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이 세계라면 -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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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이라 생각되는 질병에 대한 생물학적인 정보 역시 그 지식을 만들어낸 사회의 편견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문제는 매뉴얼과 교과서 역시 누군가의 관점에서 생산된 과거의 지식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지식의 생산 과정에는 과거의 편견과 권력관계가 스며들어 있습니다.(30쪽)

 

 

<우리 몸이 세계라면>은 권력에 의한 지식의 선별적 탄생/관점에 따른 비교(시선)/차별의 기록/죽음을 다루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과학/상식의 전쟁터, 이렇게 6개의 분야에서 인간의 몸과 질병·생산되지 않는 지식과 측정되지 않는 고통·가난과 인종차별·표준화에서 제외된 여성의 몸·절실히 필요한 의약품이 가장 천천히 개발되는 세계의 논리·지식의 역사적 맥락·질문하고 검증하는 과학의 힘(7쪽)을 이야기한다.

 

 

◆권력, 어떤 지식이 생산되는가◆

편향된 지식, 특히 남성 표준화적인 시각에 의한 연구 결과와 담배 회사(죽음을 파는 마케팅) 전략을 중심으로 어떠한 지식이 생산되는지를 다룬다. 또한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상식과 지식에서 여성과 저소득 국가에 대한 차별, 지식과 지식인 생산의 불평등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흡연하지 않습니다. 그저 팔 뿐이지요. 우리는 그 권리를 젊은이, 가난한 사람, 흑인, 그리고 멍청한 사람들을 위해 남겨둡니다. - 알 제이 레이놀드(담배회사 CEO)의 인터뷰(31쪽)

어떤 지식은 생산되고, 어떤 지식은 생산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지식은 명백히 선별적으로 생산되고 선별적으로 유통됩니다.(62쪽)

 

 

◆시선,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

조선인에 대한 두 개의 시선, 즉 세종 시대와 일제강점기를 다룬다. 일제는 1903년 일본 오사카 만국박람회에서 소위 '학술인류관'이라 불리는 인종 전시관을 통해 '미개한 이들의 문명화'시키기 위한 식민 지배의 정당성(75쪽)을 알렸다. 그러한 비윤리적 행태에서 '체질인류학'이 탄생했고, 그중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혈액형'에 따른 특성 구분이 대두되었다고 한다.  식민 지배의 합리화라는 정답을 정해놓고 그에 부합하는 근거를 수집하는 작업(87쪽)이었던 이러한 혈액형 인종계수학을 과학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제국주의 국가가 식민지를 지배하려 할 때 우월감을 드러내는 가장 빈번한 학문은 '의학'이었다. 일제는 자신들의 우월감을 증명하기 위해 식민지 하의 조선인의 건강 상태를 조사했고, 당시 공포의 대상이었던 천연두의 대응 방안이었던 지석영의 종두법을 자신들의 공로로 돌리는 등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기도 했다.

이는 가진 것이 없는 이도, 많은 이도 약을 지을 수 있도록 구휼, 치료, 매장에 대한 법제적인 조치와 여제라는 종교적 조치를 동시에 진행하도록 배려한 중종의 정책(간이벽온방)과도 비교되며, 조선의 과학을 발전시킨 세종의 정책(향약집성방)과도 비교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해결하고자 했던 이들이 만들어놓은 성과 위에 서 있습니다.(128쪽)


 

 

 

◆기록, 우리 몸이 세계라면◆

소득 불평등과 인종 차별에 의한 공중보건 상태를 다룬다. 가난은 인간의 잠재적인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박탈하기 때문에 국가 개입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가난이 죽음의 불평등으로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151쪽)

건강은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합니다.(153쪽)

한반도만 벗어나면 한국인은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소수자라는 사실을 함께 기억했으면 합니다.(178쪽)

 

 

 

 

 

◆끝, 죽음의 한가운데 있는 삶◆

세 가지의 죽음-암·중세의 흑사병·현대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한 예로 유방암은 고소득층에서 많이 발생하는 암이지만 사망률만 놓고 본다면 저소득층의 비율이 훨씬 높다고 한다. 검진을 통한 조기 발견의 문제인데 그렇다면 과연 암의 발생 원인을 단순히 유전이나 나쁜 생활습관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다음으론 중세의 흑사병 시대를 다루며 현대의 흑사병이라 불리는 HIV를 조명한다. 제대로 치료만 받는다면 일반적인 생활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자살을 선택한다고 한다. 저자는 질병에 대한 비과학적 낙인과 혐오 대신 더 윤리적이고 과학적인 대응(227쪽)을 촉구한다.

