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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민 토킹
미리엄 테이브스 지음, 박산호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5월
평점 :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메노파 공동체 '몰로치나'에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다. 공동체의 남자들이 매일 밤 공동체의 여자들에게 동물용 마취제를 뿌리고선 강간한 것이었다. 여자들은 잠에서 깨어나서 두통을 느끼거나 피를 흘렸고, 일부 여자들은 아기를 가졌다. 여자들은 꿈을 꾼 것이라며, 혹은 신이 자신들에게 벌을 내리는 거라 여겼다. 어떤 여자들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숨겼고, 진실을 밝히고 싶어 하는 일부 여자들은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러나 마침내 진실이 밝혀져 범죄를 저지른 남자 여덟 명이 공동체 바깥세상으로 끌려갔다. 주교 피터스는 마을 남자들과 함께 여덟 명의 남자들을 다시 공동체로 데리고 오기 위해 도시로 향했다.
오래전, 몰로치나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지만 파문당해 영국에서 지내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아우구스트 에프는 오나에게서 회의록을 작성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마을 여자들에게 일어난 끔찍한 일에 관해 자신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에 관한 회의였다.
이 책은 소설이지만 실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볼리비아의 메노파 신자들의 공동체에서 일어난 사건은 앞서 기재한 줄거리였다. 자는 여자들에게 동물용 마취제를 사용하고선 강간했고, 사건이 밝혀진 이후 법정에서 유죄 판결이 나서 중형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남자들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데도 공동체에선 여전히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책 초반에 적혀 있었다. 사실 명시에 관한 부분만 읽었을 뿐인데도 혐오스럽고 역겨웠다. 실재하는 그 공동체에서는 여자를 동물처럼 취급하고 있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이후 실제 사건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책의 작가는 그 사건을 토대로 여성들이 나누는 대화와 선택은 자신의 상상임을, 소설이라는 것을 알렸다.
회의에 참석한 여자들은 그레타 뢰벤과 그녀의 딸들인 마리케, 메얄, 그리고 마리케의 딸이었고, 아가타 프리센가와 그녀의 딸 오나, 살로메, 살로메의 조카딸 나이체였다. 그리고 회의록을 작성하기 위해 참석한 유일한 남자가 아우구스트였다. 굳이 남자인 그가 회의록을 작성해야 했던 이유는 몰로치나 여자들이 모두 문맹이었기 때문이다. 공동체에서 여자들은 남자들을 내조하고, 동물을 키우거나 밭일을 하고, 아이들을 먹이고 보살피는 일만 하고 있었다. 남자들의 보살핌이라는 명목하에 지배를 받던 가부장 시대의 여자들처럼 말이다.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인데 가부장적인 작은 사회라니, 그것도 그들이 21세기를 살고 있다니 너무 믿기지 않아서 황당할 정도였다.
웃긴 건 몰로치나 남자들은 딱 두 종류로 보였다는 점이다. 주교 피터스를 포함한 남자들은 여자들을 가축보다 더 하찮게 여기며 강간이나 일삼는 금수만도 못한 놈들이고, 파문당했다가 돌아온 아우구스트나 치매 노인, 어린아이의 정신을 가지고 있던 남자는 공동체의 다른 남자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었다. 이들이야말로 공동체의 여자들에게 그 어떤 해도 미치지 않았는데 말이다.
소설은 사건이 일어난 후 여덟 명의 여자들과 아우구스트가 치매 노인의 다락에 자리를 잡고 회의를 하는 내용을 보여주었다. 아우구스트의 표현대로라면 회의였지만, 사실은 여자들이 스스로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 대화를 나누는 것에 가까웠다. 때로는 대화였고, 분통 터지는 감정을 표현하는 해소 창구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즐거운 농담이 오가는 화기애애한 노닥거림 같기도 했다. 그녀들이 당한 일을 생각하면 너무나 큰 충격이라 내가 다 절망스러웠는데, 그녀들은 그 일이 자신의 인생을 좀먹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자리에 모였기에 좌절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 것인지에 대해 여자들은 몰로치나에 남거나 맞서 싸우거나 아니면 떠나는 세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두 집안의 여러 연령대의 여자들이 모인 만큼 성격도 제각각이라 무엇이 자신들에게 최선인지 대화를 나누었다. 떠나는 것에 다소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던 마리케가 있었고, 불같은 성격으로 어떻게든 저항하려고 하는 살로메도 있었다. 남자들의 짓거리로 인해 아기를 갖게 된 오나는 양쪽 입장을 중재하며 다정하고 따스한 모습을 보였다. 참고로 오나는 아우구스트가 좋아하는 여자이기도 했다.
