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아마 화성인에게 인간 사회를 이해시키는 데에는 최고의 참고서가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외계인에게 보여 주기위한 것이 이 글의 본질이 아닌 이상 ‘일’에 매여 있는 대부분의 인간에게는 그리 훌륭한 영감을 던져주는 데는 이르지 못한 느낌이다.

21세기 인간사회가 만들어낸 거시적 산업의 흐름을 내다볼 수 있는 직업군을 대표하는 물류산업에서 생산공장, 로켓과학, 직업상담, 그림, 회계, 송전공학, 항공산업 등 일견 빼어난 선택과 “일이 삶의 의미를 준다는 그 엄청난 주장을 파헤쳐 보고 싶었다.”는 당찬 의도와는 사뭇 다른 이방인의 시선만 담겨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당혹스럽기조차 하다. 그래서 그 속에 있어 익숙한 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세세히 묘사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소위 직업사회에 발을 담근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유치한 접근으로 보일 밖에 없다.

다만, ‘프루스트’식, 아니 ‘보통’식 연상 작용에 의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단상의 독특한 연결이 창출하는 때론 시니컬하고, 때론 해학적인 사색을 만나는 즐거움은 여전하다. 각 산업에 대한 속성을 풀어나가는 지루한 여정을 따라가는 따분함이 있지만, 순간순간 던져지는 이러한 의외의 사유에서 냉정함, 미소, 진정함의 발견으로 공감의 머리를 끄덕여지게 하는 매력을 발견 할 수 있다.
일례로 물류산업의 거대한 창고를 보고는 “적어도 산업화된 세계에서는 우리 인간이 수천 년의 노력 끝에 마침내 다음 끼니를 어디서 찾아 먹을까 안달하는 일로부터 벗어난 유일한 동물이 되었음을 보여준다.”는 것과 같이‘창고’에서‘끼니로부터 해방된 인간’을 떠올리는 탁월한 사고의 진행을 보는 흥미로움 같은 것이다.

사실 우리들은 왜 일을 하거나 해야만 하는가? 하는 질문은 어리석기조차 해 보인다. 현대사회에서 일이란 곧 생존을 위한 수단을 의미하기에(물론 일 하지 않아도 먹고 즐기는 예외계층이 존재하기는 한다.) 여기에 성취감 같은 구차한 이유를 붙여보아야 궁색한 답변밖에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가능하면 우리는 일에서 행복과 즐거움과 같은 만족감을 찾으려한다.
저자는 “경제적 요구는 사람을 노예나 동물과 같은 수준에 놓는 것, 그래서 만족과 보수를 받는 자리는 구조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는 인류사회를 2000년간이나 지배해 온‘일’에 대한‘아리스토텔레스’의 식견을 설명하면서, 일이 형벌이나 속죄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처음이라고 알려준다.

그렇다면 근대이전의 일과 오늘의 일은 무언가 다른 것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일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현대인들의 정신과 행동을 설명하는 무엇인가 있다는 것인데, ‘보통’은 18세기 부르주아 사상가들이 그리스 철학자가 여가와 동일시했던 만족을 일의 영역으로 옮겨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일에서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갈망은 지위나 돈에 대한 욕심만큼이나 완강하게 우리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는 최면은 왠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아마도 이 저작의 마지막 구절중 하나인 “우리의 일은 적어도 우리가 거기에 정신을 팔게는 해 줄 것이다.”라는 단순한 한마디가 오히려 정직해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획일적으로 일을 정의하는 것처럼 편협한 것도 없을 것이다. 이 글에 소개되는 화가처럼 “평소의 우리 모습보다 더 우아하고 지적인 대상을 창조하기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는 인간 본성의 비실용적인 측면”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함에도 우린 일이란 것에 내몰려 외형적으로는 사회에 순응하여 고분고분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분노도 쌓여가는 것을 부인하기 힘들다. 이러한 이해하기 힘든 분노는 비스킷 공장의 관심인 비스킷에 부여되는 중요성과 그 물건들의 요구에 부응하느라 애를 쓰는 인간들이 상대적으로 무시당하는 것과 같은 가치의 불균형에서 무수히 양산되고 있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우린 일에서 풀려나기는 힘든데, 무언가 일의 속성에서 위안을 만들어 내야 하지 않을까. ‘일’은,

「완벽에 대한 희망을 투자할 수 있는 완벽한 거품을 제공해 주었을 것이다. 우리의 가없는 불안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성취가 가능한 몇 가지 목표로 집중시켜줄 것이다. 우리에게 뭔가를 정복했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품위 있는 피로를 안겨 줄 것이다. 식탁에 먹을 것을 올려 놓아줄 것이다. 더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 있게 해 줄 것이다.   - P 368 中에서」

이 저술이 본원적으로는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일’에 대한 다양한 고통스러운 심리적 적응과 우아한 정신적 특징을 말하고 있지만, 소개되는 직업들마다에서 발견하는 감동과 경외의 이야기들도 풍부한 소재들로 흥미로움을 제공하는데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또한,‘보통’의 한국독자들에 대한 배려인 듯, ‘한국’의 이미지를 수시로 차용하는 친절함이 겸연쩍지만 반가운 읽기를 지원한다. 또한,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데는 날로 세련되고 전문가가 되고 있지만, 여전히 인간의 감정적 안정조차도 믿음직한 수단을 찾지 못해 헤매는 우리에게 일에 대해 모처럼의 작은 사유의 틈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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