릿터는 관심있는 주제가 실릴 때마다 사보기는 했지만 이번 호만큼 꼼꼼하게 읽었던 적은 없었다. 이번 호의 주제는 여성-서사이다. 요즘 페미니즘, 여성서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아서 더 관심이 갔다. 

첫머리는 기존의 유명 문학작품에서 드러나 있지 않던 여성들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재해석한 짧은 소설들로 시작한다. 운수좋은 날이나 날개가 이렇게 읽힐 수도 있겠구나 새롭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만드는 잡지의 한 코너 같기도 했지만. 이야기에서 화자가 누구인가, 등장인물 중 누구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가가 중요한 문제임을 새삼 깨닫는다. 
이슈의 글들이 특히 흥미로웠다. 민주화 이후 1990년대의 여성문학에 대해 다룬 글에서는, 내가 어릴 적 집의 책장에서 발견하거나 서점에서 자주 보곤 했던 여성작가들의 소설이 갖는 의미를 다루었다. 읽어본 것도, 이름만 들어봤지 안 읽어본 것도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개별적으로 인식했던 소설들이 큰 흐름에서 보면 이런 의미를 가지는구나 생각해보게 되었다. 
당대의 여성서사가 갖는 의미, 동일시와 공감이 곧 동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걸리는 부분이 있다는 것(얼마 전 읽었던 이다혜 기자의 책이 떠오르기도 하고), 여성적이라는 말에 대한 의문, 현실 안에서 여성의 자리를 인식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논한 글도 좋았다. 82년생 김지영에 대해서는 문단 내에서도 이야기가 뜨겁게 오갔나보다. 이 소설을 두고 '정치적 올바름과 미학성의 결여'라는 이분법적 도식적 평가(내가 처음 읽었을 때 느낀 감상은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와 이와 다른 관점에서 '다원적 권력관계를 드러내지 못하는 정치적 뭉툭함이 문제'라는 평가, 독자들이 원하는 '명료한 사실로서의 메시지이자 정보'에 걸맞는 형식을 제시한 새로운 미학으로 설명하는 견해, 이 책으로 새롭게 각성한 독자들이 있다는 점이 의미있다는 견해, 현실에 대한 문학적 개입의 방식 문제(클리쉐와 뻔한 결말을 비판하는)로 접근하는 견해,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말로 폄하하려는 견해 등 다양한 견해가 소개되어 있다. 문단의 논의에는 평소 별 관심이 없었지만, 나 또한 82년생 김지영을 처음 읽었을 때, 그동안 너무 뻔했는데도 잘 다루어지지 않은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그린 점은 흥미로웠지만, 이전까지 읽었던 '소설'이라는 작품이 가진 어떠한 분위기-작품성?-와는 다소 다른, 직설적인 표현에 다소 실망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이런 이야기를 던지는 것 자체로 지금은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소설이란 대체 무엇인가...이렇게 모호하게 생각이 흘러가고 말았는데, 평론가들의 치열한 논의를 이렇게라도 엿보니 아주 흥미진진했다. 그러다가 도덕에서 자유로운 문학이 과연 더 예술적인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말을 조롱의 언어로 쓰는 의도나 목적은 무엇인가, 이렇게 쓸데없이 생각이 또 흘러가버렸다. 
칙릿 이후 여성 서사-지난 20여년간 베스트셀러가 된 여성서사소설의 연대기도 흥미로웠다. 칙릿 소설, 反 소비 소설(김애란), 욕망을 초월한 사랑(황정은, 김금희), 여성혐오를 다룬 소설(조남주),  여성연대를 다룬 소설(최은영, 김혜진) 등등..비교적 최근의 소설들이 많아서 더 관심이 갔다. 이 책들을 이렇게도 또 분류할 수 있구나-작가들 본인은 그렇게 생각 안 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몰랐는데 넷플릭스는 젠더감수성이 콘텐츠 서비스의 기준이 된다고 한다. 수요자를 고려한 마케팅의 일환이라도 기꺼이 그 마케팅에 응해주어야겠다. 
산문은 소소하고 평이했다. 브르통과 제발트의 책 싸움 이야기는 내가 그 작가들 책을 읽었으면 더 재밌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뜻밖에 책광고 <냉면의 품격>에 조금 낚였다. 읽어봐야지. 
원더걸스 혜림의 인터뷰 - 스스로 원해서 공부하는 게 너무 재미있다는 그녀가 부럽고 혜림을 재발견한 느낌이었다. 소설가 박민정의 인터뷰는, 내가 책을 안 읽어본 작가인 데다가 강남 8학군 출신이라는 이야기가 여기저기 나와서 처음에는 아니꼬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소설 창작과정에 대한 이야기, 문단 내 남성 중심적 분위기 이야기가 솔직하고 재미있어서 끝까지 보았고, 그녀가 쓴 소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녀 이야기를 들으니 왜 '여성서사'가 새삼 주목받고 문단에서 핫이슈인지 짐작이 되기도 했다. 인터뷰 중 '자기 슬픔을 너무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 보수적으로 된다'는 말, 내 슬픔을 너무 오래 바라보고 싶지 않다는 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나도 그래야지. 단편소설들도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었다. 
 

이것도 여성서사의 관점에서 바라본 책과 영화 이야기. 
 



  
 
 
 
 
 
 
 
 
 
 

 그리고 여성서사라는 주제와 연관지어 읽어보려는 책(아직 읽지는 못했다).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다시 읽어보는 근대기 이후의 한국문학이라는 큰 주제로 여러 저자들의 글을 모은 책이다. 서문만 읽어보아도 상당히 논쟁적인 글들이 많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문알못이라 읽다가 어려워서 적당히 스킵할지도 모르지만.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책 디자인. 
볼 때마다 코팅표지로 제본 뜬 대학교재같다. 왜 하필...  
   
 
 
 
 
 
 
 
이것도 함께 읽고 있는 책들. 


이렇게 여러 저자들이 쓴 글을 모은 책은 한 명의 저자가 일관된 생각을 가지고 쓴 책에 비해 논의가 깊게 나아가지 못하고 관점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여러 시각, 관점을 한 번에 접하고 한 가지 시각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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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18-09-30 0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를 보고 이번호 릿터를 장바구니에 담아 결제합니다~ !!

vearnim 2018-09-30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쑥스럽네요 ^^; 공장쟝님께서는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