 

현대는 '자기 죽음의 주도권을 잃은 시대'(228쪽)다. 대다수가 병원에서 맞이하는 죽음을 당연시하는 시대에 의학이 제공하는 효과적인 방법과 존엄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한다.

 

 

 

 

 

◆시작, 질문되어야 하는 것들◆

질문에서 시작하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 쓸모없는 질문에서 시작해 세계의 작동 원리를 합리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그리스 문화에서부터 질문하지 않은 과학, 즉 비윤리적 의료 행위를 통해 약자의 몸이 착취된 연구에 관한 사례를 다룬다.

 

 

 

 

 

◆상식, 지식인들의 전쟁터◆

어쩌면 인간의 편향된 경험에 의거했을지도 모를 사회적 상식은 과연 신뢰할만 한가?에 대해 질문한다. 국내에서도 한동안 문제가 되었던 '안아키(약 안쓰고 아이 키우기)'와 디즈니랜드 홍역 사건, 기氣치료 등의 사례를 다루고 있다.

 

불신은 이토록 쉽게 전염됩니다.(281쪽)

 

그리고 근대 의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코크란·해부학의 베살리우스·윌리엄 하비·제멜바이스 등)들을 소개하며 그 치열했던 역사의 장으로 안내하며 '질문'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종종 나는 '자유로운가?'라는 질문을 해본다. 뜬금없이 들리는 질문이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다'이다. 내가 자의로 '선택'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선택하도록' 길들여진다. 교육을 통해서 건 미디어를 통해서 건 노출이 빈번할수록 ​내가 그것을 선택할 확률은 높아진다. 그것은 '나의 것'이라 생각해 온 '나의 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유경제 국가에서 '누구나 공평'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란 것을 안다. 하지만 적어도 ​그 구성원인 '인간'에 대해서만은, 특히 의학의 혜택이라는 면에서는 '최소한의 공평'만이라도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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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과학 - 복잡한 세상의 연결고리를 읽는 통계물리학의 경이로움
김범준 지음 / 동아시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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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의 시스템은 개별 요소가 영향을 주고받아, 혼자일 때는 아무 능력이 없지만 여럿이 함께 하면 아무도 생각지 못한 현상을 만들어내는 '복잡계'로 이루어져 있다. ​ 그것은 '관계'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있을 텐데 아마 우리가 가장 흔하게 접하는 복잡계의 예는 '케빈 베이컨의 법칙' 또는 '6단계의 법칙'이라 알려진 프로세스일 것이다. 6단계 안에서 어떠한 이유로든 모두 관계가 성립한다는 법칙이다.

 

복잡계의 세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기준이 필요한데 이때 가장 유용한 방법이 바로 '통계학'이다. 통계학은 어떤 알고리즘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한계를 설정하여 우리가 체감할 수 있는 수치나 결과 또는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학문이다. 삭막하긴 해도 그 결과로 나오는 '수치'는 이미 실생활에서 필수가 되어버렸고, 그 수치가 없다면 아마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도 없고, 아무런 계획조차 세울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통계학에서 가장 중요한 건 '수학'이다. 내가 극혐이라 부르는 유일한 학문 바로 '수학'말이다. 수학은 유일하게 객관적인 결과를 내놓는 학문이다.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답이 있는... 그래서 매력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답을 내는 과정을 난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으니 문제가 있어도 답은 모르겠다(종종 수학은 '(공식·과정) 암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역시 '수학 잘 하는 사람=저세상 두뇌력 소유자'라는 등식은 변하지 않는다).

 

<관계의 과학>은 이런 저세상 학문인 응용수학 중 '통계학'이 우리가 사는 복잡계에 어떻게 적용되고 사용되고 있는지를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해 주고 있는 책이다. '연결/관계/시선/흐름/미래'라는 제목을 통해 각각 변화의 순간(연결), 측정 가능성(관계), 전체를 읽는 법(시선), 복잡한 지구에 대한 관찰(흐름), 시간의 존재(미래)에 관해 이야기한다.

