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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과학 - 복잡한 세상의 연결고리를 읽는 통계물리학의 경이로움
김범준 지음 / 동아시아 / 2019년 12월
평점 :
이 세계의 시스템은 개별 요소가 영향을
주고받아, 혼자일 때는 아무 능력이 없지만 여럿이 함께 하면 아무도 생각지 못한 현상을 만들어내는 '복잡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관계'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있을 텐데 아마 우리가 가장 흔하게 접하는 복잡계의 예는 '케빈 베이컨의 법칙' 또는
'6단계의 법칙'이라 알려진 프로세스일 것이다. 6단계 안에서 어떠한 이유로든 모두 관계가 성립한다는 법칙이다.
복잡계의 세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기준이 필요한데 이때 가장 유용한 방법이 바로 '통계학'이다. 통계학은 어떤 알고리즘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한계를 설정하여 우리가 체감할 수
있는 수치나 결과 또는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학문이다. 삭막하긴 해도 그 결과로 나오는 '수치'는 이미 실생활에서 필수가 되어버렸고, 그 수치가
없다면 아마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도 없고, 아무런 계획조차 세울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통계학에서 가장 중요한 건
'수학'이다. 내가 극혐이라 부르는 유일한 학문 바로 '수학'말이다. 수학은 유일하게 객관적인 결과를 내놓는 학문이다.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답이 있는... 그래서 매력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답을 내는 과정을 난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으니 문제가 있어도 답은 모르겠다(종종
수학은 '(공식·과정) 암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역시 '수학 잘 하는 사람=저세상 두뇌력 소유자'라는 등식은 변하지
않는다).
<관계의 과학>은 이런 저세상
학문인 응용수학 중 '통계학'이 우리가 사는 복잡계에 어떻게 적용되고 사용되고 있는지를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해 주고 있는 책이다.
'연결/관계/시선/흐름/미래'라는 제목을 통해 각각 변화의 순간(연결), 측정 가능성(관계), 전체를 읽는 법(시선), 복잡한 지구에 대한
관찰(흐름), 시간의 존재(미래)에 관해 이야기한다.
관심이 가는 몇 가지 사례가
있었는데 그중 특히 '상전이相轉移-시민 저항운동, 비폭력이 이기는 순간'이 그랬다(1. 연결-변화의 순간을 발견하는 일, 39쪽). 정치권력의
전복을 위해 비폭력과 폭력 저항에 관해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쓴 글로, 놀랍게도 비폭력 저항의 성공률이 폭력 저항에 비해 2배나 높은 성공률을
보이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다. 어째서 일까?
비폭력
저항운동에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한다는 것은 쉽게 설명할 수 있다. 폭압적인 권력에 대항해, 폭력적인 저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사실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비폭력적인 수단에 의존하는 저항운동은 다르다. 참여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고, 방법도 다양해 많은 이가 함께할 수
있다.(41쪽)
우리의 역사에서도 이미 경험한 적이
있지만, 비폭력 저항에 정부가 폭력적으로 진압한다면 저항운동 쪽이 더 많은 지지를 받는 경우를 봐왔다. '상전이相轉移'란, 물질이 외부 환경에
의해 형태가 변하는 현상을 뜻한다. 예를 들어 얼음에 열을 가하면 액체(물)로 변하고, 끓는 점을 넘으면 기체(수증기)로 변하는 현상 말이다.
이것을 저항운동에 대입해 보자. 비폭력
저항운동이 발생했다고 하자. 그런데 정부는 폭력 진압을 시도한다. 당연히 사상자가 발생한다. 비폭력 저항운동에 폭력진압을 가하면 진압 당사자
측에선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다. 저항운동 측과 자신들을 가르는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탈자가 생기고, 저항운동 측은 더 큰 힘을
갖는다.
여기서 통계가 등장한다. 'B는 정권
옹호자, Ac는 신념을 가진 저항운동가라고 할 때, 그 사회가 원하는 A로 상전이가 이루어지려면, Ac는 몇 % 가 되어야 하는 걸까?'라는
문제의 답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2016년 우리가 겪어냈던 '촛불집회'와도 연결된 이야기다.
이렇게 <관계의 과학>에서는
통계학을 실생활에 응용하여 새로운 시각과 지식을 전해 준다. 물론 수치화하는 과정이나 낯선 용어가 나오면 순간 두뇌가 마비되는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나는 그랬다). 그럴 땐 스리슬쩍 넘어가자. 그리고 이 책이 전해주는 용어를 천천히 음미해보자(다행히 글도 짧고 재미있다). 저자가
전하는 과학 용어가 실생활을 얼마나 기막히게 설명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용어의 계산법? 이런 건 몰라도 된다.
더 똑똑한 그 분야의 전문가가 있으니까. 우린 적절한 상황에 사용할 용어를 얻은 것에 만족해도 되고, <관계의 과학>은 그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