이렇게 회의에 참석한 여자들과는 다르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던 공동체의 여자들도 언급되었다. 그녀들은 가부장적인 공동체의 관습으로 인해 남자들이 없으면 스스로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여겨 선택도 하지 않으려 했다. 안타깝긴 하지만 그녀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그저 이들의 회의를 마을 남자들에게 말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회의가 지속되면서 여자들은 남는다는 선택지는 진작에 버렸고, 맞서 싸우는 것과 떠나는 것 중에서 어떤 게 자신들에게 최선일지 생각했다. 맞서 싸우는 건 신을 믿는 입장에서는 할 수 없는 것이기에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이들은 문맹이었고, 공동체 밖을 나가본 적이 없는 여자들이었다는 게 발목을 잡았다. 자신들이 아이를 키우고 남자들을 내조하고 동물을 기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누군가가 떠나는 것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여도 다른 누군가가 설득해 마음을 돌리도록 만들었다. 또한 나이가 지긋한 두 여성은 앞날은 내다본 것처럼 결정되지 않았음에도 미리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여 역시 연륜이란 무시할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소소한 복수를 하며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는 걸 보여줬다.
21세기에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작가가 쓴 소설은 아마 현실과는 많이 다를 것이라 여겨진다.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기독교 공동체에서 태어나서 살았던 여자들이 인생 전반을 뒤집는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기 때문이다. 현실은 알 수 없고 혹은 안타까울 수도 있겠지만, 소설 속 그녀들은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투쟁을 하는 결말이 뜻깊고 뭉클하게 다가왔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미래를 응원하게 됐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2023년 제95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수상했다. 배우 겸 감독인 세라 폴리가 연출했고, 프랜시스 맥도맨드, 루니 마라, 클레어 포이, 제시 버클리, 벤 위쇼가 출연했다. 너무 좋은 내용에 배우들까지 좋아서 꼭 보고 싶다!
"우리는 목소리 없는 여자들이야. 우리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우리가 지내는 곳에서도 붕 뜬 존재이고, 심지어 우리가 사는 나라 말도 하지 못해. 우리는 고국이 없는 메노파 신자들이야. 우리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고, 몰로치나의 동물들조차 제 보금자리에서 우리 여자들보다는 안전하게 살고 있어. 우리 여자들이 가진 건 우리가 꾸는 꿈뿐이야." - P91
마리케는 메얄이 발작을 일으킨 건 여자들만의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거라고 말했다. 스스로 지도를 만들어야 하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라 거기에 깃든 의미가 두려웠던 거라고. 이제 우리가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던 거라고. 우리가 미지의 땅으로 출발하게 되는 게 두려워서라고. - P133
그녀는 자신의 세 살 난 아이의 몸으로 또 다른 남자가 폭력적인 충동을 만족시키려 하기 전에 거짓말할 것이고, 악마를 사냥할 것이고, 죽일 것이고, 그들의 무덤 위에서 춤을 출 것이고, 지옥에서 영원히 불탈 것이라고 말했다. - P145
"여기 남아 있는 상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용서란 진심으로 하는 용서가 아니라 강요된 것이겠지. 떠남으로써 우리는 신앙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의무들을, 즉 평화주의, 사랑, 용서를 조금 더 빨리 이룰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이것이 우리의 가치라고 가르치게 될 것이고. 떠남으로써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들의 아버지가 기대하는 그 무엇보다 이런 가치들을 최우선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치게 될 거야." - P169
"우리는 아이들이 안전하길 원해요." 그녀는 울음이 터지는 바람에 말을 이어가기 힘들었지만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변함없길 바라고. 우리는 생각하고 싶어요."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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