 

관심이 가는 몇 가지 사례가 있었는데 그중 특히 '상전이相轉移-시민 저항운동, 비폭력이 이기는 순간'이 그랬다(1. 연결-변화의 순간을 발견하는 일, 39쪽). 정치권력의 전복을 위해 비폭력과 폭력 저항에 관해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쓴 글로, 놀랍게도 비폭력 저항의 성공률이 폭력 저항에 비해 2배나 높은 성공률을 보이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다. 어째서 일까?

 

비폭력 저항운동에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한다는 것은 쉽게 설명할 수 있다. 폭압적인 권력에 대항해, 폭력적인 저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사실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비폭력적인 수단에 의존하는 저항운동은 다르다. 참여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고, 방법도 다양해 많은 이가 함께할 수 있다.(41쪽)

 

우리의 역사에서도 이미 경험한 적이 있지만, 비폭력 저항에 정부가 폭력적으로 진압한다면 저항운동 쪽이 더 많은 지지를 받는 경우를 봐왔다. '상전이相轉移'란, 물질이 외부 환경에 의해 형태가 변하는 현상을 뜻한다. 예를 들어 얼음에 열을 가하면 액체(물)로 변하고, 끓는 점을 넘으면 기체(수증기)로 변하는 현상 말이다.

 

이것을 저항운동에 대입해 보자. 비폭력 저항운동이 발생했다고 하자. 그런데 정부는 폭력 진압을 시도한다. 당연히 사상자가 발생한다. 비폭력 저항운동에 폭력진압을 가하면 진압 당사자 측에선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다. 저항운동 측과 자신들을 가르는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탈자가 생기고, 저항운동 측은 더 큰 힘을 갖는다.

 

여기서 통계가 등장한다. 'B는 정권 옹호자, Ac는 신념을 가진 저항운동가라고 할 때, 그 사회가 원하는 A로 상전이가 이루어지려면, Ac는 몇 % 가 되어야 하는 걸까?'라는 문제의 답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2016년 우리가 겪어냈던 '촛불집회'와도 연결된 이야기다.

 

이렇게 <관계의 과학>에서는 통계학을 실생활에 응용하여 새로운 시각과 지식을 전해 준다. 물론 수치화하는 과정이나 낯선 용어가 나오면 순간 두뇌가 마비되는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나는 그랬다). 그럴 땐 스리슬쩍 넘어가자. 그리고 이 책이 전해주는 용어를 천천히 음미해보자(다행히 글도 짧고 재미있다). 저자가 전하는 과학 용어가 실생활을 얼마나 기막히게 설명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용어의 계산법? 이런 건 몰라도 된다. 더 똑똑한 그 분야의 전문가가 있으니까. 우린 적절한 상황에 사용할 용어를 얻은 것에 만족해도 되고, <관계의 과학>은 그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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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배우는 와인의 역사 한빛비즈 교양툰 5
브누아 시마 지음, 다니엘 카사나브 그림, 이정은 옮김 / 한빛비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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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약 325억 병 소비, 인구 1인당 5병 소비(2017년).

생각보다 엄청난 ​소비량을 자랑하는 '와인'은 나에겐 그다지 익숙한 술은 아니다. 금액에 상관없이 몇 번 마셔본 결과에 의하면 먹는 법도 복잡하고, 이런저런 맛을 느낄 정도로 미각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 해서 집에서 만든 '포도주'보다 맛없는 술이라는 인식도 있다(집에서 담근 술은 달달하고 진하고 맛있기까지 하니까!).

 

<만화로 배우는 와인의 역사(이하 와인의 역사)>는 10,000년의 역사를 가진 와인의 과거-현재-미래를 조명하며, 나처럼 어렵게만 생각했던 '신의 물방울'의 유구한 역사를 설명하는 한빛비즈의 교양툰 시리즈 중 5번째 책이다.

