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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핸드 타임 -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ㅣ 러시아 현대문학 시리즈 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가감없이 보여주는 평범한 이들의 역사, 세컨드핸드 타임
이러니저러니 해도 '권위있는 상'의 영향력은 무시 못한다.
얼마전 우리나라 소설가 한강이 해외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맨부커상'에 한국인 최초로 후보로 선정되면서 크게 화제가 되었다. 그 덕분에 후보작으로 오른 한강의 <채식주의자>의 판매량도 껑충 뛰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역시 그렇다. 그녀가 작년 노벨문학상을 타지 않았었다면, 그녀를 알고, 그녀의 작품을 찾아 읽어보는 사람들이 지금만큼 있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권위있는 상'의 역할일지도 모른다. 묻힐 수도 있었던 좋은 작품들, 작가들이 대중에게 알려지도록 계기가 되어주는 것.
사실 <세컨드핸드 타임>을 읽는 건 이번이 두번째. 그러니까 세컨드 타임이었다.
원래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최근 이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읽고, 또 읽는다. 그리고 새로운 부분들을 발견하고, 새롭게 생각한다.
<세컨드핸드 타임>의 경우 상반된 관점들의 이야기가 함께 쓰여 있기 때문에, 자꾸 읽으면서 꼼꼼하게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평소 소설책을 읽었던 때처럼 휙휙 책장을 넘기기에는, 이 책에 담겨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들 하나하나에 그들의 삶과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뿐이다.
사건의 질서정연함, 아름다움, 그 깃발들, 음악 그런 것은 차후에 알려지는 거예요. 그리고 동상으로 세워지는 거죠. 하지만 실제 삶은 조각나 있고, 더럽고 초라해요. (p.101)
이제는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소련.
정치적인 문제에 관해 그다지 관심있는 편도 아니고, 세계사에 대해 잘 아는 편도 아니어서 '소련'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정보만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 나라에 살던 사람들에게 소련이라는 나라가 어떤 존재였는지도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었다.
이 책에는 소련이 강성하던 시절, 그리고 무너지던 시절을 거쳐온 이들의 기억이 담겨 있었다.
소련이라는 나라(아니, 나라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걸까? 잘 모르겠다)가 넓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던 곳이니만큼, 사람들의 성향도, 기억도 다양하다.
누군가는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누군가는 그 시절을 괴롭게만 기억한다.
소련이 강성했던 시절, 무너지던 순간, 그리고 현재.
같은 시간을 다르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각각 자신의 기억을 풀어놓고 있었다.
상반된 관점. 그 중 하나만 진실이고 다른 것들은 모두 거짓된 기억일까?
책을 읽다보면,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누군가가 이야기했듯이, 그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각자가 믿고 있는 진실. 분명 존재했던 시간들. 역사들. 단지 그들이 어느 위치에 있었느냐에 따라, 그 순간 어디에 있었느냐에 따라 본 것도, 느낀 것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역사는 사상의 인생입니다. 사람들이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역사를 기록하는 겁니다. 그 가운데서 인간의 진심은 못 같은 역할을 합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모자를 걸어두는 그런 못이요. (p.165)
책을 읽어갈수록, 뭔가 미묘하다고 생각했다.
전혀 알지 못하던 세계, 알지 못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그들이 풀어내는 그들의 역사는 어디서 본듯한 느낌이다.
다른 입장을 가진 세력이 충돌하고, 한때 강대했던 제국이 위에서부터 너무나 어이없게 무너져버리고. 기존의 세상을 바꾼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힘을 합친 덕분이었는데, 바뀐 세상속에서 그들의 위치는 여전히 그대로.
역사는 반복되는 걸까.
그렇다면 또다른 새로운 사상이 나오고 그 사상이 이 세계를 다시 바꿔놓을 수도 있을까?
지금의 모습들이 후회 속에 담겨지고, 심지어는 부정당하게 되는 일까지 생길 수도 있을까?
과거 '실패했다'고 간주되는 사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저는 모든 걸 기억해내고 싶어요. 그동안 지나온 세월들을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죠. 제 인생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소비에트의 세월들을 말이에요. (p.62)
이렇게 이야기했던 한 인터뷰이의 말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눈으로 보았던 소비에트의 세월들이 담겨 있는 책이었던 것 같다.
사실, 두번이나 읽었는데도 아직 온전히 이 책에 실린 말들을, 이야기들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니까 또다시 읽어야겠다. 언젠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