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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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미래 1999년 '나'는 대학에서 지민을 만나 사귀게 됐다. 지민은 돌아가신 엄마가 쓴 출간 금지된 소설을 찾으려 했는데, 마침 나의 외삼촌이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었기에 도움을 요청한다.
난주의 바다 앞에서 섬에 강연을 하러 간 소설가 정현은 마중 나온 김선생과 함께 섬에 도착했을 때 이곳에서 추리소설을 쓰고 있다는 손유미를 마주한다. 정현은 그녀가 30년 전 대학 시절에 알던 '은정'이라는 걸 기억한다.

진주의 결말
범죄심리학과 교수인 '나'는 최근 일어난 사건을 소개하는 시사 프로그램 촬영을 끝냈다. 유진주는 치매 아버지를 돌보다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른 혐의를 받고 있었는데, 현재는 행방이 묘연했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메일을 보내왔다.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나'는 여행 프로그램 진행자로 참여해 몽골 울란바토르로 향했다. 아내 정미가 세상을 떠난 이후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고 과거를 붙잡고만 있던 나는 그곳에서 비로소 그녀의 상실을 마주하게 된다.

엄마 없는 아이들
백신을 맞으러 병원을 찾은 명준은 얼마 후 백혜진에게서 메일을 한 통 받게 된다. 혜진은 명준이 병원에 있을 때 자신도 그곳에 있었다고 하며 운을 뗐다. 명준은 대학 시절 그녀를 만나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연극부가 아닌데도 주연급을 맡아야 했던 그녀와 엄마라는 주제로 서로 이해와 공감했던 때였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나'는 6년 전 우연히 만나 메일 주소를 주고받았던 희진에게서 오랜만에 메일을 하나 받았다. 희진은 일본의 한국문화원의 초청으로 공연을 하게 됐는데, 협회의 회장이 유명하지 않은 인디 가수인 자신을 콕 집어 초대해달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희진은 회장 후쿠다 준과의 만남으로 나와 그녀가 함께 일본 여행을 갔던 2004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사랑의 단상 2014
지훈은 은행 관련 문서를 넣어두는 서랍에서 오래전 한정판으로 출시된 커피 캡슐을 발견한다. 그 캡슐은 이미 헤어진 리나가 선물한 것이었는데, 지훈은 그녀의 기억이 떠올라 지금도 이 커피를 마실 수 있을지 궁금하다.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
출판사에 다니는 '나'는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할아버지가 누군가와 대화하는 듯한 혼잣말이 심해졌다는 걸 엄마에게서 듣게 된다. 할아버지는 '바르바라'라는 세례명에 관해 여러 번 이야기했다는데, 그로 인해 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녹취한 게 떠올랐다.




여덟 편의 단편소설 중 단연 인상적이었던 건 표제작인 <이토록 평범한 미래>였다. 엄마가 남긴 출간 금지 소설 '재와 먼지'를 읽고 싶어 하던 지민을 위해 준이 외삼촌에게 부탁하는 시점과 20여 년 후 준이 우연히 '재와 먼지'를 발견하게 되는 현재의 시점을 오가고 있었다.
이 소설이 특이했던 건 '재와 먼지'라는 소설에 관한 것인데, 이 소설은 동반자살을 한 연인이 인생을 세 번 살게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처럼 시간의 흐름대로 살아가다가 함께 자살을 한 남녀는 그때부터 시간을 거꾸로 살게 된다. 자살을 하기 전에서 한창 사랑을 할 때,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할 때, 처음 알게 됐을 때를 살아가는데, 이들은 모든 과정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돌아간 두 남녀는 다시 인생을 살아간다. 첫 번째의 삶과 거꾸로 되돌아갔던 두 번째의 삶을 기억하며 말이다.
이 소설이 인상적이었던 건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에 있었다. 이 시선이 보통의 것과는 달라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설득력이 있어서 소설의 의미를 되새겼다.

다른 이야기들 중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도 여운을 남겼다. 희진이 오래전에 헤어진 연인에게 보낸 메일에는 일본에 공연을 하러 갔는데, 자신을 꼭 초대해달라고 부탁한 진흥회의 회장 후쿠다 준을 만나 그 이유를 듣게 됐다고 했다. 연인이었던 나와 일본에 여행을 갔을 때 들른 카페에서 들은 곡과 방명록에 남긴 글이 당시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던 후쿠다 준에게 살아갈 용기를 줬다는 것이었다.
얼굴도 모르고, HJ라는 이니셜 외에는 이름도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위로받았다는 이야기가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때로는 낯선 이에게서 받는 위로가 절망에 빠진 우리를 구원하기도 하는 것 같다.

편차가 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좋은 이야기들 덕분에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과 타인을 향한 시선이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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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 - P29

과거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익숙한 아름다움, 무엇인지 그 정체를 잘 알고 있는 아름다움이라면 미래의 아름다움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아름다움, 지금까지의 상식으로는 모순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 그러니까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아름다움이다.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 P108

어느 시점부터인가 줄곧 나를,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나를 기억하게 된 일에 대해서 생각했어. 나는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동안에도 나를 기억한 사람에 대해서 말이야. 그렇다면 그 기억은 나에게, 내 인생에,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 P181

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쓸 때 우리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값어치를 가진다고 말씀하셨는데, 누군가를 이해하는 게 정말 가능하기는 할까요? <진주의 결말>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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