 

화자話者는 술이야기답게 바커스(디오니소스)다. 바커스는 최초의 와인 이야기가 등장하는 구약성경의 '노아'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며, 우연히 발견된 야생 포도를 저장하기 위해 도기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포도는 자연발효되는 과일 중 하나라 신석기시대 인류가 이미 발효된 포도즙을 알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시작된 와인의 역사는 4대 문명 발생지 중 하나인 초승달 지대와 중동을 거쳐 종교와 결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와인의 발달과 함께 눈에 띄게 발달한 분야가 또 있는데 그것은 바로 와인을 담을 '도구'의 발달이었다. 당시 목축 경제의 발달로 염소 사육과 올리브 경작, 포도 재배가 결합하면서 염소 가죽으로 만든 '부대'가 유통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인류의 와인 문화는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바로 장기간 보관이 가능해지며 숙성할수록 더욱 풍성한 맛을 지니게 된 와인이 바다를 건너간 것이었다.

 

야생 포도로 '발견'되어 전 세계를 사로잡는 음료로 '발전'해온 와인의 역사는 인류가 걸어온 정치-경제-종교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와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달된 과학 역시 의학에 영향을 끼치며 발전해온 과정 또한 흥미롭다. 그 과정에 있는 와인의 의미는 그저 '술'이라고 치부하기엔 생각보다 깊어, 맛에 대한 인간의 집념이 느껴지기도 한다.

 

한빛비즈의 교양툰 시리즈는 솔직히 꼭 알아야만 하는 지식을 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쉽게 지나쳐왔던 여러 분야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선 한 번쯤은 권해주고 싶은 시리즈다. 그리고 그러한 지식이 의외로 재미있기 때문에 놓치고 지나갔을 수도 있는 관심 분야를 환기 시켜 주기도 한다.

 

이번에 바커스와 함께 해본 <와인의 역사>는 특히 관심 분야인 '종교'와 연관된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한 사물의 역사가 인간의 역사와 함께 변해 온 과정을 살펴보는 일이 나에겐 무척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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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하늘 빨간지구 - 기후변화와 인류세, 지구시스템에 관한 통합적 논의
조천호 지음 / 동아시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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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 빨간 지구>는 대기과학자이자 전 국립기상과학원 원장인 저자 조천호가 중앙선데이, 한겨레(인터넷판), 경향신문, 크로스로드 웹진 등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모아 만든 책입니다. '들어가는 말'에 이 책의 제목에 대한 짧은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저자가 끌린 대지의 붉은 흙 '빨간 지구', 아내가 좋아한 '파란 하늘'을 합쳐 제목을 달았다고 합니다.

 

이 책은 크게 6장으로, 한 장은 각각 짧은 칼럼 5-8개 정도로 구성되어 있고요, 신문에 실렸던 글답게 보편적이고 어렵지 않은 글로 꽉 차있습니다. 책 내지도 환경에 관한 서적답게 재생용지를 사용했다고 하고요. 표지부터 내지까지 여러모로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한 서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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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는 생명이 탄생하고 번성했지만, 변화가 없던 다른 행성에서는 생명이 탄생하지 않았다. 지구는 여타 행성과 무엇이 달라서 변화가 일어났을까? 그것은 바로 '우연'이다.(1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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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합한 기후의 출현은 우연이었지만, 우리 생존에는 필연이다. 이제 인간이 기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 의도하지 않은 이 우연이 지구를 파국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인간의 신통함은 이 우연을 안다는 데 있고, 인간의 위대함은 이 우연을 다루는 데 비로소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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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류 문명이 인간 지성의 필연적 결과라고 생각하는 오만을 저지르고 있지만, 지구 역사를 보면 이 역시 좋은 기후 조건을 만난 덕에 일어난 우연한 사건일 뿐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수억 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화석연료를 태워 오늘날의 번영을 이뤘다. 하지만 이 번영은 과거 7,000년에 걸친 문명을 지탱해왔던 안정된 기후를 붕괴시킬 정도로 위협이 되고 있다. 이제 인류는 자연적인 기후변동에 적응하는 것을 넘어 오히려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주체가 되었다.(37쪽)

 

 

우선 저자는 <파란 하늘 빨간 지구>를 통해 인간이 환경을 어떻게 변화시켜 왔으며, 그러한 변화가 현재에 이르러 어떤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왔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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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디작은 오염 먼지 안에 무시하지 못할 위험과 갈등을 감추고 있다. 오염 먼지는 산업 문명의 실패가 아니라 성공에서 발생했다. 화려한 문명 안에서 축적되는 오염 먼지로 우리는 병들고 서로 갈등한다. 작은 먼지가 거대 산업 문명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이렇게 먹고 쓰고 버리고 사는 게 맞느냐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181쪽)

