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사들의 성폭행 성추행이 연이어 폭로되는 가운데 내가 아는 분도 가해자로 지목되었다. 연락하라고 준 그 번호로 멋모르고 안부인사라도 건네다 엮였더라면 내 인생도 지금쯤 끝없는 바닥과 고통을 전전하고 있을지 모를일이다.

예전에 남자 지인이 ‘왜 성폭행 당하면 바로 신고안하냐 그러니 꽃뱀이란 오해를 받는거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성범죄는 권력형 범죄이다. 여자가 술 취해서 강간하는 것도 아니고 옷을 야하게 입어서 강간하는 것도 아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해 ‘쟤는 내가 건드려도 별 일 없을거’란 확신이 있으면 강간 하는거다. 성범죄는 범죄를 증명하기 어렵고 설사 범행사실을 입증해도 처벌이 가볍다. 반면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밝히면 높은확률로 ‘꽃뱀’ 소리 들어야 하고 권력형 범죄의 특성상 가해자의 보복으로 삶 상당부분이 파괴된다. 보통의 경우 커리어가 회복 불가능하게 훼손된다. 이런 상황, 즉 자신의 남은 수십년 인생이 한꺼번에 좌지우지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쉽게 가해사실을 신고할 수 있을까?

피해사실을 밝히기보다는 살아있는 송장이 되길 택했던 많은 피해자들이 하나의 물결을 타고 자신의 썪은 속을 보여주는 요즘의 나날들은 사실 여자들에겐 놀랍지도 않다. 여자들에겐 이미 일상적인 일이니까. 나는 피해자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보수진보공작 거리는 싸이코패스 같은 놈에게는 분노한다. 그자가 그리 좋아하는 공작설 프레임으로 그 자의 발언을 보자면 진보인사들 성폭행 폭로가 언제 터질까 두려워 미리 펜스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에게 번호 준 그 사람은 작년 문재인 선거 유세장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다. 물론 나는 일개 지지자이고 그는 단상에 있었다. 내가 그와 연락하고 피해자가 되고 내 피해를 고백했다면 나는 진보를 공격하기 위해 ‘준비’된 꽃뱀이란 소리를 들었을거다. 사회에 해악은 꼭 정형화된 형태로만 끼치는 것이 아니다. 강간을 하는 개새끼가 있는가 하면, 강간 피해자를 잠재적 꽃뱀으로 프레이밍 하며 혀로 죄를 짓는 개새끼도 있는 법. 당신은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꽃뱀 감별사는 더더욱 아니랍니다. 거울 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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