아무리 개방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미국이라고 해도 폐쇄적인 부분은 여전히 존재하기 마련인가 보다. 특히 남부 지역은 남북 전쟁 이전부터 이어져온 흑인에 대한 차별이 남아 있다는 걸 의미하는 소설 속 일부 내용을 보면 말이다. 그런 차별이 존재하는 남부에서 흑인 아이지아와 백인 데릭이 결혼해 아이까지 키웠다는 건 분명 이목을 끌었을 것이다. 아이지아와 데릭의 아버지인 아이크, 버디 리조차 아들들의 성 정체성에 화를 냈고, 나중엔 아들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으니 모르는 타인은 더 했을 터였다.
아이크는 죽은 아들을 외면했다는 미안한 마음과 책임져야 할 가족이 새로 생겼기에 분노를 삭이려고 했지만, 묘지와 비석까지 훼손된 걸 보고 나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버디 리와 함께 복수를 시작하게 됐다. 두 사람이 그저 평범한 할아버지에 지나지 않았다면 아들들을 죽인 놈들을 찾는 건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 범죄 전력이 있는 이들이었기에 아직까지 그쪽에 관한 촉을 가지고 있었고, 또 한때의 감방 동기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잘 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방법은 있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두 할아버지의 수사는 탄제린이라는 이름의 여자가 언급되면서 꽉 막히고 말았다. 탄제린을 찾는 것에서부터 너무나 어려웠는데, 아이크와 버디 리만 그녀를 찾는 건 아니었다. 탄제린이 알고 있는 비밀을 위해 기자인 아이지아가 그녀를 돕다가 데릭과 함께 살해를 당했다. 그리고 그 살해를 지시한 건 탄제린이 두려워하던 사람이었고, 지시를 받고 움직인 건 지역에서 유명한 갱단인 '레어 브리드'였다는 걸 알게 된다. 그 레어 브리드는 숨어버린 탄제린을 찾을 겸 아이크와 버디 리를 쫓고 있었다.
아이크와 버디 리는 아들들이 인종차별이나 호모포비아 때문에 살해된 게 아닌 누군가의 원한에 의해 살해됐다는 걸 알게 된 이후 탄제린을 찾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를 찾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는데, 어떻게든 헤매서 찾아내자 탄제린은 너무나 두려웠던 나머지 입을 열 생각이 없었다. 그저 숨어 있고만 싶었다. 그러나 여기서 레어 브리드로 인해 총알이 빗발치는 싸움이 이어져 아이크와 버디 리는 탄제린을 데리고 도망쳐야만 했다.

이후 소설은 탄제린에 관한 비밀과 그녀가 두려워하던 이의 정체가 밝혀지며 놀라움을 안겼다. 여기에 소중한 가족들까지 피해를 입고 납치를 당하는 등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이 연속으로 이어져 과연 버디 리와 아이크가 권력과 화력을 손에 쥔 상대들과 맞설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그러나 소설은 정의의 편에 선 이들에게 복수의 성공이라는 뜻을 이루게 만들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안타깝고 슬픈 사건이 일어나긴 했지만, 앞서 복선처럼 내내 보여주던 장면이 있었기에 그럴 거라는 예상은 했다. 그래도 슬프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말이다.

S. A. 코스비의 책은 두 번째로 읽는 건데 처음 읽었던 <검은 황무지>만큼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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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일을 통해 하나 배운 게 있다면, 정작 중요한 것은 내 자신 그리고 내가 지금 가진 것들이라는 겁니다. 사람들이 진짜 제 모습대로 살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진짜 자신의 모습대로 산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사형선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 P381

"일단 시작한 이상 난 그 개자식들을 찾기 위해 뭐든 할 겁니다. 사람이 다치더라도, 누군가를 죽여야 한대도, 마찬가지로 망설임 없이 할 거예요. 그 개자식들을 잡기 위해 깨진 유리 위로 100킬로미터를 기어가야 한다고 해도 마땅히 할 겁니다. 난 그럴 거예요. 기꺼이 피를 흘릴 준비가 됐단 말입니다." - P72.73

"일전에 아이들을 죽인 사람들을 잡을 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고 했잖소. 그 말 진심이었소? 왜냐하면 난 진심이었거든. 내가 잡은 그 새끼 때문에 다시 교도소에 간대도 난 기쁜 마음으로 주홍색 점프수트를 입고 슬리퍼를 신을 거요." - P352

"그래도 아이들은 자기 스스로 옳게 성장했소. 주변인들에게 좋은 친구였고, 서로에게 다정했으며, 딸에게도 자상했지. 우리 같은 아빠를 뒀음에도 결국 좋은 사람으로 성장했소. 우리가 아이들을 몇 번이나 실망시켰는지 몰라도 아이들은 결국 옳은 길로 갔소."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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