 

 

요 몇 년 사이 국내에서도 가장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던 대표적인 사안은 '미세먼지'였습니다. 저 같은 경우 서울에서도 공기가 좋은 편에 속하는 곳에 살고 있지만, 뿌연 하늘과 문을 열지 못하고 공기청정기를 돌리는 봄을 보내야 했습니다. 짜증이 나더군요. 회색 먼지로 덮인 거실 창문, 뿌연 하늘, 코가 간질간질한 그 느낌... 모든 것이 '중국' 탓이었죠. 하지만 진짜 우리가 겪었던 그 수난이 오로지 '중국' 탓이었을까요?

 

우리가 무심코 버린 플라스틱에 바다가 시들어가고, 신경 쓰지 않고 내다 버린 종이 한 장에 아마존의 수목이 사라져갑니다. 아마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SF 영화에서 보던 인류 멸망의 시나리오가 낯설지 않은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환경은 우리를 살 수 있게 하고, 또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장소입니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서, 국가는 국가의 자리에서, 세계는 세계의 자리에서 각자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전한 문명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자연과 기후 앞에선 속수무책입니다. 참을 만큼 참은 자연과 기후가 우리에게 협력이 아닌 자신의 '생존'을 요구한다면 우린 그에 맞설 수 있을까요? 아마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라도-그러한 자연의 요구를 받기 전에-대지의 붉은 흙과 파란 하늘에게 먼저 공존을 제의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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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배우는 의학의 역사 한빛비즈 교양툰 4
장 노엘 파비아니 지음, 필리프 베르코비치 그림, 김모 옮김, 조한나 감수 / 한빛비즈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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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배우는 의학의 역사>는 한빛비즈의 '웃다 보니 얻어걸린 지식-교양툰'의 세 번째 작품입니다. 곤충의 진화, 공룡의 상태에 이은 '의학의 역사' 편인데요, 우리의 삶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의학의 역사를 재미있게 써(그려) 내려간 그래픽 도서입니다.

 

원시시대 '본능'에서 탄생한 의학은 고대 이집트에서는 '주술'과 결합,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로 이어졌고, 중세를 거치면서 '종교'와 결합하여 오늘날에는 '과학'과 결합한 '의학'이 생겨난 역사를 가지고 있지요. 그러한 의학의 역사 속에는 당시의 사회와 맞물려 지금에 와선 '세상에...'라는 감탄/한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만화로 배우는 의학의 역사>는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사실도 알려주고 있는데요, 진통제를 창안한 인물은 중국의 전설적인 의학자 '화타'였다든지, 고대 의학은 사라졌어도 철학과 결합한 중국 의학은 아직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의학은 단독적으로 시작된 학문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암흑의 시대라 일컬어지는 '중세'에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다룬 중세 시대에 관해 특히 더 관심을 가지고 읽었어요. 종교적으로 피를 거부했던 기독교 세계관 덕분에 공식적으로 칼을 사용할 수 있었던 '이발사'가 외과 수술을 했다는 이야기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던 사실이었죠.  

 

당시 종교는 피를 싫어한다고 하면서도 역사상 가장 많은 피를 흘린 시대이기도 했기에 이런 아이러니의 시대에도 의학이 발달했다는 이야기를 보니 신기할 정도에요. 마녀사냥의 시대, 십자군의 시대를 거쳐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의학은 수많은 희생 위에 쌓아 올려진 금자탑입니다. 의학의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멀쩡한 사람을 짓밟고 올라선 지금, 그 의학의 혜택을 누리고 산다는 현실이 조금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100세 시대라고 합니다. 그만큼 건강과 병원은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죠. 단순한 약초의 사용에서 시작해서 로봇이 수술을 하는 시대, 우리가 이렇게까지 되기 위해 의학은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되짚어 보는 것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화로 배우는 의학의 역사>에서 다루는 내용은 보다 쉬운 전달을 위해 (당시에는 진지했겠지만) 회화화된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목숨을 다루는 의학은 그 이면에 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피와 땀, 노력과 진지함이 담겨 있습니다. 수 천년에 걸친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의학... 오늘도 히포크라테스 선서자들에게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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